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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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최근연재일 :
2024.07.2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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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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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화 비무 (2)

DUMMY

“왜 서하검기였더냐.”


곡후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평생에 걸쳐 닦아온 자신의 무가 무시 받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의 검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검기혼탈무를 사용했으면 될 것이 아닌가.


아무리 평생에 걸친 문파를 둘로 갈라놓는 것을 방관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자신의 죄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들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하늘을 향해 침을 뱉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곡후가 어렵사리 물었다.


“제가 도리어 묻고 싶군요. 본문의 제자가 본문의 검을 쓰는 게 문제가 됩니까?”


“하......하하...하하하.”


곡후의 웃음소리가 비무장에 나직이 울려 퍼졌다.


“그래...그랬지. 모두가 하나인 것을.....왜들 그리 나누고자 했는지...”


곡후가 부셔진 자신의 검의 파편을 하나둘 주워 담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백노경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숙.”


승패가 어찌되었든 자신의 파벌 중 가장 어른인 이의 승부였다. 게다가 백노경은 그의 패배를 추궁할 마음도 없었다. 패배는 그저 상대가 의외의 전술을 골라왔기 때문이지, 실력 때문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더욱 그러했다.


“......”


하지만 곡후는 그런 백노경을 힐끗 보고는 원래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아닌 악령화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잠시 잘못된 길을 갔었던 모양이다.”


“사숙?”


백노경이 대경실색해 곡후를 불렀다. 허나 곡후와 악령화는 그런 백노경은 아랑곳없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악령화는 곡후가 고개를 숙이자마자 일어서서 곡후의 말을 받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악령화가 곡후에게 물었다.


“잘못된 길을 가던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단지 하나만....하나만 알아다오.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검기혼탈무를 원망하거다 했던 적은 없다. 그저 문파의 생명력을 위해선 서하검기가 뛰어날 거라는 마음에서 행한 일이라는 것을.


악령화는 곡후의 진심어린 고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악령화는 다시 자리에 앉고 곡후는 그런 그녀의 뒤로 걸어가 섰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백노경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사숙!!”

곡후는 그런 백노경의 외침을 평온한 얼굴로 듣고는 입을 열었다.


“귀 안 먹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제가 패배를 책망하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그러든 말든 그것은 이제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 그럼 저 애송이에게 졌다고 냉큼 혼탈무 쪽에 붙는 겁니까. 사숙이 그러고도 이 문파의 남자 중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놈이야말로 이상하구나. 검기혼탈무든 서하검기든 모두 이 문파에 속한 것이거늘. 게다가 나는 평생을 닦아온 검으로 도전했고 그리고 패배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느냐? 무인이 자신의 검을 걸고 졌거늘.”


“......사숙. 정말 이러실 겁니까? 설사 사숙께서 혼탈무에게서 어떠한 의미를 새로 발견했다고 해도! 이렇게 문파를 휘저어 놓는다면 문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럼 네놈이 일로 와서 고개를 숙이면 되겠구나.”


뿌드드드드득.


백노경이 이가 부러지도록 갈고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의자가 부러질 것처럼 난폭하게 말이다.


“다음!”


백노경은 고개를 돌려 다음 대전 상대에게 말했다. 백노경이 말한 상대는 형지호였다. 그는 백노경의 사제로 사형제 중에는 셋째 되는 이였다.


그는 백노경의 시선이 닿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백노경 또한 그에게 특별히 할 말은 없었다.


그는 과묵하지만 그렇기에 믿을 수 있는 상대였다. 언제나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사제였기에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채앵.


형지호는 비무장에 오르자마 검을 빼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용운휘의 인사에 돌아온 것은 그저 검의 흔들림이었다. 형지호의 검의 마치 인사를 하듯 한번 내려가고는 다시 올라왔다.

‘말은 필요 없다 이건가.’


용운휘 또한 쥐고 있던 검을 다시 들어올렸다. 그런 용운휘의 뇌리에 악령화와 홍령의 경고가 스쳤다.


‘가장 조심해야 할 이 였던가?’


홍령과 악령화의 걱정과 경고는 결코 무리도 아니었다. 형지호는 문파 내에서 가장 우직하게 서하검기를 수련해온 자. 낮이고 밤이고, 비가 오던 눈이 오던 우직하게 검을 휘두른 자였다.


백노경 또한 내력의 심유함으로는 그에겐 내심 한수 접어줄 정도라 그에 대한 믿음은 확실했다. 비록 초식의 운용의 뒤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 경우엔 이점이 된다고 생각한 백노경은 내심 승리를 점쳤다.


‘저 팔푼이를 보는 것도 여기까지다.’


비록 이런 기회를 준 고마운 놈이기도 했지만, 곡후가 떠나게 되니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진 백노경이었다.


용운휘는 사저와 사고의 경고에 따라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먼저 공격한 것은 형지호였다.


형지호가 먼저 꺼내든 것은 검초제일(劍初第一)이었다. 사문의 누구나가 아는 서하검기의 기본초식이자 기수식이었다. 허나 그의 손안에서 펼쳐지자 여느때의 초식과 달리 강맹함이 묻어나왔다.


단 하나의 초식을 꾸준히 갈고 닦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형지호였다.


‘웃.’


검초를 받은 용운휘는 자신의 사저와 사고가 어째서 경고를 했는가를 확실히 이해했다. 단 하나의 초식을 받았을 뿐인데도 형지호에 대한 깊은 인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치 우직하게 쌓아 올린 돌담같군.’


그것이 용운휘가 찰나에 느낀 인상이었다. 거대한 돌담을 쌓아올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뭐....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아니지만.’


돌담이 완성되었다면 모를까. 아직까지 미완성의 돌담이라면 치고 들어갈 구석은 얼마든지 있었다. 용운휘는 순식간에 이어지는 초식들을 받아내며 그리 생각했다.


용운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였다. 형지호의 초식은 하나하나가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완성도였지만, 그를 잇는 연계의 방식은 매우 조잡했다. 너무 우직했기 때문일까? 하나의 초식만을 따로 떼어내 익히는 것은 벽력일무문의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지만, 하나의 검무로서 이어질 때는 오히려 그 하나의 완성도가 빛을 잃고 있었다.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기에, 하나의 검무로서 성립되기 어려운 조잡한 검초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초식과 초식의 사이에 큰 빈틈이 보이자, 용운휘가 뛰어들었다.


‘지금!!!’


카앙!!


서로의 검이 부딪쳐 불꽃을 토해냈다.


“?!”


부딪침과 동시에 용운휘의 발이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후우.....위험했군.’


용운휘는 손에 닿은 감촉을 느낀 그 순간 내기를 운용해 충격을 부드럽게 흘렸음에도 뒤로 밀려났다.


‘이빨을 숨기고 있었던가?’


내심 놀란 용운휘가 다시 검을 단단히 쥐었다. 용운휘가 경각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금의 검초는 그만큼 위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검초는 형지호가 특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닦아온 검초였다.


서하검기 중 몇 안 되는 방어 초식 역린추혼(逆鱗追魂). 그것을 수없이 닦아온 형지호였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운용력과 판단력이었지 결코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결점을 깨달은 그가 그 부분을 그냥 내버려 둘 리는 만무했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길. 방어 초식의 연계만을 부단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얼마 전 결실을 맺어 어떤 초식에서든 역린추혼(逆鱗追魂)을 부드럽게 잇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비록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어떤 상황이든 어떤 초식에서든 방어초식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결코 지지는 않으리라는 계산 하에서 만들어진 싸움 방식이었다.


그렇게 상대가 이빨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용운휘는 역린추혼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검을 펼쳤다. 그렇게 삼십여 초식을 주고받고 나서야 용운휘는 형지호의 전술을 이해했다.


‘방어 초식뿐이군.’


형지호의 전술은 지구전이었다. 검으로 상대를 펼쳐 제압할 수 없다면 인내심과 두터운 내기로 승부를 내고자 하는 소모적인 방법.


용운휘는 두터운 돌담을 흔들기 위해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카앙!!


그리고 그것을 바로 앞에 있는 형지호가 가장 먼저 깨달았다.


‘읔.......크....’


지금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던 초식이 손에 무겁게 남아 울렸다.


‘검기혼탈무인가? 바라던 바다!’


애초에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가장 오래 검을 닦아온 사숙이 패배할 때부터 형지호는 자신의 패배를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허나 진다고 해도 그냥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형지호의 각오였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상대의 전력을, 내기를 깎아놓기 위한 버림패.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형지호이기에 꺾이지 않은 채 방어했다.


허나 아무리 두터움 돌담이라고 해도 거센 파도에는 흔들릴 수 있는 법. 그가 아무리 검세를 촘촘히 휘둘러도 점점 빨라지는 용운휘의 검에 빈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후우웅! 쩌엉!


용운휘가 마음먹고 휘두른 일검에 형지호가 검 채로 밀려났다.


“크으읔.”


자신도 한순간 눈을 감아버릴 정도의 검압. 형지호에게 암흑이 찾아왔음에도 용운휘의 검은 계속 움직였다.


슈와아악.


한 곳에서 시작된 검초가 네 갈래로 나뉘어 형지호의 상반신을 조이듯이 공격해 들어갔다. 막 눈을 뜬 형지호는 그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피부로 즉시 깨달았다. 막아야 한다는 것을.


형지호가 역린추혼을 펼치기 위해 검을 중단으로 올리자 순식간에 검초가 날아들었다.


뿌와아아아악.


소리는 단 한번이었지만 수 차례의 검격이 그의 상반신을 두들겼다. 선혈이 솟구쳤다. 그나마 용운휘가 꺼내든 가검이 몽둥이처럼 둥글었기에 찢어진 곳은 있어도 베인 곳은 없었다.


비명소리도 내지 못한 채 피를 흘리는 형지호에게 마지막 일격이 꽂혔다.


채앵!!


강맹한 찌르기가 형지호의 몸을 검과 함께 날려보냈다. 뒤로 날아간 형지호의 신형은 삼장을 날아가고 나서야 바닥에 닿았다.


“지호야!!”


백노경이 즉시 일어나 형지호에게로 달려갔다.


“허....헉....”


형지호는 숨을 몰아쉬었다.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순간적으로 날아든 검초의 위력에 놀란 탓이었다.


“죄....죄송..”


“아니...아니다. 너는 할 만큼 했다. 충분해.”


백노경은 형지호의 손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겉치레가 아닌 본심이었다. 비록 승부의 결과는 자신의 희망과는 달랐지만 충분했다.

용운휘에게서 검기혼탈무의 초식을 이끌어낸 것이다. 어디까지 운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다섯 개의 초식을 사용했을 터. 그 정도면 충분했다.


형지호가 패배하고도 비무는 당연히 계속 되었다.


허나 형지호 다음에 이어지는 이들은 모두 형지호가 패배하는 것을 보고 몸이 얼어붙었는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몇 초식을 펼쳐내지도 못하고 모두 비무장에서 내려갔다.


하나같이 일류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이들이었건만 순식간에 네 명이나 패배한 것이다.


특히나 가관인 것이 검수임에도 검을 놓친 채, 새빨간 얼굴로 항복한 왕교운이었다. 그렇게 사숙과 사제는 물론 사매까지 패배해 비무장을 내려오자 백노경은 더할 나위 없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음은 나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그의 참전이었다.


작가의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오늘 중으로 한편 더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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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7) +3 24.04.02 1,387 22 11쪽
19 19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6) +3 24.04.01 1,423 24 11쪽
18 18화 강대한 사라자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5) +3 24.03.31 1,496 21 12쪽
17 17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4) +3 24.03.30 1,559 23 11쪽
16 16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3) +3 24.03.27 1,602 22 12쪽
15 15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2) +3 24.03.26 1,835 26 14쪽
14 14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1) +3 24.03.25 2,007 31 11쪽
13 13화 회주 하후악 +3 24.03.24 2,034 36 12쪽
12 12화 순청지기(純淸之氣) +3 24.03.23 2,091 40 11쪽
11 11화 위기 +5 24.03.21 2,048 36 14쪽
10 10화 습격 +3 24.03.20 2,172 40 12쪽
9 9화 운명 +4 24.03.18 2,312 41 12쪽
8 8화 비무 (3) +3 24.03.17 2,268 39 12쪽
» 7화 비무 (2) +5 24.03.17 2,286 36 12쪽
6 6화 비무 (1) +8 24.03.15 2,441 37 13쪽
5 5화 깨어진 틈 +6 24.03.13 2,665 40 12쪽
4 4화 무아시경 +5 24.03.12 2,936 37 11쪽
3 3화 파벌싸움 +6 24.03.11 3,280 36 12쪽
2 2화 새로운 육체 +6 24.03.10 3,929 42 11쪽
1 1화 그저 다른 풍경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10 24.03.10 4,816 5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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