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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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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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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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5-79. 해태(獬豸)-신풍동과 무당거리 (2)

DUMMY

수희는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을 흘끗거리며 쳐다보았고, 공사장 펜스 울타리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주변을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수희가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던 찰나, 에코백 안에 있던 벽조목에서 이상한 진동과 함께 옅은 이명(耳鳴) 같은 소리가 수희의 귓가에 ‘삐이익’하고 들려왔다.


- 뭐야! 왜 이래?


당황한 수희가 에코백 안에 손을 넣고 벽조목 부채를 꺼내자 진동이 더 심해지며 수희가 쥔 손마저 떨려오기 시작했다.


- 어라? 어... 어? 왜 이래? 뭔데 이래?


수희가 당황하며 혹시 공사 현장에 무언가가 있나 싶어 조심스레 벽조목 부채를 공사장 펜스 틈으로 집어넣자 벽조목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려오며 수희의 귓가에 울려퍼지는 이명소리는 더욱 더 커져만 갔다.


수희가 재빨리 에코백 안에 벽조목 부채를 다시 집어넣고, 핸드폰으로 천수도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아이고! 귀청이야! 나 귀 안 먹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왜 전화로 소리 지르고 난리야? 또 무슨 일 생겼어?”


오랜만에 듣는 천수도령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희를 반가워하며 친절했다.


“오빠! 물어볼 게 있어서. 지금 벽조목 부채가 이상해. 엄청 흔들리고, 내 귀에 이명(耳鳴)까지 소리 보내고 있어!”


“어... 왜 그럴까. 그거 웬만한 영물(靈物)이라 거의 살아있는 거라고 봐도 되는데... 그게 갑자기 그런다고?”


“응. 여기 수원에 무슨 공사장 터인데... 갑자기 그러네? 오빠는 아나 싶어서 전화했지!”


“수희야! 수원이라고?”


천수도령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여기 경기도 수원... 왜?”


“혹시 거기.... 수원 행궁동에 있는 신풍초등학교 아니냐?”


“행궁동인지는 모르고, 신풍초등학교는 맞아! 지금 그 앞이야. 여기 초등학교 없어지고 지금은 무슨 공사 중인데? 왜?”


수희가 당황하며 말하자 천수도령은 이내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너가 가진 벽조목 나무가 신풍초등학교 한가운데 심어져있던 거목(居木)으로 만든 거야. 그 나무가 벼락 맞고 벽조목이 된 거라고!”


천수도령의 말에 수희는 깜짝 놀라 공사장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나무 그루터기를 바라보았다.


둘레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필시 잘리지 않았다면 엄청난 크기의 나무였음이 분명했다.


“수희야, 조심해. 그 나무에서 이무기가 살았다고 하더라.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용이 되어 승천하기 전에 학교 인부들이 터를 다진답시고 나무에 가지치기를 한다고 건드렸다가 이무기가 승천을 못했다는 전설이 있어. 그 곳에서 100년 넘게 자란 나무야. 그 자체로 신이 깃들었다 해도 믿을 판인데 이무기까지 살았다고 하니 보통 나무는 아닐 거야. 그런데 벼락까지 맞았으니 얼마나 강한 힘이 있겠어. 벽조목이 운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닌 거 같다. 조심해라!”


천수도령의 말에 수희는 몸을 흠칫 떨며 말했다.


“에이... 뭐 죽이기야 하겠어? 나도 여기 오려고 한 게 아니라 어제 장안문 처마 어처구니에 깃든 영가들한테 물어보니 여기로 오라고 해서 온 거야. 근데 오빠 뭐 더 아는 거 없어?”


수희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에 잠긴 천수도령이 조용히 말했다.


“거기 초등학교 공사장 뒤쪽으로 가면 공원 하나가 보일거야. 그쪽 공원으로 쭉 걸어가면 신풍동 무당 거리가 나온다.”


“무당거리? 그건 또 뭐래?”


“너 행궁동에 무당들이 모여 사는 거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오빠처럼 신어머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낸들 어떻게 알겠어?”


살짝 토라진 말투로 말하는 수희를 향해 천수도령이 다정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잘 들어, 수희야. 행궁동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죽은 사도세자를 보기 위해 매일같이 행차해서 묵었던 숙소야. 왕이 그렇게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라 터의 기운이 보통이 아닐 뿐만 아니라, 팔달산이라는 영산(靈山)을 등지고 있어서 그 일대는 영기(靈氣)가 엄청 센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야.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무속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해.”


“우와! 오빠는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어?”


“뭐... 건너건너 보고, 주워 들은 거지. 아무튼... 서울에 성북구에 미아리 고개처럼 경기도 지역에서 무속의 중심지라고 불린 곳이야. 어처구니에 깃든 영가들이 거기로 가라고 한 건... 벽조목 부채 때문은 아닌 거 같고... 아마 신풍동 무당거리에서 무당들을 만나보라는 게 아닐까 싶은데... 내가 맞을지 틀릴지는 모르겠다. 본인이 직접 몸소 부딪쳐보셔!”


“정보 고맙긴 한데... 아씨... 또 다른 무당들 만나면 나 막 나가라고 하고, 밀쳐내고 할 텐데... 오빠도 잘 알잖아. 다른 무당들이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나 쫓아내고 싫어 하는거... 내가 무슨 전염병 걸린 사람인가, 나만 보면 나 내쫓으려고 해!”


수희는 매번 다른 무당들을 마주칠 때면 문전박대를 당하던 과거를 회상하며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수희를 이해한다는 듯이 천수도령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너가 화마의 기운을 담고 있어서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주변을 살펴봐.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 거야!”


“고마워, 오빠. 혹시 도움 필요하면 연락할게!”


수희는 천수도령과의 전화통화를 끝마치고 에코백 안에 손을 넣어 벽조목 부채를 살짝 쓰다듬었다.


- 혹시... 너도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 같고 그래서 울었던 거야? 난 몰랐네. 너 입장에서는 자기가 죽은 무덤 보는 거 같았겠다. 미안...


그녀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파르르 떨던 벽조목 부채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수희는 에코백을 다시 어깨에 고쳐 메고 천천히 행궁동 사이에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녀가 걷고 있는 길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위 ‘행리단길’이라고 불리는 수원의 명물 거리였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따라해서 행궁동의 ‘행’자를 따 행리단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화성행궁의 돌담길을 끼고 있어 그 경치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행궁 주변에 다양한 한옥들도 지어져서 좁은 골목길이었지만 주변 풍광은 운치 있고 근사했다.


이른 평일 아침 시간이어서 그런지 주위는 조용했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나 먼지떨이개로 옷을 털어대는 세탁소 직원의 소리,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등교하는 아이들 수다소리가 들려왔다.


아기자기한 파스텔 톤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에 수희는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걷기 시작했다.


수희가 이내 십여분 가량 걸었을까, 어느새 붉은색 깃발과 흰색 깃발을 내건 점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희가 무속공부를 했던 내용이 사실이라면, 굿을 벌일 수 있는 무당은 붉은 깃발을 걸었고, 점만 볼 수 있는 무당은 흰색 깃발을 달았다고 한다.


약간의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가던 수희 눈앞에는 이내 다양한 깃발을 건 당집들이 보였다.


‘보살, 장군, 선녀, 동자’와 같은 글씨들을 화려하고 크게 인쇄해 붙여놓았고, 그 밑으로 프린팅된 간판에는 ‘백호사, 천왕보살, 약사암, 대궁보살, 연화선녀, 천신장군’ 등 화려한 붉은 글씨들이 알록달록 화려하게 가득했다.


- 이야... 여기 무슨 무당들 잔치라도 벌이나. 한집 건너 무당일세.


수희가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와중에 교복을 입은 이쁘장하게 생긴 여중생 하나가 수희 옆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수희는 주변 무당 점집 구경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여중생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백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친 채 부지런히 걷고 있던 여중생과 수희는 그만 어깨를 세게 부딪치고야 말았다.


“아이씨! 이런 거지발싸개같은!!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욕을 막 내뱉으려던 수희보다 한 동작 빠르게 걸죽하게 시원한 욕지거리를 내뱉은 어린 여중생을 보면서 수희는 그만 턱하니 말문이 막혔다.


어린 중학생 여자 아이 입에서 튀어나올 법한 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와... 어린 애가 성깔이 보통이 아니네. 나보다 한수 위인데?


수희가 깜짝 놀란 눈으로 말없이 여중생을 바라보자 그녀는 수희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뭘 봐!”


어이없다는 듯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 수희를 향해 여중생이 더 매섭게 눈을 치켜세웠다.


그녀는 수희를 향해 매서운 눈초리로 한참을 노려보다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말했다.


“왼팔에 뭘 달고 다니는 거야. 재수 없게! 에이 퉷!”


수희의 운동화 앞쪽을 향해 침을 뱉고는 늦었다는 듯이 황급히 백팩을 메고 뛰어가는 여중생을 멍하니 바라보던 수희는 그녀의 등 뒤를 향해 소리 질렀다.


“아니 이게! 어디서 쥐방울만한 게 어따대고 욕지거리야! 씨! 어디다가 침을 뱉어!”


수희가 분하다는 듯이 양팔을 들어올려 씩씩거리며 한참을 그 여중생을 노려보고 있을 때, 수희의 등 뒤로 차분하고 단아한 중년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하신 분께 결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수희가 뒤를 돌아보자 비녀로 쪽진 머리에 단아하게 머리를 빗은 흰색 한복차림을 한 중년의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대문을 활짝 열고 오래 되어 보이는 구옥 주택 앞에 서 있었는데, 그녀의 옆으로는 다른 집들은 다 붙어있는 간판이나 그 흔한 홍보문구 하나 없이 하얀 깃발 하나만 초라하게 꽂혀있었다.


- 무당이구나! 그런데 흠...


수희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문 앞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있자 그녀가 수희에게 천천히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귀한 분을 뵙습니다. 이름 없이 그저 평범한 일개 만신(滿身)입니다. 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그녀는 나이가 대충 보아도 오십은 넘어보였는데, 수희보다 훨씬 많은 중년의 나이였음에도 수희를 향해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희는 그런 그녀를 보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제가 말을 돌려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그냥 편하게 말할게요. 보통 무당들은 저를 보면 놀라서 본인이 달아나거나, 저를 내쫓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라뇨? 무슨 생각이신지 여쭙고 싶네요.”


수희가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자 중년의 여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왼팔에 담긴 그 불길한 기운 때문에 다들 그렇게 반응했겠지요. 하지만... 지금 왼팔에 담긴 기운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중요하신 분이 오시려고 어제 할머니께서 제 꿈에 급히 내려 오셨나봅니다. 제가 신으로 모시는 할머니께서 제 꿈에 나타나셔서 극진히 살피라 하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 역시 예사 보통 무당은 아니구나...


수희는 조심스럽게 구옥 주택 안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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