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점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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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환
작품등록일 :
2015.07.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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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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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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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헌터 (2)

DUMMY

“헌터인 네가 헌터를 잡겠다고?”


드디어 리니아가 말문을 열었다. 차분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음성이었다. 지금까진 미처 그걸 알아챌 여유가 없었는데, 비교적 평온한 상태에서 듣자 단순히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정해라, 청연아. 간신히 잡은 기회다.’


청연은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고 침착한 어투로 말했다.


“전 이젠 헌터가 아닙니다.”


리니아는 무슨 헛소리냐는 눈빛으로 청연을 바라봤다. 청연은 어느새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고 계속 말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전 헌터 협회에서도 탈퇴했습니다.”


정확히는 자신이 탈퇴한 게 아니라 쫓겨난 거지만. 어쨌든 지금 청연이 헌터가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왜?”

“그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왜?”


여기서 청연은 고개를 꿋꿋이 들고 당당히 대답했다.


“당신들을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정확히는 사냥하지 않은 게 아니라 버그 때문에 못한 거지만.


“왜?”


어쩌면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청연은 심호흡을 한 뒤 준비했던 말들을 꺼내려고 했다.


‘회의감이 들었다. 헌터들은 입장을 바꿔서 보면 단순한 침략자들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마정석 때문에 침략당하는 것 아닌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안의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 헌터 협회를 탈퇴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당신에게 계속 워프했다.’


…이런 식으로 명분과 당위성을 공고히 하려고 했던 청연은 입을 열기 직전, 리니아와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깊고, 흔들림이 전혀 없고, 따라서 속내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검은 눈동자.


그 순간, 청연은 준비했던 대사들을 머릿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렸다. 그리고 전부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버그 때문에요.”


리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연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진솔하고 가감 없는 말투로 털어놓았다.


‘이상하게 버그 때문에 자꾸 너 있는 대로만 온다. 근데 네가 날 보는 즉시 죽이기만 해서 도저히 다른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가 없었다. 근데 헌터 협회란 것들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버그도 안 고쳐주면서 빚더미만 떠안겼고, 헌터들은 도움을 청하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비웃고 조롱했다. 이놈들이 너무 얄미워서 복수해주고 싶고, 나도 여태까지 헌터 되려고 노력한 게 억울하고 보상받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너한테 붙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제발 나 좀 받아 달라.’


…라는 식으로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설명한 청연은 차분하게 리니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야기를 다 들은 리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니까 넌 지금 모욕당한 복수심 때문에 네 동족들 편을 들지 않고 헌터들을 사냥 하겠다 이건가?”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당한 건 10배로 갚아줘야 푹 잘 수 있는 성격이거든요. 또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초능력 각성 했는데 이걸로 노가다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이왕 능력 얻었다면 몬스터 대신 헌터라도 한 번 썰어봐야지요.”


청연의 딱딱했던 말투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바뀌어 있었다.


“참으로 천박하고 경박하고 저열하고 이기적인 생각이로군.”


리니아는 짐짓 꾸짖듯이 근엄하게 말했다. 하지만 곧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 솔직함이 지금은 마음에 든다.”


차갑던 눈매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리니아의 첫 말에 놀라 괜히 솔직하게 말했나 싶었던 청연은 이어진 뒷말에 다시 안심했다.


리니아는 왕좌에서 일어나 손을 슥 내저었다. 허공에 떠 있던 마력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고양이 같은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로 청연에게 다가갔다. 청연은 리니아가 가까이 접근해오자 흠칫했지만 뒤로 물러서진 않았다. 리니아는 청연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내놔 보거라.”

“?”

“너희 헌터들이 들고 다니는 작은 기계 말이다.”


렉스를 말하는 걸 깨달은 청연은 잽싸게 꺼내 리니아에게 건넸다. 렉스를 건네며 잠깐 접촉한 리니아의 손은 예상외로 굉장히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청연은 상황에 맞지 않게 괜히 쑥스러워졌다. 그런 청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리니아는 받아든 렉스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나저나 렉스도 알고 있었나?’


하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헌터들이 그렇게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 거리는데.


“진짜로군.”


리니아는 청연이 모르는 뭔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렉스를 잡고 있던 손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몇 번 반짝이던 빛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받아.”


리니아는 렉스를 다시 청연에게 휙 던져줬다. 방금 반짝이는 빛에 정신을 쏟고 있던 청연은 간신히 놓치지 않고 렉스를 받았다. 그 사이 다시 왕좌로 돌아가 앉은 리니아는 팔걸이에 비스듬히 기대어 청연을 관찰하듯 물끄러미 쳐다봤다. 청연도 피하지 않고 리니아를 똑바로 마주봤다.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리니아가 잠깐의 정적을 깨고 물었다. 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네가 이곳에 자꾸 오는 것은 순전히 버그 때문이라는 거지?”

“예.”

“그 버그가 왜 발생했는지도 모르고?”

“예.”

“아까 왜 거짓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지?”


허를 찌르는 기습적인 질문이었지만 청연은 예상했다는 듯,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선선히 대답했다.


“이렇게 걸릴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또…”


여기서 청연은 약간 머뭇거리다 말했다.


“리니아님이 생각 외로 진중하게 제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시더라고요. 제가 말한 헌터 협회나 헌터들이랑은 전혀 다르게요. 그런 분한테 거짓말하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리니아는 의아해했다.


“마음도 읽을 줄 아나? 어째서 내가 네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고 생각했지?”


청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님 말고요. 어쨌든 첫 번째 이유만으로도 제가 솔직해지기엔 충분하니까요. 두 번째 이유는 그냥 덤이었죠.”


그 말에 리니아는 잠시 질문을 멈추고 미소 지었다. 아까의 냉랭했던 미소와는 달리,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미소였다. 그걸 본 청연의 가슴이 또 다시 두근거렸다.


“정말 솔직하군. 원래 그런 성격 같진 않아 보인다만.”

“거짓말이 통하는 상대와 통하지 않는 상대 정도는 구분할 줄 압니다.”


리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마지막 질문이다.”


대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세 번째 선택지가 가장 좋고, 세 가지 질문이 있다면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청연은 바싹 긴장해서 리니아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리니아는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 전엔 왜 홀랑 벗고 나타난 거지?”

“…그, 그건!”

“나조차도 약간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죽여 버렸을 정도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청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청연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리니아도 다시 의심의 눈으로 청연을 노려봤다. 청연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 이것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리니아는 처음으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너를 신뢰해도 되는지 갑자기 심히 염려되기 시작했다.”


청연은 창피함에 대꾸도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돌아가면 세연이를 다시 한 번 족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꺼낸 말과는 달리 리니아는 부끄러워하는 청연을 되려 재밌어하는 기색이었다.


“네가 어떤 인간인지 대략적으로 알 것 같다.”


고작 이걸로 뭘 알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리니아의 질문은 다 끝난 것 같았다. 청연은 고개를 들어 초조하게 리니아의 최종 통보를 기다렸다.


리니아는 다시 무감정한 얼굴로 돌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네 부탁을 들어주겠다.”


‘아싸!’


청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가 다시 시무룩해졌다. 청연은 역시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직 나는 네 능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아는 거라곤 네가 1렙이고 단 한 번도 실전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여기서 잠시 말을 끊은 리니아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려 총구처럼 청연을 겨눴다.


“정말 네 장담처럼 헌터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지, 한 번 시험해봐야겠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가락 끝에서 빛이 번뜩였다. 말에 대답할 시간 따윈 전혀 없었다. 청연은 렉스와는 전혀 다른,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을 받으며 워프했다.



***



“...더헉!”


누워있던 청연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허겁지겁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리니아의 방에 있었는데 어느새 공간이 바뀌어 있었다. 지금 청연이 있는 곳은 초록색 잔디가 고르게 퍼져있는, 윈도우 배경화면으로 쓰기 딱 좋은 넓은 벌판이었다.


‘여기는 또 어디야?’


청연의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때마침 ‘띠리링’ 하는 소리가 바지 주머니 쪽에서 들렸다. 렉스에 메시지가 왔다는 벨소리였다. 청연은 렉스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퀘스트 :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리니아의 탑 가장 아래층입니다. 리니아님은 당신이 정말 던전의 헌터들을 쫓아낼 능력이 있나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그녀에게 당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십시오.


1. 헌터 40마리 처치[현재 처치한 헌터:0]

2. 마정석 200g 모으기[현재 모은 마정석:0]


※둘 중 하나만 완수해도 퀘스트는 완료됩니다.』


메시지를 다 읽은 청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아니, 무슨 이렇게 갑자기…”


드디어 처음으로 리니아의 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수준에 맞는 던전에 오게 됐다. 하지만 꿈에도 그리던 초보 존이지만 청연은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지금 청연의 모든 신경은 퀘스트 내용에 집중되어 있었다. 청연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아무 것도 없는 맨몸으로 뭘 어쩌라고?”


작가의말

비축분 좀 만들어놓고 올릴 걸...하루 써서 하루 올리기 바빠서 허덕대네요 ㅠㅠ


재밌게 보셨다면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댓글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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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헌터를 낚는 어부가 되거라 (2) +43 15.08.11 18,196 41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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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헌터 헌터 (3) +25 15.08.06 20,498 396 9쪽
» 헌터 헌터 (2) +35 15.08.05 20,896 429 10쪽
9 헌터 헌터 (1) +23 15.08.04 21,040 423 7쪽
8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2) +36 15.08.03 21,004 385 11쪽
7 마왕에게 살아남는 방법! (1) +28 15.08.01 20,890 409 10쪽
6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2) +28 15.07.31 20,720 39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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