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만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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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
작품등록일 :
2024.05.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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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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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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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페사이트(4)

DUMMY

리브의 마력을 등록해 준 시청의 접수원 헤나가 딱딱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무슨 일로 찾으셨나요.”

“일하러 왔지. 수행비서라면서 시장한테 딱 붙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비서...? 이봐 벌써 그렇게까지 출세한 거야? 비랑....”


서둘러 실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해주지.”


헤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시군요. 시장님은 시장실에 계십니다.”


잠자코 리브를 뒤따라가던 실론이 소곤거렸다.


“비랑촌을 정리한 걸로 시장님한테 인정받기라도 한 거야?”

“그런 게 아니다. 시장을 만나보면 이해할 거다.”


덜컹.


“또 왔군. 이번엔 무슨 일인가?”


겉으로는 허허실실 웃고 있지만 속은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노인.


리브는 아크라딘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것저것 따지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챠콜도 나도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한테서 놀아나고 있는 것 같네.’


“수행비서 자리는 사양하겠다. 페사이트에 계속 머무를 생각은 없거든.”

“흐음.... 그것참 아쉽게 됐어. 자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아크라딘의 예상 밖이라는 태도는 전부 연기일게 뻔했다.

코랄의 행동력이라면 리브가 일에 휘말리는 건 하루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신할 사람을 데려왔다. 이제부턴 그에게 맡기면 된다.”


여태껏 굳어있던 실론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시...실론이라고합니다! 시장님!”

“자네는?”

“시장님의 은혜로 페사이트의 시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뭐가 이렇게 깍듯해...? 이런 이미지였나.’


실론이 팔꿈치로 살짝 리브를 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대신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리브가 그에 화답하듯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출세한 거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크라딘이 입을 열었다.


“그 친구를 비서로 써도 나는 상관없다만. 지금 내가 난민을 비서로 고용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네.”

“난민들을 향한 감정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은가 보군.”

“얼마전 그들을 수용하기로 한 결정에도 반발이 심했지.”


아크라딘에게 상당한 민폐를 끼쳤다고 생각한 실론이 주눅이 들었다.


“시장님께 대단히 민폐를 끼쳤습니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네. 내겐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반발했던 시민들도 난민이었을 시절이 있었어. 자네는 그 사람들이 야속하겠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니야. 그러니 시간이 충분히 흐를 때까지 우직하게 버티게.”


아크라딘의 말을 감명 깊게 들은 실론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어흑... 감사합니다. 시장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반응.


‘....술이 덜 깬 건가?’


“하지만 자네가 추천해 준 만큼 비서로 써보도록 하겠네.”

“챠콜이 시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평판이 흔들리지 않겠나?”


아크라딘은 코웃음 쳤다.


“상관없네. 그 정도로 흔들릴 평판이었다면 30년간 시장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 설사 챠콜 그 아이가 나를 끌어내린다고 해도 불만은 없어.”


‘뭐? 그럼 난 왜 일에 휘말리게 한 건데.’


“그럼 굳이 나를 휘말리게 한 이유는 뭐지?”


아크라딘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괘씸하지 않은가? 내가 30년간 가꿔온 페사이트를 날로 먹으려 드는데. 마침 자네 같은 인물도 있고. 쉽게 넘겨줄 수야 없지. 암.”


‘이 영감탱이가!!!’


아크라딘이 노인이 아니었다면, 알파급 마술사가 아니었다면, 리브는 당장 튀어 나가 아크라딘의 뺨따귀를 후렸을 것이다.


실론은 아크라딘이 자신에게 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볍게 말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제게 기회를 주시는 겁니까! 시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네.’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수완도 있고 사람들을 이끌어본 경험도 있는 실론이 제격이다.

챠콜을 제외한 다른 시의원들과 뿔난 시민들을 구슬리는 건 실론에게 맡겨둘 생각이었다.


코랄이 저택에 손을 댄 이상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쓰레기장의 해골은 발견하고도 남았겠지.’


안전지대로서 언제든지 페사이트의 저택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지금의 리브에겐 스텔모프의 추적자들만 해도 벅차다.

현상금까지 걸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했다.


당장 오늘부터 수행비서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실론을 시청에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


“리브! 나만 쏙 빼놓고 어딜 갔다 온 거야.”


팔짱을 낀 아네트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크라딘을 만나고 왔어. 수행비서 자리를 실론한테 넘겼지.”

“실론? 아 여기 집주인? 그 사람도 마술사야?”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마력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야.”


아네트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말했다.


“그런 사람을 아크라딘이 받아줬다고? 믿기지 않는데....”


악명높은 신체술사들은 일반인들을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수준급 술사인 아네트에게 알파급 술사인 아크라딘은 구름 위의 존재.


아네트 본인조차 비술사들을 몇 단계는 낮추어볼 텐데 아크라딘은 오죽할까.


그런 알파급 술사인 아크라딘이 일반인을 기용하는 것은 스텔모프 안에서 위험한 신체술사들을 줄곧 봐온 아네트에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선견의 마탑이 무너져 내릴 때 생긴 원한 때문에 아크라딘은 페사이트라는 도시국가를 세워 일반인들과 살아가기로 했다.

적어도 아크라딘은 일반인들을 업신여기지 않았다.


“상관없잖아? 페사이트의 사정이야.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때문에 상황이 복잡해졌을 뿐이지.”

“그래서 저택을 뒤지고 있을 오렌지 머리를 어떻게 쫓아낼 생각이야?”


이제 시장의 수행비서가 아닌 리브를 건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나보자. 우리도 쥐고 있는 게 있어서 순순히 물러날지도 몰라.”


챠콜과 연합국, 비랑촌과의 유착관계.


그리고 시장 자리에 집중하고 있는 챠콜이 비랑촌을 초토화한 리브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지만, 부딪히면 부딪히는 대로 확인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언제 스텔모프의 추적자가 들이닥칠지 모르기에 가능하다면 마력을 온존해두고 싶으면서도 목소리를 되찾으면서 늘어난 마력을 시험해보고도 싶었다.


*****


클린트의 저택, 기다란 식탁이 있는 홀.

목소리를 되찾은 리브와 아네트는 술식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두었다.

클린트가 돌아올 것을 고려해서 전이진만큼은 제외하고.


플럼을 포함한 서너 명의 시티 가드들이 전이진을 살피며 면밀히 조사하고 있었다.


“역시 술사였군요.”


리브를 보는 코랄의 눈빛은 차가웠다.


“페사이트에서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

“고작 그런 변명을 하려고 찾아온 겁니까?”


‘변명이 아니고 사실인데. 역시 쓰레기장의 해골을 보고 왔어.’


“난 이제 시장의 수행비서도 뭣도 아니야. 조용히 떠날 생각이니 신경 꺼라.”


코랄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왜! 얼른 내 저택에서 나가!”


아네트가 일어서며 역정을 냈다.


“당신이 아니라 클린트 씨의 저택이죠. 클린트 씨를 포함해서 당신들과 같은 학살자들을 순순히 놓아줄 순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제시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어. 뭐... 술사인 내가 페사이트 안에 있는 것만 해도 범죄니까. 잡아떼봤자, 질질 끌릴 뿐이지.’


리브가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인 줄은 몰랐군. 챠콜의 명령을 따를 뿐인 개가 아니었나?”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플럼이 끼어들었다.


“입조심하십쇼!”

“플럼. 난 괜찮아.”


‘예상대로 코랄이 시티 가드의 리더인가? 챠콜과의 무력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면....’


리브는 페사이트의 시티 가드 전체를 상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은 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억울해서라도 아크라딘한테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해야겠어....’


리브는 준비하고 있던 수첩을 코랄에게 건넸다.

리브의 의중을 알아챈 코랄이 플럼에겐 보이지 않도록 수첩의 내용을 확인했다.


[거래를 하도록 하지. 챠콜 의원이 비랑촌뿐만 아니라 연합국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정황을 입수했다. 얌전히 입 다물어주는 대신 저택을 포함해서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손을 떼라.]


코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했다.


“하... 외부인. 게다가 술사인 당신의 말을 누가 믿어줄까요?”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리브는 수첩을 넘겨보라는 듯 손짓했다.


[믿을 수밖에 없지. 비랑촌을 정리한 게 나니까.]


코랄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이상징후를 감지한 플럼이 리브를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넬라와 제이를 처리하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까다롭다.

챠콜의 최측근이자 마술사인 코랄은 그 의미를 실감하고 있을 터.


“그것... 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페사이트의 시민들은 똑똑하니까요....”


좀 전과는 다르게 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뭣하면 비랑촌을 정리할 때 선보였던 스킬 트라이얼을 재현해주는 방법도 있지만.’


쓸데없이 피해가 커진다.

도시를 지키고자 하는 아크라딘의 의지에 반하는 행위였다.


‘한 장 더 넘겨봐라.’


리브가 다시 손짓했다.

수첩의 다음 장을 짚은 코랄의 손이 무거워 보였다.


[네겐 충분하겠지. 너도 마술사니까.]


페사이트의 시민들을 설득할 필요는 없다.

챠콜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코랄의 움직임을 멈추는 게 리브의 목적이었다.


긴장감이 역력한 코랄은 말없이 수첩의 다음 장을 열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수첩을 덮어 식탁에 내려놓은 코랄이 천천히 입을 뗐다.


“자신감이 상당하시군요.”


‘협박이라고 생각했나? 피차 피곤해질 테니까 서로 갈 길 가자는 뜻이었는데.’


“시장님이 당신을 왜 수행비서로 두겠다고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아침에 다른 사람한테 그 역할을 넘기고 오는 길이다. 나와 시장은 이제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코랄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갔다간 아킬레스건이 되어 두고두고 의원님을 괴롭히겠죠. 그리고 의원님과 상관없이 페사이트의 시티 가드로서도 좌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거야?!”


잠자코 있던 아네트가 소리쳤다.


“당장은 손을 떼겠습니다.”

“예...? 팀장님... 그게 무슨....”


플럼이 당황했다.


페사이트에서는 30년간 술사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해왔다.

저택 내부에 새겨져 있는 전이진, 쓰레기장에 내팽개쳐진 무고한 희생자들.

페사이트에선 보기 힘든 참혹한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덮어두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순순히 물러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당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저의 불찰이죠. 플럼.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시의원님의 비서로서 그들과 할 얘기가 있습니다.”


‘단단히 준비하고 다시 오겠다는 건가? 다소 소란스러워지더라도 여기서 처리해둬야 할까?’


그러나 술식대항영역에서 먼저 선수를 치긴 어렵다.

코랄을 처리하더라도 시티 가드의 일부가 도망쳐 교전이 길어지게 된다면 챠콜의 입김이 세질 우려도 있었다.


‘나를 명분으로 시장의 평판을 깎아내리려고 작정하고 왔을 텐데. 역시 대놓고 손을 쓰긴 어려워.’


“하지만 한 가지. 정정해 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코랄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아네트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저는 챠콜 의원의 개 따위가 아닙니다.”


‘그랬군....’


연합국과의 긴밀한 관계.

실론이 보았던 건 변장을 한 챠콜과 코랄.

코랄과 챠콜은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전 페사이트 시티 가드의 팀장이자, 챠콜 의원의 수행비서. 동시에 연합국에서 파견된 마도병단원. 코랄입니다.”


‘챠콜을 조종하고 있던 건 연합국이었군. 그럼, 다 맞아떨어져.’


챠콜이 연합국의 말석에 들어 왕이 된다는 실론의 망상보다, 연합국이 작은 도시국가 하나를 먹어 치우려 들고 있다는 게 현실적이었다.


지금 리브의 행동은 철저히 아크라딘의 편에서 연합국을 적으로 돌리는 행동이었다.


‘비랑촌을 이용해 페사이트를 좀먹고 있던 것도 연합국의 수작 중 하나였을 뿐이군.’


이대로라면 리브와 아네트의 행동반경이 제국으로 한정되게 된다.

검은색 마석을 찾아 세계를 모험해야 하는 리브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아크라딘....’


선견의 마탑이 왜 무너져 내렸는지 알 것 같았다.

난민인 실론을 받아들여 리브의 생각을 어지럽힌 것까지.

완전히 아크라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망할 영감탱이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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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코랄(2) 24.05.20 4 0 13쪽
14 코랄(1) 24.05.19 4 0 14쪽
» 페사이트(4) 24.05.18 8 0 13쪽
12 페사이트(3) 24.05.17 7 0 12쪽
11 페사이트(2) 24.05.16 7 0 13쪽
10 페사이트(1) 24.05.15 7 0 13쪽
9 협력관계(4) 24.05.14 9 0 14쪽
8 협력관계(3) 24.05.13 7 0 13쪽
7 협력관계(2) 24.05.12 7 0 12쪽
6 협력관계(1) 24.05.11 11 0 13쪽
5 비랑촌(4) 24.05.10 10 0 15쪽
4 비랑촌(3) 24.05.09 10 0 13쪽
3 비랑촌(2) 24.05.08 11 0 14쪽
2 비랑촌(1) 24.05.08 13 0 14쪽
1 서장 24.05.08 2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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