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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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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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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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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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DUMMY

*

눈빛이 맑고 미소가 고왔다. 입가에 조그맣게 파인 볼우물이 매력적이었다.

긴 머리에 하얀 목덜미. 하늘하늘한 하늘색 짧은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이 어울렸다.

봄날, 봄볕, 봄바람에 어울리는 청순한 꽃송이 같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쎄하다.

로운이가 마음에 들어 번호를 따려는 건 아닌 듯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 걸어오는 경우는 대체로 한 가지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빛이 참 맑으신데 얼굴에 수심이 느껴져서요. 잠시 얘기 좀 나눌까요?”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나이는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 보였다. 얇은 속 쌍꺼풀에 기름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조곤조곤 말투와 목소리도 매력 있었다.


“혹시....”


그녀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로운이 선수를 쳤다.


“도를 아느냐고요? 내 관상을 보니까 조상신들이 맺힌 게 많아 보이죠? 같이 도관에 가서 천도재를 올리면 되는 거 맞죠?”


당황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말끄러미 미소를 지었다.


“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구요.”

“맞는 건 뭐고 아닌 건 뭔데요?”

“도관으로 모시는 건 맞지만 조상신이나 천도재는 아니거든요.”

“그럼 뭐할 건데요?”

“도를 배우고 익히는 거죠.”


도를 배운다는 대답이 좀 웃겼다. 하지만 결국은 어떤 이유를 달던지 돈을 내라고 할 것이다.


그 순간 로운이 깜빡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반짝 떠올랐다.


‘석윤호, 이 새끼 이제 어디서 잡나? 약국도 문 닫고 부천역 앞에 그렇게 많던 도를 아십니까도 싹 사라졌다니까.’


아까 정형사가 한 말이다. 도관은 모두 문을 닫았다고.

그런데?

갑자기?

도관?


“진짜 거기서 나온 거 맞아요? 도를 아십니까, 거기?”

“맞아요. 보통은 그렇게들 말씀하시죠. 도관을......”


이 여자가 도관에서 나온 게 맞다면, 그래서 도관을 찾아 갈 수 있다면 아깝게 놓쳐버린 석윤호를 다시 만날 단초라도 잡을 여지가 생기는 거다.


로운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당장!”

“네?”


당황하지 않던 여자가 처음으로 놀란 눈을 하고 올려다보았다.


“도관이라면서요? 거기 가보자고요. 앞장서요.”

“진심이세요?”


로운이 다시 한단어한단어 또박또박 정확히 그녀의 귀에 꽂아 주었다.


“진심! 도를! 배우고! 싶다구요! 완전! 절! 실! 하! 게!”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랐던 그녀의 눈이 다시 배시시 꾸밈없는 미소로 바뀌었다.


“와~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린 오늘 꼭 만날 인연이었나 봐요!”


그러고 보니 큰 박형사가 범인 검거도 인연이라고 했었다.

정말 이게 석가 놈을 잡을 수 있는 인연의 끄트머리라도 되어 준다면....


로운의 가슴 속에 사그라졌던 의욕이 다시 불끈벌떡 타오르기 시작했다.


*

부천역에서 올라 탄 인천행 지하철 안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저는 파란이라 해요. 진파란. 순우리말 이름이에요. 아빠가 지어주셨죠. 참 이름이....?”

“이로운입니다. 저도 순 한글 이름이죠. 슬기로운, 지혜로운, 의로운, 뭐 그런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와~ 정말 좋은 이름이어요. 로운씨는 정말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게 되실 거예요. 기다리고 계신 분들 모두 법력 높으신 도인들이시거든요. 다들 인자하신 분들이고요”

“믿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어머. 전 거짓말은 못해요.”


‘거짓말 안한다는 게 거짓말이겠지. 조금만 기다려라. 석가 놈을 잡고 나면 덤으로 파란씨도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줄 테니까.’


그렇다고 속마음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진심으로 도관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도력이 아니라 사기력 충만한 사기꾼들한테 단단히 세뇌된 것일 테지만.


*

부평역에서 내려 오 분 정도 걸어가자 구도(求道) 빌딩이 나왔다. 이름마저도 도를 구하는 빌딩이라니 적절하지 않아야 할 것 까지 적절하게 맞아 들어갔다.


도관은 구도 빌딩 지하에 있었다. 보통 빌딩 지하는 아래일수록 주차장으로 설계되어 있는 법인데 희한하게도 엘리베이터는 지하 맨 아래층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가 정면으로 열려 있었고 그 끝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그럴듯한 한정식집처럼 문짝은 통나무로 짜 만들었고 솟을 기와까지 얹어놓았다.


문 위에는 [求道館](구도관) 이라고 쓴 커다란 현판이 떡하니 달려 있었다.

제법 도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호구들 잡아서 푼돈이나 뜯어내는 사이비 집단 치고는 꽤나 신경을 썼다 싶었다.


“여기예요. 구도관.”


파란이 방긋 웃으며 로운한테 먼저 들어가라고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로운은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일단 안에 들어가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도를 빙자한 사기단체이지만 석윤호의 수하들이라면 조직폭력과 선이 닿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발을 들인 후에는 어떤 결과라도 얻지 않고는 돌아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형사 초년병으로 이번 일이 인생의 숟가락 색깔을 바꿔줄 거라고 믿기에.


가스총이나 하다못해 테이저건이라도 있으면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겠지만 지금 주머니에는 딸랑 경찰신분증 뿐이었다.


- 쾅!


로운이 거칠게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유일한 무기인 신분증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경찰이다! 다들 꼼짝 마!”


그 순간이 로운이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


일생의 찬스가 아니라 일생의 대불운이 시작된 변곡점.

악몽과도 같은 불운의 출발점.


차라리 악몽이라면 좋았을 것을. 꿈은 깨어나면 끝이니까.


당차게 들어 선 그 곳, 그러니까 ‘도를 아십니까’를 따라간 그 도관 안에서 로운이 본 건....


파아란 하늘이었다.


*

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그곳은 실내가 아니었다.

머리 위에는 파란 하늘이, 그 하늘의 끝에는 동양화 그림에서나 본 삐죽삐죽 깎아지른 산들이 솟아 있었다.


로운이 서 있는 곳도 높은 산의 정상인 듯 했고 축구장 정도 크기의 평지였다. 작은 들판처럼 보이는 곳 반대쪽 끝에는 무협영화에서나 본 듯한 날개 같은 기와지붕을 얹은 도교식 장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잠깐 3D 증강현실인가 의심도 했다.

부평역 근처 빌딩이었고 지하였고 복도 끝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광경이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로운은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한 번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과 머리 이로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들, 볼을 스치는 산들바람까지 모두가 진짜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 경치를 배경으로 그들이 있었다.


도인!


사기꾼 아니고, 얼뜨기 아니고, 한 눈에도 도력이 충만한 진짜배기 ‘도인’.

한 명이 아니었다. 한눈에 훑어봐도 열 명이 넘었다.

그런데 조합이 좀 이상했다. 무협영화에서 보았던 복장을 한 흰수염의 도인이 있는가 하면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도인, 반지의 제왕 간달프처럼 후드에 지팡이를 든 도인도 있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니라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 같은 괴물 도인도 있었다.


도인이라 하기엔 말도 안되는 조합이지만 몇 명은 누가 봐도 도인의 풍모를 풍겼다.

특히 맨 앞에 있는 노인은 백발을 가지런히 빗어 뒤에서 묶었고 흰 수염은 가슴까지 드리웠다. 옥색 도포 차림에 새의 깃털로 만든 하얀 부채를 들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가 앉은 곳은 바닥이 아닌 허공이었다.


공중부양.

.

모 대통령 후보가 그걸로 큰 소리 친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진짜 공중부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그걸 본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를 도인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불길했다. 온몸의 감각들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얼른 돌아나가지 못하면 일생일대의 불운을 맞을 거라는 위험신호.


- 쿵


그 순간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로운이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 들어 온 진파란이 예의 그 배시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문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 문? 문이 어디 갔어?”


문이 있던 자리, 허공을 저으며 로운이 외쳤다.

그 때 인자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백발의 노인. 열두 명 중 가장 앞에 있던 신선 도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곳은 한 번 들어오면......”


잠깐 말을 멈추고 로운을 바라보던 도인이 사자성어 비슷한 걸로 말을 맺었다.


“낙장불입이라네!”


*

<다시 무림>


그때의 기억을 되짚던 로운이 머리를 흔들었다.

기억은 돌아왔지만 지금 그 기억이나 곱씹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에 수백 명의 분노한 무사들이 칼을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저 놈이다! 죽여 버려!”


- 우와아----


누군가의 고함이 발화점이 되었다.

병장기를 꼬나든 무사들이 한꺼번에 로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뽑아 든 단봉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지난 석 달, 그 이상한 도의 세상에서 열 명도 넘는 도인들한테 지옥 같은 수련을 받는 동안 한 몸처럼 여겼던 단봉이다.


그 순간 다시 세상이 느려졌다. 조금 전 고함을 지를 때처럼.


달려드는 수백 명 적들의 동선 하나하나가 눈으로 읽혔다.

빠른 놈과 늦은 놈. 곧장 오는 놈과 벌리며 오는 놈.

그들의 속도와 간격, 진행방향과 공격 위치는 물론 그들이 취할 공격방식까지 컴퓨터 정보처럼 일시에 뇌리에 각인 되었다.


동시에 그 정보를 분석한 로운의 육체가 즉시 반응을 시작했다.


- 타앗-!


로운이 땅을 박차고 한줄기 쏘아놓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로운의 신형이 몰려오는 적들의 한 가운데를 대나무 쪼개듯 뚫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 퍽! 팍! 뻐걱! 우직!!


로운이 지나는 곳 마다 머리통이 터지는 소리, 뼈가 부러지는 소리. 관절이 어긋나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단봉의 공격 범위 안에 있던 자들은 모두 한군데씩 작살이 나며 나가떨어졌다.

로운이 스쳐가는 곳마다 근처에 있던 무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로운은 무리의 중앙을 관통하며 끝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로운이 다시 돌아서자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분노와 적개심에 차 있던 표정은 경이와 공포로 변해 있었다.

돌아선 로운이 한 걸음 발을 떼자 적들은 우르르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로운이 손에 쥔 단봉을 슬쩍 들어보았다.

자신이 방금 한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강해졌다고?!’


아직도 손에 남은 짜릿한 타격의 쾌감이 온몸으로 번졌다.

그리고 그 쾌감은 곧 자신감으로 진화했다.


로운이 천천히 무사들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죽고 싶냐? 살고 싶은 놈들은 딱 삼 초 준다! 다 꺼져!”


무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쉽게 덤비지도 못하지만 달아날 것 같지도 않았다.


혼란에 빠진 무사들 사이에서 사내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깡마른 체구의 중년 인물이었다.

가늘게 뜬 실눈에서도 형형한 눈빛이 느껴졌다.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주눅 들게 할 만큼 서늘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호기롭던 로운도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이름이 뭔가? 군웅맹이라면 내가 모를 터가 없거늘.... 낯선 무공을 펼치더구나?”


음성도 눈빛처럼 음산했다. 중년 사내의 의연한 기세에 한껏 상승했던 로운의 자만심이 살짝 고도를 낮췄다.


“내가 누구든! 그러는 니들은 뭔데 가만있는 사람을 집단 폭행이야?”


짐짓 기세를 올려 받아쳤지만 사내는 피식 실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의 눈에 로운이는 살짝 밟아주면 으깨져 버릴 벌레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판단이었다.


마교의 오귀 중 냉면귀 백야탄은 충분히 그래도 될 정도의 고수이기에.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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