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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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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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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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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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DUMMY





잠시 나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프롬프터에 이어지고 있는 저 말을 고스란히 그대로 해야 하나.

많이 부담이 되었다.

요즘에는 예전과 달리 툭 하면 연예 기획사들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오니까.


나는 하단에 적혀 있는 동접자 숫자를 재확인해 보았다.

여전히 1명이다.

여동생 주화일까? 아니면 매제 놈인가?

그것도 아니면 고향 친구 놈들 중 하나? 대학교 친구?

어쩌면 사회 생활하면서 만난 지인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만에 예고도 없이 하고 있는 내 개인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랑 나쁜 관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에라, 인생에서 뭐 대단하게 기대할 게 있다고, 그냥 계속 가는 거다.


‘‘뭐 청춘남녀가 사귈 수는 있죠. 둘이 잘 어울리기도 하고. 그건 뭐 문제가 아닌데, 그런데 진짜 문제가 따로 있죠. 그게 뭐냐면요. 둘이서 건전한 데이트를 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서 말이죠. 둘이 만나서, 글쎄, 이런 말 하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글쎄 오성과 진주연이 둘이 만나 마약을 함께 투약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것도 필로폰으로요. 으흠!’’


이번 건 뭐 얄짤 없는 명예훼손 깜이다.

그래도 내가 감히 입 밖으로 내뱉은 이유는?

그러니까 어떤 의무감 내지 소명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 프롬프터 창.

분명 그것은 나만 보라고 생겨난 것이 아닐 것이다.

내 입을 통해, 내 언어를 통해, 세상에 팩트를 알리라는 어떤 초월적 존재의 계시 같은 것일 게다.

만약 나 혼자 이 팩트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마치 전장에 나서는 화랑처럼 결연한 자세로 .....


아이, 시바.

어떻게든 내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애쓰고 있는 와중에, 댓글이 하나 떴다.


- 허걱! 방금 말씀하신 거 사실이에요? 바로 신고 들어갑니다. 평소 진주연이 존나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ㅎㅎ


하단을 보니 여전히 동접자는 1명이었다.



+++



문제의 동접자는 내 지인이 아니었다.

지인이라면 절대 이럴 수 없을 것이다.

지인이라면 우선 나한테 따로 문자나 쪽지를 보내와서 내가 내뱉은 멘트를 다른 곳에 퍼가도 될지 물어보기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동접자는 내 허락도 없이 내 멘트를 곧바로 여기저기 다른 커뮤니티에 퍼날랐다.

진짜로 경찰서에 신고도 했고, 언론사 곳곳에 제보도 했다.

이 정도 정성이면, 정말 열렬한 진주연 안티팬인 모양이다.


유명 시인의 시구가 내 인생과 들어맞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시구처럼,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원래 그래도 인터넷에서 인지도가 있으니 무명은 아니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 더, 내 본의와 어긋나게 너무나 유명해져버렸다.


그 이유는 어제 오늘 그 동접자가 여기저기에 제보 글을 올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글쎄, 내 방송 다음날 진주연이 곧바로 자진실토를 하고 만 것이었다!


하필 어제 새벽까지 술에 잔뜩 취해 있던 진주연.

인사불성 상태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고, 인터넷에 따끈따끈하게 퍼지기 시작한 아이돌 스타 오성과의 연애와 필리폰 흡입 사실에 대해 팬 하나가 물어보자, 글쎄 연애 사실만 밝히는 게 그치는 게 아니라 같이 마약 한 이야기까지 여과 없이 전부 실토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는 머리를 한껏 풀어헤치면서,


‘‘흐흐흐흐흐흐.’’


술만 취한 게 아니라 어젯밤에도 역시 마약을 흡입했던 걸로 추정되었다.


진주연의 취중 방송, 아니 마약 흡입 방송은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인터넷을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녀 스캔들의 진원지인 나의 개인방송, 그리고 나의 신원 역시 덩달아 관심과 조명을 받게 될 수밖에.


- 저 듣보잡 뭔데 저 엄청난 걸 알아냈지?

- 다스패치 같은 곳에서 일하는 기자 아님?

- 쟤 기자 아니라 시사평론가임. 그럼, 어디 아는 기자한테 들은 건가?

- 그럼 기자 지가 직접 터뜨리지 뭣 하러 저 인간한테 소스 줌?

- 명예훼손 뭐 그런 거 겁나서 간 보기로 이용하고 그러는 거 아닐까?

- 저 양반 그래도 아주 듣보잡은 아님. 시사팩폭쇼 고정임.

- 검색해 보니까 예전부터 설화도 많았더만.

- 맞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해서 욕도 많이 쳐 먹었음. 근데 얼마 전 아팠다가 복귀하더니 좀 달라졌던데. 이번 건도 그렇고 축구 감독 구라친 것도 맞히고.



네티즌들뿐만 아니었다.

기자들 인터뷰 요청도 쇄도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강소장님! 경애하는 강소장님!’’

‘‘아이. 진짜.’’

‘‘오늘만큼은 나 강소장님 앞에서 솔직해지고 싶어. 진심과 진정성을 가지고 강소장님 대하고 싶다고.’’

‘‘나 진짜 오늘 안 돼요.’’

‘‘뭘 해주면 될까? 출연료 따블?’’


시사팩폭쇼 MC 최웅.

내가 자기 방송에 이어 지난밤까지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혹시나 오늘 자기 프로 출연을 거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인지 바로 연락을 해왔다.


‘‘나 지금 오성이랑 진주연 사생 팬들한테 살해 협박 메시지까지 받고 있어요. 나 오늘 진짜 출연 못해.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가.’’

‘‘야! 강대구! 너 진짜 이럴 거야? 너 인마 지금까지 누가 키워줬어? 노점 전전하던 놈 백화점은 아니더라도 마트에 입점 시켜준 게 누구야?’’

‘‘에이, 당신 방송이 무슨 마트야. 엄밀히 말하면 노점하는 놈 도떼기시장에 넣어준 격이지.’’

‘‘이 자식이, 진짜. 관 둬, 이 새끼야! 인연 끊어, 이 새끼야! 나도 너 안 봐, 이 새끼야!’’


최웅이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몇 분 채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예상대로 최웅이 아니라 이번에는 한소라였다.

매번 그들은 이런 식이다.

어색한 굿캅 배드캅 수법.


‘‘오빠앙!’’

‘‘아이, 진짜.’’

‘‘우리 꿈의 조회수 200만 한 번 가야죠. 정말 절호의 기회잖아요, 오빠앙!’’

‘‘나 진짜 오성과 진주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더 이상 아는 것도 없고.’’

‘‘좋아요. 그건 그렇고, 강소장님, 대체 병원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한소라가 평소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애교조 말을 몇 마디 내뱉다가 다시 원래 목소리로 돌아왔다.

칼로 베어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도도한 말투.

특히나 나에게는 더더욱 어떠한 빈틈도 안 보여주려는 그런 말투.


‘‘무슨 일은 무슨.’’

‘‘아니, 그럼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바뀌어.’’

‘‘내가 뭐가 바뀌었는데?’’

‘‘강소장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참나.’’


내가 봐도 나는 바뀌어져 있었다.

심지어 한소라에게 있어서도.

예전 같으면 한소라가 나에게 애교조 말을 건네거나 뭔가를 캐 물으려 들면 바로 함락하는 게 내 캐릭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무슨 레지스탕스라도 되는 양 저항하거나 혹은 철벽남이라도 되는 척 팽팽하게 맞선다.


‘‘아이고 소라씨! 이거 어쩌지.’’

‘‘왜요?’’

‘‘미안하지만, 전화 끊어야겠네요. 글쎄, 컴퓨터 보고 있는데 중구난방 토론에서 피디가 급 연락 요망이라고 메일을 보내왔네.’’

‘‘뭐라고요? 어머나! 정말이요?’’


한 종편에서 1년 전 처음 선보인 토론 프로그램 중구난방.

진보 보수의 빅 스피커를 자처하는 두 논객 정원택과 김여중을 붙여놓았다.


이 새로운 토론 프로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모으며 토론 프로로서는 보기 드물게 20 프로 가까운 시청률을 자랑하며 고공행진을 하게 된 주원인은 단순히 출연진 덕분만은 아니었다.

기존 토론 프로와 가장 차별화된 점은 MC가 없다는 점.

프로그램명대로 중구난방 식으로 두 패널이 한 주에 있었던 이런 저런 시사 화제거리를 가지고 설전을 벌이는 포맷이다.


중재자가 없다 보니 가끔 정원택, 김여중 두 사람이 분기탱천하면서 몸싸움 일보 직전에 가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게 되었다.

둘 다 평소 뒤끝 없는 성격에 10년째 사석에서 가끔 만나 회포도 풀 정도로 막역한 사이이기에, 쌍욕에 가까운 언사를 주고받은 싸움이 있었어도 그 다음 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해맑은 얼굴로 오프닝을 하곤 하는 게 이 프로의 또 다른 킬 포인트였다.


‘‘여보세요, 유 피디님?’’


방금 전 한소라에게 중구난방 피디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떼어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러했기에 한소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은 후 곧바로 이메일에 적혀있는 번호를 눌렀다.


‘‘예, 누구시죠?’’

‘‘예, 저 강대구입니다. 시사평론가 강대구. 이메일을 주셔서 ......’’

‘‘아이고! 잠시만요. 제가 지금 운전 중인데요. 10분 내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중구난방 유피디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예감이 좋았다.

운전 중이라 통화를 못한다면 진지하게 이야기할 용건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예, 강선생님. 요즘 활약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아휴, 활약은요. 어제 낮밤 연타석으로 큰 사고 친 거 같은데.’’

‘‘사실 저 예전부터 강선생님한테, 뭐랄까, 이런 표현 써도 될까 싶은데, 좀 요주의 인물로 주시하고 있었거든요, 허허허.’’


아니나 다를까.

내가 기대하고 있던 그 시나리오대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저희 프로 중구난방이 이번 시즌부터 시청률 정체 상황에 들어갔거든요. 그 이유가 너무 캐릭터 강한 두 분이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적을 하시니까요. 저희도 어느 정도 이 점을 예상을 했거든요. 그래서 포맷 개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거의 만장일치로 생각하는 게 중재자를 두는 거였어요. 그렇다고 기존 토론프로처럼 MC를 두면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차별화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패널 중에 중도 성향에다 저 강대강 사이에서 좀 능청스럽게 중재할 수 있는 그런 인물, 그런 인물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선생님이 딱 거기에 맞더라고요. 그런데 솔직히, 허허허 .....’’


그 다음 부연설명은 굳이 필요 없었다.


‘‘제가 공중파나 종편에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인지도가 많이 딸리죠, 하하하.’’

‘‘허허허. 제가 말하기 껄끄러운 분을 이렇게 먼저 선수 쳐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이게 원래 제 캐릭터인 걸요, 뭘, 하하하.’’

‘‘예, 바로 그거죠. 저희가 바로 그런 캐릭터 때문에 강선생님을 주시만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던 참에 요 며칠 이렇게 핫 해지셨으니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있나요. 그래서 그러는데 ......’’


나도 모르게 내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귀도 발기가 될 수 있음을 난생 처음 느낄 정도로.


‘‘ ...... 저희 프로 중구난방에 혹시 강선생님 정식으로 모실 수 있을까 싶어서요. 그래서 이렇게 연락드리는 겁니다.’’


아아아! 내 인생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원하고 꿈꾸던 게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

꿈이냐 생시냐 진짜 너무하네 이 놈의 귀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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