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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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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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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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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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 혈편랑 효지림

DUMMY

*

군웅맹은 일월교를 백성을 현혹하는 ‘마교’로 지목했다.


군웅맹에 모인 재사(才士)들은 치밀한 계획을 수립했고 협객들은 힘을 모으고 때로는 나누며 조직적으로 일월교를 밀어냈다.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군웅맹이 지나간 곳의 폭도들은 무너지고 흩어졌다.


삼 년에 걸친 대전 끝에 군웅맹은 마침내 마교를 중원 땅에서 밀어낼 수 있었다.


설산 아래 일월교 본교에서 벌어진 마지막 정사대전에서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신예 취학명이 한 자루 철검으로 일월교주 율리극의 목을 베었다.


수 백 수 천의 일월교도의 피가 설원 위에 붉게 물들었다.


정사대전이 끝나자 불길처럼 타올랐던 마교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몇 남지 않은 잔당들은 설산 속으로 흩어져 숨어 들어갔다.


그렇게 마교는 무너졌으나 중원의 백성들은 아직도 도탄에 빠져 있었다.


늙은 황제는 여전히 치마폭에 싸여 실정을 거듭했고 부패한 관리들은 그대로 남아 백성의 고혈을 짜내 배를 불렸다.


하여 군웅맹은 해체하지 않았다.

해체할 수 없었다.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만 있기에 그들의 의협심은 너무 아팠고 그들의 혈기는 너무 뜨거웠다.


강호무림과 황실은 서로 관여치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나 정사대전을 전대미문의 세력을 형성을 군웅맹은 백성들을 죽어나가게 만드는 무능한 황실을 좌시할 수 없었다.


취학명이 정식으로 맹주가 되었고 그는 비밀리에 더욱 단단하게 조직을 갖추었다.


맹주 취학명은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또한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는 영민한 인물이었다.

맹주의 밀명을 받은 협객들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그늘 속에서 단죄의 칼을 뽑았다.


부패의 중심에 있던 환관과 대신들이 밤이면 하나 둘 씩 불귀의 객이 되었다.

백성들을 쥐어 짜던 관찰사와 관리들도 새벽이면 시신으로 발견 되었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또 다른 탐관도 차례차례 죽어 나갔다.

불의한 자가 모두 죽고 정의로운 인물이 그 자리를 채울 때 까지.


황실을 갖고 놀던 탐관들은 그것이 무림맹일 거라고 추측하였지만 무능한 황실은 그들에 항거 할 힘이 없었다.


일 년, 이 년이 지나고 십 년 이십 년이 지나자 세상이 차츰 밝아졌다.

정의가 살아났다.

백성들의 삶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교도 이미 잊혀 졌고 썩은 내가 무성했던 황실도 조금씩 제 빛깔을 찾아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평온.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는 시대, 그것을 태평성대라 하는 것이다.


취학명은 군웅맹의 존재가치가 다했음을 깨달았다.


남들 모르게 조금씩 맹의 규모를 줄였다. 때가 되면 군웅맹을 완전히 해체한 뒤 자신은 밭을 가는 촌부로 생을 마무리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일 년 전.


일월교, 그 때의 그 마교가 다시 중원을 덮쳐왔다.


중원 무림이 ‘망각’을 선택했던 그 평온의 시기에 일월교는 ‘기억’을 선택했고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것이었다.


선봉에는 율리극의 후손인 율리납이 있었다.

그의 무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서른 남짓한 나이에 이미 율리극의 경지를 넘어 있었다.


취학명 역시 오십년간 군웅맹주로 있으면서도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철검 한 자루로 천하를 평정했던 그는 이제 검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겨졌다.


사람들은 취학명을 두고 ‘철검을 내려두면 인간이나 철검을 뽑아들면 신이 된다’ 며 칭송했다.


그런 그가 율리극과 첫 일합에 철검이 부서졌고 다음 일합에 심장을 뚫리고 말았다.


상상치 못한,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강호무림은 다시 일월교, 아니 마교의 피바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태평성대를 위해 군웅맹의 규모를 줄인 것도 패착이 되고 말았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군웅맹의 지단들이 모두 궤멸 되었고 구파 일방과 대소 방파들이 봉문을 당했다.


얼마 남지 않은 잔존 세력들이 흩어져 버티고 있지만 다시 마교에 저항할 만한 세력을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벽자룡과 취소연 일행도 패전 끝에 흩어져 버린 군웅맹 무사들을 다시 집결시키기 위해 각 지단의 인근 지역을 훑던 중이었다.


그러다 마교 백령기의 정보망에 위치가 드러났고 그들의 습격을 받고 도주하던 중 다행히 로운을 만나 목숨을 부지한 것이었다.


*

“응 대충 스토리는 접수 되네.”

“스토...리...? 무슨 말입니까?”

“너희들은 모르는 말이야. 대충 알아들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


로운이 다시 젓가락을 잽싸게 놀리며 물었다.


“근데 율리납인지 뭔지 하는 놈이 그렇게 쎄? 너희 맹주가 한 방에 뒈질... 아, 아니 돌아가실 정도로?”


취소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풍도우검 율리납. 검술과 도법 모두 경지에 오른 절대 고수죠. 그래서 바람 부는 날은 도를, 비 오는 날은 검을 골라 쓴다고 풍도우검이라는 별호를 지녔죠. 그런데 그 놈이 무공보다 더 무서운 걸 얻었어요. 그가 지닌 무기. 온통 검은 빛깔의 장봉, 일월신주!”


그때였다.


- 우와악!


로운이 비명을 질렀다.

팔다리가 비틀리고 온몸이 뒤틀렸다.

젓가락이 손에서 떨어지고 입에서 씹던 음식까지 튀어나왔다.


허리 뒤쪽에 꽂아 둔 단봉 때문이었다.

단봉이 미친 듯이 떨며 진동하고 있었다.


얼른 뽑아든 단봉을 쥐고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두 손으로 꼭 쥐었지만 온몸이 같이 진동했다.


“으엇! 이거 왜 이러지? 얘가 이런 적이 없는데!”


취소연과 벽자룡은 놀라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눈빛에 의심이 가득찼다.

취소연은 의심을 넘어 분노로 입술까지 일그러졌다.


바로 로운이 쥐고 있는 그 단봉 때문이었다.



*

내령각(內令閣)이 일월교의 내부적 사안을 처리하는 곳이고 외진각(外進閣)은 외부 사안들을 처리하는 교주의 직속 기관이었다.


때문에 이번 중원 출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곳이 외진각이었다.


군웅맹과 직접적인 혈전을 벌인 것은 오령기였지만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전투 작전을 지휘하며 전황을 살피고 지원을 맡은 것은 외진각이었다.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각주 설파혼과 대원들은 여전히 중원에 머물며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혈편랑(血鞭娘) 효지림.


그녀는 음양노동(陰陽老童) 관쌍과 함께 부각주를 맡고 있었다.


십대 후반 정도의 앳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모습으로 삼십년 넘게 살아왔다는 게 정설이었다. 즉 진짜 나이는 오십 근처란 소리였다.


천잠사로 만든 ‘적야혈편(赤野血鞭)’이라는 붉은 채찍을 허리에 두르고 다니는 효지림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팍한 성격과 수 틀리면 적아를 살피지 않고 잔인한 살수를 펼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적야혈편도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그녀를 두려움의 존재로 여기게 만든 것은 일신에 지닌 ‘섭혼흡양지공(攝魂陰陽之功) 이었다.


중원무림에서는 이미 마공으로 지목되어 오래전에 멸절시킨 무공이었는데 새외변방의 일월교에 그 요결이 전해졌고 혈편랑 효지림에게로 이어져 온 것이었다.


효지림은 언제나 젊고 잘생긴 사내들로 하여금 자신을 수행하게 하였는데 그들은 일종의 장난감이며 도시락과 같은 존재였다.


젊은 사내들을 희롱하고 즐기다가 때가 되면 섭혼음양지공으로 양기를 흡수해 내공과 젊음을 유지해 온 것이었다.


혈편랑의 눈에 든 젊은 사내들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행방불명이 되곤 한다는 소문은 일월교의 교도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각주 설파흔으로부터 긴급 명령을 하달 받았다.


백령기가 취소연과 벽자룡의 행방을 찾아냈으니 백령기가 주둔중인 성곡현으로 이동해 두 사람을 인수 받으라는 명.


‘다행이네. 내가 백령기에 가까이 있어서. 큰 공은 아니라도 이런 일을 관쌍한테 넘겨줄 순 없지.’


그녀는 곧바로 심복인 열두 명의 수하, 십이편복(十二蝙蝠)과 함께 백령기가 주둔한 성곡현을 향해 이동했다.


*

성곡현은 대둔산을 사이에 두고, 이로운이 머물고 있는 대둔현의 반대쪽에 있었다.


로운 일행이 대둔현에 도착할 즈음에 성곡현의 현청 안방에는 냉면귀가 누워 있었고 일월교의 의원들이 몇 명이나 붙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부러진 뼈를 짜 맞추고 뒤틀린 혈맥을 바로 잡으며 장침과 단침을 번갈아 놓아 막힌 혈행을 도와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있었다.


냉면귀의 목숨이 깔딱깔딱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 때.


성곡현의 노을 진 하늘 끝에 열 세 개의 검은 빛이 나타났다.


일견 박쥐처럼 보이던 그 빛들은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 혈편랑과 십이편복이었다.

검은 신형들은 곧장 현청을 향해 쏘아 내려왔다.


경비를 서던 백령기 무사들이 놀라 검을 뽑기도 전에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 현청마당으로 내려꽂혔다.


혈편랑을 확인한 백령기 무사들이 일시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 높여 인사 했다.


“백령기 동도들이 일월의 이름으로 외진각 부각주, 혈편랑의 방문을 환영하옵니다!”


열 둘의 검은 박쥐를 이끌고 나타난 검은 망토 붉은 옷의 혈편랑이 곧장 현청 건물로 향했다.

날씬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이었지만 온몸에 풍기는 싸늘함은 주위를 얼려버릴 듯 했다.


“냉면귀 이 새끼 어딨어? 누님 오셨는데 콧배기도 안 보여? 한동안 못 본 새 간이 웅장해졌냐? 오늘 저녁 반찬으로 네 놈 간을 썰어 수육 한 번 삶아 봐?”


혈편랑의 짜증스런 투정에 백령기 대원 하나가 얼른 달려와 포권하며 대답했다.


“중상을 입으셨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지라...”


현청 계단을 막 오르려던 혈편랑이 발을 멈췄다.


“새꺄. 농담하냐?”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취소연이 그렇게 쎄? 벽자룡이 냉면귀보다 강하다고?”

“그 둘이 아니라 갑자기 괴물 하나가 튀어나와서.”

“괴물?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아, 아니 인간입니다. 괴물 같은...”


- 빠각!


혈편랑의 일권에 안면을 얻어맞은 대원이 옥수수 같은 이빨을 허공을 흩날리며 저만큼 날아갔다.


“괴물이란 거야 인간이란 거야, 젠장..... 너!”


혈편랑이 짜증 부리며 가까이 있는 다른 대원을 지목했다.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해”

“괴물 아니고 인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긴 한데 괴물처럼 엄청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풀숲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겁니다. 그런데 그 자가 고함을 지르자 백령기 선봉이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다시 공격하려고 했던 바...‘


- 빠각!


그 자도 허공에다 옥수수를 흩날렸고 덤으로 두 줄기 붉은 쌍코피까지 흩날리며 나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뭔 접속사가 이렇게 많아? 거기 너! 설명해 봐!”

“취소연과 벽자룡을 추격 중에 정체불명의 고수가 나타났습니다. 백령기 대원들이 당하지 못하자 직접 나서셨고.....”


수려한 외모에 말빨도 수려한 세번째 대원이 육하원칙에 따라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했고 다행히 옥수수를 보존할 수 있었다.


“말하는 게 참 똘똘하네. 생긴 것도 말끔하니 귀엽고. 너 외진각으로 와서 내 밑에서 일할래? 이름은 뭐니?”


혈편랑의 제의에 대원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옥수수를 보존한 대신 더 큰 것,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걸 직감했다.

그 역시 혈편랑에 대한 으스스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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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일월신주와 단봉 +4 23.05.12 189 7 9쪽
» <7> 혈편랑 효지림 +5 23.05.11 218 9 12쪽
6 <6> 혈란과 군웅맹 +4 23.05.11 265 12 12쪽
5 <5> 천부경과 공동제자 +9 23.05.10 318 17 11쪽
4 <4> 신비무공 낙장불입 +7 23.05.10 328 17 11쪽
3 <3> 백령기주 냉면귀 +7 23.05.10 392 18 11쪽
2 <2>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7 23.05.10 480 21 12쪽
1 <1> 초보형사 이로운 무림에서 눈을 뜨다 +16 23.05.10 851 2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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