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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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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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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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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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저품격 토크쇼.

한 주 동안 있었던 이런 저런 화제들을 가지고 개그맨 출신 MC 셋과 게스트들이 유치한 잡담을 하는 것이 기본 포맷이다.


시사 팩폭쇼가 정치 경제 분야를 주로 맡는다면 저품격 토크쇼는 연예계 스포츠 계 소식을 메인 테마로 다룬다.

또 시사 팩폭쇼가 간혹 예능적 재미를 위해 반말이나 쌍욕 등이 나오기는 하되 전반적으로 기존 뉴스 톤을 유지한다면, 저품격 토크쇼는 그런 거 없다.

제목 그대로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서 출연진들 간에 시도 때도 없이 반말, 막말, 쌍욕, 음담패설, 심지어 패드립까지 난무한다.


‘‘아니, 됐구 형은 간만에 저희 방송에는 웬 행차세요? 지난 마지막 방송에서 이런 레벨 안 맞는 방송은 다시는 출연 안 한다고 침까지 뱉고 가 놓고서는.’’


내 이름 강대구.

몇몇 인터넷 방송에서 애칭은 됐구다.

워낙 말도 안 되는 말을 많이 하다보니 내 입을 막을 때 마다 됐구!를 하다 보니 생긴 애칭이다.

물론 이 애칭에도 나는 별로 기분 상하지 않는다.

돈 벌이 되는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모든 요소들을 나는 환영하는 바이다.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하게 하십니까? 제 이름이 한국 사회 만방에 이르게 된 주춧돌 같은 방송이 바로 이 저품격 토크쇼인데. 저한테는 친정 같은 방송인데. 평소 저는 세 엠씨님이 쓰리 썸해서 저를 낳으셨다고 생각하며 방송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오프닝부터 말도 안 되는 드립으로 좌중을 좀 웃겨줬다.

20대 후반인 남자 둘 여자 하나 혼성 개그 트리오 엠씨들과는 사석에서도 격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안 느껴지는 사이였다.


‘‘자! 오늘 됐구 오빠도 나왔으니까 시사 주제 하나 갈까요?’’


오프닝에 이어 연예계 토픽 몇 개를 다루다가 MC 중 하나인 홍일점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그 트리오 중 유일한 여자이기도 하지만 실지 예명도 홍일점인 그녀였다.


‘‘뭘로 갈까? 참! 뭐니뭐니해도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지. 국회위에서 또 윤장숙이랑 지현태랑 대판 붙었잖아. 둘이 무슨 고양이와 쥐도 아니고 매번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으르렁.’’


여당 의원 윤장숙과 야당 의원 지현태.

같은 법사위원으로 간사를 맡고 있기도 한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천적으로 유명하다.

온라인 생중계가 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서로 삿대질과 반말에 심지어 욕설까지 교환한 전력이 있다.

이번 주 상임위에서도 둘이 또 한 판 대차게 붙었는데,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사내놈이 뭐 저렇게 찌질해.’’


증인 출석 문제 가지고 잠시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

그러다 마이크가 꺼진 줄 안 윤장숙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게 고스란히 지현태 귀에 들어갔다.


‘‘어어! 이거 엄연한 성희롱 발언이야, 당신!’’

‘‘성희롱은 얼어 죽을. 찌질한 놈 보고 찌질하다는 게 무슨 성희롱이냐?’’


뭐 이런 식으로 말싸움이 진행되더니, 급기야 못난 새끼, 또라이년 이런 욕설까지 비화되고 말았다.


‘‘이 광경 어떻게 보셨어요, 김배우님은?’’


MC들이 우선 나보다 영화 홍보를 위해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영화배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치에 항상 관심 있을 40대 배우였다.


‘‘정치 문외한들은 두 사람이 진짜 감정싸움 하는 건 줄 아는데, 정치에 좀만 관심 있는 우리 나이면 바로 보이지. 딱 보여.’’


김배우가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도 자기 캐릭터와 컨셉에 충실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라마에서 자주 꼰대 부장 역할을 해 온 터였으니까.


‘‘뭐가 보이시는 데요?’’

‘‘뭐가 보이긴. 서로 짜고 치는 게 보이지.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적대적 공생이라고나 할까.’’

‘‘적대적 공생이요?’’

‘‘그러니까 겉으로 싸우는 척 하면서 뒤로는 서로 이득 챙기는 거지. 각 진영 쪽에서는 용감무쌍한 전사 이미지를 가지게 되니까.’’

‘‘에이, 네티즌 여론 보면 싸늘하던데요. 나이 쳐 먹고 두 년 놈이 공적인 자리에서 뭐 하는 짓이냐, 다들 그렇게 욕하던데요.’’

‘‘쯧쯧. 그러니까 정치를 모르는 애들이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정치 쪽에서 유명한 말이 있지. 정치인은 부고 소식 말고는 어떤 소식이든 결국에는 다 좋은 거라고. 한 마디로 노이즈마케팅이 제일 잘 먹히는 곳이 저 바닥이라는 이야기지. 앞으로 당직 선거나 더 나아가 국회의원 공천될 때 저렇게 상대 진영과 대차게 싸운 게 분명히 플러스 요소가 된다고, 어험.’’


김배우의 강의 조 멘트가 헛기침으로 끝을 맺었다.

이윽고 MC들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자! 김배우님의 정치 강의 잘 들으셨는데요. 어떠세요, 강대구 시사평론가님. 동의하시나요?’’

‘‘예? 예?’’


나는 마치 딴청 피우던 학생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실지로 딴청을 비웠다.

왜냐하면, 다시 또 프롬프터 창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본인 전공 분야 이야기 나오는데 한 눈 파시면. 주위가 그렇게 산만해서 어떡하시려고 .....’’

‘‘음, 그러니까 얼핏 듣기에 김배우님 말씀은 서로 윈윈이니까 계속 저 컨셉질을 두 의원이 일부러 계속 하고 있다, 그 말씀이신 거죠?’’

‘‘그렇죠. 시사평론가면 뭐 이 정도는 기본 상식으로 탑재하고 있어야 정상 아니겠어요? 허허.’’


김배우가 나를 바라보면서 능청 섞인 웃음을 선보였다.


‘‘음, 근데 이번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으잉? 아니야?’’


이제부터 나는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프롬프터 속 찌라시 문구들을 읊기 시작한다.


‘‘둘은 컨셉질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진짜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것도 정치인으로서의 감정싸움이 아니라 이성으로서의 감정싸움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실소를 터뜨렸다.


‘‘뭐, 뭐라고요?’‘’

‘‘어머머머! 오늘도 바로 선 넘네, 됐구 오빠.’’

‘‘아이, 아무리 우리 프로가 저품격이 메인 컨셉이라고 해도 됐구 형, 이렇게까지 바닥 드러낼 필요는 없잖수. 심해까지 뚫고 들어갈 필요는 정말 없잖아.’’


MC들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괜히 뽀로통한 척 입을 내밀었다.


‘‘사람들한테 잘 안 알려진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려드릴 게요. 작년에 지현태 의원 비밀리에 이혼을 했거든요.’’

‘‘예에?’’

‘‘정말이에요?’’


솔직히 나도 처음 듣는 정보다.

그냥 내 눈앞에 또 펼쳐진 프롬프터에 그렇게 적혀 있기에 내뱉고 있는 것뿐이었다.


‘‘예, 그리고 알다시피 윤장숙 의원은 아직 결혼 안 한 몇 안 되는 의사당 내 미혼 의원이고요. 평소 윤의원은 같이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지현태 의원을 짝사랑했더랬죠. 하지만 지의원은 유부남이었던 데다가, 윤의원한테 이성으로서 매력을 전혀 못 느꼈겠죠. 상임위 활동의 일환으로 외유 같은 거 떠날 때도 일부러 윤의원이랑 비행기 좌석도 최대한 떨어져 앉으려고 신경 쓸 정도라죠.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한 윤의원은 결국 공개적인 상임위 활동에서 지의원 개망신 주기 플랜을 작동시키고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까지 윤장숙과 지현태 파이트에서 매번 선빵은 윤장숙이 때렸죠. 윤장숙이 인파이팅 하고 지현태는 되도록 안 엮이려고 계속 링 주변 돌면서 아웃복싱으로 일관하다가 윤장숙한테 코너에 몰려서 쳐 맞을 위기 되면 그제야 카운터펀치 날리는 형국이었잖아요? 이게 전부 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두 사람의 이성적 역학관계 때문이었던 거죠, 하하하. 지금까지 이야기 전등불, 아래 했어요?’’

‘‘예에, 그게 무슨 소리 ......’’

‘‘영어로 언더, 스탠드 했냐고요?’’


양념처럼 아재개그 한 번 시전 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향해 브이 자를 선보였다.


‘‘됐구 오빠!’’

‘‘응? 뭐?’’

‘‘혹시 지금 이 말, 명예훼손 걸리지 않을까요? 채팅창에 벌써 그런 글들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데요.’’


홍일점의 멘트를 받자마자, 나는 바로 브이 자 손을 거둬들었다.

음, 그러고 보니 이건 좀 쫄리는 일이다.

국회의원에 대해 공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입을 털 수 있다지만 개인 사생활까지는 좀.


''자! 이 시점에서 신선한 변호사 신선혜 변호사 님 자문을 좀 구해봐야 할 것 같은 데요.‘‘


오늘 게스트 중에는 나, 김배우 외에 몇 명 더 있었다.

개 중에 하나, 변호사 자격으로 나온 20대 후반 미모의 젊은 여성 변호사.

시사 팩폭쇼의 MC 한소라가 섹시미가 돋보이는 인물이라면, 그녀는 직업이 주는 선입견 때문인지 지성미를 자아내는 스타일.

또 이름대로 신선한 느낌도 준다.


그녀는 나도 오늘 처음으로 대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떠나고 얼마 후부터 이 저품격 토크쇼에 거의 고정으로 나오고 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인물 검색도 했었다.

예상대로 명문대 출신 엘리트 코스에 현재 신생 로펌 3년 차.

이 정도만으로 이 프로에 등장하기 시작한 자초지종은 바로 그림이 나온다.


그녀의 소속 로펌은 그녀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면서 회사 홍보를 하려는 것일 테고,

저품격 토크쇼 입장에서는 미모의 젊은 엘리트 변호사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려는 것일 테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녀대로 그 나이 대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유명세에 대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고,

뭐 요즘 어디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이 바닥은 이렇듯 철저하게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돌아가야 일이 진행되는 곳이다.


아무튼 MC 하나가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네자마자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방송 전 약 10분간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정식으로 인사도 못 나누고 그저 눈인사만 나눈 사이다.

심지어 왠지 나와 그렇게 엮이고 싶지 않아하는 느낌까지 주던 그녀였다.

하긴, 나이로 보나 미모로 보나 학력으로 보나 이해가 가고 남는다.

내 입장에서도 이 정도 여자들 홀대에는 유사 이래 충분한 맷집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 뭐 이 정도면 명예훼손죄 성립조건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어 보이는데요.’’


그녀가 나를 향해 입 꼬리까지 올리며 약간 비웃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자마자 좌중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깔깔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저품격 방송답게 남의 불행이 행복이 되는 방송이다.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신선혜가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요즘에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여성을 상대로 성희롱에 가까운 명예훼손죄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이건 윤장숙 의원님 측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빼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사과의 말씀을 전하시는 거 강추드립니다.’’

‘‘그럼, 신변호사님. 혹시 우리 걍됐구 형님이 신변호사님에게 변호 의뢰하겠다고 하면 해 주실 의향은 .....’’

‘‘전혀 없습니다.’’


그녀가 MC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굳은 표정,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좌중은 다시 또 폭소를 터뜨렸다.


‘‘저희는 눈앞에 보이는 수임료보다 승소율이 중요하거든요. 저희 대표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그거거든요.’’

‘‘그러시구나. 사실 우리 됐구 형님 수임료 낼 돈도 없으시답니다, 하하하.’’


그래, 오늘은 간만에 복귀하는 자리니 내 순순히 니들 요리 재료가 되어 주겠다.

포크질 칼질 해머질까지 다 받아주겠다.


그건 그렇고 아까 다시 또 나타난 프롬프터의 정체는 정말 뭘까?

그리고 그 프롬프터 속에 설명된 윤장숙과 지현태의 관계는 정말 사실일까?


‘‘자! 그러면 저희 2부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출연해주신 게스트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2부 클로징 멘트가 끝나자 MC들과 간단한 인사와 함께 나를 비롯한 게스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고가 나가는 사이 스튜디오 좁은 통로를 나오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소장님.’‘’


돌아보니 신선혜 변호사가 방송 중에 나를 향해 선보였던 비웃음 가득한 미소와는 확연히 뉘앙스가 다른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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