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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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작품등록일 :
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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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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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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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대답

DUMMY

‘웬디···.’


리나의 연주를 들으며 현묵은 자신의 친구가 떠올랐다.

프랑스에 오고 처음 사귄 친구, 웬디가.


‘나를··· 좋아했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고, 자신은 그저 특별한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생각한 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생기는 의문.


‘나는 웬디를 좋아하나?’


물론 좋아했다. 친구로서.

만약 그녀와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유학을 포기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웬디가 있었기에 그 힘든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디와 똑같은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네.’


그녀와 함께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내기에서 이겼을 때도, 졌을 때도, 쉬는 날 어울려줄 때도.

하지만, 이것이 사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무언가의 신호라도 보냈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자신이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금 와선 소용없어졌지만 말이야.’


자신의 몸은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그나마 영혼이라도 노헌의 몸에 빌붙어있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1년일 수도, 5년일 수도, 아니면 평생일 수도.


자신을 향한 웬디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동시에 미안했다.

영원히 대답해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잠깐만··· 대답?’


그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비록 노헌의 몸에 갇혀있을지라도, 아니 그의 몸에 갇혀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대답은 꼭 말로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



무대 뒤편.

그곳에서 웬디는 환한 무대 아래,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제자, 리나.


‘원래, 누구를 가르칠 생각은 없었는데···.’


현묵과 함께 참가했던 퀸 엘리자베스 콩쿨.

그 이후로도 웬디는 계속해서 콩쿨에 참가하며 그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사건으로 그녀의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다.


현묵의 코마 상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웬디의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있었던 그가, 차가운 병실 안에 누워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곧바로, 한국으로 떠난 웬디는 그저 멍하니 한 달 동안 그의 병실을 지켰다.

피아노에는 손도 대지 않고, 그저 현묵의 마지막 연주를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웬디야, 현묵이는 우리에게 맡기고, 이제 돌아가거라.”

“네?”


현묵의 할아버님이 꺼낸 말씀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현묵이 일어날 때까지―”

“물론, 우리 손자는 반드시 일어날 거다. 의지가 강한 아이니까 몇 년이 걸려서라도 깨어나겠지.”

“그러면 저도···!”


하지만, 할아버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우리 손자와 동갑인 네가 여기서 이러는 건, 현묵이도 바라진 않을게다.”

“·····.”


웬디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현묵이라면 깨어났을 때, 기다리게 한 죄책감에 괴로워할 것이 분명했기에.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현묵과 함께했던 추억이 많은 그곳으로.


“저건···.”


그리고 그곳에서 웬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한 콩쿨.

바로 현묵과 처음 만나게 해준 콩쿨이었다.


그것을 본 웬디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관객석에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라도 현묵을 떠올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콩쿨이 끝나, 그녀가 연주회장을 나가려던 순간, 그녀의 눈에 한 소녀가 들어왔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은 한 소녀가.


웬디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니?”

“·····유학까지 왔는데, 좀처럼 연주가 늘지 않아서요.”

“유학? 어디서 왔는데?”

“한국이요.”


현묵과 같은 나라.

그것도 비슷한 나이에 유학 온 소녀.

마치 운명처럼, 웬디는 그녀에게서 현묵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혹시, 나한테 피아노 배우지 않을래?”


그것이 리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웬디는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리나는 항상 밝은 얼굴로 그녀의 가르침을 잘 따라와 주었다.


그렇게 지난 3개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리나는 훌륭하게 성장해,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웬디 또한 그녀 덕분에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현묵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번에야말로 내 마음을 전할게, 그러니까 빨리 깨어나야 해?’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현묵이 깨어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마음이 전해진 것을.

바로 이노헌을 통해서.


♪♪♪



리나의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수많은 박수갈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그녀의 모습은 노헌이 한국으로 가기 전날 밤에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벌써, 내일이네···.”

“그러게, 시간 참 빠르다.”


공연이 끝난 후부터, 노헌은 리나를 따라 베를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도 찍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지나가는 법, 바로 내일, 노헌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한국에 돌아가면, 2월에 있을 콩쿨 준비하느라 바쁘겠지.”


그리고 3월이 되면 고등학교 입학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예술고등학교의 편입을 준비할 테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 치는 친구 중에 이번에 천예고등학교 입학하는 친구가 있거든? 정하린이라고···.”

“어, 어? 콩쿨에서 본 적 있어. 엄청 잘 치더라.”


익숙한 이름이 나와, 노헌이 긴장하는 순간.


“하린이가 항상 콩쿨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리나의 입에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린이도, 상처가 많은 친구거든··· 아 노헌이 네가 누굴 미워한다는 애가 아니란 건 아는데.”

“그걸 아는 애가 그런 말을 하냐?”

“미안미안~”


다행히도 하린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휴···.’


하린은 그가 옛날에 현묵에게 피아노를 배운 거로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만약 그녀가 리나에게 말하기라도 한다면, 조금 곤란했기에 노헌은 어쩔 수 없이 하린을 모른 척한 것이었다.


‘상처가 많아 보이긴 했지.’


노헌이 봤던 하린은 항상 혼자였다.

상을 타도, 친구는커녕, 부모님마저 그녀를 축하해주러 오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은 건 노헌이 그나마 할 수 있는 배려였다.


‘그래도 신경 쓰이긴 하네···.’


연말 연주회, 학교 정문에 홀로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잊히질 않았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이.



♪♪♪



노헌이 한국에 돌아가는 당일.

웬디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연주는 현묵의 느낌이 났었는데···?’


노헌에게 광장에서의 연주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와 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리나의 공연 일로 바쁘기도 했고, 공연이 끝나고는 리나와 노헌, 단둘만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에.


“언니, 나 먼저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런데 타이밍 좋게 1층으로 내려가는 리나, 웬디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곤, 노헌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갔다.


“저기, 노헌―.”


그렇게 말을 꺼내려던 순간.



피아노 방에서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마치 닿을 듯 말 듯, 섬세한 터치와 소리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애달픔, 이것은 틀림없이 현묵의 연주, 광장에서 봤던 노헌의 연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온전한 현묵의 것이었다.


“혀, 현묵···?”


웬디는 조심스럽게 연주가 흘러나오는 방으로 다가갔다.

분명, 현묵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고, 그렇게 되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낱같은 희망을 바랐다.


동시에 따듯한 손길로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흘러가는 멜로디.

그것은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나날을.


“이번에도 내가 이겼네?”

“한 번 더 해!”


콩쿨에서도.


“티켓이 생겨서 그러는데, 그··· 공연 보러 가지 않을래?”

“연주할 때 도움이 되겠네, 좋아.”

“어··· 어? 그럼 가는 거다?!”


처음으로 데이트를 권유할 때도.


“나, 당분간··· 그만하고 싶어, 피아노든, 뭐든.”

“다른 애들 말은 신경 쓰지 마. 강현묵, 너 그렇게 나약한 애였어?”

“·····.”


눈물을 흘리며 말릴 때도.


웬디의 곁에 있는 사람은 현묵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현묵이어야만 했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그녀가 있었으니까.


“보고 싶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


그러자 무언가에 쫓기듯 점점 빨라지는 연주 속도.

감정의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미안해, 웬디.】



어디선가 들린 익숙한 목소리.

웬디의 눈에서 한 줄기 물방울이 굴러떨어졌다.


함께 했던 현묵은 지금 없었으니까.

차가운 병실 안, 홀로 눈을 감고 있을 테니까.

이곳에 있는 사람은··· 현묵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사과했다.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어느샌가 잠잠해진 선율.

웬디는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말 현묵을 보는 것처럼, 동작과 습관, 마무리까지 똑같은 모습의 소년.

하지만, 현묵이 아니었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현묵이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설마···?!”


이것이 현묵이 그녀에게 전하는 대답.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이었다.



♪♪♪



베를린 국제공항.


“노헌! 다음에는 콩쿨에서 보는 거지?”

“그래,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할게.”


출국장 앞에서 노헌은 리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나 유학을 떠날 때처럼 안아 주는 그녀.

다만, 저번과는 다르게 조금 오랜 포옹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노헌.”

“저도요, 누나.”

“다음에 또 놀러 와.”


웬디와의 대화를 마치고 노헌이 몸을 돌려 출국장에 들어가려던 순간.


“노헌.”


자신의 손을 붙잡는 웬디.

그녀는 이내 노헌의 귀에 속삭였다.


“현묵한테 안부 전해줘~”


노헌의 얼굴이 뻣뻣이 굳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웬디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들어간 출국장.


“그러니까, 선생님. 분명 들킬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았지?】


공항으로 떠나기 전, 웬디에게 보낸 연주는 노헌이 아닌, 바로 현묵, 본인이 친 것이었다. 영상 속 그 「겨울바람」처럼.


【그래도, 리나한테는 안 들켰으니, 된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럼 된 거지~】


한동안 아웅다웅하며 탄 한국행 비행기.

무사히 도착한 노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토요일, 공연장 앞.



“·····이노헌? 네가 왜 여깄어?”

“어? 준서가 불러서 왔는데?”



하린과의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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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70 6 11쪽
36 축제 +3 23.06.21 79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80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90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8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9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90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9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9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5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9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2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22 9 12쪽
»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3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6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5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6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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