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 죽이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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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1.19 12:33
최근연재일 :
2024.07.2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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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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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방주

DUMMY

괜히 은서의 말이 신경 쓰이자 몰두하던 무공 수련도 정신이 산만하여 전처럼 매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진은 전에 받았던 명함을 꺼내서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우진 씨! 드디어 제 말을 들을 생각이 드셨나요?


“일단 만나서 얘기하죠. 죽염산 근처에 있는 카페로 지금 올 수 있어요?”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사제. 누구야?”


옆에 있던 단아가 우진의 핸드폰 너머로 들리던 여자 목소리에 퉁명스럽게 바라봤다.


“환경 공학 박사인데 전에 만났을 때 저한테 인류에 대재앙이 온다는 특이한 말을 했었거든요. 이상하게 이 사람이 했던 말이 네 번이나 거의 정확히 맞아서 아무래도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구나.”


단아의 반응은 미묘했다.

신기하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살짝 섭섭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사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와.”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우진은 재빠르게 험준한 산길을 치달렸다.



죽염산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카페에 오자 먼저 와있던 은서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우진 씨!”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죠.”


카페에 들어가서 간단한 음료를 주문한 우진이 창가의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앉은 은서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진 씨.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솔직하게 말할게요. 죽염산에서 우진 씨 통장 잔고를 봤어요.”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에 우진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은서는 각오를 굳혔는지 우진의 눈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벙커를 만들어야 돼요. 지진에도 해일에도 견딜 수 있는 벙커가 필요해요.”

“얼마나 남았습니까?”

“네?”

“대재앙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죠?”


차가운 유리잔을 양손으로 그러잡으며 고개를 숙인 은서는 짙은 속눈썹 아래 흑빛 눈을 깜빡였다.


“1년 7개월 남았어요.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아마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어디까지 믿는 게 좋을까.

은서가 네 번이나 재난을 거의 정확히 맞췄던 걸 생각해보면 이제는 허언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에서 일어났던 재난과 앞으로 일어날 재난을 연구하는 것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어요.”


우진이 심중을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은서는 당황하면서도 우진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한참 은서의 눈을 바라보던 우진은 음료를 한 잔 마시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왜 하필 접니까? 다른 사람을 설득하면 될 텐데요?”

“가까운 박사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아요.”


고개를 숙이는 은서의 얼굴은 슬프고 씁쓸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벙커는 나중에 시간 나면 짓도록 하겠습니다. 만나서 즐거웠어요.”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서는 당황하며 황급히 우진의 앞을 막아섰다.


“우진 씨. 거대한 벙커를 지어보실 생각 없어요?”

“왜 굳이 그래야 되죠?”

“특수한 대형 벙커를 짓는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요.”


은서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각오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은서는 그동안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사람들을 원망하기는커녕 걱정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진은 자리에 앉으며 조금 더 은서와 대화를 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돈은 30억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은서 씨가 말하는 초대형 벙커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큰 돈은 갖고 있지 않아요.”


은서는 핸드폰을 꺼내서 가상 화폐 스택스를 보여줬다.


“돈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목돈만 충분하면 코인으로 자금을 부풀릴 수 있어요!”

“제정신입니까······?”

“저는 지난 10년 동안 기상 이변과 함께 스택스 코인을 연구했어요. 우진 씨. 지금 스택스 코인이 1,500원 이거든요? 오늘 스택스 코인이 450,000원이 될 거예요. 스택스 코인만 사면 자금 걱정은 모두 해결이라구요!”


우진은 잠시 동안 은서가 사실은 사기꾼이었던 게 아닐까 굉장히 의심이 들었다.


‘네 번이나 재난 이변을 거의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확률이 몇 프로나 될까?’


네 번의 재난을 맞춘다는 건 제로에 한없이 가까운 천문학적인 확률일 것이다.


“우진 씨. 세계가 대재앙으로 정부가 파괴되고 혼란에 빠진다면 돈이 많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5만 원짜리 지폐는 나중에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쓰고 버리는 휴지나 다름없어지겠죠.”


눈을 감고 우진은 깊게 고심했다.

확실히 사실이라면 은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지금도 심각한 지구 온난화로 세계 각지에서 계속해서 재난이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초유의 대재앙이 나타난다면 돈이라는 건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환경공학 박사인 은서 씨가 코인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하는 건 믿기 어렵네요.”

“천재에게 불가능은 없어요.”


아무래도 은서는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이걸 믿어, 말아?’


사실 무공을 익히게 되면서 우진은 돈에 예전만큼은 집착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돈보다도 상승의 경지로 향하여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게 더 중요했다.

결국 한숨을 쉬며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단, 1억은 남겨두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정말 잘 생각했어요, 우진 씨!”


만약 은서가 사기를 치는 거라면 우진은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반드시 전부 다 돌려받을 자신이 있었다.


“코인은 어떻게 사는 겁니까?”

“아! 제가 도와드릴게요!”


옆자리에 앉은 은서는 가까이 달라붙으며 우진의 스마트폰으로 코인 어플을 다운로드 받았다.

팔에 은서의 가슴이 닿는 게 느껴졌으나 우진은 모른 척 했다.

우진이 코인 어플로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끝내자 은서는 음봉과 양봉에 대해서 알려줬다.


“음봉은 말 그대로 그래프가 내려가는 걸 말해요. 양봉은 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는 거구요.”

“이거 입금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우진은 은서의 도움으로 원화 33억을 바이넌스에 입금할 수 있었다.

은서는 10년 전과는 다르게 원화를 바이넌스에 곧바로 입금할 수 있다고 우진에게 말해줬다.


“우진 씨. 1,450원에 매수를 걸어놔요.”


그래프는 쉬지 않고 변하고 있었고 매수와 매도의 붉고 파란 숫자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었다.

태어나서 코인을 처음 해봤기에 우진은 다소 혼란스러웠으나 차츰 평정을 되찾으며 33억 원 만큼 1,450원에 매수를 걸어놨다.

순간 그래프가 아래로 약간 내려갔고 순식간에 우진은 33억 원 만큼 스택스 코인을 매수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돈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프가 아래로 내려가면 우진의 자산은 내려갔고 그래프가 위로 상승하면 우진의 자산은 상승했다.

분명 실제 돈을 입금해서 코인을 매수했는데 디지털이라 그런지 게임 머니처럼 느껴졌다.


‘어?’


순간 꽤 큰 음봉이 떴다.

그래프가 갑작스럽게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스택스 코인이 1,041원이 되자 우진의 자산도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순식간에 9억이 넘는 돈이 마이너스가 돼버렸다.

서서히 우진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자 옆에 있던 은서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은서 씨. 미리 말해두는 거지만 만약 내게 사기를 치는 거라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괘, 괜찮아요! 이 정도 떨어질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엄청나게 거대한 양봉이 뜰 거예요!”


스택스 코인은 마치 병든 닭처럼 제대로 올라가질 못했고 미미하게 곡선을 그리던 그래프는 점차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씨발······.’


900원, 820원, 705원······.

스택스 코인이 700원이 되자 우진의 자산은 절반 근처로 떨어져 버렸다.


“후우······.”


뒤늦게나마 너무 섣부른 생각이었다며 우진은 자책했으나 이미 스택스 코인은 기운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며 우진은 거칠게 차가운 음료를 마셨다.

순식간에 16억이 넘는 손해를 봤다는 사실에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우진 씨!”


눈을 감고 있는 우진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은서는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우진 씨!”

“말 시키지 마세요.”

“이거 봐요! 올랐어요! 스택스 코인이 엄청나게 올랐다구요!”


눈을 뜬 우진은 당황하며 스마트폰의 그래프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양봉. 엄청난 양봉이 솟구치고 있었다.

스택스 코인은 440,000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겨우 700원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스택스 코인이 460,000원을 넘긴 순간 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진 씨! 지금이에요! 당장 다 팔아요!”


우진은 엄청난 속도로 갖고 있던 모든 코인을 팔아버렸다.

잠시 후, 우진이 모든 코인을 팔고 난 뒤에 스택스 코인은 엄청난 음봉과 함께 아래로 순식간에 내려갔다.

떨리는 손으로 바이넌스의 지갑에 들어간 우진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0의 향연을 세어보았다.


‘1조가 넘은 건가?’


1조 21억이 넘는 돈이 지갑에 들어와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비트코인의 호재와 극심한 기상 이변, 쏟아져 나오는 종말론으로 인한 큰 손들의 변덕으로 얻게 된 엄청난 수확이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마트에서 삼겹살 한 근을 보면서 전보다 2천 원이 올라서 망설이다가 결국 구매하지 않았던 우진은 바이넌스 지갑에 1조가 들어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진 씨. 이제 저를 믿으실 수 있겠어요?”


이쯤 되니 우진도 슬슬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서 씨 말이 맞았네요.”

“그것 봐요. 제 말이 맞았죠? 저 사기 치려고 이러는 거 아니니까 이제부터는 좀 더 저를 믿어주세요.”






우진은 죽염산 근처에 있는 분지를 구매했다.

10만 평이 넘는 땅은 제법 가격이 나갔으나 우진에게는 전혀 부담이 없었다.

땅의 구매가 끝나자 우진은 미국의 벙커 전문 회사인 쿠드라에 연락했다.

은서가 예전부터 계획했던 대로 미국과 한국의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벙커 건설이 시작되자 점차 돔 형태의 거대한 벙커가 뼈대를 갖춰갔다.

우진은 이제 은서를 확실히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생활비로 쓸 1억을 제외하고 나머지 재산의 전부를 벙커에 투자한 우진은 복잡한 심경으로 건설되고 있는 거대한 벙커를 바라봤다.


“우진 씨. 벙커 이름은 생각해놨어요?”


눈을 감고 고심하던 우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크(ark). 방주가 좋겠군요.”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방주가 우리들을 새로운 시대로 데려가 줄 거에요.”






2037년. 7월 3일.

방주가 완성됐다.

돔 형태의 거대한 벙커는 지하로 20층까지 이어져 있었고 자체 발전 시설과 수도 정화 시스템은 사람이 생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식량, 전기, 물.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벙커를 우진은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봤다.


“은서야. 데려올 사람은 정했어?”

“네. 다른 사람들은 회의적이라 부모님만 오실 것 같네요.”


은서가 말했던 대재앙까지 시간은 겨우 한 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은서가 전부터 알고 지냈던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은 대재앙이 오리라는 은서의 말을 믿어줬고 다음 주부터 방주에서 살기로 예약이 돼 있었다.

식량은 한정되어 있기에 방주의 정원은 100명이 한계였다.

설령 식량을 신경 쓰지 않고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받아주더라도 던바의 수에 따라 균형이 부서지게 될 확률이 높았다.



2037년. 7월 30일.

벙커에 83명의 사람들이 입주를 마쳤다.

금 장문인과 단아, 우진의 부모님, 은서의 부모님과 과학자, 기술자들과 가족들까지.

방주에 입주한 사람들 대부분은 각자 깔끔한 방에서 생활하면서도 여전히 은서의 말을 확실하게 믿지 못했다.

오직 우진과 은서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각 분야의 박사들만이 대재앙이 오리라는 은서의 말을 믿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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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0 g8******..
    작성일
    24.02.03 21:51
    No. 1

    자연재해야 그렇다해도 코인까지 예상을한다?ㄱ런천재가 혼자힘으로 벙커하나 못재어서 처음보는사람한테 부탁을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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