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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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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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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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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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5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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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신청

DUMMY

“뭐? 리나, 너도 쇼팽 콩쿨 나간다고?”


노헌은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쇼팽 콩쿨.

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모이는 장소, 심지어 현묵의 목표였던 그곳에 자신의 친구가 나간다니.


“예선에 웬디 언니랑 같이 나갈 것 같아~”


리나는 노헌도 모르는 사이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이에 참가할 수 있어?”

“17살부터 30살까지 가능해! 완전 턱걸이로 참가했지.”


17살.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나이에 그녀는 세계 3대 피아노 콩쿨에 나갈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결국, 꿈을 이뤘구나. 축하해.”


언젠가 리나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되다니···.


“아직 멀었지! 목표는 우승이거든!”

“대··· 단하네.”


솔직히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동시에 후회 또한 들었다.

만약 자신이 좀만 더 피아노를 일찍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러나 이내 노헌은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피아노를 시작할 일은 없었겠지.’


그저 예전처럼 학교에 다니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이미 전국 콩쿨에서 학년 대상도 수상 하지 않았는가.

리나에 비하면 턱도 안 되는 성적이긴 했지만, 피아노를 시작한 지 반년 밖에 안 된 그가 이런 성적을 거뒀다는 건 남들이 보기엔 천재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언젠간 따라잡을 거야.”

“나는 항상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


독일에서 그녀와 했던 약속.

같은 무대에서 웃으며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곧이어 끊어진 통화.


“기운 내서 연습해야지!”


노헌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하지만, 열정과는 다르게 여전히 어려운 콩쿨 곡, 반복되는 음 이탈과 엉망진창인 박자가 연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곧바로 바로잡기 위해 집중했지만, 쉽사리 고쳐지질 않았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몇 번이나 더 연습한 연주.

그러다가 노헌은 문득 이 순간 느껴지는 위화감을 눈치챘다.


‘왜, 선생님이 아무 말도 없으시지···?’


보통 이렇게 실수를 난무할 때 현묵은 빠지지 않고 조언을 해주었다.

평소였다면 분명 입을 열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선생님?”


조심스럽게 불러봤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선생님, 주무세요?”

【···어? 아니.】


노헌이 다시 한번 부르자, 그제야 현묵은 입을 열었다.


【왜 불렀어?】

“이 부분이 조금 어려워서요.”

【아, 그 부분이 까다롭긴 하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을 시작한 선생님.


‘무슨 일 있으신가?’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평상시로 돌아온 그의 모습에 노헌은 머릿속의 의문을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



3월 중순.

어느 한 카페에서 두 남녀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 말만 들었을 땐 그냥 커플이 데이트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둘의 표정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싫증이 난 것처럼.


“그런데 정하린, 이 약속은 대체 언제 끝나?”

“글쎄, 엄마가 포기하거나,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그렇다.

두 남녀는 바로 김준서와 정하린.

둘은 한 달에 한 번 만나야 하는 억지 약속을 진행 중이었다.


“어른이 되면 어떡하게.”

“어떡하긴, 바로 독립해야지.”

“너 돈 없잖아.”

“그렇긴 하지.”


지금껏 하린이 콩쿨에서 받은 장학금은 모두 그녀의 엄마에게 들어갔다.

그녀의 학비와 개인 교습에 쓰인다는 명분으로.

물론, 이 사실을 준서 또한 알고 있었다.


“돈은 내가 빌려줄 테니까, 어떻게든 독립해.”


준서는 이 약속을 하루빨리 끝내고 싶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


거기에 더해 하린의 사정을 알고 있던 친구로서 그녀가 하루빨리 엄마와 떨어지길 바랐다.


‘애초에 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엄마는 부모라는 단어 자체가 아까웠다.


‘그래도 본인이 괜찮다니까,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남의 가정 사정에 그가 이런저런 참견은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하린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와도 친했기에 더더욱.


“그나저나, 너 그거 노헌이한테 말 안 할 거야?”


준서에겐 노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가 하린과 잘 된다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기에, 어떻게든 둘을 열심히 이어보려 한 것이다.


“내가 왜 말해야 하는 건데?”

“그야··· 음, 친구니까?”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아.”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노헌과 하린의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체 왜 아직도 이런 사이야?’


데이트는커녕, 연락도 하지 않는 두 사람.

준서는 그런 둘이 한없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김준서, 왜 자꾸 노헌이랑 나를 엮으려 하는 거야?”

“그야 네가 노헌이한테 관심 있는 거 같으니까, 도와준 거지.”

“뭐?”


그의 말대로 하린은 노헌에게 관심이 있었다.

강현묵 피아니스트의 제자이자, 리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라이벌이었으니까.

거기에···.


‘노헌인 나를 좋아하니까.’


그녀는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왜, 관심 없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직 노헌의 마음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면, 옛날처럼 될 것 같아서?”

“·····.”


그 순간, 정곡을 찌르는 준서의 말에 하린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해도 돼. 그래도 내가 볼 땐 노헌이 꽤 괜찮은 녀석 같거든?”

“그건 나도 알아.”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노헌이랑은··· 내가 알아서 할게.”

“뭐, 그래.”


준서는 더 이상 둘 사이에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



어느새 3월의 막바지.

그때까지 노헌의 일상은 똑같았다.

집, 학교, 연습실의 반복.


‘아, 드디어 수요일이다.’


그나마, 그가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것은 수요일에 있는 동아리 시간이었다.


“어, 노헌이 왔구나?”

“안녕~”

“오랜만이네.”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는 신 씨 세 남매.


“안녕하세요!”


노헌은 그들과의 합주가 참 좋았다.

혼자 연주하는 지루한 클래식과 다르게, 밴드는 여러 악기와 함께하여 언제나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오늘부터 두 번째 곡 연습하자!”


부장인 신승아의 말과 함께, 각자 자신의 악기를 잡았다.

이윽고 시작한 개인 연습.

노헌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구석에 있는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래도 아직 어색하네.’


노헌이 평소에 연습하는 그랜드 피아노와 다르게, 전자 피아노 건반의 무게는 가벼운 편이었기에 쉽게 익숙해지질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단 훨씬 나아진 편.

반주를 막 시작했을 땐, 감을 잡지 못해 연주가 딴 길로 샌 적도 많았다.


“노헌아, 저번 주보다 훨씬 잘 치는데? 혹시 연습해 왔어?”


연습 도중 말을 걸어오는 승아.

그녀의 파트는 보컬이라, 때때로 연습 중 찾아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뇨, 반주 연습은 동아리 시간에만 하고 있어요. 다른 시간엔 콩쿨 연습을 해야 해서···.”

“아, 그렇지? 피아노 전공한다고 했었지?”

“맞아요.”


5월 콩쿨이 끝나면, 곧바로 편입 준비를 해야 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단하다! 우리 세 명도 원래는 전공하려고 했었는데···.”

“아아, 어쩐지.”


첫 합주 때도 느꼈지만, 세 명 모두 범상치 않은 실력이었다.


‘혹시 밴드부에 사람이 안 들어오는 게··· 이거 때문, 아니야?’


취미로 하는 동아리에, 전공하려 했던 사람들만 남아있으니, 부담감에 뒷걸음질 칠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전공 안 하셨어요?”


만약 예술고에 진학했다면, 이런 동아리가 아니라, 더 큰 무대로 나아갔을 텐데, 어쩐지 아쉬웠다.


“···음악은 취미로도 할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승아는 다시 연습에 집중했다.



♪♪♪



평소와 같이 끝마친 학교.

가방을 메던 중 노헌은 무언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 겉옷 놓고 왔네.”


동아리 시간, 음악실에 놓고 온 겉옷이 떠오른 것이었다.


“야, 이노헌 어디가?”

“나 음악실에 놓고 온 게 있어서, 먼저 가.”

“그래.”


준모를 뒤로 한 채, 노헌은 음악실로 향했다.


‘뭐야, 누가 있나?’


복도를 걷던 중, 들려오는 드럼 소리에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니···.


“어? 민섭이 형?”


밴드부, 신 씨 세 남매 중 막내, 신민섭이 드럼을 치고 있었다.


“노헌이? 무슨 일이야?”

“동아리 시간 때 겉옷을 놓고 가서요.”


예상대로 피아노 의자에 걸려 있는 겉옷.


“그런데 형은 왜 이 시간까지 있어요?”

“그냥 드럼이 치고 싶어서.”


주섬주섬 옷을 챙기며 노헌은 조심스레 물었다.


“전공은 왜 안 한 거예요?”


승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


“그래, 너는 같은 밴드부니까, 솔직하게 말해줄게.”


그러나 그녀와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돈이 부족해.”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너도 알다시피 음악을 하려면 돈이 좀 필요하잖아?”“아···.”


그제야 이해가 됐다.

음악은 돈이 많이 드는 분야였다.

악기 구매, 레슨비, 거기에 학비까지.

충분히 벅찬 비용인데,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알바라도 하고 있긴 한데, 승아랑 서아는 어떨지 모르겠다. 진짜 포기한 걸 수도 있고···.”


노헌은 그의 말에 차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괜한 위로는 오히려 소용없었기에.


“노헌이, 너도 전공하고 있으니까, 이해하지?”

“네···.”


대답은 네, 라고 했지만, 사실 그는 지금껏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악기는 리나의 연습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빌렸고, 레슨은 현묵의 영혼이 있었기에 따로 받을 필요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주변 사람을 참 잘 만난 거 같네.’


눈치채지 못했던 주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는 비록 예술고는 못 갔지만, 반드시 예술대는 갈 거거든.”


민섭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바와 공부, 그리고 음악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연습은 오늘처럼 학교 끝나고 하는 건가요?”

“응, 학교에는 허락받았어. 한 시간 정도 하고 알바 가야지.”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는 이런 생활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아, 그럼 연습 시간 뺏으면 안 되겠네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래, 다음에 봐.”


그렇게 빠져나온 학교.

때마침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위잉―


“준모인가?”


그러나, 노헌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아··· 안녕, 노헌아. 나 하린인데.”

“어?! 아, 안녕.”

“혹시 지금 전화할 수 있어?”

“당연하지!”


하린에게서 온 뜻밖의 전화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문자는 여러 번 한 적이 있었지만, 전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다음 주에··· 만나지 않을래?”



데이트 신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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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비밀 (수정) +4 23.06.25 90 6 11쪽
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 데이트 신청 +3 23.06.15 87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9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7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2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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