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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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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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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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쌍룡

DUMMY

“어쩌면 파극문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너의 신변은 앞으로 위험해질지 모른다. 그럼에도 파극문의 제자로 남겠느냐?”

“저는 앞으로 사문과 평생을 함께하겠습니다.”


우진의 눈을 한참 바라보던 금민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내일부터는 너에게 파천무극신공을 알려주겠다.”


츠팟-!


순간 금 장문인의 신형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자 우진은 크게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신기하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될 수 있는 건가?’


두근. 두근.


설레이는 기분에 우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제. 몸은 괜찮아?”

“하하! 괜찮습니다. 조금 지쳤을 뿐입니다.”


밝게 웃으며 얼굴에 잔뜩 묻은 식은땀을 손등으로 털어내는 우진을 금단아는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1월의 날씨는 전혀 춥지 않았고 오히려 몹시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현대인으로 살아왔기에 아직 문파나 사저, 사제지간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으나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차츰 익숙해지리라.


“금 사저. 대체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누구? 아······.”


단아는 우진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눈치채며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숙였다.

금단아와 죽염산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검은 복면인. 우진은 죽염산에 처음 왔을 때부터 줄곧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가슴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었으니 우진은 그 자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그 사람은 파극문의 무공을 훔치려고 했던 도둑이야.”


단아의 목소리는 어딘가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파극문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으니까······ 그러니 사제도 조심해야 돼.”

“알겠습니다, 사저.”






다음 날 아침 금민석은 우진을 넓은 공터로 데려갔다.


‘드디어 배우는 건가!’


하얀 도복을 입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있는 우진을 금 장문인은 엄숙한 얼굴로 바라봤다.


“파천무극신공은 정순하고 심오하며 패도적인 무공이다. 파극문의 무공은 파천무극신공을 익혀야지만 진정으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우진아. 너는 너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아느냐?”


귀를 열고 집중하여 경청하고 있던 우진은 갑작스러운 스승의 물음에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진아. 무학이란 무릇 누가 어떻게 익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칼이 그저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보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도구로 보일 수도 있는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이어서 우진은 금 장문인에게 운기조식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다.


“호흡이 끊기는 간격에 집중하거라.”


눈을 감고 가부좌를 하며 기공의 존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우진의 귀에 금 장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구름이 여유로이 하늘을 흘러가니(白雲餘天流)

인생은 덧없고 무상해라.(人生無無常)

가을의 햇살이 벼를 타고 흘러가며(秋景禾乘流)

황혼은 무르익어 날개를 펴는구나.(黃昏熟翼敍)

내가 가는 길을 바람이 이끌어주네······.(人之道風提)”


운기조식을 끝낸 우진이 눈을 뜨자 금 장문인이 엄숙한 얼굴로 내려보고 있었다.


“파천무극신공의 구결이다. 잊지 말고 암기하거라.”

“알겠습니다.”

“우진아. 너는 본문의 초대 장문인이셨던 연개소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무엇이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우진은 침착하게 금 장문인을 바라봤다.


“역시 다섯 자루의 검을 차고 다녔다는 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군요.”

“그래. 본문에도 검법은 존재한다. 월검무상이지. 하지만 사실 그 분에게는 그보다 더 지고했던 무학이 있었다. 역사에 남아 있지 않기에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무학이지.”

“그것이 무엇입니까?”

“파극신권이다.”


콰아아-!


순간 금민석의 주먹이 사라졌다. 적어도 우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금 장문인의 양 주먹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고 왼 주먹은 오른 주먹보다 조금 아래에 있었다.

어찌 허공을 때렸는데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단 말인가?

공간을 터뜨리는 듯한 폭발음에 우진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파천쌍룡. 가장 기본적인 초식이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초식도 흔치 않다. 너는 내 주먹이 움직이는 걸 보았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금 장문인은 아까와는 다르게 앞에서 위로 양 주먹을 천천히 위로 뻗었다.


“오늘부터 파천무극신공과 함께 파천쌍룡을 수련하거라. 만약 나중에 네가 준비가 된다면 다른 초식들을 알려주겠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너도 앞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 정도는 지켜야 될 터이니 일단은 본문의 다른 절학들을 알려주겠다.”


금 장문인은 이어서 우진에게 장법인 파극이십사수와 신법 섬전무쌍, 보법 유유무야, 경공 백야낙일홍을 알려줬다.


“부수고자 한다면 부수지 못할 것이 없고 구하고자 한다면 구하지 못할 게 없다. 파극신권의 요결이다. 비록 완전한 요결은 아닐지라도 분명 도움이 될 터이니 암기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기묘했다.

분명 오늘 하루에 수많은 비전절학과 초식에 대하여 배웠는데도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았고 뇌리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마치 처음부터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우진은 익숙하게 파천쌍룡을 펼치고 있었다.

초식을 펼치면서 스스로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금민석은 수련을 하고 있는 우진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우진아. 너는 아직 너의 가능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사슴의 무리에서 살았었다고 해서 호랑이가 사슴이 될 수는 없지.’


금 장문인의 곁에 다가온 금단아는 파천쌍룡을 펼치고 있는 우진을 보며 크게 당황했다.


“굉장하군요. 저토록 완벽하게 파천쌍룡을 펼치다니······.”


우진이 초식을 펼치는 동선은 깔끔하면서도 날렵했고 완벽에 가까웠다.

뛰어난 것은 무릇 파극신권만이 아니었다.

파극이십사수는 부드러우면서도 유연해서 강맹한 공력이 날아와도 무리 없이 튕겨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 차라리 그냥 서 사제에게 지금 말해주는 게 어떨까요?”

“단아야.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귀한 보배가 될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나태해져 태만해지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거란다. 조금은 더 우진이를 믿고 지켜보도록 하자.”

“알겠어요, 아버지.”


섬전무쌍의 파천무극섬을 펼치고 있는 우진을 바라보던 단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버지의 말이 맞았군요.”

“그래. 우진이와 만나게 된 것도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인지도 모르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는 파극문.

지구 온난화로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세계.

우진과의 만남은 참으로 시기가 절묘했다.

완벽에 가깝게 섬전무쌍의 파천무극섬을 펼치고 있는 우진을 보며 금 장문인은 크게 소리쳤다.


“우진아! 그만하고 점심 먹고 하거라.”

“네! 스승님!”


무공 수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학창 시절 육상 종목에 조금 두각을 드러냈던 것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에 특출난 재능이 없었던 우진은 생각하는 대로 똑같이 초식이 펼쳐지자 너무나도 기쁘며 뿌듯했다.

금 장문인의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던 우진은 식탁에 차려져 있는 단출한 반찬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승님. 내일 제가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편한 대로 하거라.”

“서 사제! 그럼 내일 나도 같이 갈게.”

“그러시죠.”



다음 날 우진과 함께 죽염산을 내려온 단아는 산타페에 타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사제. 괜히 우리 때문에 돈 쓰지 않아도 돼. 금전이 필요하면 가문에 내려오는 영약을 팔면 되니까 괜히 신경 써줄 필요까진 없어.”

“아뇨. 그동안 저는 스승님께 그저 배우기만 했잖아요?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사문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후훗······ 사제는 친절하구나.”


단아의 결이 좋은 금빛 머리는 부드럽게 물결치고 있었고 몸에서는 싱그러운 초봄의 향기가 나고 있었다.

짙은 속눈썹과 맑고 깊은 흑빛 눈. 백옥처럼 하얀 피부. 오뚝한 코.

무척이나 빼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단아에게는 종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 하나 고치지 않은 자연스러운 미모에 우진은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를 운전하며 조금은 어색한 기류가 흐르자 우진은 라디오를 틀었다.


“금 사저. 근처에 혹시 괜찮은 마트가 있나요?”

“응. 길이라면 내가 알려줄게.”


우진은 차를 운전하며 가끔씩 방향을 알려주는 금 사저를 바라봤다.

단아는 얼굴이 상당히 앳돼서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아마 나보다는 어리겠지.’


우진의 나이는 올해로 서른.

단아가 우진보다는 어릴 게 분명했다.

비록 나이는 자신보다 어릴지라도 문파에 먼저 들어온 단아를 우진은 진심으로 사저로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단아가 검은 복면인으로부터 구해주지 않았다면 우진은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서 사제. 죽염산에 오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어?”

“식품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아!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본 것 같네.”

“아뇨. 괜찮아요. 사실 최근에 좋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만뒀습니다.”

“나는 아버지랑 어렸을 때부터 죽염산에서 무공을 수련했어.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마트에 오자 우진은 한우와 삼겹살을 잔뜩 카트에 담았다.


“사제! 그렇게 많이 안 사도 돼.”

“괜찮아요. 제가 조금 여유가 있거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럴 때는 돈이 많다는 게 참 여러모로 편리했다.

은행에 10억을 예금으로 넣어뒀기에 세금을 제외하더라도 우진은 3천이 넘는 이자를 해마다 받을 수가 있었다.

우진의 총 재산은 34억.

설령 하루에 100만 원을 쓴다고 하더라도 통장 잔고에는 별로 티도 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우진은 마트에 있는 꽃등심을 쓸어 담아서 전부 사가고 싶었다.

우진은 별다른 조건 없이 무공을 알려준 스승에게 어떻게든 꼭 보답하고 싶었다.

갖가지 식품을 샀다 보니 마트를 나온 뒤에는 차의 트렁크가 꽉 차버렸다.


“서 사제. 역시 너무 많이 산 거 아닐까?”

“아뇨! 수련하면서 제가 많이 먹고 싶어서 그래요.”


그제야 미안해하던 단아의 얼굴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알았어. 사제 덕분에 오늘 저녁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겠네.”


밝게 미소를 짓는 단아에게 따스한 1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에 우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저. 뭔가 사실 거 있어요?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 이걸로 충분해. 이제 돌아가자.”



죽염산에 돌아오자 금단아는 각종 식품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봉투를 양손에 3개씩 집어 들었다.


“사제. 괜찮으시겠어요?”

“이 정도야 가벼우니까 걱정할 거 없어.”


짐의 무게는 족히 잡아도 30kg은 넘을 듯 했으나 단아의 표정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굉장하다. 내력의 힘인가?’


“사제! 천천히 올라와! 나 먼저 돌아갈게!”


팟-!


단아가 백야낙일홍을 펼치며 순식간에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청난 속도로 멀어져가는 단아를 보며 우진은 침음했다.


‘굉장하네. 나도 빨리 저렇게 돼야 되는데.’


죽염산을 오르며 우진은 금 장문인이 알려줬던 요결을 떠올렸다.


‘푸른 창공을 새가 되어 날아간다······.’


백야낙일홍의 요결을 되뇌이며 우진은 무극일섬을 펼쳤다.


타타탓-.


우진의 동작은 깔끔하고 섬세했으나 아직 내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그런지 단아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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