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너 이 새끼, 살려고 구라치는 거면 너 진짜 죽는다.”
루카가 의자에 묶여 있던 놈을 사정 없이 차서 넘어뜨렸다.
“정말입니다. 진짜 그분이 시킨 게 맞습니다.”
이후 한참동안이나 구타가 이어졌다.
“거짓말은 아닌 거 같은데, 이제 어떡하지?”
“정리하고 그만 가자. 집사람 깨어났겠다.”
놈들을 제거하고 그곳에 불을 질러 자신들의 흔적을 지웠다.
“걱정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자신을 보자 울음을 터뜨린 그녀를 덕만은 가만히 안아줬다.
“이제 어떻게 할거야?”
자기가 다한 것에 대한 보복은 꼭 하는 덕만이었기에 아무도 그를 말릴수는 없었다.
“남산에 한번 가려고.”
무슨 생각인건지 덕만은 줄곧 담배만 피워댔다.
“다곤, 나 최면술 같은 거 좀 알려줘.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걸로.”
그리고 며칠 뒤, 덕만은 남산의 한 레스토랑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오랜만이야. 오 회장, 결혼식엔 못 가서 미안해.”
“일부로 사람들한테 알리지 않았는데요. 형수님은 잘 지내시죠. 제 안부 좀 전해 주십시오.”
주변을 한번 둘러 본 덕만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봉투하나를 꺼내 자신과 마주 앉아있던 남자에게 건넸다.
“이건 승진 축하 선물입니다. 늦었지만, 승진 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덕만은 일어나 그에게 허리를 숙여 90도로 인사했다.
“글쎄, 이러지 말라니까 그러네. 고마워, 오 회장님.”
“사모님 건 차에 따로 챙겨 드렸습니다.”
남자는 테이블 위로 올려진 봉투를 자기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동생이 형님 만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안부도 물을 겸, 밥이나 한끼 대접하고 싶어서 그랬지요.”
“이 사람, 싱겁기는. 허허.”
“참, 각하는 평안하시지요?”
“그 양반이야 뭐, 늘 그렇지.”
덕만이 각하 얘기를 꺼내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 실장님 하고는 잘 지내고 계시지요. 두분의 우애가 남다르지 않으십니까.”
“우애는 무슨, 그 새끼 얘긴 꺼내지도 마! 밥맛 떨어지니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덕만은 그를 보며, 자신이 배워 온 최면술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무슨 일이 나나마 그 새끼는 내가 말하는 건 무조건 반대를 하니, 언제 한 번 손을 봐 줘야겠어!”
“두분이 친하긴 친하신 모양입니다.”
“그 새끼가 뭐라 그랬냐?”
“그게.. 말입니다.. 실장님이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이 사람아, 우리가 보통 사이인가? 형제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이 아닌가. 그러니까 말해줘. 덕만아. 죽기 싫으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냉랭해졌다.
“제가 실수를 한 거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부장님.”
아차 싶었던 덕만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남자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다.
“덕만아, 내가 집에서 개를 키우는데 말이야. 이 개놈의 새끼가 잘 해 주기만 하면 주인을 아주, 개 뭐로 보고 기어오른단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기어오르려 하지 마. 쥐도 새도 모르게 중정에 끌려가 못 나올 수가 있어. 이 개놈의 새끼야!”
덕만은 일부로 그 남자에게 비서실장의 얘기를 꺼냈다.
각하의 총애를 받으려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인 두 사람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그러니까, 지 실장, 그 개새끼가 너한테 뭐라 그랬는지 빨리 불어.”
“네, 비서실장님이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셔서 부장님과 사모님을 죽여 줄 수 없는지 의뢰를 해오셨습니다.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하신 거 못마땅해하시면서 말입니다.”
“허! 이 새끼 봐라. 선을 아주 쎄게 넘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이셨습니다. 각하께서도 허락한 일이라고.”
그 남자가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앞에 있던 테이블을 뒤집어엎고는 덕만에게 권총을 겨눴다.
“그래서 넌 그놈의 의뢰를 받고 지금 날 제거하러 온 거냐!”
덕만은 남자 앞에 더 바짝 엎드렸다.
“아이고, 부장님,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그 말을 듣자마자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지 실장 그 새끼가 불같이 화를 내고는 저를 죽여버리겠다 온갖 욕을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이 모든 건 다 덕만의 계략이었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둘을 이간질해 서로를 죽이게 만들고 더불어 각하까지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넌 누구 편이냐?”
“네? 그게 무슨..”
“아이 씨. 모른 척하지 말고, 나와 그 새끼가 싸우면 누구 편이냐고!”
“저야 당연히 형님 편이지요. 물어서 뭘 하시겠습니까.”
그는 덕만을 겨눴던 총을 다시 집어 넣었다.
“신발이 더러워졌다.”
“네, 제가 닦아 드리겠습니다.”
“야, 구두는 물광이 최고야. 물광 내. 물광.”
그의 말 뜻을 이해한 덕만이 자신의 혀로 오물이 묻어 더러워진 남자의 구두를 핥았다.
“아휴, 우리 개새끼, 말 참 잘 듣네.”
건너편 차에서 이 광경을 카메라를 통해 지켜보던 루카가 씩씩대기 시작했다.
“회장님이 수모당하시는 걸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저딴 새끼 지금 가서 그냥 껍질을 벗겨 버리시죠.”
“너무 흥분할 거 없다. 오 회장 저자는 우리보다 훨씬 영리하고 더 무서운 사람이다.”
덕만의 계획을 간파한 마르테오가 애써 화가난 팀원들을 다독였다.
그 이후로도 오덕만은 틈틈이 그 남자를 만났다.
“각하.. 제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는 무슨, 나라고 각하가 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덕만은 그의 앞에서 의도적으로 말실수를 했다.
“그래, 오늘은 날 왜 보자고 했는지 빨리 말하게. 나 있다가 미국 출장을 가야 하네.”
“그럼, 본론을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하기 전에 부장님이 먼저 치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막상 그런 말이 나오자 겁이 나는지 남자는 한발 물러서는 뉘양스를 풍겼다.
“그 얘긴 나중에 미국에 갔다오고나서 다시 얘기하지.”
하지만 이것 또한 오덕만 그의 계획 안에 있었다.
“가시는 김에 즐기시면서 푹 좀 쉬시다 오십시오.”
덕만은 남자에게 봉투 하나를 챙겨 주었다.
봉투 안에는 달러가 두둑히 들어 있었다.
“내가 미국에 뭐 놀러 가나? 일하러 가지.”
“그럼 무사히 잘 다녀 오십시오.”
공항에서 남자를 배웅한 덕만은 곧바로 비서실장을 만나러 갔다.
“쓸만한 애들 몇 명 골라서 지금 바로 미국으로 보내.”
공항을 떠나기 전, 비서에게 덕만이 그렇게 지시했다.
“아이고, 오 회장, 이거 오래간만이야. 제수씨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네만 좀 어떠신가?”
생각 같아선 자신의 아내를 그 지경으로 만든 비서실장을 보자마자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대의를 위해 꾹 참고 최대한 밝은 얼굴로 그를 맞았다.
“실장님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에 많이 나았습니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덕만은 그날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미리 찍어 놓은 사진과 함께 비서실장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정말 실장님께 죄송하고, 너무 수치스럽습니다.”
다시한번 덕만은 비서실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자기 부하였다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부장님이 총을 들이대고 죽이겠다 협박을 하시는 바람에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부장, 이 새끼가 감히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해!”
“실장님, 이 사실을 빨리 각하께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서류에는 그 남자의 주도하에 각하 암살 계획이 적혀 있었다.
비서실장은 인사도 받지 않은 채 서류 꾸러미를 들고 자리를 떴다.
“지금 미국에 도착했답니다.”
“죽이진 말고 살짝 겁만 주라고 해.”
덕만은 자신의 비서에게 지시했다.
지금 미국에 출장 중인 그 남자는 비서실장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확실히 믿을 것이다.
덕만이 계획한 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들어 맞았다.
“야, 덕만아! 나 미국에서 객사할뻔 했다.”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상보다 일찍 귀국한 남자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에서 덕만을 찾았다.
“지 실장 그 미친 새끼가 날 죽이려고 미국까지 킬러를 보냈다.”
“에이, 설마, 실장님이 그러실리가요?”
“이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내가 놈을 잡아 직접 자백을 받았어!”
“어떻게 자신의 친구에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네가 지난번에 말했던 거 자세하게 말해 봐.”
덕만은 비서실장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서류를 남자에게 주었다.
“정말, 여기에 적힌대로만 하면 되는 거지?”
“네, 제가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 한 것입니다.”
또 얼마의 세월이 흐르고 늦가을 바로 그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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