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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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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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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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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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DUMMY




‘‘강소장님! 강소장님! 대구 오빠!’’

‘‘으, 응?’’


속으로 눈앞에 떠 있는 프롬프터에 적힌 글을 잠시 읽고 있는데, 사회자 중 하나인 홍일점이 나를 불렀다.


‘‘아까 오는 길에 다른 방송 들어보니까 대부분 정치평론가 분들은 김진홍 의원 이름을 마지막에 넣은 건 이건 장난이다 라는 걸 은연중에 암시하는 고도의 장치라고 입을 모으시던데요. 반면 지금 앞에 계신 신변호사님은 당내 라이벌이 흘린 걸로 권력 암투의 징후다, 라고 약간 다르게 해석하고 계신데요. 자!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 정치천재 강소장님 이야기를 안 들을 래야 안 들을 수가 없겠죠? 대구 오빠! 오빠는 이 살생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내 눈앞에 떠 있는 프롬프터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말했다.


‘‘뭐 한 마디로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애들 장난이라. 그렇다면 대부분의 정치 평론가 분들 의견에 동의하신다는 말씀이시네요?’’

‘‘예, 그렇습니다. 동시에 여기 제 옆에 앉아 있는 신선혜 변호사 의견은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라고 정의내리고 싶고요.’’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옆에 있는 신선혜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싱긋 미소만 지어보였다.

아까 커피숍에서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하기로 이미 우리는 짜놓은 상태니까.


‘‘우리 강소장님이 저렇게 일언지하에 단호하게 결론 내리시는 분이 아닌데. 이번에는 좀 의외네요.’’

‘‘에이, 이미 다른 정치평론가분들이 이 살생부는 장난이라고 결론내리니까 거기에 은근슬쩍 묻어가는 거죠. 우리 강형님 항상 그렇게 어딘가에 기생하며 일평생 살아오시고 계신 분이잖아요.’’

‘‘에이, 그래도 요즘 우리 강오빠 많이 달라지셨는데. 빵빵 막 터트리고 계신데.’’


세 명의 MC들이 평소 나의 우유부단함, 아니 나의 유연함을 가지고 잠시 키득댔다.


‘‘으응? 니들 내 말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

‘‘내가 언제 다른 정치평론가 애들 말에 동의한다고 했지?’’

‘‘방금 전에 형님, 애들 장난이라면서요?’’

‘‘그랬지.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다른 정치평론가들도 다들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다니까요. 누군가 구라로 살생부 퍼뜨리고 있는 거라고요.’’

‘‘아니, 그 평론가들이 말하는 애들 장난이라는 건 은유적인 표현이잖아. 구라로 살생부 퍼트려서 뭐 주가 차익 같은 거 노리는 애들. 걔들이 그렇다고 진짜 애들이 아니잖아. 엄연한 성인이잖아.’’


내 말에 세 명의 MC들이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MC들 뿐만이 아니었다.

게스트 패널들도 마찬가지였다.

개 중에 나랑 여기 오기 전 커피숍에서 만나 역할 분담을 짜고 치기로 했던 신선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말하는 애들은 진짜 애들이란 말이야. 성인이 아닌 미성년자 애들, 하하하.’’

‘‘예에?’’


여전히 좌중 그 누구도 내 말뜻을 바로 캐치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진짜 애들, 그러니까 미성년자 애들이 누군지 궁금하지들 않아?’’

‘‘그게 누군데요?’’

‘‘그게 누구냐고?’’

‘‘예.’’


내가 좌중의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살인 미소를 선보이며 뜸을 들였다.

특히나 마지막에 화룡정점을 찍듯 내 옆자리 신선혜에게는 윙크까지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누구긴. 김진홍 의원 자식들이지.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중2, 중3 연년생 딸내미들.’’

‘‘예에?’’


스튜디오가 들썩였다.

채팅창도 마찬가지였다.



- 저 새끼 오늘도 또 시작이네

- 암만 봐도 요즘 약 빨고 방송하는 것 같아. 쟤 도핑 테스트 좀 해 봐라.

- 그러게. 요즘 좀 맞춘다고 엄청 폭주하네

- 저 인간 정보 소스 나올 곳도 없을 텐데 뭔 근거로 저런 이야기 막 하는 거지

- 아무리 그래도 자라나는 새싹들 가지고 장난을 치냐. 저런 사이버 렉카들 제발 명예훼손 벌금 수천 좀 때려라



‘‘채팅창 보고 계시죠, 오빠?’’


MC 홍일점이 채팅창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아니. 나는 프롬프터 창을 보고 있음.’’

‘‘예? 그게 무슨 소리심?’’

‘‘아, 아니야, 그런 게 있어.’’

‘‘지금 채팅창에 오빠 욕으로 도배가 되고 있는데.’’

‘‘걔들이 도배를 하든 용접을 하든 미장을 하든 뭐 관심 없고. 아무튼 방금 전 말한 대로 이 살생부 작성자는 애들이 맞음. 김진홍 의원 전처 되시는 분이 최근 폐암 판정을 받았거든. 그런데 젊은 시절 정치 입문했을 때 그 전처 분이 친정 돈까지 끌어들여서 물신양면 남편 도움을 줬는데, 김진홍 이 인간이 국회의원 당선되고 권력도 쥐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변해갔음. 그 중간에 지금 재혼한 여자랑 바람도 피웠던 거고. 그거에 전처 되시는 분이 상처도 많이 받으셨고, 자식들도 아버지에 대해 앙심이 생겨난 거지 ......’’

‘‘오빠! 그래도 우리 프로명이 저품격 토크쇼인데, 이런 막장 스토리 너무 잘 어울려요, 호호호.’’

‘‘...... 그래서 어디서 총선 앞두고 어른들이 살생부 같은 걸 쓴다는 걸 알아내고 애들이 찌라시로 흘린 거지. 어떤 의미에서 아직 세상물정 잘 모르고 그런 어린 애들이라서 겁 없이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던 거지.’’


그렇게 말을 내뱉고 나서 신선혜 변호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푸하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푼수 끼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차도녀 이미지와 안 맞는 웃음소리였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지금 애드립으로 소설 하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빠! 이거 어쩌죠?’’


그 사이 MC 홍일점이 나를 불렀다.


‘‘왜?’’

‘‘채팅창에 우리 시청자 하나가 벌써 김진홍 의원 SNS에 들어가 봤는데 애들이랑 지난주에 같이 캠핑 놀러간 사진 떴다는데. 지난주에 저렇게 재미있게 아버지랑 놀고 나서 뒤통수를 쳤다고요?’’

‘‘으응?’’

‘‘박작가, 사진들 좀 찾아서 띄워줘 봐.’’


홍일점이 제작진 하나에게 말했다.

제작진이 곧바로 SNS 사진들을 캡쳐해 화면에 올려주었다.

제기랄, 중학생 나이의 여자 아이 둘이 김진홍 의원 부부와 함께 브이 자에 하트 모양에 온갖 즐거운 포즈는 다 하고 있는 사진들.


‘‘와! 사춘기 나이 애들 중 저렇게 부녀지간이 살가운 애들은 별로 없는데.’’

‘‘저기 사진 보니 새 어머니랑도 잘 어울리고 있는데?’’

‘‘저렇게 같이 놀고 나서 아버지 엿 먹이려고 찌라시를 올렸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구 형님?’’

‘‘애초 말이 안 되는 게 김진홍 말고 거론되는 다른 사람들 보면 다들 살생부에 이름 올릴만한 사람들이었거든. 그런데 그런 건 어느 정도 정치를 좀 잘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 저 어린 중딩 여자애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알까?’’


MC들과 패널들이 사진을 보면서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었다.

유일하게 신선혜만 아무 말 안 하고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일부러 방송을 재미있게 하려고 구라 치고 있다 믿고 있는 듯했다.


‘‘쯧쯧쯧, 쯧쯧쯧 ......’’


내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기 전 빌드업을 위해 혀부터 좀 찼다.


‘‘....... 지금 이곳은 방송 스튜디오일까, 아니면 유치원 교실일까. 왜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애들만 모여 있는 것인가?’’

‘‘뭔 소리?’’

‘‘세상에 가족사진 찍을 때 짜증나는 표정 지으면서 사진 찍는 사람도 있냐? 그리고 만약 그런 사진이었으면 김진홍 의원이나 보좌관이 그런 사진을 SNS에 올렸겠냐고? 쯧쯧쯧, 한 번 더 쯧쯧쯧.’’

‘‘음 ...... 아무튼 같이 가족 캠핑은 간 건 짤 없는 팩트잖아요, 오빠?’’

‘‘아이 그거야 뭔가 김진홍 의원이랑 새엄마랑 뭘 걸었겠지. 용돈을 엄청 준다거나 뭐 자동차, 아니 아직 면허 딸 나이 안 되었으면 전기 자전거, 요즘 전기 자전거도 수천 만 원 짜리가 얼마나 많은데. 혹은 여자 애들이니까 쌍커풀 수술 뭐 그런 걸 당근으로 제시했겠지.’’

‘‘좋아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아까 말한 대로 과연 이 살생부 구체적인 내용이 중학교 여학생들 수준에서 알만한 이야기 인가요? 정당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아야 작성 가능할 것 같은데. 용어도 일반인은 처음 보는 용어도 나오고.’’

‘‘쯧쯧 ......’’


여기까지는 그냥 내가 대충 때려 맞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프롬프터에 다시 또 입력되기 시작하는 글자들을 읽어 내려간 결과물이다.


‘‘아니, 왜 다들 그 두 자매를 뒤에서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을 거라는 상상의 나래는 펼치지 못하는 거지? 상상의 나래 펼치는데 무슨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두 자매를 배후에서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다면 충분히 저 정도 찌라시 내용은 써 나갈 수 있을 거 아니냐고.’’

‘‘그럼, 그 조력자가 누군데요?’’

‘‘그 조력자?’’

‘‘예. 그게 누구냐고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에이, 하면서 다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아직 프롬프터에 그 이름까지는 안 나왔으니까.


‘‘에이는 무슨. 그 조력자가 구체적으로 누군지가 중요해? 그 조력자가 두 자매를 도와주었다는 그 팩트가 중요한 거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는 또 다시 신선혜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 표정에 그 사이 다소 변화가 생겨났다.

내가 지금 계속 농담을 때리고 있는 건지 아닌지 서서히 헷갈리는 듯한 기색이었다.

농담이었다면 이쯤에서 끝을 내고 다른 화제로 넘어가야 하는데 왜 저 양반 저렇게 계속 집착하고 있는 건지?

뭐 이런 표정이었다.


‘‘그 조력자가 정확히 누구인지가 오히려 가장 중요하죠. 안 그렇고 그냥 이렇게 무책임하게 추측만으로 퉁 치는 건 평론가로서 엄청난 결격사유 아닌가요? 푸훗.’’


오늘 처음 보는 패널 놈이다.

딱 봐도 전문직 엘리트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아니나 다를까 직업도 의사.

유방 확대 수술 전문의로서 관련 정보를 알려주려 나왔단다.

그럼 그냥 하던 대로 여자 가슴에만 상처를 내지 왜 애꿎은 남자 가슴에까지도 메스를 가하려 드는 건지 원.


‘‘그 조력자 입장도 있으니까요. 그 분 신원을 밝히면 그 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이니까 비슷한 경우 있잖아요. 어디 가서 강의 할 때 환자 증상 예를 들 수는 있는데, 그 환자 신원이나 진료 기록을 함부로 밝힐 경우 의료법 위반으로 걸리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죠. 그 조력자 신원을 밝힐 수밖에요.’’


예에?

방금 전까지 실망스런 기색만 역력하던 좌중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앞의 프롬프터를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조력자는 다름 아닌 김진홍 의원 전직 보좌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


예에? 정말?


‘‘...... 원래 김진홍 의원이 아랫사람 엄청 힘들게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죠. 워낙 김진홍 의원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업무량이 다른 의원 사무실에 비해 최소 1.5배 정도 된다는 말이 많았죠. 그래서 비서관 구인 광고도 엄청 많았죠. 그만큼 관두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개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전직 비서관이었습니다. 원래 어떤 폭로나 양심선언에서 사적인 불만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죠. 문제의 그 전직 비서관도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불만으로 일을 관두게 되었고, 또 그것 때문에 이번 일의 배후 역할을 했던 걸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푸훗! 그 정도 스토리는 즉석에서 지금 지어낼 수 있는 이야기 아닌가, 푸하하.’’


저 씹새끼가 근데.

이번에도 역시 또 유방확대 수술 전문의 새끼다.

저 새끼 내가 야동 볼 때 조금이라도 실리콘 느낌 나면 바로 스킵하는 걸 알고 저러는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 대기실에서 5분 정도 함께들 있는 동안 나와 신선혜 변호사가 히히덕거리며 이야기 나누는 걸 왠지 아니꼬운 시선으로 훔쳐 본 기억이 있다.

나보다 나이는 서너 살 아래로 보이는데,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지 딴에는 이전에 신선혜 변호사를 방송에서 보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던지 했나보다.


원래 내가 엘리트 전문직에 엄청 약하다.

상대 직업을 아는 순간부터 기가 팍 죽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쯧쯧. 즉석에서 지어내다니? 문제의 그 여자 보좌관은 작년에 대학 갓 졸업한 새끼 보좌관으로 평소 저 중딩 여자 애들 과외지도까지 맡으면서 남다른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내가 아무리 평소 애드립의 달인이라고 해도 설마 이 정도까지 즉석에서 지어낼 수 있겠어, 이 노므, 아니 이 양반아!’’


이번에는 이렇게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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