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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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4
추천수 :
330
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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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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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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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DUMMY

*

“다, 닥쳐라! 네가 뭔데! 네가 명령하면 내가 해야 해?”


효지림이 당황하면서 어버버 대답했다.

반갑게 웃던 로운의 표정이 굳었다.


“어이. 내가 너한테 명령했냐? 그 때 상황이 좀 살벌하긴 했지만 나는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로서 부탁한 건데 그걸 안 들어줘?”


당황했던 효지림은 서운한 티를 팍팍 내는 로운의 말에..... 더 당황했다.


“아, 안 들은 건 아냐! 그대로 전하긴 했어!”


그러자 굳었던 로운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그래~? 역시! 넌 내 부탁 들어줄 줄 알았어!”


효지림의 뒤통수가 뜨끈했다.

눈 앞에 나타난 이로운과는 싸우러, 가능하면 죽이러 온 길이다. 교주의 명으로.

근데 지금 갑자기 로운이 친구니 부탁이니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함께 온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박혀드는 건 돌아보지 않아도 뻔한 일.


“어이, 혈편랑. 어쩐지 저 놈과 싸우고도 멀쩡히 돌아 온 게 좀 이상하다 싶었지. 저 놈과 친구였던 거냐?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각주 자리와 친구”


관쌍이 이죽거렸다.

가만히 있다간 진짜 오해가 커질 수도 있다 싶었다.


- 촤륵-


성질 급한 효지림은 채찍부터 휘둘렀다.


“누구한테 친구라는 거냐! 나는 지난 번에 두고 간 네 놈 목을 가지러 왔다!


말릴 틈도 없이 혈편이 이로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 츠캉--!


혈편을 쳐낸 건 로운을 부축하고 있던 취소연의 철검이었다.


“대협.. 아니 오라버니 잠시 물러나세요. 저 자들은 제가 막아보겠어요.”

“니가? 할 수 있겠냐?”

“해야죠. 여긴 우리 둘 뿐인데 오라버니는 아직 성치 않은 몸이니...”


로운은 씨익 웃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오른 팔이 성치 않은 건 맞지만 그래도 충분히 싸울 여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소연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로운의 내공 덕택, 그리고 유유곡에서 얻은 기연으로 소연도 크게 성취를 이루었을 것이니.

소연이 제대로 싸우는 걸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녀를 지켜주려면 그녀의 크기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럴래? 여차하면 뛰어들 거니까 걱정 말고 맘대로 해 봐.”


소연이 두 손으로 철검을 꼬나 잡고 로운을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풋~ 취소연? 니가? 벽자룡과 둘이 붙어 먹고도 죽을 뻔 해 놓고?”


효지림은 자신만만했다.

그 날 밤 자신과 마찬가지로 취소연도 로운의 내공을 받았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어린 취소연보다 경험이 많은 자신이 훨씬 빠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 곳까지 오는 동안 자신과 평수이거나 오히려 훨씬 성취가 높았던 자들을 모두 뒤에 두고 달리지 않았던가?

그러니 취소연 따위가 나서는 걸 보고 콧방귀를 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효지림이 슬쩍 주위를 살폈다.

지밀원주는 물론이고 동료들 모두 나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둘의 싸움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취소연은 여전히 철검을 꼬나 잡고 효지림을 노려보고 있었다.


효지림이 몸을 날리며 혈편을 앞으로 쭉 뻗었다.

혈편은 구부러진 장창처럼 꿈틀대며 취소연을 곧장 찔러갔다.

취소연은 슬쩍 뒤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그 반동을 이용해 혈편 앞으로 튀어나갔다.


- 캬릉---!


철검이 혈편과 부딪히자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


- 차르릉---


쭉 뻗었던 채찍이 튕겨나더니 뱀처럼 휘어져 소연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 차릉- 캬앙---


소연은 매번 방향을 바꿔 달려드는 채찍을 향해 몸을 틀어 막아냈다.

채찍을 상대하면서 소연의 진행 방향은 채찍의 주인, 효지림을 향하고 있었다.


검은 짧고 채찍은 길다.

먼 거리에서 채찍의 효용이 높고 가까울수록 검의 공격이 매서워지는 건 당연한 이치.

소연이 노리는 바도 당연히 그거였다.

달려드는 채찍을 쳐낼 때 마다 소연은 점점 효지림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우웃! 제법!”


효지림의 채찍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혈편의 연속 공격을 힘들이지 않고 방어하며 다가오는 소연을 보고 당황한 듯 효지림의 손놀림이 어지러워졌다.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훗. 그래. 그렇게 점점 다가오너라. 적당히 상대해주면서 널 끌어들이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너는 이승을 떠나는 거야.“


효지림은 자신의 절초인 혈사회관(血蛇回貫)을 준비하고 있었다.

채찍이 가장 강력한 거리, 그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면 누구나 시전자를 노리기 마련이다.

가장 위험한 거리와 순간을 극복하였기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무기인 채찍보다 본체인 시전자를 공격하려 한다.

혈사회관은 바로 그 때를 노리는 수법이며 채찍의 길이가 갖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공격하는 기습적인 초식이었다.


소연은 유연하게 몸을 비틀어 목을 파고드는 혈편을 아슬아슬하게 뒤로 흘려 버리면서 효지림을 향해 다가섰다.

그 때가 바로 시전자를 향한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 순간이었다.


취소연의 철검이 흔들리며 효지림의 요혈을 향했다.


“혈사!”


효지림이 채찍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당기며 왼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혈편이 회수되면서 오른손 소매 안으로 뱀처럼 파고들어갔다. 그리고 효지림의 등을 타고 왼쪽 소매를 통해 튀어나왔다.


회수하는 속도와 힘을 이용하고 몸을 타고 돌아 가는 동안 내공을 더해 압도적인 속도와 파괴력으로 출수해 상대의 요혈을 관통하는 초식.

하여 목표가 가까울수록 피하기 어렵고 충격은 더 큰 절초, 혈사회관.


“회관!”


- 콰아-----


효지림의 고함과 함께 소매에서 튀어나온 붉은 뱀, 혈편은 이빨을 드러낸 독사처럼 빠르고 매서웠다.

검은 몸과 함께 움직이나 채찍은 몸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검을 찌르기엔 아직 먼 거리, 하지만 검을 거두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

이미 승패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 없다, 고 생각했다,

혈편이 취소연이 뻗은 검을 타고 들어 가 가슴을 꿰뚫는 것도 보았다, 고 생각했다.


그건 효지림의 생각이었다.


- 콰득--!


철검이 왼쪽 어깨에 박혀드는 것을 느꼈을 때, 고통보다 먼저 깨달았다.

모든 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소연이 마지막 순간 그 초식을 꺼낼 줄 상상조차 못했다.

낙장불입을


- 슈아악---!


누군가가 뒷덜미를 잡고 당겨내지 않았다면, 당겨내는 속도가 철검의 속도보다 빠르지 않았다면 목숨까지 위험했을 것이다.


지밀원주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밀원주가 효지림의 뒤덜미 옷자락을 잡고 힘껏 당긴 것이다.

어깨에 박혀들던 철검이 속도를 당하지 못하고 쑥 뽑혀질 정도였다.


- 까앙--!


한 손으로 효지림을 구해내고 다른 손으로는 부채를 꺼내 철검을 받아친 지밀원주가 취소연을 몰아 붙였다.

취소연도 물러나며 지밀원주의 부채를 받아쳤다.


“협공! 모두 같이 싸워라!”

관쌍이 고함치며 두 자루 판관필을 꺼내들고 취소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로운이라는 강적을 상대하려면 여기 있는 모두가 머릿수로 몰아붙여야 한다. 그러려면 취소연 하나라도 제압해 놓는 게 최선책이라는 생각이었다.


관쌍이 나서자 야율과 벽리산, 선우요화도 동시에 병기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맨 앞에 뛰어들던 관쌍의 눈앞에 뭐가 확 덮쳐왔다.


- 떠엉---!


그리고 머리 속에 울리는 충격과 종소리.

허공을 도약하던 관쌍은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온 몸에 끌어 올렸던 내공이 스르륵 흩어지는 걸 느꼈다.

몸이 뒤로 제껴지며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 떵! 떵! 떵!


세 번의 소리가 더 들렸다. 아마도 선우요화와 야율, 벽리산도 로운한테 당하는 소리일 것이다.

딱밤으로.


아... 이 느낌.... 이 고통.... 안다.... 전에 맞아 봤다.... 이번에는.... 딱밤 치고는 너무.... 쎄.......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

로운은 단숨에 관쌍과 세명의 오령기주를 제압하고는 곧바로 소연과 지밀원주 사이로 뛰어 들었다.


“그만해! 그만!”


로운이 개입하자 소연과 지밀원주는 무기를 거두고 훌쩍 물러났다.


로운과 소연이 한쪽에, 지밀원주와 효지림이 반대쪽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관쌍과 나머지는 딱밤에 기절해 있었다.

만약 다른 누가 이 광경을 보기라도 했다면 네 명 모두 부끄러워 기절할 일이었다.

어쨌든 기절. 딱밤이든 부끄러움이든.


*

효지림은 피가 흐르는 어깨 혈도를 눌러 지혈하고 있었다.

취소연과 지밀원주의 싸움, 관쌍과 동료들이 당하는 것, 로운이 끼어들어 지밀원주와 취소연을 떼어 놓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는 효지림의 마음 속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낙장불입.


‘낙장불입을 어떻게 저 애가? 둘이 사제지간도 아닌데. 그 절초를 왜?’


입맛이 썼다.

절대 패하지 않을 상대한테 패한 것 때문에, 숨겨 둔 절초를 펼치고도 오히려 어깨를 내주고 선혈을 뿌린 것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 감정은.....


낯설었다. 마지막 감정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질투, 그런 것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존심 상하니까.


입맛이 썼다.


나란히 서서 뭔가 얘기를 나누는 로운과 취소연의 모습이 다정해보였다.


- 카악~ 퉷!


속에서 끌어올린 걸쭉한 침을 뱉어도.

여전히 입맛이 썼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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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40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4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1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8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70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5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70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7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5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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