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형사, 눈 떠 보니 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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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몽래인
그림/삽화
배민기
작품등록일 :
2023.05.10 14:48
최근연재일 :
2023.08.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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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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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67> 묵광멸천(墨光滅天)

DUMMY

*

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몸 안에 파고 든 교주의 극음지기를 자신의 극음지기로 녹여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그런데 눈앞에서 취소연이 죽어간다.

자신이 지켜주리라 맹세했던 소연인데 오히려 자신을 지키려다 죽어가고 있다.


시간은 더 이상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소연은 죽을 것이고 로운은 살아남더라도 평생 고통을 걸머지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야 했다.


당황, 절망, 분노, 다급함, 온갖 감정들이 로운 안에서 극한으로 치솟았다.

극점에 이른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감정들 엉키면서 극한 지점에 이르자 폭발했다.


“개 씨 바 랄 쉐 이 크 놈아!”


근본을 알 수 없는 쌍욕이, 사자후가 되어 교주를 향해 날아갔다.

그냥 사자후가 아니었다.

로운의 감정들이 화약이 되어 폭발하면서 몸속에서 어우러지던 극음의 내공이 사자후에 실렸다.


- 개 씨 바 라 콰 아아아아아아------


쌍욕은 교주한테 이렇게 들렸다.

첫 몇 마디 외엔 그냥 공포스러운 돌풍처럼 덮쳐온 것이다.


- 콰라라락----!


교주가 일월신주를 프로팰러처럼 회전시켜 음공을 막았다.

하지만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소리는 신주가 펼친 방어막의 미세한 틈을 파고 들어갔다.


- 파파파팍---!


교주가 내공을 끌어올려 로운의 음공을 막았지만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교주의 옷자락이 누더기처럼 찢어졌다.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인류 최초로 욕설에 맞아 죽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율리납이었기에 로운의 음공을 구 할 이상 와해시켰고 치명적인 충격은 받지 않은 정도였다.


그렇지만 교주의 평정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쌍욕으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또 한 번 박살내 버린 쌍욕, 아니 그 음공 때문에.


방금 전 까지도 로운은 몸을 제대로 일으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취소연이 무너지는 걸 보자 엄청난 음공을 쏟아낸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 세상의 이치를 거역한 상황을 또 만들어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교주의 마음 속이 어두워졌다. 일월의 빛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일월의 신이시여! 제발....!’



로운의 폭발, 폭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꼬마 휘의 죽음을 통해 첫 폭주를 경험했었다. 그 순간 터져버린 잠재력은 몸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고 목숨까지 위험할 지경이었지만 유유곡 생의선의 도움으로 엄청난 성취를 완성한 바 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몸이 기억하기도 한다.

몸으로 배운 것들은 특히 몸 속에 새겨지는 법이다.


어린 날 뒤뚱뒤뚱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은 수십 년 흐른 뒤에도 금세 탈 수 있는 것처럼.


한 번의 폭주, 잠재력의 폭발, 내공의 안돈, 거대한 성취.

극심한 고통 속에 한 번 겪었던 이 프로세스가 로운의 몸속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초행 길은 언제나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 번 가 본 길은 훨씬 짧게 느껴지는 법.


소연의 고통을 본 순간, 로운이 폭발했고 폭주했다.

이미 그 길을 가 보았던 로운의 신체는 기억하고 있던 과정을 폭발적으로 폭주하듯 진행한 것이다. 딱 필요한 만큼을.


로운이 음공을 쏘고 다시 교주와 마주 싸울 수 있을 정도까지.

몸이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가는 것은 다시 로운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 시간은 교주의 편에서 로운의 편으로 돌아선 셈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한 번 잠재력의 폭발을 끌어낸 로운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교주는 그렇지 못하지만.


*

일월교에 의해 중원 무림의 대소방파와 세가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내공이 깊은 자들을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일월교의 교단이었다.


사내는 교단들을 훑었다.

사내가 지나가고 나면 교단은 모두 묘지가 되었다.

약한 자들은 곧바로 죽음을 맞았고 교단을 이끌거나 수호하는 내공이 높은 자들은 고통 끝에 영혼을 먹혔다.


로운의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을 거듭하며 말도 안되는 풍문으로 강호를 휩쓸었듯이 사내의 이야기도 공포의 소문이 되어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번 소문은 살이 붙어 부풀려지는 일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소문만으로도 이미 더 이상 끔찍할 수 없었기에.


중원 각지의 교단들이 피바다가 되었다는 소문은 시시각각 지밀원에게 수집 되었고 곧바로 지밀원주한테로 전달 되었다.


쉴 틈 없이 날아드는 급보를 받은 지밀원주는 더 이상 보고 할 데가 없었다.

결정권자인 교주는 아직도 설산 위에 있다.


쌍룡 중 도제룡은 떠났고 검무룡은 죽었다.

삼혼 중에서 외진각주 설파혼은 중상을 입은 상태이니 결정권은 지밀원주 무영흔과 내령각주 소유혼이다.


지밀원주는 내령각주와 상황을 공유하였다.

교단이 파괴되고 교도들이 죽어나가는 급박한 상황이니 교주가 없더라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령각주가 본교에 남고 나머지는 모두 지밀원주가 이끌고 교단을 구원하러 가기로 했다.

오령기 중 이미 몰살한 백령기를 제외한 나머지 네군데에 집결령을 보냈다.


청령기를 이끄는 창해귀 벽리산이 이미 머물고 있는 난주의 섬서교단이 집결지로 결정되었다.

흑령기의 야율, 홍령기의 선우요화, 몸을 추스린 녹령기의 야율도 섬서교단으로 출발했다.

외진각도 부각주인 효지림과 쌍관의 지휘 아래 섬서교단을 향했다.


교주를 대신해 삼혼 중 둘이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 결정을 유도한 사내 외에는 말이다.


그 사내는 이미 그 곳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일월교의 가장 강한 고수들이 모여 드는 곳. 강하면 강할수록 풍요로운 만잔의 장소가 될 곳.

일월교 섬서교단으로.


*

로운은 자신의 몸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왜 갑자기 내공이 안정되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심지어 상태가 좋아졌다는 걸 깨닫지도 못했다.


취소연이 쓰러지는 걸 보고 그냥 튀어나왔을 뿐.

그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교주만 보였다.

취소연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개 씨 바 랄 놈’ 교주만.


로운은 그럴 때가 가장 강하다.

아무 생각도 없을 때. 누굴 상대할 것이며 어떻게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 따위 하지 않을 때,

그냥 단순히 눈앞의 상대를 향해 돌진할 때.


그 시작 지점은 분노이거나 슬픔이거나 다 다르지만 일단 눈 앞의 상대를 목표로 삼고나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다,

세상에 오직 자신과 상대만 존재하는 것처럼.


설파혼을 두고 그랬고 도제룡과 싸울 때 그랬으며 검무룡과 대전 때 그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다시 그의 눈앞에는 교주 뿐이었다.


- 슈아아악----


단봉이 대기를 찢는 소리와


“쓰 바 스 캬-----!”


근본 모를 쌍욕을 동시에 뿜으며 로운이 교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 슈아아악----


일월신주도 공기를 찢어내고


“일월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을 외치며 교주도 로운을 향해 쏘아 나갔다.


“꽈릉----!”


일월신주와 단봉이 부딪히자 섬광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마치 폭풍우 속 벼락처럼 검은 하늘에 거미줄 같은 빛줄기가 사방으로 산개했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교주의 극음지기를 극복해 낸 로운의 기세가 교주를 눌렀어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장봉과 단봉의 충돌은 어느 한 쪽도 밀려나지 않았다.


교주도 마지막 패가 있었다.

그것을 꺼낸 것이다.


일광개천과 월광세천에 이어지는 세 번 째 초식을.


일광과 월광으로 철검자의 심장을 뚫어냈기에 아직 세상에 드러낸 적이 없던 마지막 초식.


- 우우우우우웅-----


일월신주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색도, 은백광도 아닌 신주 원래의 색, 묵광으로 변해 있었다.

신주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빛은 세상의 모든 빛을 삼켜버리는 지옥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묵광멸천(墨光滅天)


*

그것은 교주 자신의 무공이 아니었다.

전대의 비급을 만독하고 스스로 창안한 무공이 아니었다.


신의 사자가 나타나 일월신주를 보여주었고, 일월신주가 곧 자신이라면서 교주한테 하사하였다.


일월신주를 받아 든 교주가 일광개천과 월광세천을 펼쳐보았다.

두 초식을 펼치면 그 어떤 명검과 보도도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버렸는데 일월신주는 달랐다.

일광개천과 월솽세천을 모두 펼친 것은 물론이고 그 위력마저 훨씬 강력해졌다.


두 개의 초식을 처음으로 완벽히 펼쳐낸 교주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데 갑자기 일월신주가 묵광을 빛내며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주는 신주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겼다.

상상하지 못한 무공, 일월신주가 봉이지만 검법도 도법도 이르지 못할 그런 무공이 교주의 손에서, 일월신주에 의해 펼쳐진 것이다.


그것이 묵광멸천이었다.


신의 사자는 교주를 보고 만족스럽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때 교주는 기쁨과 같은 크기의 공포를 느꼈다.


일광개천과 월광세천은 교주의 내공을 일월신주에 실어 펼치는 것, 아니 모든 무공이 다 시전자의 내공을 병기에 싣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묵광멸천은 그렇지 않았다.


일월신주에서 교주의 몸속으로 알 수 없는 힘이 흘러들어왔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그리고 그 힘이 묵광멸천이 되었다.


신의 힘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교주로서 기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공포스러웠다.

신의 힘이라기엔 너무나 무겁고, 두렵고, 또한 음한한 기운이었기에.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지옥의 묵광처럼...

낙장불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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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묵광멸천(墨光滅天) +2 23.08.02 40 2 10쪽
66 <66> 이게 죽음인가, 생각보다 편안해..... +4 23.07.31 44 3 10쪽
65 <65> 희망은 평행우주 저 편의 진파란. +3 23.07.26 41 2 10쪽
64 <64> 일광개천(日光蓋天) 대 일광개천(日光蓋天) +2 23.07.25 38 2 10쪽
63 <63> 천 개의 봉우리가 몸을 떨다 +5 23.07.24 43 3 10쪽
62 <62> 교주와 검무룡, 율리납과 율리혁 +6 23.07.21 41 2 10쪽
61 <61>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 +4 23.07.20 44 2 9쪽
60 <60>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하루만큼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2 23.07.19 46 2 9쪽
59 <59> 불령산 소격동의 마지막. +3 23.07.18 48 2 9쪽
58 <58> 소격동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내 +2 23.07.14 66 2 10쪽
57 <57> 마음으로 죽이는 것, 실제로 죽이는 것. +2 23.07.13 60 2 10쪽
56 <56> 죽고 죽이고, 또 죽이고 죽는 +1 23.07.12 68 2 11쪽
55 <55> 그 영화의 그 대사 '좋아해요', '나도 알아' +5 23.07.11 55 2 9쪽
54 <54> 로운이 취소연의 양 빰을 후려치고 +1 23.07.10 60 2 10쪽
53 <53> 사흘에 한 번, 악령의 식사를 하는 자 +1 23.07.07 67 2 9쪽
52 <52> 고맙다...... 라는 말 +3 23.07.06 67 2 9쪽
51 <51> 원한과 복수의 고리를 끊는 일 +2 23.07.05 68 2 10쪽
50 <50> 세상에는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2 23.07.03 59 2 10쪽
49 <49> 그녀의 낙장불입은 입맛이 쓰네 +3 23.06.30 67 2 9쪽
48 <48> 새꺄! 나 왼손잡이야. +3 23.06.29 72 2 9쪽
47 <47> 나한테 코피 내면 너는 피똥 싸는 거다. +2 23.06.28 70 2 10쪽
46 <46> 유유곡의 결전 +4 23.06.27 74 2 9쪽
45 <45> 임독양맥. 생사현관. 환골탈태. +4 23.06.26 75 2 9쪽
44 <44> 진심을 다해 죽음을 입에 담는 이 +2 23.06.23 69 2 9쪽
43 <43> 열빙지(熱氷池)에서 사흘 낮 밤을. +5 23.06.22 70 3 10쪽
42 <42> 죽어도 죽지 않는 자의 오로지 죽기 위해 사는 운명을... +3 23.06.21 67 3 9쪽
41 <41> 백발의 나체 노인, 생의선. +2 23.06.20 69 3 10쪽
40 <40> 멀고 아득하고 그윽한 곳, 유유곡(幽幽谷) +3 23.06.19 65 3 10쪽
39 <39> 소연아, 치킨 좋아하니? +5 23.06.16 8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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