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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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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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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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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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 천부경과 공동제자

DUMMY

*

뭐랄까? 운명과 인연이란 말이 영혼에 따박따박 박히는 느낌?


부모님 돌아가시고 형제 하나 없이 이 세상에 남았을 때의 그 아득한 감정이 기억났다.

만약 그 외롭고 고독한 일상 속에서 파란 같은 여자한테 운명이나 인연이란 말을 들었다면 그곳이 지옥이라 한들 자의로 냉큼 발을 디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그러마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로운의 대답 따윈 필요가 없었다. 결론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결정된 결론일 뿐.


로운의 ‘거부’는 ‘거부’되었다.

절을 하지 않으려 버텼지만 알 수 없는 힘이 로운을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고 머리를 땅에 쿵쿵 세 번 찧어 삼배를 완성했다.


도인이 달리 도인이겠는가? 그 정도 힘을 지녔으니 도인인 거다.


결국 로운은 열 한 명 도인들의 정식 제자가 되고 말았다.


로운이 고개를 들자 공중부양하고 있던 도인들이 어느새 땅에 내려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진파란이 로운 곁으로 와서 말했다.


“스승님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한 분 한 분 뵙고 다시 절을 올리세요.”


진파란이 한 사람씩 이름을 알려주었다.


“옥풍선인 설우제, 포대노인 취웅, 매향일선 은예, 대법사 야르하, 엘프궁수 카스탄, 악사 케르쉬스케, 학자 체흐시프, 지사 김약산, 성의 두라물, 황자 불리쉬, 함장 크리얀이세요”


모두 열한 명이었다.


“아, 그리고 저는 진파란. 아시죠?”


다들 어려운 이름이라 딱 한 사람만 기억할 수 있었다.

진파란. 그녀.



*

그곳은 높이가 백두산보다 봉우리 두어 개는 더 윗줄일 거 같은 까마득한 산 꼭대기였다. 정상은 축구장만한 평지가 펼쳐져 있었고 절벽을 뒤로 하고 무협영화에서나 보았던 커다란 장원이 있었다.


그게 진짜 도관이었다. 솟을 대문에는 들어온 입구에서 보았던 구도관이란 현판이 똑같이 걸려 있었다.


장원 문을 들어서면 너른 앞마당을 두고 凹자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로운은 두 꼭지점 중 한쪽의 맨 끝 작은 방을 안내 받았다.


“이 방에서 지내시면 되어요. 저기 준비 된 옷 갈아입으시고요. 가져온 물건들은 저 바구니에 담아두세요. 나중에 퇴관 하실 때 다 돌려드릴 거예요. 아, 휴대폰도요. 어차피 여긴 신호 안 터지는 거 아시죠?”


방에는 가구랄 것도 없었다. 딱딱한 나무 침상과 역시 통나무로 짠 테이블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로운을 위한 물건들이 준비 되어 있었다. 개량 한복 같은 옷 몇 벌과 로퍼 같은 가벼운 가죽신. 머리에 묶는 영웅건.

그리고 벽에는 갖가지 병장기들.


옷은 맞춤인 듯 딱 맞았다. 로운이가 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한 것처럼.


‘아... 여긴 어디고 난 누구? 이게 꿈이 아니라면 대체 뭔데?’


한숨을 길게 내 쉰 로운이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딱딱한 나무 침상이 등에 배겼다.


앞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1mg도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등이 배기는 정도의 불편함보다는 훨씬 힘든 날들이 될 거라는 막연하고도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도무지 집 나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눈 감았다 떠보았지만 여전히 방 안이고 맨 살을 꼬집어보면 뒤지게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있을 곳은 하나 뿐이었다.


‘현실 세상과 여기의 유일한 연결점은 진파란이야. 그녀를 다그쳐봐야 해! 날 데려왔으니 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을 거야.’


호랑이도 어쩐다더니 그때 딱 파란이 방으로 들어왔다.


진파란도 옷이 바뀌어 있었다.


하늘색 원피스 대신 연두색 저고리와 치마를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었는데 덕분에 가려져 있던 하얗고 긴 목덜미와 쇄골이 아름답게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대나무 쟁반에 들고 온 차를 따랐다.


“자 진짜 이제 솔직해 지자고. 나 그렇게 물렁한 놈 아니거든? 거짓말하면 가만 안 둔다?‘

“훗. 거짓말 한 적 없구요,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말씀 드릴게요.”

“여기가 어디냐고? 대체 날 왜 여기로 데려온 건데?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거지?”

“간단해요. 일정만 다 끝나면 보내드려요.”

“일정? 무슨 일정인데?”

“도를 배우러 오신 거잖아요. 도 수련 일정이에요. 첫 한 달은 기초속성지옥수련.”

“첫 한 달? 다음이 또 있단 말야?”

“그 다음은 강화속성지옥수련 한 달 이구요.”

“그게 끝인 거야?”

“그 다음은 완성속성지옥수련이 있어요, 그게 최종이죠.”

“아...... 근데 왜 다 지옥수련인 거야?”


파란이 장난스런 웃음을 보였는데 대답은 전혀 결이 달랐다.


“왜냐면~~~ 정말정말 지옥처럼 힘드니까?”


거짓말 안 한다는 파란은 그 때 또 거짓말을 한 거였다.

지옥처럼 힘든 정도가 아니라 그 수 천만 배로 힘들었으니까.


*

다음날 새벽부터 지옥 수련이 시작되었다.

수련 과정은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은커녕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기에.

그만큼 힘들었다. 힘들다고 말 할 힘도 안 남을 정도로.


처음에는 자신을 그곳으로 유인한 파란을 미워하고 욕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욕할 힘도, 시간도 없이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어느새 다음날 아침이었고 또 다시 지옥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탈출에 대한 기대는 지워졌고 그냥 약속한 날들만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그런 일정 속에서 그나마 잡담이라도 나눌 이는 파란뿐이었다.


파란은 때론 위로하고 때론 격려하고 때론 충고하면서 친구가 되어주었다.

가끔 수련장을 지나가며 엄지를 추켜 세우며 보여준 파란의 미소만이 지옥 안에서 유일한 휴식이었다.


매일 하루가 일 년 같았다.

하지만 정신없이 수련에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열 한 명의 도인들이 모두 스승이라고 했지만 수련 기간 동안 그를 가르친 사람은 세 사람 뿐이었다.


옥색 도포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옥품선인 설우제가 매일 같이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


처음엔 그게 무공인지도 뭔지도 몰랐다.

춤도 아니고 무술도 아닌 듯한 자세를 따라하고 또 따라했다.

춤을 이 정도로 췄다면 K-pop 아이돌 멤버로 끼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큰 위력을 발휘할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반복 또 반복하라고 만 했다.


사흘에 한번 꼴로 매향일선 누님이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다.

걸음마라고 하기엔 좀 복잡했다. 그래도 그게 무협 영화나 소설에서 보던 보법이라기엔 너무 우스꽝스러웠고, 그걸 따라 할 때 마다 다리가 꼬였다.


그래서 날이 지날수록 도인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짙어졌다.

진짜 사기꾼들이 아닌가 싶은 기대감도 들었다. 사기꾼이라면 돈을 요구할 테고 그럼 이곳을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마지막 일주일 동안 포대노인이 로운을 맡으면서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포대노인은 로운의 온몸을 주무르고 비틀고 때렸다.

처음에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고통이 사라지고 시원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포대노인의 손길이 바디후렌드 안마의자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포대노인은 로운에게 내력을 주입하고 근골을 다듬어 준 것이었다.


이후로 옥풍선인의 춤 동작을 할 때 힘이 바짝바짝 들어갔다.

자신도 모르게 은예 누이의 보법으로 걷고 달리게 되었다.

무얼 해도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일주일은 정말 군대 말년 병장처럼 편안하게 수련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거꾸로 걸어 놔도 시계는 간다고 했던가?

드디어 약속한 수련의 날들이 다 지나고, 그 마지막 밤.


진파란은 로운을 도관 뒤쪽 대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데려갔다.

작은 대숲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땅이 열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헐! 여긴 어디야? 이런 데가 있었어?”

“여기가 진짜 도관이라고 보면 되어요. 이 우주의 모든 질서가 태어나는 곳. 도의 근원이죠.”


돌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석실로 들어섰다.


로운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상상 이상의, 상상 너머의 광경을 보았다.


석실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핏 고대의 신비한 제례 장소 같기도 하고 어떤 면으로는 SF 영화 속의 미래 장소 같기도 했다.


커다란 원형의 석실 한가운데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돌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비석은 자체로도 오묘한 빛이 내뿜고 있었고, 특별한 조명 장치가 비추고 있는 것도 아닌데 비석 주위를 신비한 빛이 감싸고 있었다.

그 빛은 은은하게 비석을 휘감아 돌다가 스르륵 석실 안 곳곳으로 흘러가 연결되기도 했다.


빛으로 연결된 벽면에는 최첨단의 크고 작은 모니터들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고 모니터마다 알 수 없는 장소를 비추거나 이상한 고대의 언어와 그래프들이 잔뜩 나타났다 지워졌다 하고 있었다.


천정에는 밤하늘을 보는 듯 우주의 광경이 홀로그램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바닥 또한 각종 고대 언어 같은 상형 문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스승들까지 모두 그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명은 비석 주위에 가부좌를 하고 둘러 앉아 비석과 영적 교신을 하는 듯 했고 몇 명은 벽면의 모니터를 조작하기도 했다.


“우워어~~~ 파란씨! 이게 다 뭐야? 대체 뭐하는 거지?”

“말했잖아요. 우주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곳이라고요. 가운데 있는 저 비석 보이죠? 저게 바로 천부경이예요. 들어 보신 적 없으세요?”


천부경이라면 어떤 종교인가에서 우주 창조의 이치를 풀이한 신비한 물건이라고 한 걸 줏어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 자세히는 모르지. 근데 여긴 왜 데려 온 거야?”

“아, 이제 임무에 들어가셔야 하니까요.”

“임무? 무슨 임무?”


그 때 로운을 본 옥풍선인이 다가왔다.


“내가 얘기해 주마. 이곳은 어떤 곳인지는 파란이한테 들었지?‘

“뭐, 질서의 우주가.. 아, 아니! 우주의 질서가 생산되는?”

“허허허. 그래. 이곳은 우주의 시간과 공간, 차원과 경계를 모두 관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이곳과 저 천부경에 문제가 생기면 우주가 뒤틀리고 온 세상이 무너진다고만 알면 된다.”

“뭐, 그렇다치고요.”

“그런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 있던 물건 몇 개가 세상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어, 그럼 찾아오면 되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그거지. 찾아오면 되는 거지.”


옥풍선인이 빙긋 웃으며 로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제야 로운은 파란이 말한 ‘임무’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예? 제가요?”


그런 거였다. 잃어버린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로운을 끌어들이고 지옥 같은 수련을 시킨 거였다.


사부들은 단 한 시라도 그 장소를 비울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부들을 대신해 물건을 추적하고 회수해 돌아와야 했고 그 누군가가 바로 로운이 었던 거다.


재수 없게도......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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