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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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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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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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6> 유유곡의 결전

DUMMY

*

도제룡이었다.


도갑을 어깨에 턱 걸친 채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로운과 소연은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말이지.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보자고”


로운이 팔뚝으로 눈물을 슥 훔쳤다.


“그러니까 바쁘다고! 기다려.”

“!”


의외의 반응에 도제룡의 빨간 눈이 반짝 빛났다.

로운은 신경도 쓰지 않고 생의선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소연아. 초옥.”


소연이 초옥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가 방 한 가운데 나뭇잎 침대 위에 생의선을 뉘였다.

두 사람은 바깥에 쌓아둔 장작을 들고 들어가 생의선 곁에 쌓기 시작했다.

생의선 곁에 장작들이 쌓여갔다.

마치 생의선을 먼 곳으로 태우고 갈 한 척의 배와 같은 모습이었다.


도제룡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흥미로웠다.


‘뭐지? 저 놈. 독특한 데 끌리네.’


흘러흘러 일월교에 몸 담을 때 까지 세상의 반쯤은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어디에서든 또 누구든 자신을 처음 보면 놀라기 마련이었다. 그냥 이방인 정도가 아니라 체형 체색부터 생김새와 머리칼까지 모든 게 색다른 인종을 보면 누구나 놀람과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자신은 더더욱 특별했다. 오드아이. 파란 눈과 빨간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동족들조차도 이상하게 보았다 동족들은 부모를 참살했다. 부모가 막아준 덕에 그 만 겨우 목숨을 구해 도망쳤다. 악마의 자식이란 이유였다.

나중에 돌아가 동족이란 놈들을 깡그리 다 죽여 버렸지만.


일월교주 조차도 자신을 앞에 두고 한참동안 경계했고 의심을 풀지 않았다.

오로지 칼로 살아왔으며 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기 위해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걸 확신할 때 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로운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다.


- 그러니까 바쁘다고, 기다려.


그의 말투는 기싸움을 하겠다거나 상대를 무시, 능욕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진짜 바쁘니까 일단 기다리라는 본연의 의도로 들렸다.

너무나 평범한 대답. 너무나 평범한 대상한테 하는 그런 대답.

그 평범한 대답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이로운한테 듣기 전 까지는.


평범함이 풍기는 비범함. 그게 왠지 흥미로웠다.

기다리기로 했다.

비범하고 흥미로운 저 사내의 바쁜 일이 끝 때 까지.


생의선의 주위에 나무를 잔뜩 쌓은 로운은 초옥의 문을 닫고는 마지막으로 허리 숙여 절을 했다.

불을 놓자 마른 풀로 지어진 초옥은 금세 커다란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이 번지려고 하면 취소연이 손을 흔들어 맞바람을 놓았다.


‘맹주의 손녀. 역시 보통은 아니란 말이지?’


두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로운이 저벅저벅 도제룡을 향해 걸어왔다.

도제룡은 잠시 긴장하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로운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냥 구경꾼 곁에 서듯이 도제룡의 곁에 서서 함께 불길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뭐지? 이 녀석? 대체 왜 내가 누구냐고, 어디서 온 거냐고, 무엇 때문에 온 거냐고 묻질 않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혀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죽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지 않은 거 하고... 어느 게 더 슬퍼?“


물어보면서는 시선은 도제룡이 아니라 불길만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 묻는 거냐?”


그제서야 흘깃 한 번 도제룡을 돌아보더니 다시 불길로 눈길을 돌렸다.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왠지 또 대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도제룡은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겪은 바 있었다.

죽고 싶었던 순간, 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순간.

그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둘 다 슬픈 건 아니지. 당사자는.”


그러자 로운이 다시 도제룡을 돌아봤다.


“고통 혹은 절망이거든.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고‘


로운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쓴 웃음이었다.


“제법이네. 그럴싸해.”


그 순간 불타오르던 초옥이 풀썩 무너졌다.

생의선이 타고 있는 장작으로 만든 배는 여전히 활활 타고 있었지만.


“봐.”

“보고 있어.”

“불 말고 나.”

“?”

“이제 바쁘지 않다고, 바쁘잖음 좀 보자면서?”

“아...”

“뭔데? 볼 일?”


도제룡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도갑을 내렸다.

싸우자는 뜻.


“하아. 하지 말자.”

“해야 해.”

“왜? 일월교 교주가 시키든?”


도제룡이 씨익 웃었다. 그렇다는 뜻으로.


“내가 찾아 갈 거라고 했는데. 효지림이 얘기 안 했나?”

“그게 말이지. 교주 명이 아니라도 하고 싶어졌어. 너한테 관심이 생겼거든.”

“관심이란 말을 이렇게도 쓰나?”


도제룡은 대화를 끊었다. 대신 거리를 두고 몇 걸음 물러나며 도갑에서 도를 꺼냈다.

광채가 아름다웠다.


도를 들어 로운을 겨누듯 쭉 내밀었다.

한쪽 면이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붉은 광채를 내뿜었다.

반대쪽은 파란 하늘이 비친 듯 파르라니 서늘한 광채가 흘렀다.

도제룡의 붉고 파란 눈빛을 닮아 있었다.


“똑똑하다 했더니 꽉 막힌 놈이네.”


로운이 도제룡과 거리를 두고 섰다.

오늘은 생의선을 보낸 날인데 정말 싸움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란 감이 왔다.


해야 한다면 해야지. 생의선이 다 타기 전에, 육체마저 떠나기 전에 그가 로운한테 준 걸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도 괜찮은 작별 선물일 테니까.


취소연은 도제룡을 보고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소림이 하룻밤 새 무너졌다. 듣도보도 못한 도법을 쓰는 사내에 의해.

눈앞의 사내가 바로 그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로운에게 그의 정체에 대해 얘기해줄까 했지만 가만히 물러났다.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사람이 아니니까.


로운은 교주를 상대할 사람이다, 군웅맹의 맹주로서.

그러니 상대가 그 어떤 인물이더라도 로운은 넘어서야 한다는, 넘어설 거라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나를 지나면 교주를 만날 수 있어”

“쉽네.”

“그럴까?”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로운은 그닥 싸우고 싶지 않아서, 도제룡은 흥미로운 순간을 좀 더 끌고 싶어서.


하지만 말로는 끝날 일이 아니라 로운이 먼저 움직였다.


- 스아악---


소리라기 보다는 동작이었다. 더 없이 빠른 동작.

공격도 수비도 아니고 그냥 도제룡을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다.

“널 지내면 된다며?‘

“쉽지 않다고 했지?”


로운이 도제룡을 신형을 스쳐지나갔다 싶었는데 그건 도제룡의 잔상일 뿐이었다.

어느새 뒤로 물러나며 도를 흔들었다.


- 콰아아---


도풍이 두 사람의 주위를 휩쓸었다.


_ 슈라라락---


붉고 푸른 도기가 공간을 잘게 쪼개면서 로운의 온몸을 노렸다.


테극의 음양으로 쪼개고, 삼재의 방향으로 가르고 사상의 구역으로 찌르고 오행의 위치로 베었고 육효의 순서로 흘리고 칠성의 흐름으로 꺾으면서 팔괘의 위치마다 덮치고 구궁의 구역을 난자했다.


로운이 세상이 도제룡의 도에 의해 갈라지고 쪼개졌다.

하지만 뼈가 없는 짐승이 되었다. 로운은 흐르는 물이 되었다. 거침없는 바람이 되었다.

체(體)가 없는 영(靈)이 되었다.

쪼개놓은 틈과 틈으로 충분했다.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또 하나의 세상이었고 그것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극(二極)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行) 육효(六爻) 칠성(七星) 팔괘(八卦) 구궁(九宮) 모두 원래는 하나, 일원(一原)이니까.

로운은 일원이 되었다.


“훌륭하다!”


도제룡은 감탄 했다.

자신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그가 이미 경지에 올랐음을 알았다.

임독양맥을 타동하고 환골탈태를 이룬 경지에.


“뭘 이 정도로.”


로운이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도제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도의 변화를 줄였다.

그의 도가 훨씬 정직하게, 하지만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강력하게 움직였다.


- 떠엉!


로운은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둔중한 충격을 받았다.

도제룡의 도가 로운의 가슴을 타격한 것이다.


- 커헉!


신음과 함께 로운이 훌쩍 물러났다.

가슴팍 옷자락이 갈기갈기 뜯겨 흩날렸다.


동시에 도제룡도 땅에 발을 끌면서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한 손으로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타격음도 신음도 하나로 들렸지만 사실은 두 사람이 동시에 낸 것이었다.


로운이 가슴을 내 준 순간 한 손으로 도제룡의 가슴을 밀어 친 것이었다.


동시였다.

하지만 찰나를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눌 수 있다면 도제룡의 공세가 먼저였고 로운의 공격은 그 다음 방어였다.

당연히 충격도 로운이 조금 더 컸고.


그 차이를 만든 건 단 한 가지였다.

도제룡은 로운이 환골탈태의 경기를 넘었다는 걸 알았으나 로운은 도제룡도 이미 그 성취를 이루었음을 몰랐다는 것.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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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4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0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7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70 2 10쪽
»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5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70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7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5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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