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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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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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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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DUMMY

*

“열빙지.... 신비하다....음과 양이....”


세상 모든 것은 조화 속에 돌아간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순환하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이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대자연 속 하나의 기운으로 돌아간다.

음양의 조화란 것은 음과 양이 나뉘어 서로 보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체는 하나이며 현상만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인간의 몸도 하나의 세상.

내공 또한 음과 양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을 넘어 내공이란 본질은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깨닫고 나면 어떤 내공이라도 음으로, 양으로 현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생의선이 수십 년 자신의 몸을 대상 삼아 온갖 실험과 연구 끝에 이른 경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생의선은 더듬더듬 이 요체를 설명하고는 설렁설렁 어디론가 사라졌다.


귀담아 들은 소연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였고 대충 흘려들은 로운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론 이성보다 직관이 더 빠른 법이다.


아, 씨바. 뭔 말이야? 그니까 내 내공에 음과 양이 다 있단 거지? 그럼 그걸로 열빙지를 견디라는 건가? 일단 해 보자! 아님 추워 디질, 아니 뜨거워 뒈질 거 같으니깐!


로운이 내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단전에 응집된 내공이 사부가 가르쳐 준 몸 속 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게 대주천인지 소주천인지도 몰랐다. 그냥 가르쳐 준 대로만 했을 뿐.


‘얼음. 아이스크림. 폭설. 시원한 아아~’


물이 뜨거울 때는 차가운 것만 생각했다. 내공에서 한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따끈한 오뎅. 전기장판. 손난로, 아니 대형 온풍기!’


물이 차가워지면 뜨거운 것들을 생각했다.

그것 만으로 내공의 음양이 바뀌는 것 같았다. 열빙지의 변화를 견디는데 한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소연도 얼른 로운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침 해가 머리 위를 지나 반대쪽으로 기울어질 때 까지 로운은 오직 몸속을 돌아가는 내공의 음양 변화에만 집중했다.

오 분 이상 진지하면 죽는 줄 알았던 로운이 이렇게 긴 시간 집중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던 건 석 달 간 지옥수련의 힘이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생의선이 돌아와 로운을 한참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싸우지 마... 좋아... 사랑... 서로서로...”


그러면서 취소연을 가리켰다.

취소연은 처음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어? 우리 둘이? 사랑? 진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 소리야? 방금 소연 가리키며 사랑하라고 한 거 아니었어?

취소연이 웃으며 말했다.


“저처럼 하라는 말씀 같아요. 뜨거움을 차가움으로, 차가움을 뜨거움으로 상대하지 말라고. 저는 물이 뜨거워지면 함께 양기로 맞아주고 차가지면 음기로 받아주고 있거든요.”


완전히 반대였다. 로운은 뜨거울 때 음기를 운용해 열기를 밀어냈고 차가울 땐 양기를 운용해 냉기를 막았던 거다.

그걸 따라하던 소연이 언제부터인가 반대로 하고 있었다. 열기를 양으로, 냉기를 음으로 받아주고 있었던 거다.

열빙지의 고통을 처음엔 로운이 훨씬 쉽게 견뎠지만 어느 순간부터 취소연이 더 편안해보인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이열치열 냉치냉 (以熱治熱 冷治冷)! 아하 그 말이구나. 냉은 냉으로 열은 열로 받으라고~ 서로 사랑하라고!”


로운이 얼른 깨달은 대로 내공을 운용하자 생의선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거 얼마나 해야 합니까? 벌써 한나절이 다 갔다고요!‘


생의선이 손가락 셋을 세웠다.


“세시간? 아니, 세시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설마..... 삼일?”


생의선이 씨익 웃었다.


*

- 교주를 찾아 갈 것. 휘의 복수.

- 추적 완료. 위치 확보. 이동 멈춤. 기간 불확실


부서진 석좌에 앉은 교주는 두 개의 보고를 거의 동시에 받았다.

먼저 도착한 보고는 외진각 부각주인 효지림이 놈에게 들은 말이다.

곧이어 도착한 보고는 지밀원주가 직접 보내온 것이다.


첫 번째 보고에 따르면 여기서 기다려도 된다. 그가 직접 오겠다고 했으니.

두 번째 보고를 보면 찾아가면 된다. 놈이 있는 곳으로.


교주의 선택은 전자였다.


‘기다릴 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찾아가는 것은 쉬우나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것. 쉬움 보다 어려움을 선택하는 것이 신중한 것이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균열을 봉합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의 명이었으므로. 인간의 선택 그 위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마땅했다.


“도!”


낮게 불렀다.

대답은 없었으나 듣고 있었다. 두 명의 인물 모두.

교주 외에는 아무도 정체를 모른다는 쌍룡, 검무룡과 도제룡.


“가서 확인하라. 생사를 걸라.”


명을 받은 건 도제룡이었다.


도제룡을 보낸다는 것은 교주를 제외한 전력의 반이 간다는 뜻이다.

그래도 부족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검제룡까지 보낼 수는 없었다.


그가 오겠다고 했다, 안약 그가 도제룡을 넘으면 이곳으로 올 것이다.


하여 숨겨진 칼 하나는 남겨둬야 했다.

인간의 선택 이상으로 신중해야 하니까.


*

설파혼은 정신을 차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냉면귀는 아직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야초귀 유율극은 둘 보단 덜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밀원주가 보낸 추색이 당도하자 소격동 주위에서 대기 중이던 일월교 고수들이 한 곳에 모였다.

오령기의 기주들 중 암행귀 야율, 적묘귀 선우요화, 창해귀 벽리산. 외진각 부각주 관쌍과 효지림. 그리고 각 조직의 2인자 급 십여 명이었다.

추색이 달고 온 지도의 위치까지 정해진 시일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인물들은 그 정도였다.


서로 눈치가 곱지 않았다.

어쨌든 이들 모두 한 조직의 수장급이다. 그런데 함께 움직이면 통솔자가 필요한 법이다,

각자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흑심이었다.

목적지 도착하면 지밀원주가 지휘하겠지만 그전에 통솔권을 잡는 건 자존심 문제였다.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다들 뒤처지지 않도록 해.”

“니가 뭔데 앞장을 서? 그쪽 지역은 내가 훤하거든.”

“호호호. 왜 싸우고들 그래? 보법은 날 따라잡을 사람 없잖아?”


지밀원주가 보낸 담비 섬이 그들 앞에 나타나고 막 출발 할 때 까지도 서로 갑론을박 하면서 다투고 있었다.

그때 전서구 한 마리가 발목에 쪽지를 매달고 내려앉았다.


태양을 뜻하는 붉은 종이에 달을 뜻하는 황금 글씨.

일월교 교주의 친서였다.


‘모든 명령권을 도제룡에 위임한다’


짧고 명확한 명령이었다.


친서를 본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통솔권이고 뭐고 다 잊어 먹었다.


‘도제룡’


그 이름만으로도 다들 말을 잊었다. 통솔자 따위 아무나 되든 말든이다.

도제룡이 온다는데!


*

교주 율리납이 중원으로 출정을 명했을 때 외진각과 오령기 등이 책임질 문파와 세가들을 배정했다.

그런데 소림과 개방이 비어있었다.


구파 일방 중 가장 강대한 문파인 만큼 맨 먼저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 곳을 비워 놓는 의도가 궁금했다.


중원을 향해 진군하던 중에 의문이 풀렸다.

지난 밤에 그 두 곳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이 전해졌기에.


소림 현판은 도에 갈라졌고 개방 방주의 타구봉은 검에 조각났다.


도제룡과 검무룡이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다른 방파와 세가들을 휩쓸 때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할계언용우도 (割鷄焉用牛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


*

사흘이 지났다.


그 사흘 동안 생의선은 열 두 번 나타났다.

나타나면 알몸으로 풍덩 열빙소에 뛰어 들어 로운이의 온몸을 두드리고 주무르고 꺾고 비틀었다. 처음엔 아프기만 했는데 점점 시원해졌다.


“소연이는 안 해 주세요?”

“힘이... 없다... 일인 분....”

“아....”


좋은 걸 나누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남자인 생의선이 소연의 몸을 주무르는 것도 좀 그렇긴 했다.


그가 가져다주는 단약도 먹었다. 매번 맛이 달랐는데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확실히 몸이 좋아지는 것 같긴 했다. 플라시보 효과인가?


“소연이는 왜 안줘요?”

“약이... 없다... 일인분....”


혼자 먹기 미안했다. 콩알 반쪽도 나눠 먹으라는데.

소연이 미소 지으며 고개 저었다.


“여기 온 이유가 대협 때문인 걸요. 아.... 오라버니...”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열빙소는 여전히 뜨겁고 차가웠지만 로운과 소연은 마치 푸근한 물침대에 누운 듯 평온했다.

첫날은 고통이었고 둘째 날은 견딜만 했는데 셋째날이 되자 물과 한 몸이 된 듯 했다.


조금도 지치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내공을 대주천으로 소주천으로 돌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혈관의 피처럼 자연스럽게 제 길을 따라 돌아 다녔다.


“근데 소연아. 생의선 어르신이 나 주무르고 나면 진짜 시원하고 힘이 솟거든. 근데 몇 번 받아보고 나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네.”

“그래서 혹시.... 너도 시원해지고 싶냐?”

“네?”

“아하하~ 아니다. 뭐. 아무리 오빠동생이라도 내가 널 주무르고 그러는 건 좀 그렇지?”

“아.....”


소연이 잠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마음을 먹은 듯 살짝 뒤로 돌아 앉았다.


물 젖은 속옷이 딱 달라붙은 매끈한 등줄기가 아름다웠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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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39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4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0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7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69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69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6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5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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