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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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연재수 :
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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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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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챕터5-87(완). 해태(獬豸)- 신수 해태 (2)

DUMMY

상현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은 수희는 연거푸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며 창밖 풍경을 보고 생각 중이었다.


선아는 광교저수지에 상현과 자신이 다녀오는 동안 자신의 집으로 가 짐을 꾸리고 떠날 준비를 해놓겠다고 했다.


선아를 천수도령에게 데려다주고, 학교 전학 절차도 밟아야 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수희의 고민을 미리 읽었는지 상현이 말했다.


"저 여학생 전학 수속이나 이사하는 것들은 제가 경환이 시켜서 조치하겠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수희는 상현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씽긋 웃으며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수희는 상현의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그나저나 도대체 내가 놓친 게 뭐야! 뭐 때문에 자꾸 광교저수지에 가래...


수희는 담배 연기가 다 타서 손끝까지 열기가 느껴지는 기운에 아차 싶어 담배꽁초를 창밖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내 수희가 손을 털며 창문을 닫자 상현이 헛기침을 하며 그런 수희를 보고 말했다.


“이래저래 마음이...불편하시죠?”


“아무래도 그렇네요. 저 때문에 좋으신 분이 허망하게 돌아가신 거 같으니... 제 복수 때문에 자꾸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그러니... 마치 제가 죄인이 된 기분이에요.”


수희의 슬픔이 가득 묻어나오는 말에 상현이 나직하게 말했다.


“수희 씨 가족 분들 복수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다가 상현씨도 다쳐요. 제 일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지 마세요.”


수희의 담담하고도 슬픈 목소리에 상현이 조금 화난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상현과 수희는 어색해진 공기 탓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느 새 상현의 차는 광고저수지 공영주차장 쪽에 다다랐다.


상현이 차를 세우자마자 수희는 잽싸게 차에서 내려 광교저수지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상현이 따라 나서려 하자 수희가 차문을 닫으며 외쳤다.


“저 혼자 다녀올게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상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차문을 꽝 닫고 달려가는 수희를 보며 상현은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핸들에 머리를 숙였다.


자신은 말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었다.


수희의 마음이 이미 상할대로 상해있음을 상현은 진즉에 눈치챘지만 지금 마음이 아플 수희에게 어떤 말을 해주며 위로해주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이 수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상현은 혼자 다녀오겠다는 수희의 말이 못내 섭섭하고 서운했다.





수희는 애타는 상현의 마음도 모른 채, 신나게 달려 광교저수지 초입에 다가섰다.


초입 쪽에 다가서자 광교산 초입에 위치한 저수지가 멋진 겨울 풍경을 자아내며 절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보통 저수지 같지만 식수원으로 쓰는 저수지인지라 수원시에서 상당히 관리를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주변 일대의 자연환경은 훼손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광교저수지 일대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있는 삼림욕이 되었다.


수희가 천천히 한걸음씩 내딛어 광교저수지 초입에 다다르자 갑자기 광교저수지 한가운데에서 밝은 노란색 빛이 아롱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수희가 이곳에 올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수희의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영롱하게 빛을 뿜어내며 수희에게 이곳으로 가까이 오라는 듯이 보였다.


도시와 가까워 시민들의 휴식처로 인기 있었기에 이른 아침 9시였지만 산책을 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 눈에는 저 눈부신 노란 구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희는 긴장한 채 광교저수지 한가운데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었기에 수희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하고 삼키고야 말았다.


광교산의 정기는 전국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맑았다.


그래서일까, 신통력이 약해진 수희의 몸으로도 저 노란색 빛으로 빛나는 존재의 기운은 유독 남다르게 느껴졌다. 경건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수희는 지난번 상현과 찾았던 장안공원 장안문 초입에 써 있던 관광안내표지판의 문구가 생각났다.


조선의 임금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築城)하는 다산 정약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려(美麗)함은 적에게 두려움을 준다’고 말이다. 그 말인 즉, 아름다움의 힘이 싸우는 적도 제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빛 노란 구체 역시 그 아름다움에 놀라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수희가 황금빛 구체에 거의 다다르자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수희는 눈이 부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그녀가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을 감고 정신이 없을 때, 수희의 마음 한구석에서 서늘한 그리고 중압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무언가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 그대가 대신의 그릇이로군. 내 기다리고 있었다.


- 누구시죠? 보통 분은 아니신 거 같은데... 높으신 분이면 제가 지금 엎드려서 절이라도 해야 하나요?


자신을 향해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버릇없게 느껴지는 수희의 말투에 그 존재를 껄껄 웃으며 수희를 향해 말했다.


- 역시 버릇없는 것으로 유명하다더니, 과연 소문이 거짓이 아니로다!


- 아오... 한 얘기 또 하게 하시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한 이야기 또 하게 만드는 건데. 그래서 댁은 누.구.시.냐.구.요!


- '해치' 라고 하면 알 것인가? 인간들은 나를 ‘해태’로 더 많이 부르더군!


낯선 존재의 말을 들은 수희가 놀라움에 몸을 멈칫했다.


- ‘해태’라면... 전설의 신수(神獸)아닌가요? 전설 속의 동물 해태라니 말이 안 되는데요? 제가 장안문의 어처구니에 깃든 영가들한테 물어봤을 때, 분명 여기 수원에는 해태가 없다고 했어요!


- 그대는 말이 안 되는 일을 많이 겪은 자가 아닌가. 그런 자가 나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가? 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자다.


- 말씀 참 이쁘게 하시네! 그래요, 댁이 해태라 칩시다! 갑자기 왜요? 저한테 무슨 말을 하시려고? 또 그 마두명왕처럼 나한테 뭐 부탁하고 그러려고요?


- 얼마 전 수원의 대단한 점바치 하나가 허망하게... 참으로 허망하게.... 천기누설로 그만 별이 되어 사라졌다. 그 점바치가 모시던 신이 나와 특별한 사이다. 나는 그 분 부탁으로 나타났다...


수희는 그의 말을 듣고, 얼마 전 세상은 떠난 선아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역시나 평범한 무당은 아니었다고 짐작했는데, 그녀가 모시는 신이 천상계의 신수(神獸)인 해태와도 아는 사이라면 분명 지금 해태가 수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보통 일이 아님에 분명했다.


- 나 때문에 죽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좀 찔리는데요? 내가 죄인이죠... 내 복수에 눈이 멀어 사람들이 자꾸 다치고 죽네요...


수희가 짐짓 슬픈 목소리로 씁쓸하게 말하자 해태라는 존재는 깊게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했다.


- 그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섭리이고 자연의 이치인 것을.... 이것 또한 신의 뜻이다.


- 그 신 한번 면상 한번 보고 싶네요.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을 이리 괴롭히다니. 그게 신 맞아요?


- 무례하군. 그대가 아무리 중요한 대신의 그릇이라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 죽이시게죠? 저야 좋죠. 신 얼굴 한번 보고... 제가 그 신이라는 양반한테 따질게 좀 많거든요!


수희의 버릇없음이 끝이 없자 이내 해태가 화가 치솟는다는 듯이 더욱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가. 나는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법(法)’이라는 단어의 주인이다. 바르지 못한 자를 뿔로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물어 뜯어버린다. 공손히 굴어라!


해태의 외침이 끝나자 눈부신 빛이 서서히 없어지더니 이윽고 어떤 동물의 형상이 수희 눈앞에 보였다.


얼핏 보면 사자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린이나 소 같기도 했는데, 코가 크고 이마에 솟은 뿔이 반짝거렸다.


- 이야 협박 한번 살벌하게 하시네. 내가 물귀신이랑도 맞짱 뜨고, 호랑이 귀신이라도 붙어본 여자에요! 부처님 따까리한테 일대일로 딜치고 맞다이까지 까서 암리타까지 얻어낸 년인데 하물며 동물 뿔에 치이는 거 따위가 두려울까? 어디 한번 해보쇼!


마치 깡패처럼 막무가내로 구는 수희를 보며 눈앞의 해태는 혀를 내둘렀다.


- 어이가 없어 기가 차는군... 역시 그대는 전해지는 소문처럼 보통 성깔이 아니로구나. 그러니 화마를 담아둘 수 있었던 것인지도... 내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군. 나와 친분이 깊은 신의 부탁으로 강림했다만 너에게 이 말 만은 남기고 가고 싶구나. 아이야. 화마의 일은 귀신의 일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일은 인간끼리 풀어야지. 다른 것으론 절대 해결할 수 없다. 화마는 결단코 귀신의 일이 아니니 명심해라. 그것만큼은 꼭 가슴에 담아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내 서서히 그 존재가 희미해지며 수희 눈앞에 무언가 작은 깃털 같은 것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수희가 고개를 들어 자세히 쳐다보니 그것은 깃털이 아니라 푸른빛이 감도는 작은 비늘이었다.


- 이 비늘을 지니고 다니거라.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것이다. 업경대의 진실이 너에게 닿기를...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해태를 보며 수희는 자신의 손아귀에 지어진 푸른 비늘을 만지작거렸다.


얼핏 보면 옥색 빛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애매랄드 빛으로 빛나는 것 같은 푸른빛이었다.


수희는 조약돌처럼 단단한 해태의 비늘을 에코백 안에 소중히 담고 이윽고 상현이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원에 와서 너무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정보를 얻어 수희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정신이 없었다.


일단 승주 집으로 가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욕조에 몸을 지지며 아무 생각 없이 누워 쉬고 싶었다.


-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어디 목욕탕 같은데 가서 온탕에 찜질이라도 해야 하나.... 일단 선아부터 천수도령 오빠한테 데려다주고.... 할 일이 왜 이리 많냐. 아이고...


수희는 깊은 숨을 내쉬고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겨울 아침 공기는 차가웠고, 나뭇잎 한 장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만 가득한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었지만 광교저수지의 공기는 너무나도 청량하고 시원했다.


고려시대에 ‘광악산(光岳山)’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눈부신 산 아래여서 그런 것일까. 빛나는 광교산의 아침 햇살이 수희의 머리 위로 눈부시게 가득 쏟아 내리고 있었다.



그 아침 햇살 햇빛은 묘하게도 처연하고 고와 슬퍼보였다.





<챕터5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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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5-87(완). 해태(獬豸)- 신수 해태 (2) 23.12.02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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