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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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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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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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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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DUMMY





신개념 토론 프로 중구난방의 김정훈 피디.

최웅의 M방송국 3년 선배.


최웅이 뭐랄까, 생긴 것부터 뭔가 기성체계에 순응하지 못하는 느낌의 용모라고 한다면, 김피디는 불혹을 넘은 나이에도 훈남 소리를 들을 만하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잠깐 동안의 미팅을 통해 느낀 점은 사람이 참 성실해 보이고 배려심이 넘쳐 보인다는 점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나뿐 아니라 이전부터 호흡을 맞춰 온 다른 부하 직원에게도 한결 같았다.

조카뻘 되는 막내 작가에게도 뭘 하나 시켜도 함부로 시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배운 사람이고 신뢰가 가는 인물이다.

그러니 이런 발상을 전환하는 좋은 토론 프로그램도 런칭하고, 거기에 더 나아가 나 같은 인재발굴에도 나서는 거겠지만 서도, 어험.


‘‘알겠습니다. 오늘 대충 이야기 들어보니까 제가 해야 할 롤이 뭔 지 잘 알겠네요.’’


두어 시간 동안 김피디를 비롯한 제작진들로부터 방송 컨셉과 제작 과정 상 특이사항에 대한 설명을 경청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보세요. 신변호사?’’


커피숍 앞에서 사람들과 헤어지고 난 후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그새 몇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개 중에 지난번 저품격 토크쇼에서 보았던 신선혜 변호사로부터도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오빠! 잘 지내셨어요?’’

‘‘그럼, 너무나 잘 지내고 있지롱, 하하하.’’

‘‘어머나!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보네요?’’

‘‘아이, 좋은 일은 무슨. 그냥 하루하루 겸손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지. 그건 그렇고 신변, 그냥 안부 메시지 보낸 거야?’’

‘‘예. 안부도 물을 겸 혹시나 이번 주말 또 저품격 토크쇼에 나오시나 해서요.’’


음 ..... 그러고 보니 장피디 이 새끼 지난 주말에 내가 지 프로에서 대박 터뜨렸는데도 연락이 없네.


‘‘장피디이이이!’’


신선혜와 우선 전화를 끊고 곧바로 저품격 토크쇼 장피디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다.


‘‘아이고, 형님!’’

‘‘바쁘냐?’’

‘‘아이고, 설마 제 주제에 형님보다 바쁘겠습니까?’’

‘‘니놈 원래 피드백 안 주는 걸로 유명한 건 잘 알긴 하지만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내가 윤장숙이랑 지현태 건으로 조회수 그렇게 올려줬는데도 감사 전화 한 통 없고.’’

‘‘와! 그렇지 않아도 둘 중 어느 한쪽에서 항의 전화 올 줄 알고 졸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연락이 전혀 없대요. 정말 형님 상상대로 윤의원이 지의원 짝사랑해서 매번 상임위에서 그런 추태를 부린 걸까요?’’

‘‘야! 상상은 무슨 상상이야? 엄연한 팩트 폭행이었지.’’

‘‘정말이요? 그냥 대충 때려 맞춘 게 아니고요?’’

‘‘야! 됐고. 이번 주말에 나 또 너희 프로 행차해서 또 다른 팩트 좀 죽도록 패버릴까 하는데, 어때? 아주 요즘 팩트만 보면 폭행치사까지 저지르고 싶을 정도로 나 주먹에 물올랐다, 하하하.’’

‘‘와! 그럼, 당연히 환영이죠. 요즘 이 바닥 최고 이슈메이커이신데.’’

‘‘야! 그렇게 환영한다는 놈이 어떻게 먼저 섭외전화 한 통 없냐?’’

‘‘에이, 형님, 이번 주에 시사팩폭쇼도 계속 결장하셨잖아요. 그래서 눈치 깠죠. 오성이랑 진주연 마약흡입 건 때문에 당분간 잠수 탔구나.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먼저 연락주시니 쌍수를 들고 환영이죠, 하하하.’’


원래 이게 장피디 스타일이다.

시사팩폭쇼의 최웅이 공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장피디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이면서 엄청 간 보는 스타일이다.

사실 나랑 좀 캐릭터가 겹치는 측면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나는 최웅 스타일을 더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 시사팩폭쇼에도 계속 결장했던 내가 주말 장피디의 저품격 토크쇼에 출연하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나의 열렬한 사생 팬 우리 이쁜이 신선혜 변호사를 만나고 싶어서다.



+++



‘‘신중아! 인생 신중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내 사촌 강신중!’’


저품격 토크쇼 스튜디오 가는 길.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동갑내기 사촌 신중과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응. 왜?’’


그러나 떨떠름한 투로 대답하는 내 동갑내기 사촌 강신중.


‘‘너 제수씨랑 출근길 카풀 하다가 결국 결혼한 거잖아.’’

‘‘아이 씨.’’

‘‘왜?’’

‘‘그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해? 짜증나게 시리.’’

‘‘왜? 니들 결혼한 지 몇 달 되었다고 그러냐? 설마 벌써 권태기야?’’

‘‘됐고. 별안간 전화 왜 했는데?’’

‘‘그냥 그때 너의 설레는 마음을 공유하고 싶어서.’’

‘‘아이 씨. 이건 또 뭔 개소리. 전화 끊어, 인마!’’

‘‘그래, 끊을 게, 푸하하하.’’


저품격 토크쇼 가는 길에 굳이 매사 신중하지 않은 선택을 하며 사는 내 동갑내기 사촌 강신중과 전화 통화를 한 이유.

단순히 안부 묻기가 아니었다.

일하러 가기에 앞서 마음에 두고 있는 이성과 우선 만나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그 실체가 무심코 궁금해서였다.


‘‘어머! 오빠, 오셨어요?’’


저품격 토크쇼 스튜디오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커피숍에 이미 신선혜 변호사가 도착해 있었다.

화사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마치 내가 슬로우 모션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 착시감마저 들었다.


‘‘오전에 회사 선배 결혼식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시간이 좀 붕 떠서요. 거기에서 점심 먹으면 좀 늦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예 결혼식 안 가기에도 좀 그렇고. 저 신입 때부터 많은 도움 주고 계신 선배 분이거든요. 저품격 토크쇼 대기실 너무 일찍 들어가 있으면 아직 거기 분들이랑 좀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겸사겸사, 호호호.’’


그녀는 확실하게 나한테 빠져 있다.

이걸 어떻게 잘 아느냐고?

내가 이런 비슷한 경우 구질구질하게 상황 설명을 주절주절거린 적이 많기 때문이다.


‘‘참! 오빠, 오늘 대본 나온 거 좀 보셨어요?’’

‘‘아이, 나 정도 구력이면 굳이 사전 대본 같은 건 볼 필요 없지.’’


적당한 거드름은 위계질서를 굳건하게 해주지.


‘‘오늘 살생부 이야기 주로 할 거라는데요.’’

‘‘살생부? 무슨 살생부?’’

‘‘어머! 어제 뉴스 못 보셨어요? 살생부 떠서 어제 오늘 정가에 난리 났다는데.’’

‘‘음 ......’’


음 ..... 솔직히 내 시사 평론가로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뉴스 보는 걸 게을리 한다는 점에 있다.

영화 평론가가 영화를 안 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어제 밤은 특히나 간만에 대학 동창 베프 두 놈 만나서 술을 퍼 마시며 요즘 나의 상승세에 대해 한참 썰을 푸느라 뉴스를 통 못 봤다.


‘‘무슨 살생부가 떴기에 그런다나 ......’’


곧바로 검색을 해 봤다.


‘‘뭐 별 거 아니네.’’

‘‘어머! 별 거 아니에요?’‘

‘‘응. 총선 1년도 안 남았잖아. 원래 지금부터 여기저기서 살생부 나돌 거야.’’

‘‘그런데 이번 살생부는 좀 이상하던데.’’

‘‘뭐가?’’

‘‘다른 사람은 다 이해가 가는데 김진홍 의원이요. 그 사람이 공천 못 받을 거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으잉? 김진홍이 있다고?’’


다시 살생부를 훑어보았다.

말미에 가서 김진홍 이름이 정말로 있었다.


이것부터가 말이 안 되었다.

김진홍이라면 리스트에 메인타이틀로 나왔어야 하는 인물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김진홍이라면 애초 이름이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인물이다.

여당 주류 중의 주류인데.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인데.

오히려 공천을 좌지우지해야 할 인물인데.

그런 인물 이름이 살생부에 올라 있다니.


‘‘어떤 놈이 장난친 거구만.’’

‘‘그렇게 보이세요, 오빠는?’’

‘‘응. 우리는 딱 보면 알지.’’


솔직히 살생부 따위에는 관심이 별로 안 갔다.

신선한 변호사 신선혜에게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켜줄까 그거에만 관심이 있다.


‘‘흐음, 그런데 딱 보니 철없는 아해들이 그냥 장난친 건 또 아닌 것 같은 게 ......’’

‘‘예? 그럼요?’’


카리스마 넘치는 헛기침 후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내가 말을 이어가자, 예상대로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이건 주류 내 헤게모니 다툼 같은데?’’

‘‘주류 내 헤게모니 다툼이요?’’

‘‘응. 김진홍 의원하고 비슷한 캐릭터 몇 있잖아. 대통령 신임을 받고 있고 차기나 차차기 노리는 잠룡들. 그 중에 한 쪽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흘린 거 같은데. 우리는 탁, 보면 척, 감이 오지 뭐. 하하하.’’


내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가 충분히 수긍이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친 김에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변호사! 법은 잘 알겠지만 정치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어드바이스를 좀 해주자면 말이야. 정치에 있어서 진검승부는 당과 당이 하는 게 아니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가 마치 선생님 앞 유치원생처럼 초롱초롱한 눈빛과 함께 귀까지 쫑긋 세우며 물었다.


‘‘진짜 진검 승부는 당과 당이 아니라 같은 당내에서 벌어지는 법이지. 당내에서 경쟁자를 어떻게 제거하고 또 그 경쟁자를 다른 당과 싸울 때 어떻게 써 먹느냐, 이게 진짜 정치의 본질이지, 어험.’’

‘‘아하!’’


그녀가 무릎을 탁 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쐐기까지 박았으니 마지막으로 매끈하게 사포질 좀 해줘야지.


‘‘방금 내가 한 말들, 신변호사가 좀 이따 방송에서 써 먹어.’’

‘‘어머! 그래도 돼요, 오빠?’’

‘‘그럼. 나는 그냥 대충 다른 드립 치면 되니까. 요즘 좀 너무 많이 맞히는 감이 있어서 좀 쉬어가는 타임도 필요하고, 하하하.’’

‘‘너무 감사해요, 오빠.’’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무슨.’’

‘‘그럼, 오빠는 무슨 드립 치실 건데요?’’

‘‘그냥 뭐 대충 아무거나.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네티즌 놈 하나가 장난 친 거다. 대충 이렇게 얼버무리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호호호, 정말 감사드려요, 오빠. 그럼, 우리 그만 일어날까요?’’


그녀가 막 일어서려는데, 내가 여전히 앉은 채로 입을 열었다.


‘‘대신 말이야 .....’’

‘‘예에?’’

‘‘나 먹은 거, 이거 계산 신변이 좀 해 줄래? 응?’’



++++



저품격 토크쇼 방송이 시작되었다.

뭐 이런 저런 화제를 가지고 재담 같지 않은 재담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경청하는 입장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신변호사를 서포트해 주는 데 치중했다.

축구로 따지면, 킬 패스를 주는 존재라고나 할까.

방송 용어로 치면 니주 역할을 했다.


신변호사는 나와 같이 있을 때는 푼수 같은 면이 없지 않았지만, 확실히 일적인 측면에서는 영리했다.

내가 킬패스를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다.

저품격 토크쇼에 데뷔한 지 불과 석 달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자기 캐릭터를 잡은 듯싶었다.

원래 소속 로펌 회사나 저품격 토크쇼에서 원했던 것.

치밀하고 도도한 비즈니스 우먼 같은.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방송 전 꽤나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주제, 살생부 이야기가 나왔다.


‘‘이 살생부에 대해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선 신변호사님부터.’’

‘‘예, 저는 당내 권력 암투의 일환으로 보여지는 데요.’’

‘‘당내 권력 암투의 일환이요?’’

‘‘예, 원래 진짜 정적은 다른 당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당 안에 있는 법이거든요. 자기 당에 있는 진짜 정적을 잘 요리하게 되면 다른 당에 있는 적들은 알아서 정리되는 법이고요 .....’’


신변호사가 그렇게 내 말을 조금 비틀어 한참 썰을 푸는 중이었다.

내 앞에 또다시 문제의 녀석이 떴다.

프롬프터, 그 녀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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