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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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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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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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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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5-75. 해태(獬豸)-첫사랑 (2)

DUMMY

상현은 그렇게 잠시동안 식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수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상현 씨... 수희가 얼마나 절박하고 복수에 간절한지 아시겠죠? 전 제 가족의 복수를 수희를 통해서 이뤘어요. 수희가 제 구세주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수희 옆에 같이 살면서 제가 수희 복수를 도와주고 있는 거구요. 그게 제가 수희에게 최소한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상현 씨... 상현 씨도 수희를 좋아한다면 수희를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수희를 정말 좋아한다면 수희가 원하는 대로 수희 옆에서 지켜주셨으면 좋겠어요. 수희와 사귀고 연애하시는 것보다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수희를 생각하는 승주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마치 자신의 친동생처럼 수희를 끔찍이 생각하는 승주의 말에 상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 역시 기구한 가정사를 끌어안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수희의 사연에 비하면 댈 게 아니었다.


상현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승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수희 씨가 거의 십년을 넘게 화마라는 존재를 찾아 헤맸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화마를 붙잡거나 혹은 없앨 수 있는 정보를 얻진 못하셨나요? 그 정보를 찾기가 힘든가 봅니다?”


상현의 말에 승주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수희에게 물어봤었는데... 화재 현장마다 그 화마가 있던 게 아니래요. 거의 손에 꼽을 만큼 몇 번 밖에는 찾질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화마에 관련된 기록도 거의 없고, 주변 무속인들에게 물어봐도 딱히 화마의 존재를 알거나 없앨 방법을 아는 분이 없었대요. 그런데 최근에 무슨 절에 가서 실마리를 찾은 거 같다고는 했어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긴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희 씨는 제가 꼭 돕겠습니다. 제 모든 걸 걸고서라도 수희 씨 복수를 돕겠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수희는 참 든든하겠어요. 주변 사람들이 다 수희 못 도와줘서 안달이고 난리니까... 상현 씨, 늦겠어요! 수희 쫓아서 수원 가실 거죠? 핸드폰은 일단 제 꺼 가져가서 수희에게 연락해보세요!”


승주가 활짝 웃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자 상현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승주의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 넣은 뒤 잽싸게 뛰어나갔다.


인사도 없이 급하게 나가는 상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승주는 부디 수희의 복수가 끝나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를 희망했다.




상현은 바깥에 나오자 다시 느껴지는 한기(寒氣)에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수희를 지켜주고 싶었다.


상현은 처음 자신을 향해 수희가 담배꽁초를 집어던졌을 때, 첫눈에 수희를 사랑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가녀린 체구에, 누구보다 약한 모습이지만 마음 한 구석은 강철보다 강하고 다정한 저 불쌍한 여자를 돕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지만 한 층에 서서 올 생각이 없는 엘리베이터 층수 번호를 보며 상현은 초조했다. 지금 한시라도 빨리 수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 왜 안 오는 거야. 엘리베이터 고장이라도 났나....


상현은 어금니를 세게 깨물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그리곤 잽싸게 뛰어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상현의 몸은 뜨거웠다.


남들 눈에 미친 듯이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상현은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뜨거운 몸의 열기 때문인지 그의 머리 위로는 하얀색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상현의 몸은 미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라 후끈한 열기(熱氣)로 가득 찼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상현에게 수희는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그토록 뜨겁게 찾아왔다.





승주와 상현이 집에서 한참 커피를 마시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수희는 ‘7770’이라고 적힌 붉은 색 광역버스 안에 몸을 싣고 한창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수희가 가는 곳은 경기도 '수원'이었다.


며칠 전, 상현에게 전화가 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해주겠다고 했지만 분명 영(靈)적인 문제이기에 확실히 수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희와 만난 상현이 말해준 사정은 대충 이랬다.


자신이 명동에서 사채시장에서 활동하면서부터 상현 자신을 도와 백마녀 밑에서 함께 일한 친동생 같은 고등학교 남자 후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경환'이라고 했다.


경환은 일전에 처음 백마녀가 수희 자신을 만나기 위해 상현과 함께 보냈던 그 부하직원이었다.


그 때, 수희 자신과 승주에게 해코지라고 할까봐 급히 상현의 뺨을 후려갈긴 것을 두고두고 지금까지 수희에게 뭐라고 나무라는 바로 그 경환에 관련된 일이었다. 경환은 수희가 고깝고 미운 모양인지 만날 때마다 볼멘소리와 함께 무어라 궁시렁거리며 수희를 흘겨보곤 했다.


상현은 수희 역시 잘 알고 있는 경환의 고향에 있는 친누나에게 일이 생겨 급히 수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수희는 한결이 자신에게 친구 준희 일을 부탁했을 때와는 달리 상현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가타부타 불평불만 없이 수원으로 가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수희는 상현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상현이나 승주, 그리고 백마녀 모두가 수희를 곰 같이 둔하다고 생각하며 수희가 상현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눈치 빠른 수희였다.


상현이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수희 자신이 알고 있다는 티를 낸다면, 상현의 성격에 자신에게 그대로 직진하며 고백해 올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희는 자신이 모르는 척을 해야만 상현은 고백을 망설이며 지금처럼 서로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그나저나 한결 씨는 뭐하고 있을까...


상현을 생각하던 수희는 불현 듯 버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나무 풍경들 사이에서 한결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원사 절에서 친구 준희와 함께 두 나찰에게 온몸을 매질을 맞은 한결이었다.


수희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며 우란분재 행사에서 이것저것 음식을 주워 먹고 웃고 있었지만 분명 온몸이 정상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 미련곰탱이 같은 남자가.... 덩치는 산만해서 그렇게 미련하게 쳐 맞았으면 골병이 나도 백번은 더 났을텐데... 아프다고 말도 안하고.. 어쩜 그리 바보 같고 순진한 건지...


수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신에게 그 후로 연락한번 없는 한결이 내심 야속했다.


수희는 죄 없는 자신의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가 다시한번 지도 어플을 켜서 수원까지 도착하는 최단 경로를 검색해보았다. 분명 사당역에서 7770번 광역버스를 타면 수원역까지 40여분이면 도착한다고 나와 있었다.


- 상현 씨나 경환 씨는 이미 수원역에 마중 나와 있으려나... 흠...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자세한 내용은 경환이에게 직접 듣는게 낫겠다는 상현의 말에 수희는 군말 없이 수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수희는 지금 경환에게 닥친 일이 무슨 일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사실 상현이 어젯밤 문자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기에 편하게 상현의 차를 타고 가도 되었지만, 수희는 상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급적 단둘이 있는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굳이 오늘 상현이 오기로 했던 시간보다 일찍 수원으로 버스를 타고 갈 테니 수원역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놓고 도망치듯이 사당역으로 향했다.


사당역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수희는 바깥구경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희는 또 다시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창밖의 구경 중이었다.


주변 풍경은 겨울이라 그런지 삭막했고, 곳곳에는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보였다.


겨울산은 늘 초라하고, 볼품없이 황량했다.


자신의 집 뒷자락에 자리 잡은 부모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여름에는 많은 모기들과 풀벌레 소리들로 시끄러웠고, 매미소리나 개구리 소리 역시 밤잠을 설칠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댔다. 작은 집이었지만 대식구였고 가뜩이나 산골짜기 입구에 자리 잡은 오래된 시골마을이었으니 불편하기도 불편했거니와 넉넉지 않은 집안 살림 때문에 가족들은 종종 밥을 굶기도 했다.


하지만 수희는 부족했고 힘들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제일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 에이... 또 보고 싶네. 우리 식구들....


수희는 애써 창밖의 풍경에 더 집중했고, 창밖으로 저 멀리 ‘경기도 과천’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커다란 조각상(彫刻像)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화강암으로 된 돌로 만든 석상이었는데 수희는 한 번에 그게 ‘해태’임을 알아차렸다.


- 오메? 뜬금없네? 왠 해태상이 여기 있어?


해태상은 불의 기운이 강한 곳에 그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었다.


조선 시대 가장 무서웠던 자연재해 중 하나가 바로 화재였다.


소방기술이 지금처럼 뛰어나지 않았기에 조선시대 불이 났다 하면, 보통 사람들이 물 양동이를 뿌려대는 것이 다였다. 그래서 화재진압이란 것이 보통 불에 다 타들어가 더 이상 탈것이 남아있지 않아야만 불이 꺼지는 것이라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화재를 막기 위해 조상들은 여러 가지 비방책을 고민했다.


숭례문의 간판을 가로로 아니라 세로로 놓은 것이라던가, 경복궁 앞에 해태 석상을 둔 것도 그 때문이었다.


- 한번 조사해봐야겠다. 뭐라도 건질 수 있겠지...


수희가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씹으며 생각에 빠진 동안, 어느새 버스는 ‘수원역 도착’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희는 하나둘씩 일어서는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수희가 수원역에 환승센터에 내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동안 갑자기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조심스레 수희를 향해 다가와 쭈뼛대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희는 자신을 향해 밍기적 거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남자를 흘끗 쳐다보고 대번에 그가 경환임을 알아차렸다.


“어이구! 혼자 왔어요? 왜요? 갑자기 나한테 부탁하려니까 어색해요?”


수희가 경환을 흘겨보며 말을 툭 내뱉자 경환이 깜짝 놀란 듯이 어색하게 웃으며 수희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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