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벽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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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okkoma
작품등록일 :
2023.11.21 15:32
최근연재일 :
2024.01.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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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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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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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6-90.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3)

DUMMY

무명의 말을 듣던 노숙자 노인이 갑자기 매서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니 입을 꾹 다문 채로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생각했던 무명이 그의 뒷모습을 자세히 쳐다보자 순간 불길한 검은 기운이 어떤 사람 형체를 하고 그의 어깨에 업혀 있는 것이 보였다.


왜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분명 불길하고도 사악한 기운이 분명해보였다.


무명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꽁꽁 숨어있던 기운이라면 보통 평범한 악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명은 저 사악한 존재를 자신이 해치울 수 있을지 불안했다.


무명이 그것을 처리해야하나 싶어 고민하던 순간 그 노인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서고는 무명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스승님은 잘 지내시나? 여전히 그 책을 무식하게 달달 외우라고 하시는가? 크하하!”


무명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노인은 이내 어떤 기척도 없이 깔깔 웃으며 미친 듯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명은 늙은 노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잽싸고 빠른 동작으로 순식간에 산을 올라 어안이 벙벙했다.


무명은 놀란 토끼눈이 되어 멍하니 그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순간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무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 아뿔사! 스승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셨던 그 사형(師兄)이구나!


무명은 자신의 무지(無知)함에 탄식을 하며 재빨리 몸을 돌려 그 노숙자 차림의 노인 뒤를 쫓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평소에 무명 자신에게 ‘사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일찍이 무명을 거두기 전에 먼저 거두었던 제자 한명이 있다고 했다.


영특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너무나 영리했기에 그를 믿고 모든 밀교의 비전을 전수해주려 하였으나 일이년 정도 지났을 무렵 스승님은 그 제자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밀교의 비전서를 모두 전수받고 난 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차릴 생각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심산이었다. 탐욕스럽고 악(惡)한 사람이라 하셨다.


그는 비전서를 혼자 독차지하기 위해 갖은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파렴치한이었다.


살인이라는 말에 무명이 놀라 스승님에게 묻자 스승님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아꼈다.


스승님의 슬픈 얼굴에 무명은 차마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 못했다. 아니 더이상 스승님께 내막을 물어보아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나중에서야 자신의 사형이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스승님은 그를 바로 파문(破門)하고, 자신과 비전서를 찾지 못하게 꽁꽁 숨어버렸다고 했다.


무명이 낭패라는 표정을 하며 그를 뒤쫓아 자신이 내려왔던 산길을 미친 듯이 쫓아 갔을 때는 이미 무명의 사형이 결계를 해제하고 자신과 스승님이 지냈던 새끼 동굴 깊숙이 들어간 뒤였다.


그는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동굴 안의 집기들을 내던지고 난장판을 치고 있었다.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이 늙은 노인네가 어디다가 숨긴 거야! 개 같은 노인네! 결국 죽었어? 백년은 거뜬히 살 것처럼 잘난 척 하며 굴더니! 결국 죽은 거야? 참나, 어이가 없네! 이 망할 놈의 늙은이가!”


악다구니를 쓰며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집어던지며 스승을 향해 바락바락 악을 쓰던 사형은 무명이 자신을 뒤쫓아 온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를 향해 쏘아붙였다.


“넌 어디 숨겼는지 알지? 그 비전서 어디 있어? 내 놔!”


그의 말에 무명은 사형을 향해 잠시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천천히 말했다.


“사형이시죠. 스승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비전서는 스승님께서 진즉에 태워버리셨습니다.”


“뭐라고? 태워?”


물건을 집어던지던 사형의 손이 허공에 멈추며 몸이 흠칫 굳었다.


“태웠다고?”


“네, 스승님께서 한참 전에 직접 손수 불 태우셨습니다.”


“이 미친 노인네가! 끝까지 책 한권 내놓기 싫어서! 내가 지 딸년 몸뚱아리를 더럽히고 눈 앞에서 쳐 죽여도 눈빛 하나 깜빡 안 바뀌던 늙은이가 역시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내 무명의 사형은 미친 듯이 가부좌를 틀고 죽어있는 그의 스승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당장이라고 스승님의 시신을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꽂을 것만 같았다.


무명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스승님이 부탁한 것이었지만 차마 사형을 죽일 수 없어 망설이던 그였다.


하지만 무명은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듣고 온몸에 바싹 열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형이라는 저 사람은 스승님의 딸을 강제로 성추행하고, 죽이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밀교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전서 책 한권을 가지기 위해 스승님의 딸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고 몸을 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살인까지 저지른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무명은 더 이상 눈앞에 망설이거나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미 무명의 마음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분노가 가득 솟아나고 있었다.


무명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손의 수인(手印)을 맺고, 검지를 깨물어 피를 낸 뒤 그대로 손가락을 들어 올려 허공에 무언가 적어 내려가 시작했다.


이내 피로 물든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쓴 한문 글씨가 붉은 빛의 물결로 출렁이더니 그대로 그의 사형 등에 날아가 표창처럼 내리 꽂혔다.


“죄송합니다, 사형. 스승님께서... 사형을 만나거든 사형을 죽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부디 다음 생엔 악행을 저지르지 말고 올바른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의 사형은 이미 말 한마디 못한 채, 옴쌀달싹 할 수 없다는 듯이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무언가에 짓눌리듯이 서서히 몸을 숙이기 시작했다.


이내 ‘으드득’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기괴하게 꺾이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듯이 그의 몸이 서서히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헉!”


이내 그의 짤막한 신음과 함께 동굴 안엔 조용한 정적만이 찾아왔다.


무명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스승과 사형의 시신을 향해 다시 한번 절을 올린 뒤, 그의 스승의 시신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때였다.


죽은 줄만 알았던 노숙자 노인의 몸이 다시 한번 ‘우드득’ 소리가 나더니 기괴하게 목이 꺾어 스승을 향해 다가오는 무명의 목덜미를 뱀처럼 입을 벌려 있는 힘껏 깨물었다.


“으악!”


무명은 고통에 신음하며 사형의 몸을 발로 차버렸다.


서둘러 다시 수인(手印)을 맺고 사형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자 순식간에 몸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내 사형의 몸에 붙은 불길이 엄청난 기세로 동굴 천장에 닿을 듯이 치솟아 동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무명은 자신의 목에 흐르는 뜨끈한 피를 느끼며 자신의 상의 아래를 찢어 천 조각을 가져다대고 지혈을 하며 마지막으로 스승님이 말씀하신 주의사항을 떠올리고 있었다.





“명심하거라. 마지막으로.... 넌 살아있는 것을 헤쳐서는 절대로 안 된다. 특히나 신령한 기운이 가득한 신수(神獸)나 영물(靈物)을 헤친다면 너는 그 자리에서 즉사(卽死)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왜 그런 것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너도 알고 있듯이... 너의 사주에 물의 기운이 많다. 이름 역시 물이 많은 팔자인데... 물은 목마른 동물들을 꼬이게 한다. 그토록 그들이 목이 말라 너를 원하는데, 너가 그것들을 죽인다면 그 원한이 보통 깊겠느냐. 그대로 살(殺)이 꽂혀 그 한(恨)이 너의 사주를 뒤집어엎을 것이다. 다만...”


“네,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내가 너에게 부탁하나만 하고 싶구나. 혹여나 너의 사형이 나를 찾거든 비전서는 이미 불태웠다 말하고, 그를 죽여주길 바란다. 이미 인간의 심성이 아닌 자다. 내가 그리 잘못 만들었으니 내가 처리해야한다만... 사제지간의 연(然)과 정(情)으로 차마 내 손으로 처리할 수 없구나. 내 너에게 살생(殺生)을 금지하라 일렀건만...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부탁을 하는구나. 마지막 살생이라 생각하고 부탁하마. 조심해야한다.”


분명 자신에게 살생(殺生)을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스승님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자신의 사형만큼은 꼭 죽여 달라는 스승님의 당부에 무명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사형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마지막 주의사항을 남기면서 스승님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눈물로 촉촉해져 있었다.




무명은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금오산 정상에는 어느 새 일출이 떠오르고 있었다.


스승님의 강력한 결계 때문인지, 도선굴 안에는 활활 불이 타오르며 매캐한 연기나 열기가 나올 법도 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동굴 안은 조용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등산을 시작한 관광객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무명은 천천히 자신의 등에 맨 짐봇다리를 어깨에 다시 고쳐 메고 털래털래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분명 살인(殺人)을 저질렀다.


그것은 자신을 구원해주고, 부모님을 구원해준 스승님의 마지막 부탁과 유언이었다.


비전서는 실제로 일년 전 즈음 스승님께서 손수 불태우셨다.


허망하고 당황한 눈빛으로 무명이 스승님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스승님! 몇 대에 걸쳐 내려온 비전서를 불 태우시다뇨! 말도 안 됩니다! 어찌 그러십니까!”


재빨리 불구덩이 속에 두 손을 넣어 비전서를 꺼내려는 무명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되었다. 이 전승은 네가 마지막으로 너의 제자에게 전수하면 끝이 날 것 같구나. 그리고 한낱 종이 따위에 불과한 책이 무엇이 중요하더냐. 이미 너의 머릿속에 그대로 책이 박혀있는 것을... 명심해라. 형상과 겉에 너무 매몰되지 말도록 하여라.”


스승님의 말씀은 옳았다.


이미 자신은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련을 하면서 비전서의 모든 구절을 한글자도 토씨 하나 빼뜨리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책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책에 담긴 내용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옮겨 전수하는 것인가가 중요할 따름이었다.


무명은 자신의 스승이 자신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 스승님! 이제 마음 편히 가십시오. 저는 올바른 구도자(求道者)의 길을 걷겠습니다. 많은 이들을 도우며 스승님처럼 살겠습니다. 스승님의 유지를 받들어 살겠습니다!


그가 굳은 결심과 각오를 다지는 동안 어느새 금오산 정상에는 눈이 부실 만큼 붉은 빛의 해가 가득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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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6-90.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3) 23.12.03 33 1 11쪽
89 챕터6-89.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2) 23.12.03 35 1 11쪽
88 챕터6-88. 사이비(似而非)- 구도자의 길 (1) 23.12.02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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