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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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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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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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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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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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너무 많아

DUMMY

합주와 협주.

비슷한 단어라 많은 사람이 똑같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둘은 닮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우선 합주의 경우, 2개 이상의 악기가 누구 하나 특출난 부분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협주는 합주와 똑같이 2개 이상의 악기를 다루지만, 오직 주인공, 단 하나의 악기만을 돋보이게 해준다는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한 번에 정리하자면.

이번에 리나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것이 협주.

노헌이 독일 친구들과 선보이는 것이 합주였다.


【노헌이, 네가 이번에 하는 건 합주니까, 혼자 뛰쳐나가기보단, 다른 악기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중요해.】


그의 조언에 노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친구의 호령과 동시에 노헌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합주곡은 다행히 유명한 곡임에도 동시에 난이도도 쉬운 편이라, 노헌은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었다.


다만.


“아, 미안.”

“아냐, 원래 다들 처음에는 그래~”


다른 사람과 연주를 맞추는 것은 처음인지라, 어긋나는 부분이 종종 생겼다.


“다시 할게.”

“마음 편하게 해, 실수해도 아무도 뭐라 안 하니까.”


이후로도 삐거덕거리는 노헌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독일 친구들은 웃으며 격려해 주었다.


다행히도 가면 갈수록 실수는 점점 줄었고, 마침내 해가 저물기 시작했을 땐 어느 정도 들어 줄만 했다. 실제로 연습 때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좋아.”


꽤 만족스러웠는지, 연습은 이쯤에서 끝이 났다.


“내일 낮부터 연습하다가, 저녁 먹고 오면 실전이야!”

“알겠어. 그럼, 내일 보자.”


인사를 마친 노헌은 그대로 광장을 벗어났다.


‘덕분에 즐겁게 보냈네.’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

혼자 피아노를 치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악기들과의 합주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내일 합주, 리나한테도 들려주고 싶은데··· 아마 안 되겠지?’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꽤 늦은 시간이었기에 아무래도 광장에 초대하기엔 불가능해 보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온 집, 남은 시간 동안 노헌은 내일 합주곡을 연습하곤, 저녁을 차렸다.


“나, 왔어~”


그리고 타이밍 좋게 돌아온 리나.


“오올~ 이노헌! 저녁 차려준 거야?”

“손 먼저 씻어.”

“네네~”


알찬 저녁을 먹고, 노헌은 테라스 흔들의자에 앉았다.

물론 겨울이었기에 몸에 이불을 칭칭 감고 말이다.


‘멀리서 봐도 예쁘네···.’


깜깜해진 밤하늘을 수놓은 일루미네이션.

같이 합주하던 친구에게 듣기론, 내일이 크리스마스 마켓 마지막 날이라, 광장에 사람이 평소보다 많이 몰릴 거라고 했다.


솔직히 조금 긴장되긴 했지만, 콩쿨 때보다는 아니었다.

그땐 정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흔들거리는 의자에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아~ 개운하다!”


옆자리에 추가된 이불 뭉치 하나.

이제 막 씻고 나온 리나였다.


코끝에 스쳐 지나가는 은은한 향기.


‘진짜 참 신기해, 분명 나도 똑같은 샴푸 썼는데, 왜 내 머리에선 이런 향기가 안 나지?’


노헌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냄새를 맡아봤지만, 그저 평상시 머리 냄새만 날 뿐이었다.


“쓰다듬어줘?”

“됐네요.”


그렇게 의자를 흔들거리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던 중, 리나는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 내일은 일찍 들어올 것 같아, 공연 하루 전날이라서 푹 쉬래.”

“정말?!”


굉장한 희소식.

노헌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추워.”


물론 곧바로 다시 앉았지만 말이다.


“집에 혼자 있으려니까, 외로웠지? 미안···.”


그런데 뜬금없이 사과하는 리나.

아마 집을 지키고 있을 그가 걱정된 듯했다.


“어? 아니, 그런 건 아니었는데?”


당황한 노헌은 오늘 광장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물론 소통 문제는 핸드폰 번역기로 해결했다고 변형해서 말이다.


“합주?”

“응, 내일 저녁에 하는데, 괜찮으면 보러 오지 않을래?”

“좋지! 그런데 피아노 연습 많이 했나 봐? 합주까지 할 정도면.”

“아, 아니. 다행히 곡 난이도가 쉬워서! 하하···.”


그 순간 떠오르는 웬디의 말.


- “그거 거짓말이지?” -


어째선지, 그녀는 아직, 리나와 함께 있을 때, 노헌의 연주를 언급하진 않았다.

만약 웬디가 잊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일렀다.


“그나저나, 너는 공연 준비 잘 돼가?”

“응, 그럭저럭.”


공연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리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유학 생활은 어때? 힘들지 않아?”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어쩔 수 없지.”


분명 전에는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었는데, 지금은 꽤 적응한 모양이었다.


“너는? 이제 곧 졸업이잖아. 고등학교는 어디 가기로 했어?”

“어, 어? 나는 뭐, 현성고등학교지, 하하···.”


거짓말은 아니었다.

우선 현성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그 후에 예술고에 편입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럼 준모도 같이 가겠네? 초등학교 때부터 너만 따라다녔잖아.”

“그렇지?”

“옛날에 네가 나랑 붙어 다니니까, 준모가 나한테 질투했었는데~”

“걔는 지금도 그래···.”


그렇게 어릴 적 추억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깜한 밤이 되었을 때, 둘은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노헌의 합주 당일 날.


‘뭐지? 나 긴장했나?’


잠에서 깬 그가 핸드폰을 확인하자, 오전 6시 30분, 평소보다 이른 아침이었다.


‘잠이 안 와.’


양을 세봐도, 잠이 오지 않은 노헌은 거실로 나왔다.

고요한 집 안, 당연했다. 리나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아침이나 미리 사 오자.’


살며시 현관문을 닫은 그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목표는 1층의 빵집.

이른 아침에도 열려 있었기에 들어가자―


“빵 나오려면 5분 정도 남았어요~”

“아, 기다릴게요.”


노헌은 가게 한쪽에 자리 잡았다.

그러자, 살며시 다가와 따뜻한 우유를 건네는 주인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이 정도야 뭘. 그런데 2층 아가씨 애인이에요?”

“···네? 아뇨. 친구예요.”


이제는 빵집 주인한테까지 오해를 받는 건가, 생각하던 그때.


“그래도 친구가 와줘서 아가씨가 요즘 기분이 좋은 건가 보네. 전에는 워낙 눈물이 많길래, 마음이 안 좋았거든요.”

“네? 눈물이 많다고요?”


믿기지 않는 말에 노헌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가게 문 닫고 집에 갈 때, 글쎄 아가씨가 1층 계단에 쭈그려서 울고 있길래, 가게에 데려와서 달래준 적이 있었어요.”


띵―


아주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오븐의 끝을 알리는 소리.

구매한 빵을 가지고 나오며 노헌은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때?’


그제야 떠오르는 과거의 전조현상.

리나가 우승하고 전화한 날, 노헌이 못 갈 것 같다고 하자, 그녀는 우는 척을 했었다.


‘그때, 진짜 울었던 거구나···.’


그만큼 간절했던 것이었다.

콩쿨에서 우승할 만큼, 눈물이 나왔을 만큼.

노헌이 자신을 만나러 와주길 바랐었기에.


그리고 노헌이 독일에 온 첫날.


과도한 스킨십.

리나는 노헌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는 단순히 외로워 어리광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외로움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어젯밤 그녀의 뜬금없는 사과.


- “집에 혼자 있으려니까, 외로웠지? 미안···.” -


그건 낯선 유학 생활에 외로웠던 리나의 경험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지, 알기 때문에 노헌을 걱정한 것이다.

자기는 그것보다 더 힘들었으면서.


‘나 진짜 한심하다···.’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녀석이 그것도 눈치 못 채다니.


하지만, 이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



리나가 일어나고, 아침을 먹을 때, 노헌은 은근슬쩍 물었다.


“리나야, 진짜 힘든 거 없어?”

“응? 괜찮은데?”


돌아온 건 태연한 모습.


“유학하면서 외롭다거나···.”

“네가 왔잖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는 리나.

하지만, 노헌은 안심이 되질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안 울던 애가 울었는데, 이게 그리 쉽게 넘어 가지겠냐고···.’


지금은 외롭지 않을지라도, 노헌은 자신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가 걱정됐다.

그녀의 유학 생활은 아직도 한참 남았는데, 힘들어할 모습을 상상하면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리나는 절대 안 간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어느덧 리나가 연습에 갈 시간.


“나, 갔다 올게.”


노헌은 현관문에서 신발을 갈아신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

“응? 왜?”


돌아보는 리나의 단발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갑자기 뭐야?”

“그냥··· 힘내라고.”

“·····응.”


살며시 미소를 짓곤 집을 나서는 그녀.


아침을 먹은 이후에도 몇 번 더 물어봤지만, 리나는 한결같이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괜찮은 건지, 그냥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아쉽게 된 거지··· 가 아니야!’


노헌에겐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었다.



♪♪♪



노헌은 지금껏 리나의 눈물 흘리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리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그저 남의 앞에서 흘리지 않았을 뿐이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은 바빴고, 그녀에게 의지할 사람은 친구인 노헌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친구일까?

하지만, 그는 걱정을 너무 많이 했다.

만약 그의 앞에서 울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갔기에, 눈물을 꾹 참은 것이었다.


‘그래, 노헌이는 걱정이 너무 많아.’


연습을 가기 전,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

아마 자신을 걱정했기에 그런 거겠지.


‘나는 이미 괜찮은데.’


솔직히 리나는 노헌의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했으니까.

그래서 굳이 힘들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 봐.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아침부터 걱정해주던 친구.

리나가 아는 노헌은 그렇게 눈치가 빠르지 못했다.

오히려 너무 둔한 정도.


그렇다는 건 분명 누군가 말해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혼자 빵집 다녀왔댔지? 설마 아주머니인가?’


유학 온 뒤로 그녀의 눈물을 본 건 웬디도, 누구도 아닌 빵집 아주머니였다.

집에서 울면 3층에 지내는 웬디에게 들릴까 봐, 일부로 계단에서 숨죽여 울었던 건데, 설마 누군가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그래도 감사했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주었으니까.


마음속으로 심심한 감사를 표하며 리나는 광장으로 들어섰다.


크리스마스 마켓, 마지막 날을 증명하듯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

그나마 여유로운 공간에서 리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광장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세 가지 악기.

바이올린, 플루트, 그리고 피아노.

그중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주목했다.


‘솔직히 이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는데.’


리나가 아는 노헌은 체념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에게 자신의 연습실을 빌려줬을 때도 금방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락할 때마다 그는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성장한 모습에 기대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노헌은 독학한 초보자.


“잘··· 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때의 리나는 몰랐다.

노헌은 이미 피아노 콩쿨까지 나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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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7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8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9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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