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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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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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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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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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기 토론 프로그램 중구난방으로부터 재섭외가 되었다.

여동생 주화와 매제한테 천만 원 곧 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시골 집 아버지 어머니한테 안마 의자 곧 배송될 거라고 역시 또 큰소리 쳤다.

아는 지인들 연락 올 때마다 근사한데 가서 음주가무 즐기자고, 내가 다 쏜다고 담대하게 지껄여댔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신선혜 변호사.

그녀는 여전히 내가 자신을 이용해먹고 배신 때렸다 생각하고 있었다.

김진홍 의원 전직 여자 보좌관이 SNS 글을 통해 내 방송 멘트를 전부 뒷받침해주었으니 더더욱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신선혜 변호사에게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아직도 정녕 사랑은 내게 과소비란 말인가.


‘‘어머머! 안녕하세요, 강소장니임!’’


아니, 이제 내 인생은 소비가 미덕이다.

그동안 너무 저금만 하고 살아왔다.


‘‘아이고! 소라씨! 최사장은 아직 안 오셨나?’’


시사팩폭쇼 스튜디오 건물 로비에서 한소라와 마주쳤다.

평소라면 그냥 눈인사 정도 하고 내가 혹시나 계속 말을 걸까, 핸드폰 들여다보기 바빴을 그녀.

하지만 지금은 마치 7성 호텔 안내 데스크 직원보다 더 화사하게 나를 맞이해주고 있다.


‘‘최사장이요? 요즘 빠져가지고 맨날 지각이에요, 호호호.’’


예전 같으면 내 개드립에 예의상 그냥 피식 거리고 다시 핸드폰 보기 바쁜 그녀였는데 어찌.


‘‘벌써 갱년기인지 툭, 하면 제작진한테 짜증내서 요즘 다들 꼴 보기 싫어 죽겠다고 난리도 아닌 걸요, 호호호.’’


감개무량했다.

최웅이랑 뒤에서 툭, 하면 내 뒷담화나 깠을 그녀였건만.

지금은 오히려 나와 최웅 뒷담화를 까고 있다니.

이 기세를 그대로 이어가자.


‘‘참! 오늘 방송에 이현호 기자도 나오시나?’’

‘‘예, 오늘 나오는 날이죠.’’

‘‘그 친구, 요즘 좀 총기가 많이 사라진 것 같던데.’’

‘‘어머! 왜요?’’


그녀가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음, 선을 살짝 넘어보려고 했었는데 선이 생각보다 아주 근접해 있었나 보군.

둘이 진짜 몰래 사귀나.

너희 잤냐?


‘‘아, 아니요. 우리가 미국은 아니니까. 다시 말해 총기 자유 국가가 아니니까요. 총기가 있으면 더 문제일 것 같아서요. 소라씨, 얼른 올라가죠, 하하하, 하하하.’’



+++



간만에 출연한 시사팩폭쇼가 시작되었다.

방송 시간에 거의 맞춰 허겁지겁 나타난 최웅은 반가움의 표시로 내게 시원한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었다.

정식 안부 인사말은 방송에 들어와서 나눴다.


‘‘강소장!’’

‘‘응?’’

‘‘응, 이라니. 이놈 봐라.’’

‘‘어이, 최형! 나 예전의 강대구가 아닌데. 방송 중에는 존중 좀 해 주시죠!’’

‘‘뭐, 뭐라고, 이 자식이 근데!’’

‘‘이 자식이라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겁 대가리 없이. 내 지금 이 기세대로라면 당신 자리도 위태위태해!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나 봐?’’


내가 한참 거드름을 피우며 답했다.

실시간 채팅창은 벌써부터 핫해졌다.



- 요즘 걍됐구면 저런 말 할 자격 충분히 있지.

- 인정. 요즘 젤 핫한 시사 패널이잖아.

- 격세지감 느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제일 많이 까이던 시사평론가였는데 요새 대체 몇 연타석 홈런이야.

- 썰에 의하면 국정원 고위인사가 빨대라고 하던데

- 내가 썰로 듣기에는 백악관과도 연결되어 있다던데



채팅창을 힐끔 보고 난 최웅이 멘트를 이어갔다.


‘‘채팅창 보니까 강소장 너 무슨 국정원이니 백악관에 끈 있다면서? 그래서 요즘 그렇게 막 나고 있는 거라면서? 그런다고 새끼야, 내가 너 무서워 할 것 같냐? 응? 죄송합니다, 강소장님. 우리 애들 대학 들어가려면 아직 먼 거 잘 아시잖아요, 예?’’


최웅의 개드립에 채팅창이 ㅋㅋㅋㅋㅋ 로 도배되었고, 한소라를 비롯 다른 패널, 제작진들 모두 빵 터졌다

오로지 한 인간, 이현호만이 적응이 안 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평소와는 확실히 확연히 달랐다.

엄친아 기자 이현호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웅과 한소라가 계속 나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어이, 최형! 아니 최씨!’’

‘‘응? 아니, 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하시나. 귀찮게 시리.’’

‘‘에이, 제가 듣고 싶어서 그러나요. 우리 시사팩폭쇼 시청자들이 간절히 원하시니까 그렇죠.’’

‘‘아이, 여기 청취자 애들 원래 수준 너무 떨어져서 그동안 내 고견 잘 소화도 하지 못했자나.’’

‘‘뭐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었죠, 호호호.’’


나와 최웅, 한소라의 대화를 놀고들 있네 하는 표정으로 잠시 잠자코 듣기만 하던 이현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마침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음, 근데 제가 오늘 엄청난 특종 하나 가져왔걸량요.’’

‘‘응. 이기자, 무슨 엄청난 특종? 대본에 그런 거 안 써있던데.’’


그때까지 이현호에게 거의 관심을 주지 않던 최웅이 그제야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이천식 선배님 차기 총선 출마지요.’’


이천식.

MZ 세대를 대표하는 젊은 정치인.

차기 총선에서 사실상 캐스팅 보드는 2,30대가 쥐고 있는 형국.

그런 의미에서 보수당 입장에서 이천식을 어느 지역에 활용하느냐를 가지고 꽤나 고심해야 한다.


벌써부터 이천식의 공천 지역구를 가지고 설왕설래가 한창 시작되고 있는 상황.

수도권에 바람을 일으켜야 하기에 험지에 출마시켜야 한다는 주장.

보수의 텃밭이자 이천식의 고향인 TK 지역에 안전빵 출마시키고 대신 전국구 유세를 시켜야 한다는 주장.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절충안으로 강남 3구 중 한 곳에 이천식을 공천하자는 주장이 요즘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강남 3구에는 이미 터줏대감들이 버티고 있고, 나름 그들이 보수당 내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라서 이천식에게 쉽사리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천식 선배님 차기 출마 지역구가 현재 정가의 초유의 관심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기자! 이천식 따로 만났다고?’’

‘‘예. 지난주에 잠깐 티타임을 가졌었지요, 하하하.’’


이현호, 저 새끼, 또 시작이구나.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왜냐하면 이현호가 뭘 하려고 하는 지 바로 감이 왔기 때문이다.


이천식과 서울대 경제학과 1년 선후배 관계인 이현호.

학교 다닐 때부터 친한 선후배 관계였다며 틈만 나면 이천식을 팔아 제낀다.


뭐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뭐 저 새끼 표현대로 지가 이천식의 가장 아끼는 학교 후배인지 어떤지는 증명된 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우리 천식이 형, 식이 선배 이런 호칭을 쓰며 마치 자신이 아는 이런 저런 정가 뒷이야기 소스까지 심지어 이천식 발인 척 페인트까지 쓰고 있는 이현호, 저 비열하고 간사한 새끼!

지금 생각지도 않게 내게 밀리니까 또 치트키로 이천식 이름을 팔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잠깐 통화해 보니까 우리 천식이 형 대충 다음 출마 지역 결심 선 거 같더라고요.’’

‘‘와! 정말! 어딘데, 이기자?’’


최웅이 호들갑을 떨며 묻자 이현호는 반사적으로 거드름부터 피워댔다.


‘‘이 정도면 특종 맞긴 맞죠? 최엠씨님.’’

‘‘아이, 그럼. 우리 이현호 기자야 뭐 나올 때마다 항상 특종이죠. 아니, 존재 자체가 특종이지, 하하하.’’

‘‘오늘도 역시나, 저희 엄친아 기자님 이현호 기자님 덕에 저희 시사팩폭쇼 인용 기사 좀 뜨겠는데요, 호호호.’’


최웅이야 푸쉬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 영혼 없이 내뱉는 거 뻔히 알지만서도, 그새 또 내게서 이현호에게로 미련 없이 시선과 관심을 옮기는 한소라, 너란 여자 밉다, 정말 밉다.


‘‘글쎄, 우선 엠씨님들께서는 저희 자랑스런 서울대 경제학과 천식 선배님이 어디로 출마하실 거라 생각하고 계시는 데요?’’


이현호, 저 새끼는 항상 저런 식이다.

좀만 틈을 보이면 지가 MC질 하려고 지랄이다.

실제 호시탐탐 최웅에게 무슨 변고가 닥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언젠가 한소라 옆자리를 턱, 하니 차지한 후 방송 중에도 탁자 아래에서 그녀 무릎을 만지려는,

아무튼 아주 그냥 개새끼다, 재수 없는 개새끼다.


‘‘음, 내 생각에는 험지 출마할 것 같은데. 진보세가 강한 강북 쪽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최엠씨님?’’

‘‘이천식이는 아직 젊잖아.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지금은 쉬운 데서 당선되는 거보다 떨어지더라도 살신성인하는 이미지 만드는 게 정치 생명에 훨씬 더 도움 될 걸.’’

‘‘일리가 있는 말씀이시네요.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도 있듯이.’’

‘‘그러니까.’’

‘‘그럼, 한엠씨님은요?’’


이현호가 최웅에 이어 한소라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그건 그렇고, 이 프로 MC들은 자존심들도 없나.

굴러온 돌이 지들을 게스트 취급하고 있는 데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네.


‘‘음, 제 생각에는요. 최엠씨님과 정반대 생각인데요.’’

‘‘왜죠?’’

‘‘그래야 방송이 되니까요, 호호호.’’


두 년놈들 또 지랄들을 한다, 쯧쯧.


‘‘농담이었고요. 이전에 저희 프로 출연했던 모 원로 정치인이 이런 말씀 하셨잖아요. 밖에서는 모르지만 안에서는 금뱃지 다는 사람이나 안 달고 있는 사람이랑 천지차이라고. 이천식 최고위원이 지난 총선에서 이미 보수당 험지라 할 수 있는 은평구에서 출마해 고배를 마셨고 몇 년 간 아무리 청년 정치인으로 주가를 높였다고 해도 원내 입성 필요성을 그만큼 절감했을 테니 이번에는 될 만한 곳에 출마할 것 같은 데요.’’

‘‘음, 한엠씨님!’’


이현오가 쓸 데 없이 목소리를 깔며 한소라를 불렀다.


‘‘예? 왜요?’’


한소라가 그새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되물었다.


‘‘제법이시네요, 하하하.’’


진짜 두 년놈이 놀고들 있다.

최웅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역시 내 속내와 자기 생각이 일치한다는 듯 슬그머니 윙크를 해 보인다.


‘‘최엠씨님보다도 오히려 나은 데요.’’

‘‘어머! 그래요? 그럼, 이기자님이 이천식 최고위원한테 들은 내용이란 ......’’

‘‘아이, 근데 생각해 보니 이러다 천식이 형한테 혼날 것 같은데.’’

‘‘어머! 여기서 갑자기 발걸음을 돌리시면 .....’’

‘‘원래 제 스타일이 여자한테도 직진하는 척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길을 살짝 돌리면서 애간장을 태우는 스타일이라서요. 밀당의 귀재 같은, 하하하.’’


저 씹새끼 진짜.

정말 마이크에다 대고 욕 나올 뻔 했다.

한소라한테 껄떡대는 것도 그렇지만, 시사평론가 자격으로 출연한 나의 고견을 들으려는 조금의 노력도 보이지 않다니.

그것도 요즘 가장 핫한 시사평론가인 나를 감히 스킵?


저게 정녕 사람 배에서 나온 새끼가 맞을까.

혹시 들개와 길냥이 사이에서 났는데 동굴에서 마늘을 존나 쳐 먹어서 인간으로 환생한 것은 아닐까?


‘‘좋습니다. 제가 우리 천식이 형님이 나오시려고 준비 중이신 지역구를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대충 중요한 힌트 하나는 드릴게요. 험지도 아니고, 강남이나 TK도 아닙니다. 이 정도면 되었죠? 하하하.’’


최웅과 한소라, 그 밖의 패널과 제작진들이 웅성웅성대었다.

그 사이 이현호는 마치 지가 무슨 퀴즈 프로 사회자라도 되는 양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고 있다.


‘‘하하하, 이기자! 난 대충 알 것 같은데.’’


최웅이 이현호와 비슷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예? 그럼, 맞혀보시죠.’’

‘‘그러니까 강남도 아니고 TK도 아니면서 보수 쪽에 유리한 지역구라는 이야기잖아. 그럼, 딱 두 군데네.’’

‘‘어디어디요?’’

‘‘분당이랑 휴전선 부근 경기도 북부 쪽 어딘가. 그 중에 이천식이랑 어떻게든 연고 있는 곳을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팅 창에서는 바로 대신 검색에 들어가 주겠다는 네티즌 시청자들 글이 이어졌다.

이천식 뿐 아니라 의사인 이천식 아버지나 교수인 이천식 어머니 연고까지도 검색해 보겠노라고.


하지만 나만은 그런 채팅창을 향해 비웃음을 보냈다.

왜냐하면 내 눈 앞에 드디어 언제나 반가운 그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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