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어때서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최근연재일 :
2023.07.19 16:35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250
추천수 :
33
글자수 :
321,904

작성
23.06.07 17:15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29. 레벤토 아르카디아

DUMMY

케이크를 먹고 나서, 나는 한 없이 진지해졌다.

이세계에서 잘 지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다.

음식이 왜 맛이 없는지,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세계에 와서 먹었던 음식들을 진지하게 돌이켜 본다.

퍼석퍼석하고, 최소한의 간만 한 듯 맹맹한 빵.

굽기만 해도 맛있는 소고기, 돼지고기의 질긴 식감.

육수도 아닌 맹물에 소금으로 간하고,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였을 스튜의 맛.

그리고.

오이와 닭가슴살, 새우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삼선(?)조합의 케이크까지.


뭐가 부족했지?

일단 맛이 너무 단조로웠다. 매운맛, 신맛, 쓴맛 이런 게 없고 대부분 짠맛이다.

단맛과 감칠맛이 없다.

향신료도 적은 거 같다. 한국인은 채소라고 굳게 믿는 마늘이나 대파, 양파가 들어간 음식도 없었던 것 같다.

결국, 향신료와 조미료 문제인가.

감칠맛 하면 ‘소고기다시다’ 와 ‘미원’ 이지만, 이 세계에서 그런 공산품을 구할 수는 없거고... 일단 당장 백화점에 와있으니 설탕만이라도 사가지고 가자.

향신료가 될 식자재는 나중에 요리를 해 먹게 될 때 사면 된다.


“르네트. 나 설탕이 필요한데.”


“설탕이요? 그게 뭐예요?”


“헉. 설탕 몰라? 그럼 꿀! 단맛이 나는 조미료 같은 게 없어?”


“아아~ 단맛이요? 꿀? 당연히 있죠!”


제국에 설탕은 없구나. 순간 놀라고 말았다.

하긴, 내가 살던 세계에서도 설탕이 저렴해진 건 사탕무의 즙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1800년대쯤부터니까. 없을 수도 있다.


꿀이 필요하다고 하니, 르네트가 식재료를 파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르네트가 꿀을 주문하는 사이에 여기저기 둘러본다.

다른 조미료는 없나?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간장, 고추장, 된장은 사고 싶은데... 있을 리가 없겠지?

역시. 각종 장류는 없다.

다만, 신기했던 게 채소나 고기, 생선 등. 음식 재료와 무관하게 대부분 제품이 유리병에 담겨 있다. 병뚜껑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전부 같은 마법진. 유심히 마법진을 보고 있자니 무슨 기능이 있을 거 같다.

그사이에 르네트가 내가 원하던 것들을 사서 보여준다.


“언니, 샀어요. 이건 꿀. 이건 당밀!”


밝은 미색과 진한 갈색의 끈적이는 액체가 담긴 유리병.

당밀이 뭐지? 조청이나 물엿, 올리고당 그런 건가? 돌아가서 먹어보면 알 수 있겠지.


“르네트, 이 병 위에 마법진은 뭐야?”


“아아~ 내용물이 안 썩게 만드는 마법이에요. 전설적인 대마법사 ‘그랑 마지쿠스’ 님이 개발한 마법이지요.

이 마법 덕분에 왕국이 제국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국을 풍요롭게 만든 마법이에요. 상하고 썩어버리는 식재료를 엄청 절약할 수 있게 돼서, 가뭄과 기근이 와도 큰 어려움 없이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줬답니다.”


‘우와! 그런게 있어?’


설명을 듣고 나니 조금 전까지 평범해 보이던 유리병 자체가 엄청 비싸 보인다.

이것도 대한민국에 가져갈 수 있다면 꽤 비싸게 팔 수 있지 않을까? 메모라이즈 마법도 그렇고 대한민국에서 팔릴 만한 것들이 자꾸 보인다.

여기서 물건을 가져다가 장사를 하면 어떨까? 대한민국에 이런 유리병이 있다면, 안 사는 주부가 있을까? 담는 것만으로도 음식을 안 상하게 만드는데?

돈방석 확정이다. 탐난다.

어쨌든. 꿀과 당밀이 생겼으니, 음식이 조금 더 먹을 만 해지겠지?


가봉된 옷이 나올 때가 되었기에 르네트와 함께 백화점 신관 2층에 있는 아비가엘의 가게로 돌아간다.

마네킹 대신 모델을 하던 사람들은 중간에 교대했는지 사람과 옷이 바뀌어 있다.

저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르네트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목적지로 향한다.


“아비가엘 저 왔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여기로 오세요”


아비가엘이 우리가 들어온 것을 보고, 가봉 된 옷을 가져온다.

새하얀 천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원피스와 투피스, 그리고 재킷.

나도 모르는 사이 드레스와 일상복을 동시에 맞춰입게 주문했나 보다.


“이쪽으로 오셔서 한번 입어보실까요?”


안쪽으로 들어가 가봉된 옷을 입어본다.

아비가엘이 허리를 숙여봐라, 옆으로 숙여보라 하며 다듬을 곳에 옷핀을 꽂는다.


“불편한 곳, 들뜬 곳은 없나요?”


“네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드레스 가슴이 너무 깊게 파인 거 아닌가요?”


... 가슴 윗부분을 드러내는 디자인은 처음이라서 민망하다.


“호호호. 아직 최종 디자인은 결정 안 하셨잖아요. 디자인 따라서 바뀔거에요.”


“언니 절 믿어봐요. 제국 최고의 상업 가문, 에스키아 장녀의 패션 감각을 보여줄 테니. 호호호. 아비가엘. 동대륙 사람들에게 제국의 패션이란 게 뭔지 제대로 보여 보자구요!”


르네트와 아비가엘이 제국의 패션을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다진다.

옷장에 걸려 있는 디자인 샘플을 꺼내서, 내 몸에 대보며 디자인을 고르고, 원단을 고심한다.

카라를 바꿔달라, 장식을 더해달라, 빼달라 추가로 필요한 디테일을 요청한다.

복장에 어울릴 법한 모자와 가발 등도 추가로 주문한다.

내 생각에는 너무 화려한 옷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이번에는 제국 사람들이 흔히 입는 옷으로 맞추기로 했으니 가만히 있는다.


사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평소 입던 스타일로 맞추고 싶었는데, 르네트가 눈에 너무 띌거라며 극구 말렸다.

입어보고 마음에 안 들거나 불편하면, 다음번에는 내가 원하는 옷으로 주문 제작 해야지!


르네트가 주문한 내 옷은 10벌은 족히 된거 같다.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아비가엘도 한마디 남긴다.


“르네트님. 분량이 많아서 제작에 시간이 좀 걸리겠는걸요.”


“아비가엘. 일단 급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두세 벌만이라도 먼저 완성해서 보내주세요.”


“그럴까요? 그럼 두벌만 서둘러서 작업해서 황궁으로 보내드릴게요.”


“고마워요. 아비가엘.”


“뭘요.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우. 드디어 끝났다.

오전에 나왔는데 이미 해가 지고 있다.

백화점 앞에 대기하던 마지쿠스 가문의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돌아간다.


* * *

#황궁. 황제의 집무실.


그란츠 공작의 안내에 따라서 함께 황제의 집무실앞에 도착한다.

그란츠 공작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이자, 근위병이 문을 열어준다.


오후의 햇살이 듬뿍 들어오는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

황제가 문 열리는 소리에 우리를 보더니, 집무실 책상에서 일어나 반긴다.


“오~ 용사 장예서. 드디어 만나는군. 반갑소. 레벤토 아르카디아요.”


“안녕하세요. 장예서입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란츠 공작이 신신당부한 대로 제국의 예법에 따라서 황제에게 인사를 한다.


“어이쿠. 제국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예를 표해주다니. 고맙구려.”


“별말씀을요.”


황제는 예상보다 훨씬 젊었고. 잘생겼다.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 초반 아닐까.

푸른 눈동자에 은백색에 어깨까지 닿는 생머리.

여성스러운 헤어스타일만 보면 느끼할거 같은데 선이 얇은 체격이라 그런지, 얼굴이 미소년 분위기라서 그런지 어울린다.

묘하게 퇴폐미도 있는거 같고.

우리 세계에서 유명 영화배우를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다.


“마도국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 서둘러 용사 소환을 할 수밖에 없었소. 용사여 부디 마왕의 마수에서 제국을 구원해 주시오.”


이미 그란츠 공작과 여러 번에 걸쳐 만나면서 입장 차이를 조율한 상태였다.

오늘 황제와의 만남은 예의상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만나는 것에 가까웠다.

지금 하는 이 말도, ‘부탁은 황제가 직접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라는 내 말에 대한 대답이다.

황제가 용사를 소환만 해놓고 일절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한마디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왕에 대해 알려주실 건 없나요? 용사라고 불러놓고 아무것도 안 알려주시는 건 조금 그런데요.”


옆에 있는 그란츠 공작이 움찔한다.

무시했다.


“하하하. 과연. 그란츠 공작이 장예서 용사님이 어렵다고 한 게 이런 거였군!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이야. 하하하.”


황제가 호탕하게 웃는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구석에 있던 동양인 둘도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저들이 동대륙의 사람인가보다. 한명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네?


“마왕의 이름은 플라시드. 구체적으로 아는 건 별로 없네.

우리가 아는 것은 마도국에 새로운 마왕이 탄생했다는 걸 안 지 5년 정도 됐고, 그 사이에 마왕이 안 바뀌었다는 것. 그게 다네.

하지만.

마왕을 선출하는 과정을 알고 있어서 역으로 어떤 자인지 유추해 볼 수는 있지.

마족들은 강한 자들을 우두머리로 숭배한다고 하네. 그들의 말을 그대로 하자면 이를 ‘강자 존’이라고 하던데 쉽게 말하면 ‘니가 강해져서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진 놈이 말이 많아’ 같더군.

싸워서 패배하면 부하가 되고, 마왕에게는 마족의 강자들이 1년에 한 번씩 도전하는 게 허락된다고 해. 즉 지난 시간 동안 마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상당한 강자라는 뜻이지. 어떻게 도움이 되는 정보인가?”


“네. 물어보기 전까지는 안 알려주실 거 같아서 여쭤봤어요.”


“하하하. 마왕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해봤자, 용사에게는 부담만 커지니 어쩔수 없었소.

민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족은 명예를 굉장히 중시한다고 하오. 승리만을 위해 기습이나 독으로 암살하는 건 단순 살인이라고,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하지.

하지만, 가족의 원수나 비겁한 자는 가차 없이 암살해.

즉, 지금의 마왕은 1:1로는 마족 안에서 적수가 없고, 원수나 비겁자로는 여겨지지 않는 덕망 있는 강자라는 뜻이네. 아니면 암살시도는 매번 실패할 정도로 악마 같은 강자일 수도 있고.”


“... 그렇군요. 마왕이 엄청나게 강하다고 하니 부담되네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래서 굳이 마왕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제국도 용사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네. 용사라면 마왕에게서 이길 수 있을 테니. 하하하. 제국을 부탁하겠네.”


“네.”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동대륙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

황제가 내 시선을 따라가다가 그들을 본다.


“아~ 이쪽도 소개하는 게 좋겠지. 요즘 우리 제국은 바다 너머 동대륙과 교류 중일세. 이들은 경전철 제작을 도와주기 위해서 동대륙에서 온 학자들.”


“안녕하세요. 알란 마지프입니다. 설계 기술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보조 기술자인 셀렉 트레인이라고 합니다.”


어? 그런데 굳이 왜 이들을 대동하고 나를 만났지? 생각하기 무섭게 황제가 말한다.


“동대륙에서는 우리에게 전철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주는 대신에, 우리는 마법과 검술을 전수해주기로 했지. 마침 장예서 용사가 마법과 검을 배운다고 하니, 여기 있는 셀렉을 함께 배우게 하려고 하오.

그가 함께 훈련하면서 훈련 상황을 매일 밤 통신 마도구로 보고해주기로 했소.”


응? 나랑 상의도 하지 않고, 같이 배울 거라고?

심지어 진도를 감시할 거라고? 뭐 상관은 없긴 하다.

이후로 황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고, 황제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오면서, 만남은 끝나고 말았다.


“아무튼, 용사 장예서. 만나서 반가웠소. 조심히 가시게나.”


“네. 폐하.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왕이 어때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29. 레벤토 아르카디아 23.06.07 19 0 12쪽
29 28. 제국백화점2 23.06.06 17 0 12쪽
28 27. 제국 백화점 +1 23.06.05 22 0 12쪽
27 26. 제국구경 23.06.04 21 0 11쪽
26 25. 용사 안 할건데요? 23.06.03 18 0 13쪽
25 24. 용사 제국 적응기2 23.06.02 17 0 11쪽
24 23. 용사 제국 적응기1 23.06.01 16 0 11쪽
23 22. 용사 장예서 23.05.31 16 0 12쪽
22 21. 2장. 제국 용사 소환 +2 23.05.30 16 0 12쪽
21 20. 귀향 +1 23.05.29 22 2 14쪽
20 19. 마왕 로드워터2 +2 23.05.28 23 1 12쪽
19 18. 마왕 로드워터1 23.05.27 20 1 12쪽
18 17. 마왕성 습격 23.05.26 22 0 12쪽
17 16_ 흔들릴 때가 아니야 +2 23.05.25 25 3 15쪽
16 15_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1 23.05.24 31 0 12쪽
15 14_ 마왕성으로2 23.05.23 30 2 17쪽
14 13_ 마왕성으로1 23.05.22 24 2 16쪽
13 12_ 무시엘 공선전3 23.05.21 23 2 15쪽
12 11_ 무시엘 공성전2 23.05.20 27 2 15쪽
11 10_ 무시엘 공성전1 +2 23.05.19 31 1 17쪽
10 9_ 용사 출정 +2 23.05.18 29 2 15쪽
9 8_ 왕도 외출 23.05.17 29 1 14쪽
8 7_ 용사 준비 완료 23.05.16 31 2 16쪽
7 6_ 용사의 특별함 23.05.15 30 2 24쪽
6 5_ 용사훈련 23.05.14 32 1 24쪽
5 4_ 궁금증 해결 23.05.13 36 1 16쪽
4 3_ 용사 테스트 23.05.12 36 1 15쪽
3 2_ 용사 한정우 +2 23.05.11 42 1 22쪽
2 1부 1_ 왕국 용사 소환 +3 23.05.10 79 2 13쪽
1 0_ 프롤로그 +2 23.05.10 138 4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