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만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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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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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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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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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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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관계(1)

DUMMY

변방에서의 10년간 술식과 마력에 관한 책이란 책은 전부 사다 모았다.

가끔 마을에 들리는 상인들에게 웃돈을 주고 부탁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모았다.


하지만 전부 하급 마술과 마력의 기본적인 개념에 대한 서술뿐.

그마저도 제국사관학교나 연합국의 마법학원에서 빼돌린 서적들이었다.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정보를 통제당하고 있는 것일까.

재능 없는 이들은 관심조차 둘 수 없었기에, 농사나 지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민간인들이 이 이상으로 술식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곳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관에서 하급 마술 따위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리브는 하급 마술로도 엘리트 마술사에게 맞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가혹한 세계에서 좀 더 확실하게 살아남기 위해서.


*****


기본적으로 술사들은 한 번에 한 가지 술식밖에 전개하지 못한다.

그러나 두 가지 이상의 술식을 동시에 전개할 방법은 존재했다.

게임상에서 ‘멀티 스킬’이라고 불렸던 상급 마술.


‘멀티 스킬을 자력으로 습득하는 건 실패했지만....’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발견한 술식의 간섭.

반발력을 극대화할수록 소모되는 마력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위험해서 도중에 중단해야 했던 변방의 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생사가 걸린 전장이었다.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도박에 목숨을 걸었다.


“제이! 얼른 붙어!!!”


제이는 들고 있던 총을 냅다 던져버리고 넬라의 곁으로 뛰어들었다.


리브의 술식에 위기감을 느낀 넬라가 젖 먹던 힘을 다해 상급 배리어를 구사했다.


하늘에서 기세 좋게 떨어지는 굵은 물줄기의 모습은 마치 커다란 호수 하나를 통째로 들이붓는 것 같았다.

비랑촌에서 가장 큰 넬라의 목조건물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콰과과과광!!


건물을 부수면서 그 위력이 줄어들었는데도 엘리트 마술사인 넬라가 조금도 버텨내지 못했다.

압도적인 질량의 낙하에 넬라의 상급 배리어는 허무하게 박살이 나버렸다.


특대량의 물은 그대로 지상에 곤두박질치며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비랑촌의 건물들과 마인들이 무기력하게 휩쓸려 나갔다.

그야말로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물론, 리브와 아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 이래서... 마술사의 술식에 휘말리기 싫다고....”


아네트는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검을 얼른 주워 기다랗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리브는 여유롭게 자신의 신체를 배리어로 감쌌다.

배리어를 눈치챈 아네트가 리브를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미안하지만 내건 1인용이야. 게다가 난 환자니까.’


리브가 아네트를 외면하며 멀쩡한 한쪽 어깨를 으쓱였다.


“야!”


그 말을 끝으로 아네트가 물살에 휩쓸려가 버렸다.


‘이 정도면 비가 오는 날의 강줄기 정도려나... 조금 매섭긴 한데 괜찮겠지.’


단신으로 마인들을 견제하고 엘리트 술사를 상대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아네트는 수준급 신체술사 중에서도 상위권이 확실했다.

민간인에게는 치명적인 물살이지만, 이 정도의 물살에 목숨을 잃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전장을 초토화한 거센 물살은 비랑촌 곳곳에 깊은 물웅덩이를 남기고 잠잠해졌다.


‘아직이다....’


넬라의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리브는 온몸을 덜덜 떨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어깻죽지의 고통은 이제 견딜 만했다.


‘이런 식으로 고통에 익숙해지는 건가? 하하....’


‘결국엔 나도 죽고 죽이는 사투가 일상인 호문쿨루스RPG의 몬스터나 캐릭터들처럼 팔 하나가 날아가도 덤덤해지는 걸까?’


스킬 트라이얼에 소모한 마력은 리브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인간과는 다르게 마력을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호문쿨루스는 절대 마력을 전부 소진해서는 안 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전신이 저려왔다.


청색 살쾡이를 잡을 때마다 썼던 수류술사의 기본공격인 물 폭탄, 아마도 리브가 가장 많이 사용해 본 마술일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다루기 편한 마술을 고른 것은 정답이었다.

다른 마술로 스킬 트라이얼을 시도했다면 지금쯤 마력을 전부 소진하고 바닥을 침대 삼아 누워있었을 것이다.


‘마력이 부족해.’


10년간 쉬지 않고 늘려온 양인데도 불구하고, 마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반대로 마력량만 늘어난다면 리브는 엘리트 마술사와 호각이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넬라를 찾으며 돌아다니던 도중 팔 한 짝이 깔끔하게 절단된 마인이 눈에 들어왔다.

눈을 까뒤집은 체로 혓바닥을 내밀고 짐승처럼 죽어있었다.


‘히고....’


계약에 묶인 용병 중에서 가장 실력 있는 용병이었다.

나중에 만났더라면 훨씬 더 까다로웠을지도 몰랐다.

리브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히고와 같은 최후를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쿨럭! 쿨럭!”


기침 소리가 나는 곳에 넬라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제이는 팔뚝만 한 각목에 심장이 꿰뚫린 상태였다.


넬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죽었다.


축제 같은 분위기를 밤낮없이 이어온 비랑촌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 쿨럭! 쿨럭!”


리브의 인기척을 느낀 넬라가 물을 토해내며 몸을 가누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네!”


온몸이 젖은 아네트가 머리카락의 물을 짜내며 걸어왔다.


흠뻑 젖은 흰 반 팔 티의 안쪽이 훤히 드러났다.

기대했던 속옷이 아닌 흰 붕대가 칭칭 감겨있었다.


“뭘 보고만 있어. 그 마술로 물기만 좀 싹 날려봐.”


‘마술은 만능이 아니다만....’


불필요한 수분만 제거하는 섬세한 마술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알고 있다고 해도 리브의 역량으로는 다룰 수 없었다.


넬라를 발견한 아네트가 거침없이 뛰어왔다.


“너 때문에 일이 복잡해졌잖아!”


넬라의 머리통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끄허어억! 그냥 죽여라.”


리브는 한 번 더 발차기하려는 아네트를 제지했다.


“이거 놔. 그리고 마석 이리 내놔!”


아네트는 리브가 가죽 주머니를 손바닥에 올리자마자 퉁명스럽게 낚아채 갔다.


리브는 쭈그려 앉아 수첩에 글씨를 적어 넬라에게 보였다.


[계약술식을 내게 전수해라. 목숨을 살려주겠다.]


“허... 욕심이 많군. 나보다 더.”


넬라가 질색했다.


“이렇게 사라질 바엔 너한테라도 넘겨주는 게 낫겠지.”


넬라는 죽은 제이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제이가 없다면 난 술사도 뭣도 아니야... 조건을 바꾸겠다. 나를 죽여줘라.”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술식을 연구한 자료는 네가 다 날려버렸는데, 어떻게 넘겨줄까?”


[술식을 사용할 때의 마력의 흐름을 내 머릿속으로 흘려 넣어라.]


리브의 뒤에서 수첩을 엿보던 아네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그것만으로 충분한 거야? 말도 안 돼. 그럼 마탑은 뭐 때문에 마술사를 키우는 건데?”


술식을 하나 배우기 위해선 뼈를, 아니 머릿속을 깎아내는 목숨을 건 노력이 필요했다.

제국에서 술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마탑에선 해마다 많은 수의 젊은 술사들이 머리가 터져 죽음을 맞이했다.

수년간 그런 목숨을 건 노력을 기울여야만 마탑의 술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경우였다.


[난 호문쿨루스다.]


“뭐? 그래서... 그래서 계약이....”


넬라는 그제야 자신의 계약술식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허탈한 얼굴로 리브의 머리를 향해 검지손가락을 뻗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지.... 네가 어떤 호문쿨루스던 상관없다.”


아네트가 비아냥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이려 들더니 왜 이렇게 협조적이야?”


넬라가 뻗은 검지손가락의 끝에서 푸른 실 한 가닥이 나와 리브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럼 뭘 어쩔까. 난 할 만큼 했어. 그리고 내가 죽어도 술식이 남았다면 상관없어.”


아네트가 비웃었다.


“하... 최선을 다했으니 죽어도 불만 없다 이거야?”


아네트의 날이 선 말에도 넬라는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핫. 최선을 다했다고? 그렇게 말하니 꼭 어린아이가 된 것 같군.”


호문쿨루스RPG에서 마술사들은 넬라처럼 자신의 목숨보다도 술식의 보존을 중요하게 여겼다.

자신의 목숨을 거래로 술식을 남길 수 있다면 응당 그렇게 할 족속들이었다.


‘술식이 남는다라...’


만약 언젠가 리브가 넬라처럼 패배한다면....


지금의 전투만 봐도 넬라가 마술사가 아니라 신체술사거나 마도 공학 무장을 다루는 용병이었더라면, 이번처럼 술식의 허점을 노리고 싸움을 유리하게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네트의 조력까지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어긋났더라면 죽는 건 리브였을 것이다.


리브는 무의식으로 자신이 맞이하게 될 죽음의 형태를 떠올렸다.


각목에 심장이 뚫린 제이.

술식의 노예가 되어 짐승처럼 죽은 히고.

남작에게서 탈출을 시도하다 죽어간 농민들.

머리가 꿰뚫려 죽은 3급 마수 청색 살쾡이.


리브는 넬라처럼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엘리트를 뛰어넘는 ‘알파급’이라는 강력한 존재에게 대적하기 위해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스킬 트라이얼 하나로는 부족했다.

이 세계가 시스템의 통제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신체, 공학, 마술 어느 한쪽에만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모든 계통의 알파급.’


게임 밖 커뮤니티에서 우스갯소리로나 말했던 존재.


“자, 끝났다.”


계약술식은 그 첫 번째 발걸음이다.


‘죽기 전에 할 말은....’


넬라는 눈을 감고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리브는 약속대로 저항 하나 없는 넬라의 심장에 마력을 불어넣어 생명의 불씨를 꺼트렸다.


*****


터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랑촌에서 넬라와 만나 대화를 나눴던 장소.

비랑촌의 중심에 우뚝 서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건물의 터였다는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그곳의 한 모퉁이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물에 잠겨있었다.


리브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네트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왕이면 불로 다 태워버리든가 하지. 왜 물인 거야.”


‘불꽃이었다면 너랑 나는 타죽었을 거다.’


“난 페사이트 정문을 통해서 들어갈 테니까. 안쪽에서 만나는 걸로 해. 클린트의 저택으로 와. 그럼 이따 보자.”


리브 역시 아네트와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부유물이 떠 있는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던 리브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리브가 뻑뻑한 쇠문을 열자 갑자기 등 뒤에서 터져 나오는 물살에 휩쓸렸다.


펑!


앞으로 튕겨 나간 리브는 물기를 머금은 돌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쩌저적.


그 충격으로 얼굴을 덮고 있던 흰 가면에 금이 갔다.


‘가면도 새로 하나 사야겠네.’


제대로 된 조명조차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물비린내와 악취가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랑촌의 지하터널은 페사이트의 하수구와 연결되어있었다.


게임에서 보통 하수구 같은 곳에는 골치 아픈 몬스터들이 서식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곳에선 청색 살쾡이를 만나도 쉽진 않겠어.’


축축하고 좁은 공간에서 쓸 수 있는 술식은 얼마 없었다.

여기선 근접전 위주인 아네트의 전투방식이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마술이 주력이라곤 하지만 검 같은 간단한 무기 정도는 들고 다녀야겠어.’


리브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상으로 올라갈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오랜 시간 헤맬 필요 없이 지상으로 통하는 사다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리브가 올라온 곳은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외진 골목이었다.


밀입국한 셈인데도 편안하기 짝이 없다.

페사이트의 시의회가 터널을 사용하라고 일부러 만들어 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넬라와 페사이트의 관계를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악취를 풀풀 풍기며 젖은 몸을 이끌고 맞이한 대도시는 리브가 본래 세계를 떠올리게 했다.

호문쿨루스RPG에서 공학 계통이 주류인 도시는 현대를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대로변에 10층 높이의 세련된 건물들이 떼 지어있었다.

현실의 50층을 넘어가는 높은 빌딩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았지만, 10년 동안 시골의 중세시대에서 살아온 리브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처음 와봤지만,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어.’


리브는 들뜬 마음을 접어두고, 아네트가 말한 ‘클린트의 저택’을 찾아 나섰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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