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만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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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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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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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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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관계(2)

DUMMY

[클린트의 저택은 어디에 있나?]


그렇게 적힌 수첩의 페이지를 열어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노인에게 보였다.


“어...? 클린트? 아아... 저어어어기 언덕. 여기서 하아아안 참 가야 돼.”


[고맙다.]


리브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노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클린트의 저택은 페사이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리브는 변방의 마을에 있을 자신의 집이 떠올랐다.


‘사람들한테서 떨어져 지내는 건 아네트도 마찬가지인가 보네.’


*****


아네트가 혼자 살기에는 웅장한 크기의 저택.


‘페사이트 대귀족의 딸이라거나 그런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아네트가 페사이트를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다.


저택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는 작은 초인종을 눌렀다.

백발의 노신사가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리브를 맞이한 건 아네트 본인이었다.


“우웩.”


아네트는 곧장 코를 막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나 냄새가 심한가?’


“옷은 저쪽에 다 버리고 바로 근처에 샤워장이 있으니까. 얼른 가서 몸부터 씻어. 코가 썩어버릴 것 같으니까.”


아네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군데군데 녹이 슨 커다란 철제펜스로 격리된 공간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코를 부여잡은 상태로 말했다.


“여기 지금 나뿐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면도 싹 다 버려.”


이미 가면을 벗은 모습을 본 아네트라면 문제없다.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제펜스로 가려진 공간에는 저택에서 나온 걸로 보이는 온갖 쓰레기들이 모여있었다.

저택의 쓰레기장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더럽혔다.


‘윽... 하수구에서 베인 냄새보다도 지독해.’


아무런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쓰레기장은 옆에 있는 고급스러운 저택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리는 없는데. 단체로 멀리 여행이라도 떠난 건가?’


리브는 지저분한 옷가지가 산처럼 쌓여있는 곳에 벗어둔 옷을 던져두었다.

그 충격으로 위에서 사람의 두개골이 굴러떨어졌다.


아네트의 협조적인 태도 때문인지, 자꾸만 아네트가 잔혹하기로 소문난 신체술사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이래서 혼자였군....’


*****


샤워장의 거울에 이목구비와 머리카락, 무엇 하나 없는 반질반질한 얼굴이 드러났다.


‘정말 익숙해지질 않는구나....’


10년이나 지났으면서도 얼굴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상실감은 여전했다.


아래쪽에 남자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것도 없었지만, 리브의 창백한 육체는 구석구석이 남성의 근육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있었다.

본래 세계에서 운동에는 별 관심도 없던 리브가 이런 훌륭한 근육을 가지게 된 것만큼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히고와의 전투에서 이 근육들이 그냥 장식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제대로 된 무술을 익힌다면 근접전 위주의 전투방식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했다.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얼굴을 되찾는 것부터야.’


샤워장을 나선 리브의 시야에 곧바로 가지각색의 옷들이 걸려있는 의상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귀족의 저택답게 몸을 씻고 바로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었다.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겠지.’


이 값비싸 보이는 옷들의 주인은 이미 백골이 되어 쓰레기장에 널브러져 있을 것이다.


‘아네트는 분명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었지?’


사람들을 죽이고 저택을 차지한 사람이 아네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네트가 얽매여있는 조직이나 존재가 범인일 가능성도 농후했다.


‘누가 범인이든 상관없나.... 난 이제 사람도 아니니까.’


인간의 목숨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본래 세계의 영향 때문인지, 저택에서 일어났던 학살극의 범인이 꺼림칙했다.


그러나 호문쿨루스인 리브가 신경을 쏟을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리브가 호문쿨루스인 것을 알고 있는 아네트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목숨이 가벼운 세계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일이었다.

게다가 비랑촌의 용병을 태워죽인 것처럼 앞으로도 리브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이다.


좀 더 무감각해질 필요가 있었다.


리브는 전에 쓰고 있던 하얀 가면과 비슷하게 생긴 가면을 골랐다.


‘난 목소리만 되찾으면 돼. 그다음은 눈. 그다음은 코....’


리브는 저택의 쓰레기장에서 목격했던 두개골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아네트가 커다란 직사각형 식탁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 빵을 뜯어 먹으며 말했다.


“호문쿨루스는 좋겠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서.”


맞은편에 앉아있던 리브가 문장이 적힌 수첩을 가운데에 놓았다.


[난 언제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지?]


리브의 수첩을 본 아네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때문에 마력을 회복하느라 이 재수 없는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


‘아...’


아네트의 눈치를 살핀 리브가 수첩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 의뢰는 아직 안 끝났어. 거래가 완전히 마무리되어야 끝인 거야.”


‘거래라면, 마석을 넘겨주는 걸로 빚을 갚는다던가 해서 자유로워지는 건가?’


깔끔하게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인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기다렸어?”


아네트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남자의 말에 대꾸했다.


“뭐, 조금?”


남자는 팔짱을 끼고 식탁에 허리를 걸쳤다.


“진짜로 마석을 가져올 줄은 몰랐어.”


빵을 다 먹은 아네트가 가죽 주머니에서 검은색 마석을 꺼내 자랑했다.


“이거 봐. 이제 바만이 약속만 제대로 지켜주면 정말 끝이라고.”

“흠... 바만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해?”


아네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바만’이라는 사람은 그리 정직한 성격이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바만은 젠틀한 나랑은 달라.”


남자의 말에 아네트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클린트. 나한텐 너나 바만이나 똑같아!”


‘클린트? 저택의 주인이 클린트가 아니었던가?’


아네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클린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섭섭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나름 걱정해 줬던 건가.’


클린트가 이번엔 리브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너는?”


[난 용병이다.]


“수첩? 말을 못 하는 건가?”


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네트에겐 용병을 부릴 정도의 돈이 없었을 텐데? 뭘 받기로 했지?”


[목소리를 찾아주기로 했다.]


“목소리. 그랬군. 그럼 혹시 모르니 너도 같이 가는 게 났겠어.”


‘어딜 간다는 거지?’


“아네트가 바만이랑 한 거래는 틀어질 가능성이 높아. 그럼, 아네트가 네 목소리도 찾아주기로 한 것도 물거품이 되겠지.”


클린트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전부 헛고생을 한 셈인데....’


헛고생도 헛고생이지만 다른 신체술사를 찾아 나서야 할 판이었다.

수첩 없이는 단순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떠돌이 생활을 기약 없이 해나가야 할 것이다.


리브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내가 아네트를 대신해서 네 목소리를 찾아줄 수 있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받기로 한 보수는 같은데, 추가로 의뢰가 늘어나는 건 계산이 맞질 않았다.


‘그래. 여태까지 운이 좋았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린 바만이랑 거래를 하기 위해 남부에 있는 스텔모프 지부로 갈 거야. 거기서 거래가 틀어지면 아네트를 데리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 그게 다야.”


잘하면 아네트와 클린트에게 빚을 달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쳇, 계약술식은 역시 말을 못 하면 써먹질 못하네....’


계약술식으로 보험을 들어둘 요량이었지만, 빌어먹을 몸이 도와주질 않았다.


“내일 아침에 출발할 테니 그때까지 여기로 와라.”


자리를 떠나려던 클린트에게 수첩을 내밀었다.


[스텔모프가 뭐지?]


“아네트가 말해주지 않았나? 아네트와 나 같은 신체술사들이 이룬 조직이다. 표면에 드러나길 꺼리는 집단이다만 너는 알 필요가 있겠지.”


클린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리브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너. 몸에 흐르는 피가 없군. 사람이 아니야. 호문쿨루스인가?”


‘그걸 한눈에 알아본 건가...’


리브가 가면을 벗지 않았는데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클린트가 두 번째였다.

그렇다면 클린트는 아네트보다도, 어쩌면 넬라보다도 월등한 실력을 갖춘 술사일 것이다.


‘나를 알아볼 정도로 실력 있는 술사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 라....’


스텔모프 남부지부에 있을 바만이라는 자는 예상 이상으로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리브의 머릿속에 적신호가 켜졌다.


“정답인가? 스텔모프의 주력은 호문쿨루스다. 만약 아네트를 데리고 여기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면 호문쿨루스들은 가급적 피해. 같은 호문쿨루스인 너라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클린트는 재킷에서 붉은 액체가 담긴 막대 모양 앰풀 두어 개를 꺼내며 복도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위험하다.’


사람의 목숨을 벌레 보듯이 하는 신체술사들의 조직.

게임의 후반부에서나 등장할 법한 흉악한 빌런들과 부대끼기엔 지금 리브는 너무나도 불안정했다.


넬라에게서 전수받은 계약술식은 조건 중 하나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한다.

그나마 걸어볼 만한 건 스킬 트라이얼뿐이지만, 술사 본인인 리브도 휘말릴 수 있는 리스크 높은 기술이었다.


용병들이 이런 일 저런 일 가리지 않고 받는 프리랜서라면, 신체술사들은 전문킬러였다.

수준급에 불과한 아네트도 넬라와의 전투에서 선전하지 않았던가.


언제 또 아네트 같은 형편에 맞는 신체술사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만 제대로 낼 수 있다면 불편함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네트와 더는 엮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딱 목소리까지만....’


*****


방으로 들어간 클린트는 동이 틀 무렵은 되어서야 밖으로 나왔다.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호문쿨루스는 식사가 필요 없듯이 수면도 필요 없었다.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호문쿨루스인지 확실하게 알아두고 싶지만, 그럴 시간을 주질 않는군?”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꼴찌네.”


아네트는 그대로 클린트가 나왔던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가는 거야?”

“기다릴 거 있어?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방안에는 붉은색 커다란 원과 원밖에 정체 모를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리브와 클린트가 아네트가 서 있는 원안으로 들어갔다.

아네트가 자연스럽게 걸어들어오는 리브를 향해 이상하다는 눈길을 보냈다.


“리브?”

“리브라고 하는구나. 같이 가기로 했어.”


아네트는 손가락으로 클린트를 가리키며 리브에게 따졌다.


“왜? 나 보수 안 떼먹어.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마력 좀 쓰는 건데. 날 이런 사기꾼이랑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사기꾼...?”


사기꾼이라는 말에 클린트가 움찔했다.


‘당장 보이는 것만으로는 클린트가 아네트에게 나쁜 뜻을 가지고 있다던가 그런 게 아닌 것 같긴 한데.’


오히려 과보호에 가까웠다.


리브는 클린트와 아네트의 관계에 흥미가 생겼다.


‘연인은 아닌 것 같고....’


“거짓말한 게 대체 몇 번이야. 사기꾼이지!”

“그건... 다 이유가 있어서.”


[너희 둘은 남매인가?]


리브가 둘 사이에 수첩을 슬쩍 내밀었다.


“아니!!! 그렇게 보여?”


아네트의 노성이 천장을 꿰뚫었다.


‘아니구나.’


“하하하. 그만 가자.”


클린트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


“뭐가 웃겨! 리브.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아네트의 거친 목소리에 리브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린트가 앰풀을 열고 붉은색 액체를 바닥에 뿌리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방의 모습이 처음부터 다른 방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고풍스러운 저택의 큰 방에서 매끈한 대리석과 스테인리스가 얽힌 작은 방으로 배경이 바뀌니 몰려오는 이질감이 상당했다.


바닥에 그려져 있던 붉은 원의 크기도 눈에 띄게 작아졌다.

리브의 한쪽 발이 삐져나와 붉은 선을 제대로 밟고 있었다.


‘전이술식....’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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