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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우(雪雨)
작품등록일 :
2015.06.29 11:01
최근연재일 :
2015.07.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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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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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다들 불금을 만끽하고 있는지, 번화가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계속해서 사람들과 부딪힐 정도로.

그곳을 서재일은 전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도중에 어깨를 강하게 부딪친 행인과 싸움이 날 뻔 했지만, 서재일은 그딴 거 알바 아니라 소리치고 급히 자리를 떴다.

"좀 받아라!"

벌써 열 번이 넘게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중 연락이 된 건 고작 한 통화. 그마저도 자기가 이따 걸겠다 말하고 금방 끊어졌다.

안내데스크 담당자는 두 사람의 목적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현재 서재일은 주변이 시끄러웠다는 힌트 하나만 갖고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죄송한데 잠깐 방 좀 확인할게요! 찾는 사람이 있어서!"

다섯 번째로 찾게 된 노래방. 서재일은 어리둥절해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사람이 있는 방을 전부 확인했다.

누나는 없었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룸 형식의 노래방이었다. 이곳에도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회사 근처가 아닌가?'

어쩌면 두 사람은 좀 더 멀리 나갔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자신이 발품 파는 걸로는 부족해진다.

'젠장! 하다못해 긴급이동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속도라도 빨라질 텐데!'

보스 및 네임드 몬스터의 전리품을 제외한 모든 차원의 관문 물건은 밖으로 가져나올 수 없다.

만약 그 중 하나라도 갔고 나올 수 있다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게 분명하다.

결국 서재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누나를 찾아야만 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아까 그 소리…… 시끄럽기는 했지만 노래 소리는 아니었어……. 그 소리, 그래…… 저 소리였어!'

서재일은 뒤를 돌아봤다.

저 멀리 커다란 모텔이 보였다. 2층부터 모텔인지, 1층에는 화장품 가게가, 그 옆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화장품 가게에서는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한 이벤트가, 편의점은 전광판에서 아이돌이 나와 뭔가를 전선하고 있었다.

아까 자신이 잠깐 들었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확신을 주는 게 있었다.

모텔 건물 안에서, 자신의 누나가 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

"누나!"

누나를 따라 편의점으로 들어간 서재일이 버럭 소리 질렀다.

깜짝 놀란 누나는 품에 안고 있던 물건을 와르르 떨어트렸다. 과자를 시작으로 라면과 음료수……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만약 그것만 있었다면 친구들과 놀러왔다는 의심스러운 변명에도 납득했을 거다.

하지만 떨어진 물건 중에, 남성용 피임기구가 보였다.

"재, 재일아……."

서재일을 바라보는 누나의 표정은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치다 걸린 아이의 것이었다.

"…… 왜 여기 있어? 오늘은 게임 안 해?"

"누나가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는데 게임이 손에 잡히겠어? 그보다 이거 뭐야? 누나가 이런 걸 왜 사?"

서재일은 남성용 피임기구를 주웠다.

"그게……."

"혹시 남자친구 생겼어? 그런 거라면 이해할게. 못 본 척 할 거야. 근데…… 아니지?"

서재일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그때였다.

"유라 씨, 왜 이렇게 늦습니까?"

딱 봐도 50대는 넘는 아저씨 한 명이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누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뭔가 비슷하게 생긴 서재일을 보고는 황망히 손을 거뒀다.

"흠. 누구시죠?"

"서유라 동생이다. 그보다 너지? 그 인사담당자라는 사람."

"재일아, 말버릇이 그게 뭐야!"

"조용해!"

서재일이 버럭 소리 질렀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하다.

"누나가 능력 있는 건 알지만 29살에 부장된다는 게 의심스러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짓까지 해야겠어?"

"……이런 짓 까지 해야겠냐고?"

누나의 어깨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전부…… 전부 너 때문이잖아!"

이번에는 누나가 버럭 소리 질렀다.

"네가 꿈도 희망도 없이 폐인처럼 사니까! 나중을 위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했다고! 그런 내 마음을……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의 내 심정을 네가 알기냐 하냐고!"

"내가 알 리가 없잖아!"

서재일이 누나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오열한다.

"게임 폐인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누나는 늘 내색하지 않았으니까!"

"것 봐! 넌 항상 자기만……!"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알 거야!"

"…… 뭐?"

평소의 서재일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그 말에 누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서재일은 자신의 통장을 보여줬다.

오늘 번 600만원, 그리고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뒀던 금액까지 포함해서 총 1100만원이 있었다.

"오늘 관문을 갔다 왔어. 그리고 600만원을 벌었어! 이제 더 이상 누나가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재일이 너……."

"인생의 목표를 찾았어. 누나가 방황하던 내 마음을 잡아줬다고!"

서재일이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근엄한 목소리로.

"관문을 모조리 정복할 거야. 누나가 집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우리 둘의 행복을 위해서 앞으로는 내가 노력할 거야. 그러니까 이딴 새끼가 있는 직장, 더 이상 다니지 않아도 돼."

누나의 어깨를 놓은 서재일이 천천히 인사담당자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한 그의 표정에, 인사담당자는 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놓치지 않으려고 서재일이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잘 들어! 일찍 애 낳으면 우리 누나만한 딸이 있을 텐데. 권력 좀 쥐고 있다고 함부로 휘두르니까 좋냐?"

"우, 우선 이거부터 놓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시발 새끼야! 너 같으면 놓고 말로 할 수 있겠냐!"

퍽!

서재일이 전력을 다해 녀석의 턱주가리를 후려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인사담당자가 저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진열되어 있던 물건이 우수수 떨어진다.

"잘 들어! 내일부터 우리 누나 너희 회사 출근 안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표 낸 거니까 그렇게 알아!"

서재일은 누나의 손을 확 붙잡고 밖으로 데려나갔다.

그 뒤로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누나는 미안하다는 듯 눈물 흘리며 고개를 숙였고, 서재일은 무작정 걸을 뿐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공원이었다. 가로등 주변을 서성이는 하루살이가 유독 신경 쓰인다.

"마셔."

근처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온 서재일이 누나에게 한 캔을 건넸다.

옆자리에 앉은 서재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일부터 회사 나가지 마.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

"20대 초반은 대학 다니느라, 그 뒤로는 회사 생활하느라 개인시간 거의 없었지?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친구도 만나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그래."

"……."

"대답 좀 해. 내가 비록 게임폐인이었지만 대답은 제대로 했잖아."

"…… 재일이 너, 정말 관문으로 갈 거야?"

예상했던 것과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서재일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오늘 관문에서 좋은 일이 있었어. 그 덕분에 가능성을 느끼게 됐고.“

서재일은 관문에서 경험한 걸 떠올렸다.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다시 한 번 생겼다.

"누나는 솔직히 걱정 돼. 네가 관문에 갔다가, 잘못 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 누나 때문에라도 죽지 않을 거니까."

"그러니……."

"그래. 알았으면 이만 집 가자."

서재일이 누나를 붙잡고 일어섰다.

버스를 타면 금방이거늘.

두 사람은 암묵적 동의하에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집 근처에 도착할 때쯤, 누나가 말했다.

"직장…… 관두기는 할게. 나도 슬슬 정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잘 생각했어."

"하지만 내일 제대로 사직서는 쓰고 올 거야. 그게 사회인으로서의 도리니까."

"…… 그 새끼만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

"응."

차분한 마음으로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뒤, 서재일이 한 가득 사 온 음식으로 조용한 파티를 벌였다.

분명히 평소보다 대화는 더 적어졌건만.

어째서 인지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 * *


다음 날.

어제 말했던 대로 누나는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려고 아침 일찍 출근했다.

평소에는 오후가 되어서야 기상하는 서재일도 그 날은 일찍 일어나 샤워를 했다. 그리고 근처 미용실에 가서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외출용 옷을 몇 벌 구매해뒀다.

관문에서는 방어구를 착용한다 해서 외형이 변하지 않는다. 차림새는 들어올 때와 동일하게, 단지 방어구의 옵션이 진입자에게 추가될 뿐이다.

바뀌기로 결심을 했으니.

우선은 자신의 외형부터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금 아깝기는 하네."

관문으로 향하기 전, 서재일은 어나더 에피소드에 접속했다. 하루 플레이 가능한 피로도는 바닥을 보인 지 오래다.

"정말 정 든 캐릭터인데, 헐벗은 걸 보니 마음이 공허하네."

전 서버에서 깡그리 모아온 고급 아이템을 도배하고 있던 그의 캐릭터가, 지금은 기본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틀 전 구매했던 무기를 포함해서 모든 아이템이 거래 가능한 밀봉상태였다. 그리고 화면 한곳에는 게임머니 거래사이트가 켜져 있다.

처음에는 게임이 무슨 죄냐 싶어서 캐릭터는 내버려두려고 했다. 관문 진입 허용시간을 기다리면서 간간히 즐기려 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하기로 정했으면, 그동안의 자신과 연관된 모든 걸 버려야만 한다.

그렇게 미련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서재일은 계정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템을 처분했다.

그 결과 순식간에 1700만원이라는 거금이 통장에 추가됐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캐릭터까지 완벽하게 삭제하는 것이다.

삭제완료 라는 한마디만 적으면 이제 어나더 에피소드하고도 작별이다.

'마지막으로 길드원한테 인사라도 할까?'

다들 속으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앞에서는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 중 실제로 만난 사람도 존재했다.

'아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자. 전섭 최강, 어느 날 홀연히 행방을 감추다. 이런 것도 멋있잖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서재일은 어나더 에피소드하고의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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