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자의 탑 등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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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5.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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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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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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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층(3)

DUMMY

“탑······ 바깥이요?”


이기환이 멍청하게 눈을 껌뻑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형님은 출구가 어딨는지 알고······ 아니, 잠깐만. 여기에 출구가 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과학으론 설명 불가능한 전이 현상으로 탑에 순간 이동됐는, 그러니까······.”


흔들리는 눈으로 혼자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던 그가 내게 초점을 맞췄다.

꼭 풀리지 않는 문제의 답을 알려달라는, 학생 같은 눈으로 날 쳐다본다.

위로 솟구친 부리부리한 눈매가 ‘당장 안 불면 확 담가버린다’라고 협박하는 것 같지만, 이건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출구는 모르고.”

“······그럼요?”

“출구를 만들 생각인데.”

“······?”


수업을 못 따라가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추가 설명을 곁들였다.


“자, 단순하게 생각해 봐. 우리는 지금 탑 안에 있지.”

“네.”

“그리고 탑 안은 실내잖아. 실내는 벽으로 막혀있는 어떤 공간을 의미하는 거고.”

“어······ 일반적으론 그렇겠죠?”

“그럼 다 됐네. 출구는 어딨는지 모르고, 사방은 벽으로 막혀있다. 이런 상황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그가 긴가민가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벽을 부수고 나간다?”

“그렇지!”


드디어 해답에 도달한 학생을 보며 나는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하지만 이기환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형님, 저희가 있는 곳은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잖아요. 탑 안이지만, 여긴 어떻게 봐도 실내가 아니라 야왼데······.”

“쯧쯧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꼭 이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딴지를 거는 학생들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이고 핵심이거늘.


“여기서 중요한 건 현재 이 장소가 야외인지 실내인지가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너는 이 공간이 무한할 거라고 생각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자, 이기환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뇨.”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가 이 탑을 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건 너무 낭비니까요. 탑 상층부라면 모를까 1층을 넓게 만들어봤자 그걸 어디에다 써먹어요. 어차피 금방 다 2층으로 올라갈 텐데.”

“그래, 그게 중요한 거야. 결국 이 공간은 무한하지 않고 한정되어 있을 거라는, 그리고 끝이 존재할 거라는 가능성 말이야.”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한다.


“한 번 상상해봐. 만약 우리의 생각대로 1층에 끝이 존재한다면.”

“······존재한다면?”

“그게 실내를 막고 있는 벽이랑 다를 거 뭐 있겠어.”


어차피 내 손에 부서지는 건 똑같을 텐데.


“그냥 부숴버리고 나가면 되는 거지.”



***



햇빛이 차단된 어두컴컴한 그늘 안.

히피펌을 한 남자가 머리를 파묻은 채 쪼그려 앉아있다.


“으, 으으······.”


무릎 사이로 귀신들린 것처럼 흘러나오는 음울한 신음.

핏물을 뒤집어쓴 곱슬머리는 미역 줄기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다른 부상자들을 살피던 단발머리 여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여자의 걱정에도 남자는 답이 없었다.

주기적으로 몸만 움찔거릴 뿐.

여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어깨 위를 살며시 건드렸을 때.


“으아아아아악!”


남자가 기겁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이라도 치려는 듯 벌떡 일어나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연거푸 허둥대다가 땅바닥을 구른 그가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콩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양손으로 보호하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시, 싫어······! 안된다고······! 내, 내 머린······!”

“저기요! 이젠 괜찮아요! 여긴 안전하다고요!”


여자가 연신 괜찮다고, 안심하라고 달랬지만 남자는 귀가 꽉 막힌 듯 들어먹질 않았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 아래.

누군가 혀를 찼다.

그의 곁에는 열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안전지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쭉 남아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래서 나가지 말라고 한 거야. 딱 봐도 위험해 보이더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고.”

“그러니까요. 5일만 얌전히 기다리면 되는데. 그새 그걸 못 참아선.”

“다 그놈의 욕심 때문이죠. 추가 보상. 그게 탐나서.”

“요즘 코인도 그렇고, 인생 참 쉽게 살려는 얘들이 많단 말이지. 사실 세상에 공짜란 건 있을 수가 없는 건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며 한마디씩 했다.

그사이에 껴서 말없이 미소만 짓던 한 남자가 일어났다.

흠잡을 데 없는 정장핏. 깔끔하게 이마를 드러낸 헤어스타일.

훤칠하게 생긴 남자가 남몰래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비슷한 차림의 남녀 한 쌍이 따라 일어났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잠깐 주위를 걷다 오겠다고 둘러댄 그들은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황 팀장님. 그거 하려는 거죠?”


세 사람만 남자 족제비처럼 생긴 남자가 참기 힘들다는 듯 말을 꺼냈다.


“어. 해야지. 들어보니까 일반인은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괴물이던데. 2층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 아냐. 난이도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지진 않을 테니까.”

“언제쯤 하나 했어요. 아예 앞이 안 보이는 건 아닌데 이게 묘하게 거슬려서.”


샐쭉한 눈매가 여우를 닮은 여자가 허공을 가리켰다.

황 팀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얼른 해봐. 혹시 모르니까 계약 내용 다시 읽어보고.”

“네.”

“알겠어요.”


족제비남과 여우녀가 무언가를 읽듯 허공을 보며 좌우로 눈동자를 움직였다.

똑같은 행동을 연기하던 황 팀장이 잠시 후 물었다.


“계약했어?”

“네.”

“했어요.”

“그럼 한 번 시험해보자. 으음······ 저 바위 어때?”


황 팀장이 경차보다 살짝 작은 크기의 바위를 가리켰다.


“제가 해볼게요!”


족제비남이 자진해서 나섰다.

그가 바위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지옥불.”


그리고 스킬명을 읊는 순간, 손바닥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났다.

검은 불꽃은 금세 농구공만 한 크기로 뭉쳐 바위를 향해 쏘아졌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바위가 완전히 부서졌다.

상상 이상의 위력에 남녀 둘이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

황 팀장은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계약한다.



***



안전지대 밖.

숲길을 걷던 족제비남이 힐긋 뒤를 돌아봤다.

부상자를 돌보던 단발머리 여자와 그녀를 따르는 몇 명이 뾰족한 흑색 나뭇가지를 든 채 뒤따르고 있었다.


“굳이 무기까지 쥐여줄 필요가 있었나?”


족제비남이 못마땅한 투로 투덜거렸다.

저 흑색 나뭇가지는 단발 여자가 찾아낸 무기였다. 정확히는 단발 여자가 찾아내고 황 팀장이 만들어 준 무기였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거벗고 있는 흑색 나무.

사람 힘으로 꺾는 게 불가능한 강도의 나무를 발견한 단발 여자는 황 팀장에게 부탁했고, 황 팀장은 [지옥불]을 연달아 사용해 나무를 박살 냈다.

그녀들은 거기서 쓸만한 가지들을 골라내 황 팀장 일행을 따라온 것이었다. 전투에 도움이 되겠다고.

여우녀가 족제비남의 옆구리를 툭 치며 나무랐다.


“팀장님이 하는 일에 뭔 말이 많냐, 넌. 입 다물고 팀장님이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해. 그럼 자다가도 떡이 생길 테니까.”

“거기, 잡담 그만하고 집중하지?”

“아, 네!”

“넵!”


황 팀장의 지적에 흠칫한 남녀가 소홀히 하던 주변 경계를 강화했다.

그렇게 각자 맡은 방향을 주의 깊게 살피며 나아가길 몇 분.

마침내 기다리던 오크 한 마리가 출현했다.


“지, 지옥불!”


다짜고짜 돌진하는 오크를 보고 화들짝 놀란 족제비남이 황급히 스킬을 시전했다.


쾅!


검은 불덩어리가 오크에게 명중했다.

뿌연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그 안에서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였나······ 어?”


눈을 크게 뜬 족제비남이 주춤 물러났다.

연기 속에서 빠져나온 오크는 녹색 피부가 꺼멓게 그을리고 군데군데 녹아내려 분명 다 죽어가는 상태였다.

하지만 특유의 투쟁심만은 여전했다.

오크가 한쪽 안구만 남은,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포효를 터트렸다.


“팀장님! 저도 쓸까요?”


다시 득달같이 달려드는 오크를 보며 여우녀가 다급히 물었다.


“어, 너도-”

“이건 저한테 맡겨 주세요!”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던 황 팀장의 입이 닫혔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간 단발 여자 때문이었다.


타탓.


가벼운 발놀림으로 거리를 좁힌 여자가 망설임 없이 흑색 나뭇가지를 길게 찔러 넣었다.


푹.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부에 뾰족한 나뭇가지가 저항감 없이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전투는 끝이 났다.

동력을 모두 잃은 오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

“······.”

“······.”


묘한 침묵 속에서 잠시 피 묻은 나뭇가지를 내려다보던 여자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족제비남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때요? 그 스킬이 무한정 사용 가능한 사기 스킬만 아니라면, 저희도 마냥 민폐만 끼치진 않을 것 같은데. 안 그래요?”



***



하늘이 붉게 물들고, 태양이 점점 자취를 감추는 시간.

안전지대에 들어서며 모두가 긴장감을 풀 던 그때.

단발 여자가 황 팀장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황태성 씨.”

“아, 임다솔 씨. 무슨 일이시죠?”

“황태성 씨는 상점창 열람하셨나요?”


맥락도 없이 대뜸 날아온 질문에 황 팀장, 황태성이 머뭇거렸다.


“갑자기 그건 왜······?”

“죄송하지만, 혹시 안 여셨다면 포션을 대리 구매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포션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는 부상자가 있는데 제가 이미 상점창을 열람했어 가지고······. 물론 포인트는 있으니까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갚을게요.”

“아······.”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인 황태성이 말했다.


“저도 할 수만 있다면 빌려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미 열람했습니다.”

“혹시 다른 분들은······?”


단발 여자, 임다솔이 황태성 옆의 여우녀와 족제비남을 바라봤다.


“저도 열람했어요.”

“저도요.”

“그런가요······.”


풀이 죽은 듯 임다솔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몇 초간 그러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황태성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내일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오크 전사를 최대한 빨리 찾아서 사냥했으면 하는데. 5일 동안 기다려 2층을 올라가기엔 위험해 보이는 환자가 있어서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내일은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사냥하되 틈틈이 오크 전사가 있을 만한 장소를 탐색해보기로 하죠.”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뇨.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인걸요, 뭘.”


황태성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리는 곧 비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들은 사냥한 야생동물을 어떻게 요리할지 의논한 뒤, 역할별로 흩어졌다.

황태성 뒤에서 여우녀가 중얼거렸다.


“예쁘네요.”

“응?”

“저 여자요.”


여우녀가 시선으로 멀어지는 임다솔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그런가······?”


황태성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 됐네요. 그보다, 팀장님. 저 여자 말대로 할 건 아니죠?”

“무슨 말?”

“모르는 척하시지 말고요. 저 여자가 오크 전사 찾자고 했잖아요. 빨리 2층으로 올라가자고.”“아, 그거. 애초에 내일부터 탐색을 시작할 생각이었어. 물론······.”


황태성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잡는 건 5일 차에 할 생각이지만. 2층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뽕은 뽑고 올라가야 할 거 아냐.”

“그러다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여우녀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황태성이 무심한 눈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게 뭔 상관이야. 어차피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렇죠?”


따라 웃던 여우녀가 뭔가 떠오른 듯 아, 하고 소리를 냈다.


“팀장님. 그런데 1층에 엄청 강한 남자 한 명 있잖아요. 사람 죽인 놈. 탐색하다가 마주치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


이미 계산을 끝낸 듯 황태성이 즉답했다.


“우리가 먼저 건들지만 않으면 뭘 저지를 놈은 아닌 거 같으니까. 우린 우리 할 것에만 집중하면 돼.”

“우리 할 것요?”

“여기선 우리가 절대 갑이잖아. 50%라는 포인트를 대가로 얻은 위치인데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고,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고 올라가야지. 5일 동안, 투자한 것 이상으로.”



***



저녁을 먹기 전에 상점창을 열었다.

그리고 요리 도구와 배낭, 음식 재료, 앞으로 필요할 것 같은 물품들을 구매했다.

포인트도 충분히 있는데 원시인처럼 밥 먹고, 생활하기는 싫어서.


상점창을 여는 김에 이기환에게 줄 선물도 구매했다.

1,000포인트짜리 싸구려 검이었다.

원래는 이기환과 잘 어울리는 해머를 추천했는데 기겁을 하더니 검을 선택하더라.

뭐, 자기는 싸우는 거 안 좋아하니까 들고 다니기 좋은 게 최고라나?

진짜 얼굴값 못하는 놈이었다.


쇼핑을 마친 후에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여기선 이기환이 낮의 나처럼 활약했다.


“여기요. 드세요.”


그릇을 받은 나는 걸쭉하게 졸여진 스튜를 크게 한 숟갈 떴다.

큼지막한 건더기와 함께 입에 넣었다.


“음······.”


맛을 음미하며 다시 한번 확신했다.

역시 사람은 겉만 봐선 알 수 없다고.

설마 이기환이 이렇게 요리를 잘할지 누가 알았겠어.

사람을 채 썰 것 같은 모습으로 음식 재료를 섬세하게 손질할 때는 정말 놀랐었다.


“형님.”

“······응?”

“지금 저보고 의외라고 생각했죠?”

“어떻게 알았냐?”


상점에 독심술이라는 스킬도 있나?

아니지. 얘는 포인트가 없어서 있어도 못 샀을 텐데. 샀더라도 나한텐 안 통했을 거고.


“제가 지금과 똑같은 시선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받았을 거 같아요? 요리만 하면 다들 그렇게 쳐다봐요. 무슨 신기한 동물이 재주부리는 거 구경하듯.”

“하하, 그래? 근데 신기하긴 하잖아.”


흉악한 얼굴과 거대한 덩치를 훑으며 말하자 이기환이 작게 코웃음 쳤다.


“그러는 형님은요. 형님이 더 하거든요.”

“나? 나는 왜?”

“처음으로 본 게 사람 죽이는 장면이었잖아요.”


아.

그렇겠네.

얘는 살인에 대한 면역이 없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지체 않고 물었다.


“근데 넌 용케 날 따라왔다? 안 무서웠어?”

“무서웠죠.”

“근데도 따라온 거야?”

“저도 반쯤은 도박이었어요. 형님은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그래도 선제공격한 것은 아니었고, 그 검은 기사처럼 사람들을 억압하려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또······.”


그가 제 스튜를 한 숟갈 뜨며 덧붙였다.


“제 감이 형님을 가리킨 것 같기도 했고.”

“······감?”

“미신이긴 한데, 제 감이 위험할 땐 의외로 잘 맞거든요.”



***



이튿날 아침.

어제 먹다 남은 스튜로 대충 끼니를 때운 우리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배낭을 멘 채 내 뒤를 따라오는 이기환이 좀비처럼 비틀거린다.

눈 밑은 거멓고, 눈꺼풀은 반쯤 내려와 있다.


“졸리냐? 그러게 내가 자라고 했잖아.”

“아니, 형님. 불침번도 없이 어떻게 자요. 그러다 오크가 나타나 덮치면 어쩌려고요.”

“오크 정도는 내가 자면서도 감지할 수 있다고 했을 텐데.”

“그렇게 큰소리쳐 놓고서 실제론 놓치셨잖아요.”

“그건 오크가 우리를 발견하기 전이어서 그런 거고. 쏘지도 않은 살기를 만들어서 감지할 순 없잖아.”


사실을 말했건만 믿지 않는 눈치다.

내가 감지와 탐색 쪽이 취약하긴 하지만, 날 노리는 것들 한정으론 오히려 뛰어난 편인데.

물론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것들이나, 심각하게 좁은 내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감지해내지 못해서 문제지만.

흑기사의 실력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걷다 보면 금방 잠에서 깰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러냐. 그러면 속도 안 줄이고 그대로 간다.”


빠르게 걷다 보니 해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1층의 끝에 도달했다.


물리적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지점.

그곳에는 실제로 벽이 존재했다.

다만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벽은 아니었다.

풍경은 여전히 이어져 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막고 있는 투명한 벽.


1층의 끝에는 투명 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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