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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w
작품등록일 :
2024.05.0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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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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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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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페사이트(3)

DUMMY

시의회의 임무를 하달받고 온 코랄은 리브와 아네트를 저택에서 쫓아냈다.


아네트가 항의했다.


“잠은 어디서 자라고!”

“조사할 동안 시에서 마련된 임시거처에서 생활해주시면 됩니다.”


이미 코랄은 아네트의 상대를 직원 한 명에게 맡기고 저택 안쪽까지 들어간 상태였다.


“대체 언제까지? 그리고 저택의 주인이 없는데 뭘 조사하겠다는 거야!”


아네트는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따졌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전 주인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주민들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국이나 연합국, 도시국가에서도 이전 주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라고! 그냥 너희가 무능한 거잖아!”


[플럼. 28세. 시티 가드.]


시티 가드는 위병과는 다른 도시국가 내부의 무력조직이었다.

겉으로 드러나 도시를 지키는 게 위병이라면, 시티 가드는 이른바 비밀요원.

그들은 모든 테마의 도시국가에 존재했다.

도시의 비밀요원답게 하나하나 실력이 뛰어나다는 설정이 있었다.


아크라딘은 마술사지만 페사이트는 공학 계통의 도시국가.

페사이트의 시티 가드는 술사들과 다르게 집단행동에 능숙했다.

그들이 짜놓은 판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는 건 자살행위였다.


‘내가 수행비서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마술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왔겠네.’


아크라딘의 수행비서라는 말은 리브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술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과격한 방식으로 쳐들어왔다는 건 어지간하면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나가야 할 대기 중의 마나가 툭툭 끊기며 불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술식대항은 완벽하다 이건가....’


“임시거처로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리브! 포기가 빠르잖아!”


플럼을 포함한 시티 가드들도 경계대상이지만, 마술사이면서 시티 가드인 코랄도 문제다.


플럼을 뒤따라가던 리브는 오랜만에 수첩을 펼쳐 글자를 적었다.


[이 자식들 작정하고 왔어. 저택 전체가 술식대항영역이야.]


아네트가 플럼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저택을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전이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기만큼 안전한 곳은 또 없잖아.”


리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을 처리해두고 가라고 아크라딘이 내게 수행비서 자리를 준 것 같군.]


“여깁니다.”


플럼이 안내한 곳은 10층짜리 아파트였다.


20평 정도 되는 익숙한 내부는 마치 집에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난 옆에 있는 걸 쓰면 되지?”


아네트가 옆의 다른 문 앞에 섰다.


“아닙니다. 같이 이 방을 써주세요.”

“왜? 한 명당 하나 아니야? 그것보다 난 제국의 귀족이라고. 이런 대접은 못 참아.”


아네트가 뻔뻔하게 가짜 신분을 내세웠다.


“하하... 이거 곤란하게 됐네요. 최근 난민분들이 대거 들어와서 빈방이 없습니다.”


‘아... 난민들이라고 하면....’


왕국의 바아보오 남작에게서 도망친 농민들.


말하기가 무섭게 아네트 앞에 있던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끝으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무슨 일 있습니까?”


남작을 비난하고 농민들을 이끌던 리더.

실론이었다.


플럼이 침착하게 고개를 푹 숙이며 사죄했다.


“시끄럽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어...? 침묵하는 가면?”


실론은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리브를 단번에 알아봤다.


“오랜만이군.”


*****


좌탁하나를 사이에 두고 리브와 실론이 마주 앉았다.


[실론. 27세. 백수.]


기어코 혼자 쓰겠다는 아네트에게 밀려난 리브는 당분간 실론에게 얹혀살게 되었다.

다행히 실론이 흔쾌히 수락해주었기에 곤란한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빚을 졌군.”

“아냐. 아냐. 그렇게 보내고 여태 찝찝했었는데, 오히려 잘 됐어. 이걸로 빚 같은 건 전부 없는 걸로 하자고.”


‘난 딱히 아무것도 안 했는데... 흠....’


실론은 노예구출에 목숨을 걸었다.

리브가 남작의 용병으로서 손을 거들어 주지 않은 것만 해도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비랑촌에서 아네트가 도와준 걸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때 아네트는 넬라와 끝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리브의 품에서 검은색 마석을 훔쳐 달아나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저택에서 아네트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건 그 영향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있게 됐군. 축하파티라도 해줘야 하나?”


실론이 실실 웃었다.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기도 바쁘지 않나?”

“바쁘긴 한데... 축하할 일이 있다면 해야지!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실론이 냉장고에서 술병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잔 하나를 치켜들며 말했다.


“한잔할래?”


리브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못 먹는다.”


목소리를 되찾긴 했지만, 입의 기능을 전부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음식을 억지로 몸 안에 집어넣더라도 소화기관도, 배설기관도 없는 리브의 신체로는 음식물 섭취는 불가능하다.


“술뿐만 아니라 음식 자체를 먹지 못한다.”


실론은 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왔다.


“저주 때문에? 그래서 에둘러 거절한 거였구나. 내가 눈치가 없었군.”


뽕!


‘술병은 따는구나....’


“신경 쓰지 마라. 이젠 익숙하니까.”


실론은 적당한 크기의 컵에 따른 술을 한 번에 털어 마셨다.


쪼르르륵.


꿀꺽꿀꺽 꿀꺽.


“캬핫!”


‘전혀 신경 쓰지 않는구나....’


“아까 봤던 아가씨는 누구야?”

“목소리를 되찾아준 은인이다.”

“오... 보기완 다르게 재주가 많은 아가씨였군.”


‘그래. 보기와 아주 다르지. 두부 썰듯 사람을 썰어 대는 신체술사라고는 상상도 못 할 거다.’


“비랑촌을 박살 낸 건 침묵하는 가면. 네가 한 일이지?”


실론의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타이밍이 절묘하거든.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것까지도. 비랑촌을 소개해 준 건 나니까.”


‘아는 사람이 비랑촌에 있기라도 했던 걸까? 딱히 숨길 이유는 없지.’


“시비가 붙었는데 일이 좀 커졌지. 무슨 문제 있나?”

“흐흐흐. 킥킥... 하하하하! 잘했어. 아주 잘했다고. 내심 네가 거길 정리해주길 기대했을지도 몰라. 큭큭큭.”


얼굴에 취기가 오른 실론이 웃음을 터트렸다.


“도움이 됐나?”


실론은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도시에 살던 주민들이 비랑촌의 용병들에게 난민들을 쫓아내달라고 의뢰한다는 소문을 들었었거든. 페사이트로 오면서도 마음에 걸렸는데, 딱 맞춰 개박살이 났지 뭐야! 하하하하!”


불안감에 비랑촌에 관한 정보를 싹싹 긁어모았던 게 외부인인 실론이 비랑촌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던 이유였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해. 페사이트에 있는 한 도와줄 테니까. 나도 뭐 가진 건 없다만....”


꿀꺽꿀꺽.


“캬핫!”


비랑촌의 정보까지 알 정도라면 실론은 페사이트에 관한 정보도 많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럼 바로 물어볼 게 있다.”


얼굴이 새빨갛게 된 실론은 술병 하나를 더 꺼내왔다.


뽕!


‘술에 엄청 약한 편인 거 같은데... 그 꼴로 더 마시는 거야...?’


“뭔데?”

“시의원인 챠콜과 그 수행비서 코랄. 페사이트의 시티 가드에 대해서 알고 싶다.”


실론은 아예 술을 따르지도 않고 병나발을 불었다.


꿀꺽꿀꺽.


“캬하!! 아예 뿌리를 뽑으려고? 서비스가 너무 좋잖아! 침묵하는 가면!”


‘서비스? 역시 그 둘이 넬라와 연결된 건 맞았어.’


한껏 취기가 오른 실론은 언제 토사물을 뱉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좀 흐느적거리는 거 같은데. 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건 다 말해줄게! 잘 부탁한다고.”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챠콜! 아주 훌륭하신 분이지. 페사이트의 시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최고의 시의원!”


‘이건 글러 먹었잖아!’


실론은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렸다.


“근데 이 새끼! 아주 음흉한 새끼였어! 비랑촌이랑 결탁을 해가지고!”


리브가 황급히 실론의 입을 막았다.


“좀 조용히 부탁하지.... 다른 사람이 들어서 좋을 게 없지 않나?”

“어...? 어... 그렇지....”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놔주었다.


“챠콜은 비랑촌의 용병들을 이용해서 다른 시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어. 시의회가 완전히 그놈 손에 떨어진 거지.”

“용병들을 이용해서 협박이라도 한 건가? 시티 가드들이나 아크라딘은 지켜보기만 했고?”

“협박도 하고, 돈도 쥐여주고 할 수 있는 건 다해준 모양이야.”


‘비랑촌에 더러운 일을 맡기고 본인은 깨끗한 손으로 시의회를 장악했단 말이군.’


어느 정도 리브의 예상과 비슷했다.

챠콜이 시의회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장악했다면 비랑촌과의 유착 관계를 폭로해도 호응해주는 시의원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의회를 장악한 챠콜이 노리는 건 뭐지? 역시 시장이 되고 싶어 하는 건가?”

“시장은 발판에 불과해.”


정신을 차린 실론은 물 한 컵을 떠다 마셨다.


“그놈은 왕이 되려고 한다. 미친놈이지.”


페사이트는 기본적으로 공화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아크라딘이 30년간 시장 자리를 유지해 온 것도 시민들의 선택.


‘시장이 된 다음, 왕국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진심인가?’


페사이트로 흘러들어온 시민 중에는 술사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론과 농민들처럼 귀족들을 피해서 도망쳐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후자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왕처럼 군림하는 시장이 되려고 하는 거겠지?”


리브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챠콜은 그 정도로 무리수를 두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론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왕이다. 틀림없어. 내가 아직 남작의 사병일 때, 그놈이 연합국으로 드나들던 모습을 똑똑히 봤지. 당연히 변장하고 있었지만, 옆에 붙어 있던 여자도 그렇고 척 보고 이놈이구나 싶었지. 그놈은 페사이트를 연합국으로 편입시키려 한다.”

“덩치가 큰 연합국의 말석에 들겠다는 말인가?”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래. 그런데 그 자식이 겨우 말석에 만족하겠나?”


‘아니겠지. 챠콜의 최종 목적지는....’


실론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다음엔 연합국의 머리가 되려고 하겠지. 그다음엔 제국도 먹어 재끼고....”


목숨을 걸고 도망쳐온 도시가 호랑이 굴이었다.

페사이트의 어두운 일면에도 손대길 주저하지 않는 챠콜이 권력을 잡는다면 일반 시민들보다도 가치가 떨어지는 난민들의 앞길은 불 보듯 뻔했다.

실론은 챠콜이 왕이 된 미래를 우려했다.


‘야심가라는 건 잘 알겠다만, 연합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챠콜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호문쿨루스RPG에서 보여준 연합국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하나의 커다란 국가인 제국과 다르게 연합국은 수십 개의 왕국으로 이뤄져 있다.

체면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 내부에서 경쟁하며 동시에 제국을 상대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였다간 나라 전체가 잡아먹혔다.


‘제국은 혈통을 중요시했었지... 애초에 챠콜에겐 선택지가 없었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게다가 아크라딘이 누구인가.


알파급 마술사.


세월을 맞아 노쇠했다 한들 제국과 연합국의 전쟁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직접 손을 쓰지 않고 나한테 떠넘긴 게 걸리긴 하는데....’


실론이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하! 침묵하는 가면. 아 이제 침묵 안 하는구나. 네가 해결해주겠다는 얘기지? 하하하!”


‘검은색 마석을 찾기도 바쁜데 페사이트의 문제를 왜 내가 해결해.’


리브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지.”

“어디 가는데...?”


수행비서인 리브는 시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시청. 시장실.”


‘네가 해결해라.’


그리고 리브가 실론에게서 알아낸 정보들을 선견술사인 아크라딘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챠콜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이유.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보지 못하는 리브와는 달리 아크라딘에게는 챠콜의 미래가 보이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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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사이트(3) 24.05.17 8 0 12쪽
11 페사이트(2) 24.05.16 7 0 13쪽
10 페사이트(1) 24.05.15 7 0 13쪽
9 협력관계(4) 24.05.14 9 0 14쪽
8 협력관계(3) 24.05.13 7 0 13쪽
7 협력관계(2) 24.05.12 7 0 12쪽
6 협력관계(1) 24.05.11 11 0 13쪽
5 비랑촌(4) 24.05.10 10 0 15쪽
4 비랑촌(3) 24.05.09 10 0 13쪽
3 비랑촌(2) 24.05.08 11 0 14쪽
2 비랑촌(1) 24.05.08 13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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