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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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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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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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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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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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4> 신비무공 낙장불입

DUMMY

*

“대협이 아니었다면 저희 둘, 백령기 손에 고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됐고! 너도 좀 쳐 맞자! 네 놈 말발굽에 내 머리가... 아야야, 아직도 아프네!”


사내가 죄송한 표정으로 얼른 구십도로 허릴 숙여 사과했다.


“깊이 사죄 올립니다. 워낙 긴박한 상황이었던지라 계신 걸 살피지 못했습니다.”

“살피지 못했으면 돌아와서 사과하는 게 도리 아냐? 이제 와서 태세변환 쩌네? 근본이 나쁜 놈이다, 너?”

“아!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합니다!”


사내가 한쪽 무릎까지 꿇으며 다시 포권의 예를 올렸다.


“하아~ 그래서 뭘 할 건데? 그냥 용서해달라면 끝나?”

“아닙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행하겠습니다!”

“뭐든? 그렇다면........ 근데 너 이름은 뭐냐?”

“검룡장의 벽자룡이라 하옵니다.”


검룡장.

삼십년 전 쌍검으로 강호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장주 벽서관이 소주에 정착하며 세운 가문이다. 그의 아들인 벽자룡 또한 당금 무림의 신진 기수 중 앞줄에 서는 청년 고수로 군웅맹에 차출되어 중요 보직을 맡고 있었다.


“결례가 아니라면 백야탄을 상대로 보여주신 무공이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림에서 무공은 곧 명함과 같은 법이다. 무공을 알면 그 사람의 가문 내력까지 알 수 있는 법이라 벽자룡은 이름을 묻기보다 넌즈시 무공을 물어 본 것이다.


정작 로운은 자신이 펼친 무공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사부가 말해주긴 했지만 어려운 한자라 금방 까먹었고 사부들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두 눈 반짝이며 기대에 찬 벽자룡을 보니 뭐라도 대답은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 이건 한 번 시작하면 중단이 안돼. 끝까지 그냥 다 쏟아버려야 하는 거라서 이름이..... 낙장불입!”


‘낙장불입(落張不入)’


처음 듣는 무공이었다. 벽자룡이 동행한 여인을 슬쩍 돌아보았다. 자신보다 견식이 훨씬 높은 그녀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묵묵히 듣기만 하던 여인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외람되오나 대협의 존함을 여쭈어도 될까요?”


익숙한 목소리였다.

나긋나긋하면서도 강단이 있는 그 목소리. 지난 석 달 간 매일 들어왔던 바로 그 목소리.


로운이 의심의이 가득한 눈초리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그러는 그 쪽은? 내 이름이 궁금하면 먼저 얘기하는 게 예의 아냐?”


그녀가 죽립에 달린 망사를 살짝 걷어 올리며 대답했다.


“소녀는 철검각의 취소연이라 하옵니다.”


순간 로운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환한 미소로.

너무 바보처럼 웃어버렸다. 그럴 만큼이나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야! 너! 진파란!”


그녀였다. 진파란.


죽립에 면사를 덧대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한 몸매 역시 익숙했더랬다.


그런데 진짜로 진파란, 그녀일 줄이야!


로운을 바로 그 지옥, 진짜 도인들이 있던 도관으로 끌어들인 그녀.

하지만 나중엔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녀.

그 진파란이 이런 상황에서 눈앞에 딱 나타날 줄이야.


“야! 파란! 니가 왜 여기서 나와! 너 여긴 언제 왔는데?”


이 낯선 곳, 낯선 시대에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그 사람이 진파란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캄캄한 밤길에 불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로운이 잔뜩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서는데 그녀는 주춤하고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누군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벽자룡을 돌아보았다.


벽자룡이 둘 사이에 끼어들며 중재에 나섰다.


“무슨 말씀이온지? 이 소저의 이름은 취소연이온데....”

“뭐래? 너 진파란이잖아! 아하~ 여기서 가명 쓰냐? 근데 여긴 언제 온 거야?”

“아니, 진파란이 아니옵고 취소연이고 언제 온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저와 함께 군웅맹에서 지내온 동료이옵니다.”


로운이 말을 멈췄다.

상황 판단이 필요했다.

벽자운 뒤로 물러나 있는 그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틀림없이 진파란 그녀였다.

그런데 아니라고 한다. 대체 왜?


로운이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녀는 얼른 면사를 내렸다.


“누구와 착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 번 본 사람은 잊지 않아요. 우리 둘, 모르는 사이예요.”


말투가 아까보다 훨씬 차가웠다.


“어디, 면사 다시 까 봐. 날 또 속이는 거면....”


로운이 다가가면서 면사를 치우려고 손을 내밀었다.


- 철컥!


순간 그녀가 벼락처럼 철검을 뽑았다. 철검은 호를 그으며 내려와 로운이 내민 손목 앞에 멈췄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베어 버리겠다는 듯.


놀란 로운이 움찔 손을 멈췄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눈치 빠르게 벽자룡이 끼어들었다.


“두 분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일단 자리를 옮겨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풀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로운이 보기엔 틀림없이 파란이었으나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니 혹시라도 잘못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임무를 위해 신분을 속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한 번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얼굴을 가린 면사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오로지 면사 너머로 잔뜩 독기 돋은 시선만 느껴졌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절대 불운.

도관에서 겪은 지옥의 석 달, 그 시작도 진파란이었다.

그리고 지금 진파란이면서 진파란이 아니라고 하는 저 여자.


둘의 공통점이 불운의 시작점이 아닐까하는 예감이 불길하게 전두엽을 찌릿 조여 왔다.


“자자, 여기서 조금만 가면 대둔현이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잘 아는 객잔이 있으니 거기서 얘기를 나누어 보시지요,”


그러자고 했다. 만약 파란이 속이고 있는 거라면 단 둘이 얘기를 나누어야 진실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떨어진 이 곳이 정확히 어디며 시대는 또 언제인지 알아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야만 로운이 이곳으로 와야만 했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테니까.



*

벽자룡이 자신이 타던 말을 로운이한테 양보했다.


“근데... 나 말은 처음이거든. 뒤에 타도 돼?”


소연과 자룡이 놀라서 로운을 바라보았다.

생명의 은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초면의 여자한테 아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자. 엄청난 무공을 지녔으면서 말을 탈 줄 모른다는 자. 그건 무림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취소연과 벽자룡의 시대에는 그런 자를 딱히 지칭하는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그 둘이 로운이가 살던 시대를 알고 있었다면 정확히 이렇게 칭했을 거다.


‘꼴통’


어쨌거나 세 사람을 태운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벽자룡의 뒤에 붙어 앉은 로운은 옆에서 말을 달리는 그녀를 보았다.

대체 왜 모른 척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녀는 진파란이 틀림없는데.


그녀와 함께 했던 도관에서의 기억들이 스쳐갔다.


*

<과거 현대>


등 뒤에서 파란이 문을 닫아걸자 문은 사라져 버렸다.

뒤는 초록 풀밭과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 그리고 그 멀리 솟은 산들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꿈이지? 꿈이어야 해! 깨자! 정신 차리자, 정신!’


팔뚝을 꼬집어보았다. 아팠다.

꿈이 아니었다.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현실.


로운이 말까지 더듬었다. 반말은 어느새 존대로 바뀌었다.


“여, 여, 여기가 어딥니까? 저 분들은 대, 대체 누구고요?”

“말씀 드렸잖아요. 도인들 계시다고. 설마 제가 거짓말 했겠어요?”


오는 동안 보여줬던 파란의 진지한 표정, 그게 진짜였던 거다.

정말로 마음 깊이 도관과 도를 믿는 듯 보였던 그 얼굴. 사기꾼들한테 속아서 그런 건 줄로만 알았던 그 표정이 그게 진짜 믿음과 신뢰에서 우러난 것이었다니!


“저기요. 정말정말 미안한데요, 제가 잘못했어요! 완전 사과할게요! 근데 저 돌아가야 하거든요. 내일 출근해야 해요. 부천 경찰서 부임한 게 딸랑 일주일 밖에 안지났다고요. 무단 결근하면 선배들한테 뒈져요! 그러니 제발 저 좀 보내주세요. 문 좀 찾아 주세요. 네?”


파란이 미안한 쓴웃음을 지었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여기 들어오신 이상 나가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이건 납치라구요. 유인 및 납치는 중범죄란 거 몰라요? 저 경찰이라니까요! 부천 경찰 강력!”


로운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휴대폰을 높이 들고 신호를 잡아보려는 로운을 보고 파란이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여기 오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어쩔 수 없어요. 방금 들으셨죠? 낙장불입이라고”


파란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낙장불입’을 얘기하는 그 순간만은 지옥에서 나온 악녀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돌아 섰다. 열한 명 도인들이 자애롭게 로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로운은 나지막히 되뇌었다.


‘낙장..... 불입.....’


순간 가슴 속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희망의 끈 같은 것이.....


*

도인은 도인이지만 전부 다 도인이라고 퉁치기엔 상당히 이상한 조합이었다.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공중부양을 보면 도인이 틀림없다 싶었는데 각자의 복장이나 인종은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무협영화에서 보았던 중국 도가의 복장에 흰 수염 날리는 그 분, 대머리에 멧돼지 같은 불룩 배가 나온 영감님과 늘씬한 몸매에다 망사로 얼굴은 가렸지만 나이까지는 속일 수 없는 이모님. 이 셋은 도인이라고 했을 때 누구나 상상하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긴 옷에 달린 후드를 눌러쓰고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는 반지의 제왕에서 본 간달프 사촌쯤으로 보였고 하얀 박사 가운에 머리에 전선들이 달린 기계를 덮어 쓴 중년은 SF 영화에서나 보던 괴짜 과학자에 다름없었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심지어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존재도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작은 뿔이 두 개 솟아 있는 악마와 같은 모습도 있었고 사람의 옷을 입긴 했으나 파충류의 얼굴과 손발을 가진 존재도 있었다.


그 여러 명의 도인 아닌 도인들이 허공에서 로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먼저 사부님들께 삼배를 올리세요. 그래야 정식으로 제자가 되는 거예요.”

“사부? 제자? 대체 무슨 소리예요?‘

“도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여기 온 거구요.”

“아니, 그건 둘러댄 거고 사실은 여기를......”


갑자기 파란이 로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아들 달래듯, 선생님이 학생 타이르듯 차분하게 말했다.


“로운씨.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그치만 이게 로운씨의 운명이에요. 이 우주엔 우리가 알 수 힘이 있죠.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존재해요. 오늘 로운씨가 절 만난 것도, 함께 이곳에 온 것도 그래요. 운명의 힘이고 인연의 힘이에요.”


파란의 따뜻한 손, 간절한 눈빛, 진심을 담은 말에 로운의 가슴이 조금 울컥......할 뻔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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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혈편랑 효지림 +5 23.05.11 219 9 12쪽
6 <6> 혈란과 군웅맹 +4 23.05.11 267 12 12쪽
5 <5> 천부경과 공동제자 +9 23.05.10 321 17 11쪽
» <4> 신비무공 낙장불입 +7 23.05.10 328 17 11쪽
3 <3> 백령기주 냉면귀 +7 23.05.10 392 18 11쪽
2 <2>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7 23.05.10 480 21 12쪽
1 <1> 초보형사 이로운 무림에서 눈을 뜨다 +16 23.05.10 851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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