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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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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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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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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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명가(名家)

DUMMY

명가(名家)의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 문파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림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갖추게 되는 것이 바로 그 품격이다.


아무리 분노에 몸을 지배당해도 그의 몸에 배어버린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술을 먹고 수행에서 멀어져도 마음에서 무공이 사라져도 한번 쌓아올린 성은 한 번에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삼범.


그가 제대로 된 무공 수련을 하지 않은 것은 십년도 더 된 일이었지만 그의 검은 더할 나위 없이 유려했다.


마치 드높은 하늘에서 나는 매가 먹이를 노리듯이 하강하는 것처럼 그의 검은 용운휘를 노리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흐음.’


그런 하삼범의 검을 보며 용운휘는 나름대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검을 마주대면서 하삼범의 지금 상태가 어떠한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저 마음만이 홀로 날뛰는 다 늙은 살쾡이.


그것이 용운휘가 느낀 감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십이사도 중 하나인 사도명 이상으로 다 늙어버려 손톱도 다 빠진 짐승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수백 년에 걸쳐 쌓아올린 유산. 그것은 분명 하삼범의 몸 안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용운휘가 최선을 다해 휘두른 검격은 아니었지만 이어서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보이는 상대방의 반응 덕분에 초식의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지질 않았다.


‘뭐지...’


아주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흐름이 계속해서 끊어지고 있었다.


아주 잠깐 기세를 타고 초식을 이어나가려고 하면 상대방이 그것을 바로 알았다는 듯이 끊어버린다.


특유의 호흡이랄까.


성가시지만...


“재미있군.”


“재미?”


하삼범의 입이 열렸다.


“그래. 재미.”


“하...”


수십 초를 주고받는 동안 하삼범의 몸에서 끓어올랐던 격정은 이미 검과 땀 속에 묻어나와 사라진지 오래.


“네 놈 따위가 내 검을, 점창을 평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삼범이 다시 검을 고쳐 잡고 달려들었다.


챙챙!


서로의 검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이상하군. 상대의 반응을 모두 예상한 것처럼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것뿐만이 아냐.’


흐름을 타고 상대의 몸에 파고든 순간, 상대 특유의 호흡에 따라 자신의 공격흐름은 철저히 분쇄되고 있었다.


상대가 딱히 열과 성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었다.


용운휘는 처음으로 맞이한 명문의 힘이라는 것에 강렬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렇게 치고 나간다면 어떻게? 이것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그를 부채질했다.


어떻게 보면 양측 간에 이해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는 절묘한 상태였다.


상대가 보이는 특유의 호흡을 이해하려는 용운휘와 어떻게든 예전의 감각을 되찾으려고 하는 하삼범 사이의 평형 상태.


하삼범도 하삼범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마음속에서 검을 떠났다고는 하나 일이 이렇게 흐를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미 자신이 펼친 초식을 헤아려보면 오십 초식을 넘어섰다. 더군다나 지금 팔팔하게 날뛰고 있는 상대는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의 검에 실린 진기라면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 충분히 내상을 입고 나가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용운휘에게서 느껴지는 기세 따윈 그저 평범한 수준.


헌데 어째서인지 자신의 경력을 모조리 뿌리치고 날카로운 검을 날려 오고 있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검은 마치 검무와도 같았고, 때때로 파고드는 검은 무겁고도 빨랐다. 처음 상대의 검격을 받았을 때는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그 때에는 몸이 너무 녹슬었다 싶었지만 점점 깨어나는 자신의 몸과 무공에도 상대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녹슬대로 녹슬어버린 자신과는 달리 상대방은 어떻게 보면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상태. 물론 무공의 완성이란 것은 한없이 멀고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진다곤 하지만 젊음이란 특권과도 같은 것이다. 그 특유의 젊음은 때론 알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기에 지금의 그는 결코 방심하지는 않았다.


하삼범은 부딪친 검을 강하게 밀어내 서로 간의 간격을 벌렸다.


“설마 하니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가?”


용운휘는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조금 더 보고 싶은 검이 끊긴 까닭에 흥이 식은 탓이었다.


“하지만 역시...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풋!”


하삼범의 말을 들은 곽지성은 작게 뿜었다. 사태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그이기에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라고 생각하느냐?”


“글쎄?”


“너와 나의 차이. 그것을 결코 젊음에서 나오는 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것이다. 유구한 시간 속에서 쌓인 명문의 힘이란 시골의 삼류떨거지 문파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그래?”


용운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모를 리 없을 텐데. 너의 그 검무는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네가 지금까지 명성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네 무공이 생소하기 때문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후우...”


용운휘가 한숨을 내뱉으며 하삼범에게 다가갔다. 약간, 아니 상당히 머리에 열이 오른 그였다.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그럼...그 잘난 명문께서 얼마나 버티는지 볼까.”


용운휘가 앞으로 몸을 날렸다. 용운휘가 검을 휘둘렀다.


‘빠...빨라?’


채앵!


“큽!!”


용운휘가 휘두른 일격에 하삼범은 양손으로 검을 부여잡으며 간신히 막아내었다. 분명 한손으로 막아내었다면 검을 놓쳤을 상황이었다.


‘이...이게...’


갑작스런 변모에 하삼범은 당황했지만 그 당황을 떨쳐내기도 전에 용운휘의 검이 재차 날아들었다.


카앙!!

“핫.”


그는 허리를 뒤로 젖혀 검을 간신히 피해냈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허리는 물론 호흡이 끊겨 허리와 폐 양 쪽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후우...후우...후우...”


‘이게 도대체...어떻게...’


처음의 일격에 당황했지만 분명 그 정도라면 자신의 감각과 무공만 깨어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상대였다. 산서같은 시골이라지만 어째서 명성을 얻었는지는 물론 군사가 부른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군사와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몸을 깨우고 있던 참인데...이게 뭐란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이런...”


“어때?”


하삼범의 중얼거림에 용운휘가 말을 걸었다.


“...”


“아직 할 만한가?”


“...물론이다!!”


잠시 망설이던 하삼범이 외쳤다. 곧 죽어도 결코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마음에서 나온 외침.


자신이 진다니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의 패배는 사문의 패배와도 같았다. 이름도 안 알려진 시골의 문파에 구파일방에 속한 점창파가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우...후우...”


잠시 만들어진 대치중에 하삼범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감히...감히...”


“허영에 빠져들었군.”


“뭐?!”


“최소한 싸우기 전에 한 번 죽어버린 몸을 깨우고 왔어야지.”“...”


정곡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날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흔들.


하삼범이 쥐고 있던 검이 한번 흔들거렸다. 용운휘의 말에 하삼범의 손이 반응했다. 그의 손아귀가 저절로 꿈틀거린 것은 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이 홀로 반응한 것.


무엇 때문에 수십 년의 고련을 거쳐 왔던가.


무인으로서의 살아왔던 몸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끓어오르고 있었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지? 그 잘난 점창의 무인께서?”


“닥쳐라. 네놈같은 삼류 문파의 버러지가 입에 담을 이름이 아니다!!”


스우우우우우우.


하삼범이 억지로 진기를 끌어올렸다. 살짝 진탕된 속으로 진기를 끌어올리니 목에서 피가 솟구쳤지만 그런 것은 지금의 그에게 있어 문제가 아니었다.


용운휘는 가만히 서서 상대가 진기를 끌어올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하고 싶어지는군.”


“?!”


듣고 있던 곽지성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자신이 지켜본 바로는 좀 전에 펼쳤던 용운휘의 초식은 충분히 빠르고 강했다. 자신이 지켜본 그의 실력이라면 거의 한계를 이끌어냈다고 봐도 좋을 수준의 위력이었다.


‘더 이상...뭘 보여줄 게 있다고?’


황산에서 십이 사도를 쓰러트릴 때 보여준 힘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좀 전의 초식과 비교했을 때 딱히 큰 차가 있진 않았다.


‘허세인가?’


곽지성의 뇌리에 한순간 허세가 떠올랐지만 이내 사라졌다.


‘아니, 아니야. 자신이 유리한데 그런 걸 내보일 녀석이 아니지.’


곽지성은 의아함과 기대를 동시에 품은 채 용운휘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충분히 기를 끌어올린 하삼범이 발을 내디디자 용운휘도 움직였다. 하삼범의 최고조에 오른 사일검법을 펼치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력의 검법으로 변모했다. 그의 별호가 어째서 응조검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빠른 검에 호응하기라도 한 듯 용운휘의 검 또한 영활히 움직였다.


‘마...맙소사.’


안법으로 용운휘의 검 끝을 유심히 지켜보던 곽지성은 놀랐다.


‘속도가 올라갔잖아.’


용운휘의 검은 분명 지금까지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 녀석은 지금까지 전력을 다 한 게 아니었나?’


지켜보던 곽지성의 손이 불끈 쥐어졌다. 곽지성은 불끈 쥔 손을 올려 잠시 쥐켜보다 손을 풀었다.


자신과 용운휘의 차. 역량의 차가 얼마인지를 깨닫자 불타올랐던 전의가 갑자기 사라진 탓이었다.



점점 빨라지던 두 개의 검은 곽지성이 잠시 보지 않은 새 점입가경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일검법으로 잠시 우세를 점하는가 싶었던 하삼범은 승부를 볼 요량으로 사일검법의 절초들을 펼쳤다.


대예사일(大羿射日)에 이어 예사십일(羿射十日),사양무광(斜陽無光)까지 이른 사일검법의 정화(精華)가 담긴 초식들은 그의 전성기에 비추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지금만큼은 그의 모습은 매가 아니라 신화 속의 신 예(羿)와도 같았다. 문파의 자존심이 걸린 명문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그가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이다.


상대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예사십일이 연거푸 빗나갔다. 그것은 하삼범의 탓이 아니라 용운휘가 벌인 일이었다.


용운휘가 쌍룡산산(雙龍刪山)을 펼치자마자 이십여 줄기의 검영이 예사십일을 전부 막아낼 뿐만 아니라 하삼범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크아아아아아!!!”


여기가 승부의 갈림처라는 것을 깨달은 하삼범이 자신의 경력을 모두 검에 실어 초식을 펼쳤다. 허나 상대가 펼치는 검영의 기세는 가공스럽기 짝이 없어 자신의 검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발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그럼에도 상대의 검세를 피해낼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수없이 펼쳐졌던 검영이 한데 뭉쳐지며 공간과 시간을 갈랐다.


마치 시간을 가르는 듯한 그 일격에 하삼범의 검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캉!


하삼범의 잘린 검은 튕겨져 수련장의 벽에 박혔다. 또한 그의 목덜이 밑에는 용운휘의 검이 파고 든 채 멈춰서 있었다.


“...”


용운휘는 물끄러미 하삼범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내가...졌다.”


명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남자가 자신의 자부심을 버리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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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독대 +1 24.06.03 353 13 11쪽
» 61화 명가(名家) +1 24.06.01 356 13 12쪽
60 60화 자충수 +1 24.05.31 396 12 11쪽
59 59화 무림맹의 회의 +2 24.05.30 389 13 12쪽
58 58화 일월신교의 행방 +1 24.05.29 426 14 12쪽
57 57화 검강 +1 24.05.28 444 14 12쪽
56 56화 본 모습 +2 24.05.25 423 19 11쪽
55 55화 탐영혼륜공(貪嬰渾淪功) +1 24.05.24 453 15 12쪽
54 54화 마공 +1 24.05.23 451 18 15쪽
53 53화 사로잡히다 +1 24.05.21 455 15 12쪽
52 52화 일월신교의 난입 +1 24.05.20 467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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