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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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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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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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DUMMY

*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 사는 도시였다.


“고기! 술! 국수! 밥! 다 먹을 거니까 걱정 말고 있는 대로 줘 봐요.”


든든하게 먹고 깨끗한 물로 씻고 옷도 새로 사 입었다.

꼬장꼬장 땟물 질질 흐르던 소연도 아이돌 뺨 날릴 미모를 되찾았다.


생의선이 가르쳐 줬던 방법대로 내공을 운용하자 오른팔의 상세도 많이 좋아졌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내가 살면서 한약이라고는 먹어 본 적이 없거든. 누가 그러더라고 보약 많이 먹으면 늙어 죽을 때 고생한다고. 약효 때문에 깔딱깔딱 숨이 안 넘어 간다나? 그래서 침도 안 맞았지. 근데 겪어보니 다르네? 아픈 데를 콕 찍어서 치료하는 게 아니고 온몸의 힘을 아픈 곳에 나눠주는 거라고나 할까? 물론 내공수련하고 한의학은 다르겠지만.”

“그런 이야기 할 땐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오신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한 걸 특별하게 받아들이시니까.”

“그래. 특별할 건 없지. 내가 여기 얼마 지내보니까, 다를 거 없더라고. 아픈 데가 있으면 다들 나눠주고 도와주고 그러고 살면 얼마나 좋아? 군웅맹도 일월교도 서로 도와주는 관계가 되면 안 되냐?”


로운이 술기운을 빌어 얘기했다.


“그들은 중원을 침략했어요. 백성들을 끌어들여 폭도로 만들었구요. 군웅맹은 마교라는 거악에 맞서 싸웠어요. 지금은.... 이렇게 되어버렸지만요.”


로운이 피식 쓰게 웃었다.


“나도 대충 얘기는 들었거든? 일월교가 백성한테 폭도짓 하라 했나? 반란 일으키라 했나?

“그건.......”

“일월교에 기댔던 백성들도 모두 악인이겠네?”

“그....”

“백성들이 저항했던 황실은 정의로웠고?”

“.......”


취소연의 대답은 점점 짧아졌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로운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순간에 자신의 생각과 삶을 부정당한 느낌이라 표정이 굳어갔다.


“인간 세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선과 악이 존재하지. 그래서 악을 경계하고 처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맞아. 그래서 나 같은 경찰도 있는 거고.”


“그래서 우린 싸운 거예요. 목숨을 걸고.”


취소연이 자신 없는 목소리르 얘기했다.


“알아. 다 알지. 근데 나는 일월교가 마교라는 건....”


로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종교가 바탕이 된 세력이거든. 교세를 확장하려는 건 종교의 본성이거든. 근데 백성들이 일월교에 빠져들게 된 거, 또 폭도로 변질되는 과정을 잘 생각해 보자고. 일월교 교리의 문제였나? 아니면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황실과 관리가 문제인가?”

“.......”

“정말 잘 몰라서 물어 보는 거야. 대답 해 봐”

“황실과 탐관의 문제가 컸겠죠. 하지만 이후에 군웅맹은 그들도 척살했어요. 훌륭한 황제가 등극하고 백성들은 행복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또 쳐들어 온 거였어요.”

“그래. 갑자기 쳐들어와서 너희들을 박살 냈지.. 근데 그건 다른 문제지 않나? 처음에 황실 탐관 때문에 백성들이 일월교에 기대 저항한 걸 너희들이 토벌 했으니까. 걔들이 안 억울하겠어? 그러니까 이번에 복수한 거지. 원한을 낳은 건 너, 중원! 그 때 당한 건 일월교니까.”


따박따박 박아 넣는 논리에 소연은 궁색한 변명조차 꺼낼 수 없었다.

로운이 분위기를 풀자는 듯 술을 권하며 말했다.


“듣고 있는 누이 맘도 이해해. 근데 굳이 내가 이런 얘기 하는 이유는 알겠냐?”

“?”


고개 숙인 채 술잔만 바라보고 있던 소연이 로운을 봤다.

로운이 품에서 맹주령을 슬쩍 보여줬다.


“개인 이로운이 아니고 맹주로서 만나는 거다. 일월교 교주를. 내 생각 정도는 너도 알고 있어야지”

“아.....”


그제야 소연은 로운의 심중을 약간 알 거 같았다.


“하지만 일월교 무리들은 하나같이 성정이 독하고 호전적이고 적대적이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너도 이번에 할아버지 잃었지? 그들도 다 똑같이 가족을 잃은 거라면? 독하고 적대적으로 변하지 않겠냐?”

“......”

“내가 본 그쪽 사람들, 니 말처럼 성질은 더럽지만 그렇다고 다 악인은 아니더라고.”


하더니 로운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나쁜 놈인지 아닌지 잘 봐라.”


로운은 객잔 안을 한 번 훑어보더니 한 사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 눈에도 무림인처럼 보이는 그는 탁자 위에 검과 갓을 올려놓고 단출한 만두 요리 하나를 먹고 있었다.


“고생이 많습니다. 만두 한 접시로 요기가 되겠습니까?”


사내가 고개를 들어 로운을 봤다.

걍팍한 얼굴에 날렵한 몸을 가진 그는 서른 정도로 보였다.

갑자기 다가 온 로운을 보는 날 선 눈빛에 경계와 긴장이 가득했다.


“든든하게 드셔야지. 계속 나 따라 다니려면.”


그 말에 사내가 빠르게 검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빈 탁자만 쓰다듬었다.

로운의 손이 먼저 검을 한쪽으로 슬쩍 치워버렸기 때문에.

사내는 로운의 손이 언제 움직였는지도 보지 못했다. 탁자 위에 검이 한 순간 순간이동을 했고 그 검 위에 로운의 손이 놓인 것을 봤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내의 호승심이나 경계심을 깨는 데는 충분했다.

로운의 손짓 한 번에 그는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걸, 싸우기도 전에 목이 달아날 거라는 걸 깨달았다.

지밀원 12호인 그 사내의 공력과 경험은 그 정도 판단을 내리기엔 충분했다..


“식사 하는 데 큰 칼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요.”


로운이 웃음 지으며 주방을 돌아봤다.


“여기! 오리구이 하나에다 술도 좋은 걸로 한 병!”


그리고는 몇 군데 탁자를 더 가리켰다.


“저기도, 저기 두 사람도. 오리구이와 술 내 주시오.”


모른 척 식사를 하다가 지목을 받은 인물들이 흠칫 놀라 돌아봤다.


“저 사람들도 같이 온 거 맞지요?”

“모르는 사람이오.”

“에이, 따라 붙은 건 달라도 다 같이 쫄래쫄래 따라왔는데?”


로운이 능글능글 캐물었다.


“진짜 모르오. 우린 서로 알지 못....”


12호가 놀라서 말을 끊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얘기하지 말아야 할 내용을 입에 담고 말았다.

로운이 손가락으로 코끝을 간질간질 긁더니 눈치 챘다는 듯 말했다.


“아아~ 점조직이구나! 어쩐지~ 너무 많이 붙었다 싶었지. 서로 모르니까 다들 우르르 몰린 거구나.”


12호와 다른 탁자의 지밀원 인물들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살폈다.

서로 간에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때마침 점소이가 탁자 위에 오리고기와 술병을 올렸다.


“일단 오리고기 맛있게 드시고. 이거 작별 선물이니까 먹고 사라지라고.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데리고. 내일도 귀찮게 하면 그땐 오리가 댁들 고기를 먹게 될 테니까.”


12호가 깜짝 놀랐다. 오리 밥을 만든다는 협박 때문이 아니라 밖에도 추격조가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지밀원의 임무는 개별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각자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객잔 안에만 3개조 4인이 있는데 밖에도 있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대체 얼마나 투입 된 것일까?


“밖에도... 추격조가 있단 말이오?”

“있지. 다 합치면 정확히 예순 두 명.”

“예순 둘!”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아흔아홉의 인원 중 삼분의 이가 투입 된 것이다.


“내 말 명심하고, 맛있게 드쇼.”


할 얘기를 끝낸 로운은 소연이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갔다.


*

세 곳 테이블에 있던 네 명은 오리고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일어나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각자 소매를 걷어 지밀원의 표식을 보이면서.


‘신분이 발각 나면 그 즉시 탈출하라. 탈출이 불가하면 자결하라.’


지밀원의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철칙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단 한 명도 발동한 적 없는 철칙.

지밀원이 구성 되고 난 후 그 누구도 조사 대상에게 신분을 들킨 적은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그 철칙을 따라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것도 예순 두 명이 동시에.


다행이라면 자결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은 탈출도 아니라는 것이다.

‘철수’

그것도 상대의 배려로 자결이나 탈출이 아니라 ‘철수’하게 된 것이다.

지밀원 대원들한테는 자결보다 더 고통스러운 ‘치욕’이었다.


네 사람이 마을을 가로질러 가자 곳곳에 숨어 상황을 살피던 추격조들도 은닉처에서 나와 따라나섰다.

팔뚝의 표식을 드러낸 것을 보고 상황을 알아챈 것이었다.


그런데 마을 빠져 나온 것은 모두 예순 명이었다.

아무리 확인해 봐도 두 사람이 비었다.


*

“봤지? 고분고분 착하잖아. 말로 다 해결 되잖아. 다들 나쁜 놈은 아니라니까.”


로운이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맨 처음 냉면인지 그 양반. 그 담에 효지림이라는 여자애. 관상이 애가 됐다 노인 됐다 하던 그 치도 그렇고. 니가 봐도 그 자들 본성이 악인이라고 생각 해?”

“개개인은 악인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집단이 추구하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무림인 말고 백성들한테 해를 끼친 게 있냐?”


로운의 말에 취소연의 말문이 턱 막혔다.


“없잖아. 내가 본 일월교 사람들은 그래. 다들 군웅맹에 대한 원한과 복수일 뿐이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자들은 아니란 거지. 아! 은갈치 그 쉐끼는 쫌 야비했지만.”


소연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 유유곡에서 도제룡이란 놈 겪으면서 확신이 들었어. 맹주자리 맡게 된 거 처음으로 잘한 짓이라는 확신 말이다. 나, 양측 원한의 고리 끊어 낼 거다.”


로운이 씩 웃으며 잔을 들었다.

티 없이 맑은 미소, 하지만 자신감 가득한 미소였다.


소연도 잔을 들어 건배했다.

함께 술잔을 비우고 조심스럽게 잔을 내려놓으며 소연이 말했다.


“그러실 거라 믿어요. 그리고 뭐든 따르고 도울게요. 오라버니.”


로운이 술잔을 다시 채웠다.


“당연히 그래야지. 난 맹주고 넌 맹원인데. 핫핫핫~”


*

예순 명의 지밀원이 탈출 아닌 탈출을 한 마을에 아직 두 명의 추격자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밀원의 은밀한 표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둘은 지밀원이 아니었다.


‘은형’과 ‘비종’은 황실 자검위의 정예였다.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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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4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1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9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8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70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5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70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7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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