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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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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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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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복권

DUMMY

복권.

복권이란 무엇인가?

한순간에 수많은 돈을 얻을 수 있는 운의 결정체이자 인생 한 방의 대명사다.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별다른 기대 없이 산다.

1등 당첨 확률이 1%도 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우진도 별다른 생각 없이 슈퍼마켓에서 복권을 사고 있었다.

서우진. 나이 30세.

여자친구가 없고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우진은 인생에 그다지 재밌는 게 없었다.

게임은 어렸을 때는 재밌었으나 서른이 되고 난 후로는 게임도 별로 재미없었다.

복권은 그저 오늘이 토요일이고 마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이 있었기에 나도 한 장 사볼까 싶은 마음에 사봤을 뿐이다.


‘큭. 1등이 될 리가 없지.’


집으로 돌아가며 우진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한없이 0%에 가까운 천문학적으로 희박한 확률.

오히려 1등에 당첨되는 게 더 이상한 제로에 가까운 확률.

그런 기적이 내게 일어난다고?

에이, 그럴 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우진의 인생은 운이 별로 좋지 않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은 대부분 속내가 시커먼 사악한 놈들 뿐이 없었고 우진을 이용해먹을 생각밖에 없었기에 우진은 일찌감치 지인들과 교류를 끊고 있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에고이스트다.

사회의 번영?

사회의 행복?

남들을 위한 인생?

대부분의 인간은 본래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배가 부르고 내 등이 따시면 그걸로 만족하고 가장 행복해하는 게 인간이다.


‘뭐, 만약 돈이 엄청 많아진다면 사람들에게 기부도 좀 하고 힘든 사람들 도와주는 것도 좋겠지만. 나한테 그럴 일이 뭐가 있겠어?’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식품 회사의 사무직으로 살고 있는 우진에게 특별한 행운은 너무나도 멀기만 했다.


“후우. 덥다, 더워.”


오늘은 2035년 11월 12일.

오후 2시의 날씨는 30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분명 이렇게 덥지 않았는데. 아니, 11월이면 조금 추울 정도였었는데.

지금은 덥다.

지구가 기어코 병들어버린 걸까?

요즘은 티비를 틀면 뉴스에서 기상 이변 속보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더니 아무래도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환경에 무신경했던 사회의 요인들도 요즘은 티비에 나와서 입만 열면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며 연설을 하고 있었다.


‘다들 말세라고 하더니. 이러다가 진짜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니야?’


이대로라면 내가 죽기 전까지 지구가 멀쩡할지 모르겠다.

무더운 날씨에 반팔 셔츠 옷깃을 붙잡고 거칠게 앞뒤로 움직이며 이마에 묻은 땀을 닦은 우진은 서둘러 자취방으로 향했다.



딸그락!


자취방에서 컵라면을 뜯어 먹으며 티비로 로또 복권 당첨 번호를 보던 우진의 손에서 젓가락이 떨어졌다.

젓가락이 밥상에서 굴러떨어지며 바닥으로 굴러갔건만 우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두근. 두근.


‘설마··· 설마······!’


번호가 익숙하다.

설마?

이게 가능한 건가?

갑자기 너무 놀라서 그런지 우진은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보였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덜덜 떨며 우진은 황급히 서랍에 처박아놨던 로또 복권을 꺼냈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고 확률은 1%도 되지 않았기에 대충 처박아놨던 로또 복권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허억······ 허억······.”


우진은 티비에 나오고 있는 번호를 재빨리 로또 복권의 번호와 비교해봤다.


“1, 32, 5, 7······.”


똑같다.

6자리 번호가 모두 똑같았다.


“크윽······ 커억!”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긴장으로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우진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흐······ 하하하!!”


평생 동안 가장 밑바닥에 쌓여있던 운이 폭발해버린 건가? 그동안 재수가 없었던 만큼 이번에 운이 좋았던 걸까?

가슴이 북받친다.






은행에서 당첨금을 수령한 우진은 복잡한 심경으로 통장에 적혀있는 액수를 확인했다.

34억.

세금을 제외하고 남은 돈이 34억이었다.


‘그래. 돈도 많이 생겼으니까 이제 좋은 일도 좀 해보자.’


우진은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을 위해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적십자 협회에 가서 5천만 원을 기부했다. 난치병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건 우진을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남을 도와준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구나.’


과거에는 여유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가장 급했었는데.

돈이 많아져서 그런지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지도 신경이 쓰였다.


‘여행이나 갈까?’


요즘 한창 이상 기후도 심하고 세계 곳곳에 재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는데 기왕이면 거금도 세계 정세가 더 나빠지기 전에 다 쓰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무더운 날씨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우진은 물끄러미 하얀 구름이 점점이 퍼져있는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대학생 시절 바빠서 하지 못했던 전국 여행.

이제는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해외 여행은 전국 여행이 끝나고 난 다음에 가도 충분하다.

자취방에 돌아오자 배낭에 짐을 싸고 텐트를 챙기던 우진은 푸른 하늘을 올려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행을 떠나기 좋은 날씨구나.”






강원도 변방의 산골 마을.

한적한 시골 마을의 굽이진 길을 산타페가 여유롭게 달리고 있었다.


“날씨 좋고! 바람 좋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우진은 더욱 힘차게 산타페의 엑셀을 밟았다.

차의 트렁크에는 캠핑을 위한 텐트와 음식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마을 뒤에는 대나무들로 꽉 차 있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죽염산.

언젠가 여유가 생긴다면 반드시 캠핑을 하러 오겠다고 예전부터 우진이 눈여겨봤던 산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진은 텐트 가방을 등에 메고 트렁크에서 족발과 치킨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꺼냈다.

안에 들어있는 게 많다 보니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읏차.”


좌우로 빽빽하게 우거진 대나무들 사이로 산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진은 녹빛 대나무의 정취와 푸른 하늘에 흩어져있는 구름들을 둘러보며 여유롭게 산을 올라갔다.


“아, 정말 덥네. 덥지만 않았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지구가 아프니 정말 큰일이다.

땀을 흘리며 산을 올라가던 우진은 멀리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에 잠시 산을 오르던 걸음을 멈췄다.


‘뭐지?’


캉! 카드득-!


금속이 둔탁한 무언가에 부딪치는 묵직한 소리가 우거진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엇이 부딪치는 소리인가?

모르겠다.

강렬한 소음에 우진은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꽤나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가 상당히 위협적이었으나 우진은 어느새 우거진 대나무 숲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조금만 보는 건 괜찮겠지?’


안으로 들어가던 우진은 멀리서 보이는 인영에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대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하얀 도복을 입은 금발의 여인과 구절편을 들고 있는 복면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참으로 기묘했다.

우진에게는 둘이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을 짓누르는 중압감.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긴장.

우진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여인과 복면인의 몸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 아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지금껏 현대인으로 살아온 우진의 상식으로 둘은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어떻게?

어떻게 현실에 저런 인간들이 존재하는 건가?


쐐액!


검은 복면을 쓴 괴한의 구절편이 엄청난 속도로 금발의 여인에게 날아갔다.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속도였다.

순간 금발의 여인의 몸이 어느덧 옆으로 이동해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것처럼 여인에게서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으며 두 눈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제기랄! 도망쳐야 돼!’


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렸다.

죽는다.

들킨다면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우진은 어금니를 부서져라 깨물며 고통으로 정신을 일깨웠다.

간신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뒤로 돌리며 우진은 미친듯이 반대쪽을 향해 달렸다.


“이런, 이런. 벌레가 한 마리 꼬여있었군?”


스스스스......


복면인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도망치려던 우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멈추세요! 그는 우리와 관련이 없어요!”

“멍청하군! 과거의 역사를 벌써 잊어버린 거냐? 이 놈은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


쐐액-!


눈앞이 번쩍인다.

우진은 타는 듯한 통증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커헉······?”


가슴에 사선으로 붉은 상처가 이어져 있었다.

상처를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붉은 핏물이 흘러나온다.


“쳇! 얕았나?”


별다른 무력이 없는 인간을 한 번에 끝내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복면인은 몹시 기분이 상해버렸다.

거칠게 복면인의 손에서 구절편이 독사처럼 우진의 심장을 노리고 뻗어갔다.

볼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없는 속도.


콰드득-!


찰나의 순간 우진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오던 구절편을 어느샌가 나타난 금발의 여인이 가로막고 있었다.

몹시 기묘한 동작으로 여인이 팔을 움직이자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던 구절편이 거짓말처럼 튕겨 나갔다.

비록 보지는 못했으나 우진은 자신의 앞을 막아주는 금발의 여인을 보며 그녀가 도와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힘없이 땅에 쓰러지는 우진의 시야로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은 속도로 서로 부딪치고 있는 금발의 여인과 복면인이 보였다.

둘의 움직임은 실로 놀라웠으며 보고 있으면 경외감이 들 정도로 신묘했으나 죽어가고 있으니 무엇보다도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씨발······ 어쩐지 요즘 운이 너무 좋았어······.’


기껏 복권 1등에 당첨됐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날카로운 파공음이 점차 아득해졌고 눈앞은 어두워졌다.



눈을 찌르는 양광에 우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낯선 나무로 이루어진 천장과 등으로 느껴지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


‘난······ 살아남은 건가?’


“정신이 좀 들어요?”

“윽······!”


몸을 일으키려던 우진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고통에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좀 더 누워있어요.”


도복을 입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 조심스럽게 우진을 침대에 눕혀줬다.

분명 복면인과 싸웠던 금발의 여인이었다.


“스승님! 깨어났어요!”


문 옆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도복을 입은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건강해 보이는구나.”

“다행히 독에 당하지는 않았나 봐요.”

“당신들은 누구죠?”


금발의 여인은 복잡한 얼굴로 우진을 내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줄 수 없어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노인은 팔짱을 끼고 차갑게 우진을 노려봤다.


“오늘 여기에서 봤던 건 모두 잊어버리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야.”


노인은 등을 돌리며 방 문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지금 노인이 나가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게 되리라는 걸 우진은 눈치챌 수 있었다.


쿵!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가려던 우진은 굴러 떨어지자 붕대에 붉은 핏물이 번지고 있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우진은 노인을 향해 절을 하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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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출진 24.04.21 60 1 12쪽
30 이면 24.04.15 66 1 11쪽
29 소나라의 왕녀 24.04.09 79 1 11쪽
28 아버지의 마음 24.03.20 118 1 12쪽
27 귀환 24.03.18 139 2 12쪽
26 다시 만난 처자 24.03.17 137 1 11쪽
25 병장과 상병과 일병 24.03.16 143 2 12쪽
24 빛의 마법사 24.03.05 148 1 11쪽
23 늦은 밤의 기나긴 대화 24.02.27 167 1 12쪽
22 장왕 24.02.24 188 0 12쪽
21 감기약 24.02.22 214 2 11쪽
20 기억의 편린 24.02.17 231 3 12쪽
19 세 가지 부류의 인간 24.02.15 256 2 12쪽
18 폭우가 지나간 자리 24.02.09 295 2 12쪽
17 간발의 차이 24.02.08 309 2 12쪽
16 살아남은 인간 24.02.07 339 4 11쪽
15 소문 24.02.05 370 2 12쪽
14 방주 점검 24.02.04 429 4 12쪽
13 목숨을 건 비무 24.02.03 447 4 12쪽
12 약탈의 시대 +2 24.02.02 533 3 12쪽
11 상승의 경지 +2 24.02.01 610 5 12쪽
10 비울수록 버릴수록 채워진다 24.01.31 62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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