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했더니 검신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봉미
작품등록일 :
2024.03.10 12:07
최근연재일 :
2024.07.22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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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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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비무 (3)

DUMMY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저 차가운 공기의 날씨가 변해 하늘이 하얗게 물들어간다. 허나 그럼에도 비무장은 멈추지 않았다.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다.


“설마. 네가 여기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


용운휘는 딱히 아무런 말도 없었다. 특별히 그와 말을 주고받을 이유도, 마음도 없었기에.


“.....나와는 나눌 말도 없다는 거냐? 하.....”


백노경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부터였느냐?”

“....?”


난데없는 말에 용운휘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기억을 잃어버린 놈이 이런 무위를 펼칠 수는 없다. 언제부터였나? 문파에 들어왔을 때? 그도 아니면 무공을 배웠을 때?”


‘뭐......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용운휘는 비무장 아래의 백노경을 쳐다보며 그리 생각했다.


“그저 멍청이인줄 알았더니......아주 무서운 놈이었구나. 내가 너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아니지, 아니야. 이 문파의 모두가 네 놈에게 속은 것과 다름이 없구나.”


백노경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이미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실패를 상대를 추켜세움으로써 위안삼기 위함이었을까? 둘 다일 것이다. 허나 이 경우에는 그 어느 쪽이던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백노경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의 파벌이 전부 쓰러진 것도 아닐뿐더러, 그 자신은 아직 나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비무장에 쓰러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용운휘를, 패배를 인정할 수 있었다.


그것이 무인이란 족속이었고, 무인인 백노경의 고집이었다.


백노경이 가볍게 보법을 밟아 비무장으로 향했다. 백노경이 펼친 보법은 도검천(倒劍川)이라는 보법으로 검으로 이루어진 강을 건넌다는 이름답게 공격의 회피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보법이었다. 그것을 신법과 함께 운용해 경공으로 사용한 것은 그의 공부(功夫)가 상당하다는 것을 뜻했다.


비무장에 오른 백노경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용운휘를 응시했다. 자신의 숙적이 악령화가 아닌 바로 용운휘라는 것을 비무장에 오른 지금도 완전히 믿기지는 않았기에 보이는 태도였다.


“후우우.”


짧게 한숨을 내쉰 백노경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물어보자. 어떻게 서하검기를 익힌 것이냐?”


백노경의 질문에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악령화와 홍령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하검기와 검기혼탈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껏 시조인 공손대랑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주의 자격 중 하나가 검기혼탈무와 서하검기의 두 개의 대성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두 개의 무공을 따로 구사했을 뿐, 자유자재로 두 무공을 오가며 구사했던 것은 십대를 거쳤음에도 누구 하나 존재치 않았다.

하물며 지금 다음 문주로 기대되는 후보자인 악령화나 스승인 전 문주조차 동시에 구사하지 못했음이니. 검기혼탈무를 익혔으면서 서하검기를 익힌 용운휘가 주목의 대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그 누구도 용운휘가 검기혼탈무를 대성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백치가 되었던 이에게 일어난 기적 정도로 이해하는 부분이 더 컸다. 허나 기적이든 아니든 두 개의 무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백노경의 관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글쎄요. 그것이 지금 중요합니까?”


“하. 그럼 그렇지. 어쩔 수 없는 백치로구나. 네가 이룬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니. 정말이지.....아깝구나.”


“.....”


용운휘는 그저 잠자코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상대가 말하는 것 정도는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저와 사고께서도 긴 이야기는 할 시간은 없었을 터, 내가 말해주마. 서하검기와 검기혼탈무는 모두 시조인 공손대랑의 유례없는 천재성으로 인해 창안되긴 했으나 두 무공의 눈높이는 어디까지나 천재적인 시조 본인의 눈높이에 맞는 무공이었다. 동공이자 검무인 두 무공은 시조께서 구사했던 것처럼 분명 하나로 합일이 가능할 터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성공하지 못했다.”


“흐음.”


용운휘에게서 반응이 흘러나오자 백노경이 더 열을 올려 말했다.


“서하검기를 먼저 익혔기 때문에 합일에 실패했던 것일까? 검기혼탈무를 먼저 익혔기 때문에 합일에 실패했던 것일까? 두 무공의 가능성에 대해 선인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허나 어느 누구도 두 무공의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아니 애당초 내기의 질을 끌어올리는 검기혼탈무와 내기의 면면부절을 목표로 하는 서하검기는 어우러질 수는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 허나 그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백노경이 허리춤의 검을 빼들어 용운휘를 가리켰다.


“그래서 그 실마리가 저라고?”


“그래 네놈이다.”


“흐으음.”


용운휘의 그런 반응이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일까? 백노경이 거칠게 말했다.


“그러니 본문의 비원이 담긴 비밀을 찾기 위해 짐작 가는 것이 있으면 털어 놓거라.”


“이런.....”


용운휘가 손을 들어 올려 뒷머리와 턱을 번갈아 긁적였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그래. 짐작-”


“그런 걸 신경 써도 되겠습니까?”


“....뭐?”


용운휘가 자신의 말에 호응에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고 여긴 백노경이 어리둥절해 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냐. 네놈-”


“이것 참.....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말인데, 그것 하나 못 알아듣소, 사형은?”


용운휘의 도발을 들은 백노경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네놈이 알량한 성취를 얻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쯧. 패배 전에 할 말은 그게 다요? 사제로서 나름대로 배려해준 것인데. 그걸 알아주지 않다니.”


용운휘의 말을 들은 백노경의 얼굴은 흉신악살(凶神惡殺)처럼 일그러졌다. 그리고 곧 백노경의 입이 열렸다.


“건방....진 놈. 동정 따위는 바라지 마랏!!!!!!”


백노경의 말은 고함과도 같아 비무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말함과 동시에 백노경의 거구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패배 또한 일절 생각도 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용운휘가 펼친 초식은 못해도 필십여 초식, 거기다 간간히 사용한 검기혼탈무의 초식까지. 그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자신이 질 일은 없다고 자신하는 백노경이었다.


용운휘가 서하검기를 쓸 줄 알든 어쨌든, 그가 익힌 것은 검기혼탈무. 그렇다면 내공의 양이야 뻔할 뻔자라는 계산이었다.


백노경의 가검이 검광을 뿌리며 날아들었다. 천궁사전(穿弓射箭),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매서운 기세로 날아드는 검이 용운휘의 어깨를 노렸다.


용운휘의 검에 의해 검로가 옆으로 빗나가자 백노경의 검에서 변화가 일어나며 검의 환영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백노경의 무공 수업을 위해 강호에 나갔던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악령화 마저도 잠깐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예전의 풋내기가 아니구나.’


허나 그렇다곤 해도 악령화에게 용운휘를 걱정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난 삼 일간 놀라운 속도로 서하검기를 익힌데다 자신과 홍령을 번갈아 상대하던 용운휘가 저런 초식 따위에 당할 리가 없지 않은가.


파파팍파파.


짧고 경쾌한 소리가 이어지며 긴박한 공방이 이어졌다. 지근거리에서 행해지는 근접검투라 금방이라도 누구 한명이 피를 흘리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칫.’


나름대로 자신 있었던 연환초식이 먹혀들지 않자 백노경이 내기를 가다듬기 위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안 되지. 안 돼. 거기서 물러나서는.’


용운휘는 그 순간 움직였다. 비록 삼류 무사로 살아왔던 그였지만 그의 후각은 위기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삼류무사로 살아왔기에 그의 후각은 더욱 민감한 걸지도 몰랐다.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물러나는 것은 용운휘 그가 보기엔 그저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초식 동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궁지에 몰리거나 공격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멈춰서는 것은 그저 기세를 떨어트릴 뿐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고 그저 맴도는 겁쟁이의 몸짓. 그런 이에게 승리의 여신이 붙을 리 없다는 생각에 용운휘가 치고 나아갔다.


용운휘의 손에서 서하검기의 초식이 펼쳐졌다. 그 서하검기의 초식은 백노경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빠르고 더욱 강맹했다.


그것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백노경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바보같은..!!’


수천 수만 번을 갈고 닦아온 초식이었다. 그런 자신이 눈앞의 팔푼이보다도 못하다고?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분노에 몸을 맡긴 백노경이 다시 공세에 나섰다. 허나 상황은 이미 기울어진 채였다.


도검천으로 요소요소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낼 뿐, 이미 상대의 검세에 휘말린 백노경이 펼치는 공격은 어디까지나 방어적인 의미의 공격일 뿐, 이기기 위해서 펼치는 검이 아니었다.


‘크으으읏.’


위기의 순간 다시 도검천이 펼쳐졌다. 뒤로 물러난 백노경을 쫓기 위해 용운휘가 발을 굴렀다.


후우우웅!


몽둥이와도 같은 모양 탓에 바람소리가 너무나 거칠었다. 허나 그럼에도 검의 속도는 빨랐음이니.


카앙!


가검의 파편이 튀었다. 무거운 검경을 이겨내지 못한 백노경의 검이 마침내 깨어진 것이다.허나 공격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고 제자리로 돌아간 검은 다시금 검초를 토해냈다.


키이잉!


가검의 뿌리 부분이 용운휘의 검격에 얻어맞아 검신이 완전히 사라졌다.


‘으으으으.’


더할 나위 없는 위기에 빠진 백노경이 반사적으로 다시 보법을 밟았다. 허나 그것에도 따라붙은 검세는 너무나 빨랐다.


‘피.....할 ...수가’


후우웅!


‘없어.’


우지직.


“크으윽!”

겨드랑이 밑의 갈비뼈를 당한 백노경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너......너는 누구냐.”


쓰러진 백노경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쓰러진 현실보다, 자신의 파벌이 끝장날 위기감보다도 먼저 그의 머리를 사로잡은 것은 의문이었다. 용운휘에 대한 의문.


용운휘가 오늘 하루 종일 펼친 초식의 개수는 이미 옛날에 백 초식은 지나갔을 터. 그런데도 자신을 밀어붙이며 쓰러트린다? 그것은 악령화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을 백치가 해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대라신선의 환생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의문을 입에 담았다.


허나 들려오는 말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으니.


“내가 누구긴. 알면서 묻소?”


“크읏.”


비무가 시작될 때 내리기 시작했던 가루눈이 어느 사이엔가 멈추었다. 용운휘는 하늘을 슬쩍 보고는 백노경에게 물었다.


“그래서 승부는 어떻게?”


“내.......내가. 아니 우리 서하검기가 ......졌다. 패배를 인정하마.”


비무장 밖에 있던 서하검기 유파의 인물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흠.....일구이언은?”


“후우....무인이 한입으로 두말을 하겠느냐?”


“확실하오?”


백노경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하검기 유파의 항복이었고, 길고 길었던 싸움을 끝내는 대답이기도 했다.


오랜 세월 하나의 문파를 두 개로 나뉘게 만들었던 싸움이 끝난 것이다. 그것도 용운휘의 활약 덕택에 말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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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두 마리의 투귀(鬪鬼) +3 24.04.03 1,337 25 11쪽
20 20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7) +3 24.04.02 1,387 22 11쪽
19 19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6) +3 24.04.01 1,423 24 11쪽
18 18화 강대한 사라자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5) +3 24.03.31 1,496 21 12쪽
17 17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4) +3 24.03.30 1,559 23 11쪽
16 16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3) +3 24.03.27 1,602 22 12쪽
15 15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2) +3 24.03.26 1,835 26 14쪽
14 14화 강대한 사자라도 몸 안의 벌레는 이기지 못한다 (1) +3 24.03.25 2,007 31 11쪽
13 13화 회주 하후악 +3 24.03.24 2,034 36 12쪽
12 12화 순청지기(純淸之氣) +3 24.03.23 2,091 40 11쪽
11 11화 위기 +5 24.03.21 2,048 36 14쪽
10 10화 습격 +3 24.03.20 2,172 40 12쪽
9 9화 운명 +4 24.03.18 2,312 41 12쪽
» 8화 비무 (3) +3 24.03.17 2,268 39 12쪽
7 7화 비무 (2) +5 24.03.17 2,285 36 12쪽
6 6화 비무 (1) +8 24.03.15 2,441 37 13쪽
5 5화 깨어진 틈 +6 24.03.13 2,665 40 12쪽
4 4화 무아시경 +5 24.03.12 2,936 37 11쪽
3 3화 파벌싸움 +6 24.03.11 3,280 36 12쪽
2 2화 새로운 육체 +6 24.03.10 3,928 42 11쪽
1 1화 그저 다른 풍경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10 24.03.10 4,816 5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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