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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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곰샤
작품등록일 :
2023.05.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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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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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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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2_ 용사 한정우

DUMMY

내 이름은 한정우.

대한민국 국민으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고, 복학해서 대학교 3학년이었다.

이 세계로 오던 날.

그날을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우리 집.

내 방에서 대학교 과제를 하고 있었다.

새벽 한 시까지 기계 설계 과제를 하다가, 졸음이 쏟아져 오길래 ‘나머지는 내일 하자’ 하고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나는 처음 보는 천막 안에서 눈을 떴다.

누워있는 나를 바라보는 십여 명의 사람들. 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한 서양인들이었다.

나를 중앙에 두고 둘러앉아, 처음 듣는 언어로 자기들끼리 대화하더니, 그들 중 누군가 내가 눈 뜬 것을 보고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내가 알고 있는 언어는 절대 아니다.


‘뭐야 이거... 이게 무슨 개꿈이야...’


나는 내가 개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이 말을 걸어오기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 처음 보는 금발의 외국인들이 나를 한 가운데 두고 뭔가를 상의하고 있는거 같은데 현실 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

심지어 들려오는 말도, 영어도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아닌 전혀 새로운 언어.

차라리 외계인들이 나를 두고 상의하고 있으면 흥미롭기라도 할 텐데, 딱 봐도 개꿈이다.


게다가 뭔가 멍해서, 집중이 안 되는 상태였다.

안락의자 마냥 흔들흔들 거리는 침대.

바람이 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천막.

나는 밀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며, ‘뭔지 모르겠지만, 되게 실감 나는 꿈이네?’라고 생각하며 다시 잤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마차 바닥에 누워있지 싶다.


*


자고 일어났더니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세월의 흐름이 물씬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방이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촛대, 촛불이 밝혀져 있다.

진짜 기름을 태우는. 흔들리는 불꽃으로 실내를 은은히 밝힌 방.


'여기는 어디지?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인데? 이거 혹시 꿈인가? 자각몽?'


짝. 짝.

뺨을 연달아 때렸는데도 아프기만 하고 꿈에서 깨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촛불이 켜져 있다.

형광등도 LED 등도 아니고 촛불이.

이질적인 시대상을 깨닫고 제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하물며 우리 집, 내방은 절대 아니다.


‘지금 이것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방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어둑해진 하늘을 밝히는 이 세계의 달을 보았다.

그제야, 내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구에서 말하는 슈퍼문 현상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 달이 거대 거대했으니까.

생김새도 다르고, 크기도 너무 큰 달을 보고서야 여기가 지구가 아님을 알았다.


‘아... 나 이세계에 온 거구나... 여기는 다른 세계 였던거야.’


*


내가 본 웹툰이나 웹 소설에서는, 이세계로 가면 신이던, 여신이던 주인공 앞에 나와서 일단 언어 문제는 해결해주던데...

내 이세계 생활의 시작은 언어를 배우는 것부터였다.


다행히, 이쪽 사람들도 내가 의사소통이 안 될 것을 걱정하고 미리 대비했는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 생활을 도와줄 사람을 2교대로 붙여줬다.

그들이 내 적응을 도와줬는데, 나중에 의사소통이 된 다음 알아듣기로는 내가 머물고 있는 여기 ‘마지쿠스 가문 별장’의 행정과 시설을 관리하는 직원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보통 행정관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총 3명의 행정관이 교대근무를 하면서 내 옆에 착 붙어 있었다.

옆에서 계속 말을 걸고, 보이는 모든 물건의 명칭을 알려준다고 노력한다.

상수도 물을 트는 법, 변기 사용법, 초의 불을 켜고 끄는 법. 시계를 보는 방법 등.

정말 상식 중의 상식까지 이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신기하게도 이쪽 언어만 주구장창 듣고 있으니 귀가 트였다.

한 2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자고 일어났는데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루빅스 큐브 같은 퍼즐이 ‘다다다닥’ 거리며 맞춰지는 듯한 느낌.

이제부터는 내 의사를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 생활을 도와주던 행정관에게 말했다.


“나 배운다 말. 너 가르쳐 말. 도와줘서 고마워.”


“오. 이제 의사 표현이 되시는군요. 용사님.”


행정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가에 내놓은 꼬마를 보고 대견해 하는 듯한 표정.

스물세 살인데 얘 취급은 느낌이 이상했지만...

뭐. 나쁘지는 않았다. ㅎㅎㅎ 나도 뿌듯했으니까.


손짓과 발짓도 섞어가면서 제대로 된 내 의사를 표현하겠다고 노력했고,

이세계의 언어를 배우겠다고 노력한 지 한 달이 되니,

내가 하고 싶은 의사 표현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게 됐다.

한달 만에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니.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


언어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내가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배경을 배웠다.

일어나서 씻고 나면, 행정관과 함께 책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글씨와 역사를 배운다.

거의 매일 매일이 고3 수험생 생활 수준이다.

한 달 내내 역사와 배경 지식을 배우며 질의응답을 하다 보니 언어 실력도 확 늘었다.


“그러면 이미 전쟁이 벌어진 지 2년 가까이 된 거네?”


“네, 소규모 분쟁도 전쟁으로 본다면 30년째. 전면전은 2년 정도 됐습니다.”


행정관에게 듣고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먼저, 이곳은 ‘지구’가 아닌 ‘테라’라는 곳의 ‘아르카디아 왕국’.

전신이었던 ‘홀랜드 왕국’ 이 멸망하자, 분열된 세력을 ‘아르카디아 공국’이 병합해 왕국이 되었다고 한다.

왕국의 남쪽에는 ‘마족’이 사는 ‘마왕국’이 있는데,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니, 왕국의 건국 아래로 마왕국과의 불화가 끊이지를 않는다고 한다.


왕국이 건국된 지난 30년 동안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화 협정을 맺고 뒤돌면 싸움이 났고, 합의를 해도 또 국경에서 소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분쟁이 끊이질 않자, ‘아르카디아 왕국’ 의 수뇌부는 ‘마왕국’과 국경의 방비를 공고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병력을 증강해 전면전만큼은 포기하게 할 심산이었다.


‘우리와 전쟁을 했다가는 너희도 멀쩡하진 못 할 것이다’


잦은 징병으로 국민들의 불만을 샀지만, 목표했던 5만 병력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

왕국의 수뇌부는 줄어드는 분쟁에 계획대로 되었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약 2년 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족들은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아르카디아 왕국 국경 전역에 걸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동시에 침공이 시작됐다.

모두가 잠든 새벽 3시였다.


국경 방비에 가장 중요한 요새 도시 ‘센타나’ 에만 마왕군이 4만 병력이 공격했다고 한다.

마왕국과의 국경에서 가장 중요한 방어 요새였건만, 당시 센타나의 방어 병력은 8천 명.

총 10만의 마족 군대는 왕국의 1차 방어선에 있는 모든 요새를 단 하루 만에 무너트린다.


마왕군의 침공을 예상 못 하고 있던 왕국은 제대로 된 방어 한번 못해보고,

센티나를 비롯한 제1차 방어 전선을 빼앗기고 만다.

‘조슈아 나이트’ 장군이 부랴부랴 전선을 수습하고,

2차 방어선을 구축 후 피해 상황을 파악한다.

왕국의 5만 병력은 2만으로 축소되고 만다. 무려 3만의 군인들이 죽거나 탈영했다.


10만대 2만.

마왕군과의 병력 차이는 어느덧 5배까지 벌어지고 1차 방어선은 무너진 상황.

이대로 망국이 될 수 없던 아르카디아의 왕실에서는 홀랜드 왕국에서 부 터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용사소환마법을 펼쳤다.

수백 명의 마법사를 동원해 대량의 마력으로 치러진, 대규모 마법 의식.

그렇게 소환된 게 바로 나.

용사 한정우다.


*


용사의 소환의식에 참여한 왕국의 고위 귀족들은, 용사가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있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10대, 20대, 30대, 남성이냐 여성이냐로 구분해서,

나이와 성별이 비슷한 자식이 있는 집에서 용사의 적응과 훈련을 하기로 한다.


20대 남성인 나는 내 또래의 젊은 막내아들이 있는 ‘마지쿠스’ 가문으로 오게 된다.


마지쿠스 가문은 대대로 아르카디아 왕국의 ‘마법명문가’

내 친구 ‘그랑 마지쿠스’ 의 할아버지는 아일레로 마법 아카데미의 총장이고,

아버지는 왕실마법군단의 군단장이자 왕세자의 마법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랑의 두 형들도 왕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마법사들.


이것만 해도 엄청 대단한 집안인 게 느껴지는데,

내 친구이자, 마지쿠스 가문의 셋째 아들인 ‘그랑 마지쿠스’ 는

왕국 역사에 손꼽히는 마법의 천재였다.


마법 아카데미 학생으로 신입학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공인 8서클 마법사가 되는 쾌거를 이룩,

아카데미 재학 중에 ‘명예 교수’로 임용된 전무후무한 천재였다.

그때부터 그랑은 ‘천재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런 천재 마법사가 내 친구가 될 예정이라니.

행정관에게 조만간 만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나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 만남.

그랑과의 첫 만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왕국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며 고 3 수험생처럼 지내던 어느날.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왔다.


내가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돌려보니, 눈앞에 외간 남자의 손등이 보인다.

뭐야. 이게 뭔 상황이래...

당황한 내가 침대에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백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소년이 내게 손등을 내밀고 있었다.


‘뭐야 이 미친놈은?’


“음. 저기. 안녕하세요?”


“나는 네 적응을 도와줄 마지쿠스 가문의 삼남. ‘그랑’이라고 한다. 앞으로 내가 네 마법 선생님이 되어 마법을 가르칠 것이다.”


뭐야, 이 예의 밥 말아 먹은 건방진 새끼는··· ?

누군지는 몰라도, 느낌에 저자세로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기세를 잡아야 한다.

일부러 기분 나쁘다는 듯 물었다.


“그랑 마지쿠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몇 살이십니까?”


“스물하나.”


“나는 스물셋. 내가 형이네. 그런데 너 왜 나한테 반말하냐?”


“... 우리 집은 공작 가문이다. 신분 사회에서는 당연히...”


“왜 반말이냐고. 내가 네 친구냐?”


“...”


“야! 왜 반말이냐고. 대답 안 해? 사람 무시하는 거야?”


기세를 잡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K 예절 주입.

내가 쎄게 나가자 그랑이 눈에 띄게 당황한다.

따끔하지? 응~ 그럴거야.

그랑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난다.


“아니... 어. 일단 저는 용사님을 무시할 생각은 없기는 한데... 그래도 앞으로 내가 마법 선생님인데, 스승으로서의 존중은 받아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용사가 나를 스승으로 모셔야지. 안 그렇소?”


말이 오르락내리락하니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유심히 얼굴을 볼수록 선생님 소리가 안 나올 거 같다.

친구먹자.


“야! 됐고! 너! 연장자한테 반말하면 돼, 안돼?”


“안되... 니다.”


“그래~ 존댓말을 써야지. 그랑 마지쿠스?

알고 있겠지만 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너희들에게 의해 갑자기 소환당해서 이곳에 왔고,

마왕을 물리쳐 달라는 너희의 요청에 따라서 여기에 머물고 있어.

지금은 이 세상의 역사와 언어를 배우고 있고, 이제부터는 마법도 배워야 해.”


그랑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듣는다.


“그런데 말야. 내가 왜 너희가 하자는 대로 해야 되냐? 말해봐.”


“용사로서 소환당해서 왔으니 그 책무를 다해야...”


“내가 왕국에 무슨 신세를 졌다고 책임이 있어?

일방적으로 용사가 되어달라고 불러 놓고 책임을 지라고?

무슨 책임? 내가 용사 시켜달라고 했어?”


“...”


“내 말이 틀렸어? 봐봐.

너희는 전쟁에서 지고 있으니, 용사 소환을 했어. 왜? 도와달라고.

그렇다면.

용사한테 ‘마법 가르쳐 줄 테니, 앞으로 나를 선생님으로 깍듯이 모셔라’ 하는 게 맞아,

‘제발 저희 좀 도와주세요. 마법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는 게 맞아?

하나만 해 하나만. 뭐? 내가 틀린 말 하는 거 같아?”


“아닙니다···”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너희를 도와주고 있을 뿐이야.

너는 도와주러 온 사람한테 더 잘하라고 할거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야 할 거 아냐.

내가 너희를 도와주려고 노력하잖아. 언어도 배우고 역사도 배우고, 열심히 하네.

그래서. 다시 말해봐. 뭐 하자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저한테 마법을 배우시면 됩니다. 저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제의 예를...”


“음. 그러면 친구로 지내면 되겠네. 나는 한정우라고 한다. 친하게 지내자.”


“네?”


“마법 알려 준다며? 니가 나한테 친구로서 마법을 알려주면 되잖아.”


“그래도 제가 엄연히 마법 선생님인데, 사제의 예를...”


콱 씨!

말귀를 못 알아 먹네. 정리를 해줘야겠다.


“야. 딱 정해. 친구로서 나한테 마법 가르쳐 줄래? 너 말고 다른 마법 선생님 모셔올래?

나는 나보다 어린 동생, 선생님으로 모실 생각 없으니까. 너는 그냥 가고 다른 사람 불러와.”


그랑이 당황해서 어버버 거린다.

보아하니 선생님 대우받으려고 머리 쓴 거 같은데. 망했지.

어디 육군 병장 만기 전역자를 무시하다니.

그건 곤란하지.

내가 이때까지 반말 튼 아저씨가 몇 명인데.

그랑 마지쿠스가 우물쭈물하며 그대로서 있는다.


“왜? 뭐? 어쩌라고? 나 마왕 안 물리쳐도 돼? 그럼 나 말고 다른 용사 부르던가.”


“어... 용사 한정우 님. 제 친구가 되어주세요.”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내 이름은 한정우야.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렇게 악수를 나누며 그랑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둘도 없는 친구가.


나는 모든 친구들이 대한민국에 있다 보니, 물리적으로 친구가 없어서.

그랑은 왕따라서 진짜로 친구가 없어서.

하나뿐인 친구였다.


*


그 이후로 나는 그랑을 진짜 내 친구들처럼 대했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눈을 가려서 글 쓰는 걸 망치게 한다든가,

화장실 밖에서 못 나오게 막고 버틴다던가.

앞서 걸어가는 그랑의 뒤를 쫓아가 등 뒤에 매달리며 식당까지 매달려 가기도 한다.


“친구야! 가자! 식당까지. 이랴!”


“아 미친! 내려와 무겁다 고오~!”


이세계에 와서 언어를 배우겠다고 고3 수험생처럼 살다 보니, 나도 외롭긴 했나 보다.

이렇게나마 친구가 생기니까 확실히 덜 외로웠다.


그랑은 처음에는 이런 장난에 적응 못 하고서 정색하더니만,

어느 순간 부터 당한 만큼 똑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워터볼. ㅋㅋㅋ 정우야. 잠 좀 깨자. 응?”


그랑이 춘곤증에 꾸벅꾸벅 거리는 내 얼굴에 물풍선(?)을 던지기도 하고,

마법 졸라 못한다며 시비를 걸기도 한다.


“야! 실드 마법이 그렇게 작아서 뭐가 막아지겠냐? 똑바로 따라하라고. ”


“와. 미친놈이 자기가 잘못 가르쳐 놓고, 못한다고. 시비 터네?”


“아니 정우야. 니가 못하는 거 맞아. ㅋㅋㅋ”


깐족 깐족거리며 내게 들러붙는다.

그랑을 통해서 왕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많이 전해 듣는다.


“정우야. 전쟁 상황이 별로 안 좋나 봐. 귀족들 사이에서 자애의 여신교 본단이 있는 ‘아베드’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아베드? 거기도 꽤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며?”


“그치. 아마 조만간 수복하겠다고 작전 있을걸?”


“그렇군. 그랑. 너 정도 되는 대마법사면 전장에 나가서 도와주는 게 낫지 않냐? 너는 왜 후방에 있는거야?”


“아~ 왕국에는, 가문의 대가 끊기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 가문의 아들 중 한명은 후방에 배치하는 제도가 있어.

형들이 다른 영지에 있다가, 전장에 나가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수도에서 마법을 가르치던 내가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거야.”


“의외로 좋은 제도도 있네?”


그랑이 심심할 때면, 내 방으로도 자주 놀러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물어보기도 한다.


“아··· 아버지가 전쟁터에 가신지 3개월이 넘었는데, 전서구가 안 오네. 편지에 회신이 없어···”


“정우야. 우리 형이 곧 결혼한다는데, 결혼 선물로 뭐가 괜찮을까?”


“아~ 나도 영화 보고 싶다! 도대체 4DX 영화는 뭐고, 아이맥스, 5.1채널 돌비 애트모스가 무슨 느낌이냐고오!”


ㅋㅋㅋ 귀여운 녀석.

내 친동생이랑 동갑이라 그런지 몰라도 진짜 친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괜히 친구 먹었다. 형, 동생으로 지낼걸.

그랬으면 하는 짓이 더 귀여웠을 거 같은데.


*


“야! 한정우.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아 미안. 잡생각 하느라. ㅎㅎㅎ 뭐라고?”


“아버지께서 드디어 편지를 보내셨어. 조만간 너에게 검술을 알려줄 선생님이 올 거래. 스미트 가문의 아들 중 한명이 오나 봐.”


“스미트 가문? 기사로 유명한 가문이라고 했지? 음... 그랑. 그런데 나 그냥 마법만 배우면 안 되냐?”


“응? 왜?”


“나 정도면 마법에 소질 있는 거라며? 그냥 마법만 해도 되는 거 아냐?”


“소질이 있는 건 맞지! 마법아카데미 학생들이 졸업할 때 보통 4 서클, 5서클로 졸업하는데 너는 마법 배우기 시작해서 반년 만에 4 서클에 도달했으니. 엄청 재능 있어.”


“오~ 그래?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네. ㅎㅎㅎ 야 그랑. 너는 4 서클까지 얼마나 걸렸냐?”


“나? 나는 글쎄... 옛날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는 한 일 년쯤 걸렸던 거 같은데?”


“오. 나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렸네? 나도 천재인가? ㅋㅋㅋ 어때 왕국의 천재 마법사가 보기에는? 짐이 천재로 보이는가?”


“나보다 빠르면 천재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지~ 아! 정우야. 그런데 나는 그때 6살이었어.”


그랑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씩 웃는다. ㅋㅋㅋ 얄밉네.

처음에는 낯도 많이 가리고, 말장난도 못 하던 놈이 지금은 장난도 잘 치고 자기 자랑도 많이 한다.

어쩐지 웬일로 평범하게 칭찬하나 했다.


‘어휴~ 이 왕따 새끼. 잘생겨서 봐준다. ㅋㅋㅋ’


그나저나 검술이라...

굳이 마법 배우는 와중에 검술까지 배울 필요 있나?

괜히 ‘잡캐’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거 있지 않나.

게임 속 캐릭터 열심히 육성하고 기껏 키워 놨더니 스탯을 잘못 찍어서 뭐 하나 장점이라고는 없는 잡종 망캐가 되는 그런 경우.


내가 본 웹소설이나 웹툰에서는 ‘상태창’ 하고 외치면, 막 현재 능력치를 수치화해서 보여주고 그러던데...

그런 게 없으니 내가 어느 쪽으로 재능이 있는지, 뭘 배우는 게 유리한지. 감조차 안 온다.


검을 배우라고? 검을 배워야 한다라... 검술? 흐음...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검술을 배울 결심을 못 하고 있으니 그랑이 옆에서 한소리 한다.


“정우야. 너도 알다시피 마법사들은 주문을 영창 하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잖아.

그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기초 검술은 배워두는 편이 좋아.”


“아하~! 나 기초 검술 배우는 거야? 뭐야~ 그런 거라면 괜히 고민했네.

배우지 뭐. 그런데 기초 검술에 굳이 다른 선생님이 필요한가?

니가 가르쳐주면 되잖아?”


“하하하. 나는 검술은 꽝이야. 완전 몸치라고.”


“어? 그래? 너 검술 못해? 왕국 최고의 천재가?”


“푸하핫. 검만큼은 예외야...

나한테 검을 배워서는 검술아카데미 초급반 학생에게도 질걸?

아니, 어쩌면 지금의 너도 나보다 검술을 잘할지도 몰라. ㅎㅎㅎ 볼래?”


그랑이 품속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봉 같은, 완드를 꺼내 검처럼 휘두른다.

처음에는 그럴 듯해 보였는데, 유심히 보고 있자니 동작의 전환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엉성하기 그지없다.

그랑이 두어 번 더 휘두르다가 결국 완드를 놓치고 만다.

어깨를 으쓱하며 멋쩍게 웃는다.


“이거 봐. ㅎㅎㅎ.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검술은 기초 중의 기초라는 거지.

네가 살던 세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여기서는 마법을 못 쓰는 ‘검사’

몸치인 ‘마법사’를 제외하면, 모두가 마법과 검을 동시에 배워. 다들 마검사야.”


“흐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배워야겠네.

신기하네. 둘 다 배우는 게 기본이라니...

내가 살던 세계는 분업화가 잘되어 있어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전문 한 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배웠거든.”


“그래? 안전한 세상이었나 보군. 여기서는 검술, 마법 하나만 가지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보니 다양하게 배우는 수밖에 없어.”


“하긴. 내가 살던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나라기는 했지. 그래서 검술 선생님은 언제 오신데?”


“어디 보자... 아버지께서 편지를 보내주신 게 일주일 전이니, 진짜 조만간 오겠는데?”


그랑이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다시 펼쳐 읽으며 작성일을 확인하고 대답한다.

앞으로 검술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법 수업을 들을 기분이 안든다.

자체 땡땡이로 가야겠다.

마법 수업 시간이지만 그랑과의 첫 만남 때 이야기로 운을 떼면서 잡담을 시작했다.

검술 선생님도 그랑 너처럼 나보다 어린데 ‘스승의 예를 올리라고 하면 어쩌냐’ 하면서 한참을 웃고 떠들고 있는데, 마지쿠스 가문의 집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도련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스미트 가문의 레온 님이라고 하십니다!”


와! 한국의 속담은 틀린 게 없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어쩜 이렇게 딱 오냐.


집사가 뛰어왔던 길을 뒤따라서 커다란 덩치의 남성이 천천히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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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 제국백화점2 23.06.06 18 0 12쪽
28 27. 제국 백화점 +1 23.06.05 22 0 12쪽
27 26. 제국구경 23.06.04 21 0 11쪽
26 25. 용사 안 할건데요? 23.06.03 18 0 13쪽
25 24. 용사 제국 적응기2 23.06.02 18 0 11쪽
24 23. 용사 제국 적응기1 23.06.01 18 0 11쪽
23 22. 용사 장예서 23.05.31 16 0 12쪽
22 21. 2장. 제국 용사 소환 +2 23.05.30 18 0 12쪽
21 20. 귀향 +1 23.05.29 24 2 14쪽
20 19. 마왕 로드워터2 +2 23.05.28 24 1 12쪽
19 18. 마왕 로드워터1 23.05.27 22 1 12쪽
18 17. 마왕성 습격 23.05.26 22 0 12쪽
17 16_ 흔들릴 때가 아니야 +2 23.05.25 26 3 15쪽
16 15_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1 23.05.24 31 0 12쪽
15 14_ 마왕성으로2 23.05.23 30 2 17쪽
14 13_ 마왕성으로1 23.05.22 24 2 16쪽
13 12_ 무시엘 공선전3 23.05.21 24 2 15쪽
12 11_ 무시엘 공성전2 23.05.20 27 2 15쪽
11 10_ 무시엘 공성전1 +2 23.05.19 31 1 17쪽
10 9_ 용사 출정 +2 23.05.18 29 2 15쪽
9 8_ 왕도 외출 23.05.17 29 1 14쪽
8 7_ 용사 준비 완료 23.05.16 31 2 16쪽
7 6_ 용사의 특별함 23.05.15 30 2 24쪽
6 5_ 용사훈련 23.05.14 32 1 24쪽
5 4_ 궁금증 해결 23.05.13 36 1 16쪽
4 3_ 용사 테스트 23.05.12 36 1 15쪽
» 2_ 용사 한정우 +2 23.05.11 44 1 22쪽
2 1부 1_ 왕국 용사 소환 +3 23.05.10 80 2 13쪽
1 0_ 프롤로그 +2 23.05.10 140 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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