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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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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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글자수 :
295,344

작성
23.07.21 20:38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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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0쪽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DUMMY

*

“쌍생아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둘 다 남아이옵니다.”


백설이 펄펄 날리던 겨울 날 설산 기슭의 나무집 안에서 교주 율영극은 아들 둘의 아비가 되었다.

전대 교주 율리극이 중원의 신예 취학명의 철검에 죽은 지 스무 해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났을 때였다.


내령각주가 태어난 두 아이를 강보에 싸서 교주한테로 데려왔다.


둘 중 하나가 대를 이어 차기 교주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은?

쌍둥이가 아니라 터울이 있는 형제나 자매라면 맏이를 보좌하면 된다.

하지만 같은 날 태어 난 쌍둥이라면 자칫 후계의 자리를 놓고 예상치 못한 사단이 벌어질 수도 있다.


“하나여야 한다. 일월교의 미래를 위해 그것이 옳다.”


강보에 싸인 두 아이를 내려다보던 율영극이 양 손을 아이의 가슴에 올렸다.

아무리 쌍둥이라 하여도 타고난 자질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참 후 눈을 뜬 율영극이 내령각주한테 명했다.

율영극의 시선은 한 쪽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율리납. 일월의 신께서 은총을 내리사 내가 이제껏 본 아이들 중에 타고난 근골이 가장 훌륭하구나. 선대 율리극, 나 율영극을 합친 것보다 고강하도다”


“오, 율리납! 그 이름을 모든 교도들한테 공표 하겠사옵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 필시 우리의 치욕을 씻고 중원의 하늘에 일월의 깃발을 펄럭이게 할 것이다. 허니 내령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라. 이 아이는 아비와 어미가 아니라 우리 일월교 모두가 함께 키운다는 각오로!”


“존명!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하겠사옵니다.”


율영극은 다른 아이를 돌아 보았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내령각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한 명의 이름은.....?”

“없다.”

“네? 무슨 말씀이시온지?”

“오늘 일월의 성은으로 태어난 아이는 율리납 하나 뿐!”


율영극이 잠시 침을 삼켰다. 어찌 보면 울음을 삼키는 것 같기도 했다.


“저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요긴하게 쓰여야 할 것이다. 율리납을 위해.”

“아....!”


내령각주는 그제야 교주의 의도를 눈치 챘다.


“없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후대 교주, 율리납에 못지 않은 인물로 만들겠습니다.”


“아니다! 율리납에 못지 않은 인물이 아니라.... 율리납을 위해 쓰일 칼로 만들라. 보이지 않는 칼, 존재하지 않는 칼로.”


내령각주는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름 없는 아이를 강보째 안고 방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잠깐!”


내령각주가 잡았던 문고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율리혁이다. 다만... 그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 이름도 없어지는 거다.”


내령각주는 돌아서지도 않고 고개만 까닥했다. 그리고 안고 있던 아이를 강보째 높이 번쩍 들어 올렸다.


“율리혁! 율리혁! 아주 사내다운 이름이로고! 세상을 벨 훌륭한 칼이 될 이름이로다!”


내령각주가 아이를 들어 올린 건 뒤쪽의 아비, 교주에게 잠깐이나마 얼굴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교주가 아이를 보았을지 아닐지 모르지만.


*

율리납은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설산에 흩어져 살아가는 일월 교도들은 율리납의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이름 없는 아이도 성장했다.

설산 깊은 곳, 숨겨진 장소에서 숨겨진 아이로. 자신의 이름도 모른 채.

그에게도 율리납 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주어졌다. 일월교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영약과 비급이 율리납처럼 그에게도 전해졌다.


그는 재능은 특히 검법에서 빛이 났다. 일월교에 비장된 모든 검술 비급을 완전히 이해하고 완벽히 통달했다.

더하여 스스로 검의 길을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검법으로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일월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내령각주의 검도 꺾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이미 저를 넘어 섰습니다.”


내령각주의 은밀한 보고를 받은 율영극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몰래 키워 온 숨겨진 검을 율리납에게 전해줄 때가.


율영극은 율리납을 불러 그의 존재를 얘기해 주었다.


“은밀히 키운 아이다. 검에 있어서는 너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느낄 수 없어도 그는 언제든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니.... 쌍둥이처럼 여겨도 좋을 것이다.”


“아! 그럼 지금도 여기 어딘가에?”


“지금도!”


“그러면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하옵니까?”


“이름은.... 검무룡이라 하자.”


“검무룡..... 검무룡.... 검무룡!”


두어번 이름을 되뇌이던 율리납이 소리를 높여 그를 불렀다.


- 지잉--


어디선가 칼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 없는 아이, 이제는 검무룡이 된 사내. 그가 처음으로 율리납을 만난 날이었다.

아주 짧은 한 순간 율리혁이라 불렸던 그가.


*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영원한 비밀을 약속한 자도 스스로 그 약속을 깰 때가 있다.


율영극이 자신의 모든 내공을 율리납한테 전해주고 죽음을 맞은 그 날.

그 날의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율영극이 검무룡을 불렀다.

검무룡이 은밀히 율영극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그에게 눈 앞에 나타나라 명했다.

검무룡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율영극이 검무룡의 두 손을 잡았다.

율영극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교주로서 그는 마땅히 할 일을 했으나 아비로서 그는 율리혁 앞에 죄인이었다.


율영극이 자신의 두 손을 거머쥔 그 순간 검무룡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사람이 자신을 낳은 아비라는 것을.


율영극의 뒤를 이어 율리납이 교주의 직에 오른 날 밤.

검무룡은 자신을 키워 온 전임 내령각주를 찾아갔다. 진실을 듣기 위해.

그는 내령각주직을 소유혼한테 넘겨준 뒤 백탑성 구석진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를 알게 된 검무룡을 보고는 전임 내령각주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율리혁이란 원래의 이름까지도.


그리고 전임 내령각주는 또 한 사람한테 그 얘기를 전했다.

교주 율리납. 교주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기에.


그 날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율리납은 교주의 직에 모자람 없었고 검무룡은 교주의 명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둘의 마음 속에는 애정과 애증이 교차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그리고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이기에.


*

그 둘이 처음 얼굴을 마주한 건 오직 한 번, 둘이 서로 자리를 바꾸어 검무룡이 교주가 된 바로 그 날이었다.


“완성했는가?”

“거의....”

“할 수 있겠나?”

“하겠습니다.”

“그래.....”


그때 율리납은 석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석실 뒤쪽으로 걸어가 어두운 통로 속으로 사라졌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검무룡을 보았다. 율리혁으로 자랄 수도 있었던, 자신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가 자신을 대신하기 위해 똑같은 옷을 입고 곁을 스쳐갔다.


그 짧은 교차 순간에 율리납은 가슴 속에 내내 꾹꾹 눌러두었던 말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꺼냈다.


“고맙다..... 라는 말 하고 싶었다.”


검무룡은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교주 대신 통로에서 걸어 나와 석좌에 가서 앉을 때 까지, 그 짧은 시간에 그 길었던 외로움과 한이 다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운명이 갈라 놓은 둘 사이의 관계가 모두 치유됨을 느꼈다.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고맙다’는 그 말 한마디에.


검무룡은 석좌에 교주처럼 팔을 괴고 앉아 눈을 감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교주 율리납은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고맙다... 라는 말 듣고 싶었다.....”


라고.


*

자결한 교주, 아니 검무룡을 향해 일월교도들이 몰려들었다.


“교주!”

“어찌하여 자결을!”


소유혼이 사람들을 비키게 하고 죽은 검무룡을 살폈다.


“아니다! 교주가 아니야! 이 사람은 그의 말대로 검무룡일 터!”


소유혼의 말에 교도들이 동요했다.

틀림없이 교주인데, 한 두 번 본 모습이 아닌데 교주가 아니라고 하니 한 편으로는 믿기 힘들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교주 아니라는 거야? 취소연, 너 교주 본 적 있지? 아닌 거 확실해?”


“제가 보았던 교주예요. 틀림없어요. 저 사람이 할아버지를.....”


“근데 좀 이상하긴 해. 그게 없잖아. 단봉 비슷하다는 거. 일월신주!”


“그러네요. 교주의 신물이라 틀림없이 지니고 있을 텐데. 대협... 아니 오라버니와 일전을 벌이는데도 일월신주를 꺼내지 않았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

교주는 설산 중턱에 서 있었다.

선친과 함께 무공을 수련하던 그 수련장에 서서 백탑성을 내려다고 있었다.


검무룡이 이로운과 일전을 벌이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있었다.

세인들의 눈에는 불덩이가 날아다니는 것 처럼 보였지만 교주의 눈에서 검무룡의 검세 하나하나, 로운의 단봉 흐름 처음과 끝을 모두 보고 있었다.


검무룡이 마지막 공격을 시도할 때 자신도 모르게 일월신주를 불끈 쥐었다.


그러나 그 공격이 무산되고, 서로의 심장을 비껴나고 말았을 때는 이를 악물었다. 어찌나 악다물었는지 입안에 피가 고일 정도로.


그리고 검무룡이 떠났다.

검무룡, 아니 율리혁은 숨겨진 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형제 율리납을 위해.

더 이상 할 게 없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니, 태어나지 않았던 자한테 죽음이란 말을 쓸 수 있을까?


그 순간 율리납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순간 스스로가 완성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로운을 죽여야 할 이유도 완성 되었고, 율리납이 죽어도 될 이유도 완성되었다.

일월교의 교리와 신의 명이 아니라, 순수하게 율리납이란 인간 안에서 마지막 일전의 모든 이유가 완성 되었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이로운이 이곳으로 올라오기 만을.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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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17 프로매니아
    작성일
    23.07.21 21:28
    No. 1

    마지막 부분 검무룡이 도제룡으로.... 오타. 잘 읽고 있습니다. 이게 그림과 곁들여 보면 참 재미날 건데 말입니다. 쌍둥이... 그림자 교주 좋습니다. 전 화에서 끝내면 아쉬움이 있었는데 여기서 해갈되네요. 그런데 율리납과 율리혁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언급이 있었다면. 혹 다음 화에 나오나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래몽래인
    작성일
    23.07.21 22:03
    No. 2

    잇. 오타 남발 ㅠㅠ 감사합니다~ 얼른 수정헤야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래몽래인
    작성일
    23.07.21 22:11
    No. 3

    차이는 모르겠습니다만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교주가 몇 마디 할지도 모르겠어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pe******..
    작성일
    23.07.24 17:10
    No. 4

    최후의 결전이 대립이 아닌 통합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 래몽래인
    작성일
    23.07.24 22:54
    No. 5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교주와 로운이 어떤 생각인지.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세비허
    작성일
    23.08.09 16:02
    No. 6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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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40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5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2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5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7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1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6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8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8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9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8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70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5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70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7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70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5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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