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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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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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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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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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처음으로 가보게 되는 고급 오마카세 맛집.

반면 로펌에 근무하는 신선혜는 손님 접대 및 미팅으로 서너 번 비슷한 분위기의 음식점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 앞에서 기죽지 않기 위해 나는 예약 잡은 반포 오마카세 맛집에 관해 이런 저런 사전 정보를 입수하려 들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식당이었기에 이미 어느 정도 방문 매뉴얼을 알고 있었고, 그 블로그 주인장에게 따로 쪽지를 보내 다른 세세한 정보들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이런 곳은 그냥 아무 소리 말고 사장님 주시는 대로만 받아먹으면 되더라고요, 오빠.’’


그런데 다행히도 신선혜는 오마카세 맛집 분위기나 음식 맛에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최고 인기 토론 프로그램 중구난방에 섭외된 과정에 잔뜩 호기심을 보였다.


‘‘글쎄, 나도 참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헷갈려. 아니, 내 주제에 정원택 김여중 두 거목 사이에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너무 되고. 요즘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다니까.’’


우선 나는 겸손모드를 발동시켰다.


‘‘에이, 왜 그러세요? 그만큼 오빠가 요즘 떴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그런가? 근데 신변은 평소 중구난방 자주 봐?’’

‘‘그럼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봤는걸요.’’

‘‘정말?’’

‘‘예, 심지어 실방으로도 보고 다시보기로도 복습 한 번 더하고.’’

‘‘와! 그 정도야?’’

‘‘예. 중구난방 저희 법조계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통해요.’’

‘‘왜?’’

‘‘왜냐면 마치 두 분 논쟁하는 게 법정 분위기 같잖아요. 논리로 잔뜩 무장해서 치고 받는 모습이.’’

‘‘음, 그러고 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예. 그런 방송에 제 지인이 고정으로 출연하다니, 이거 저까지 영광인데요, 호호호.’’


그녀가 정말로 희열을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로부터 지난 번 김진홍 의원 건으로 벌어졌던 우리 사이는 단숨에 봉합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나 정말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방송 쪽 잘 아는 선배가 엄청 겁을 주더라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라고. 넌 메이저 무대에 오른 게 아니라 실상은 그냥 시험대에 올라온 거에 불과한 거라고. 여기서 잘 못하면 다시는 다른 공중파 프로에서도 안 부를 거라고. 이 바닥만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곳이 없다고. 사실 지난 번 나 공중파 라디오 무대 데뷔전에서 개 박살 나서 실려 간 트라우마도 있었고 .....’‘’


사이가 봉합된 여세를 몰아 나는 그녀로부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작전을 짰다.

내가 반쯤 울상이 된 얼굴로 말을 이어가는 사이, 그녀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분명히 잘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럼요. 저 마음 같아서는 스튜디오에 치어리더 복 입고 나가서 응원전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사실 저 대학 다닐 때 잠깐 응원단 활동도 했었거든요, 호호호.’’

‘‘하하하, 그래? 말만으로도 참 고맙네. 근데 신변?’’

‘‘예.’’

‘‘한 가지 민감한 질문 좀 해도 될까?’’

‘‘뭐든지요. 중구난방 고정 출연진의 질문이라면 뭐든지 응당 답변해드려야 하는 게 도리 아닐까요, 호호호.’’

‘‘좋아. 그럼, 신변은 둘 중 누구 편이야?’’

‘‘예에?’’

‘‘음, 이건 신변의 정치성향을 캐묻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중구난방 광팬이라면, 보수 진보의 자타가 공인하는 빅 스피커 정원택과 김여중 둘 중 누구를 응원하면서 방송을 보느냐고?

‘‘음 ......’’


그녀가 잠시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는 혹시나 괜한 질문을 던져서 애써 봉합한 관계에 다시금 생채기를 내는 것이 아닌가 순간 후회를 했다.


‘‘저는요 ......’’

‘‘응. 대답하기 싫으면 굳이 안 해도 ......’’

‘‘둘 다 극혐이에요.’’

‘‘으잉?’’

‘‘두 꼰대 아저씨들 전부 극혐이라고요.’’

‘‘뭐, 뭐라고?’’

‘‘두 사람 맨날 지들 말만 옳다고 잘난 척 하는 거 꼴 사나와 극혐이라고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그런데 왜 극혐인 두 프로를 복습까지 하면서 .....’’

‘‘욕하면서 보는 맛이죠, 뭐. 막장 드라마 보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요. 아무튼 오빠! 부디 다음 주 녹화 파이팅! 호호호.’’


그녀가 꼬옥 쥔 주먹을 내 눈앞에서 귀엽게 흔들어 댔다.



+++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기존 다른 프로그램과 많이 다르다.

일종의 떴다 방 같은 분위기다.


시사 토론 프로그램 특성 상 최대한 시의성 있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녹화 일시와 방영 날짜를 최대한 근접하게 정한다.

원래는 여타 토론 프로그램처럼 생방송도 잠깐 생각했었지만, 정원택 김여중 캐릭터 상 방송사고 위험도 많고 둘의 어록 재미를 자막 센스로 배가시키기 위해 녹화를 계속 고집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의성 있는 주제를 가지고 녹화를 한 번 뜨고 나서 빡세게 밤새 편집을 해 방영하고 나면 이삼일 제작진은 그냥 널널하게 논다.

괜히 어떤 사건을 섣불리 아이템으로 정하고 나서 주중에 더 큰 사건이 터지면 시간 낭비만 되기 때문이다.


전날 제작진으로부터 전해 받은 큐시트에 따르면 이번 주 주제는 대충 이렇게 다섯 가지였다.


첫 번째, 미국 금리와 부동산 문제

둘째, 스포츠 계 약물파동

셋째, 한 상임위에서 벌어진 여당 의원과 야당 의원 사이 막말 설전.

넷째, 구속 위기에 처한 과거 유력 정치인의 고사성어 숨은 뜻.

다섯째,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건으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총리 알력 다툼설.


‘‘강대구씨? 잘 부탁드립니다.’’


대기실에 가 보니 정원택은 보이지 않고 대신 김여중이 분장을 받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먼저 정중하게 양 손을 내밀며 잘 부탁드린다는 수인사를 건네 왔다.

카리스마로 압도하려 들었던 정원택과는 역시나 초면 인사부터 백팔십도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어이구! 별 말씀을요. 평소에 개인적으로 김여중 선생님 엄청나게 존경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예, 빈말 아니라 정말입니다. 김선생님 토론 방법론도 따로 공부도 좀 했고 심지어 시뮬레이션까지도 해 봤습니다. 물론 현실 논쟁에서는 능력부족 탓에 한 번도 제대로 시전해보지 못해봤지만. 내로라하는 논객 선배님 중에서 저랑 가장 토크 스타일이 비슷하신 것 같아서 동질감도 많이 느끼고 있었고요.’’


좀 부풀린 말이긴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정원택처럼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언사보다는 김여중같이 우회적으로 은유적인 표현법이 나와는 코드가 더 맞았다.


‘‘음, 이런!’’


그런데 나의 아부성 멘트에 김여중은 곧바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예? 왜, 왜요?’’

‘‘나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예? 무슨 .....’’


순간 나는 내가 초면부터 결례를 범한 것은 아닌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초장부터 .....’’

‘‘예? 초장부터, 뭐요?’’

‘‘초장부터 상대방 약점 잡는 거 말이죠.’’

‘‘예? 약점이요?’’

‘‘그러니까 강선생 말을 풀어 보면, 정선생님보다 내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이야기잖아요. 내가 이 이야기 고대로 정선생님한테 일러바치면 ...... 정선생님이 은근히 질투심이 많거든. 아마 강선생 바로 미운 털 박히게 될 걸, 껄껄껄.’’


이것이 전형적인 김여중의 유머 화법이었다.

난 데 없이 비틀고 꼬아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스타일.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번만 좀 봐 주십쇼, 선생님.’’

‘‘음, 그러죠. 대신 오늘 녹화에서 되도록 내 편을 좀 더 들어줘야 해요. 알겠죠? 그럼, 그렇게 딜 성사된 걸로 알겠습니다, 껄껄.’’



+++



녹화시작 되기 3분 전에 정원택이 도착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정원택은 언제나 간당간당하게 도착한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은 또 없다고 했다.


‘‘정선생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의 정중한 인사말을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정원택이 자리를 잡았다.

반면 김여중하고는 잠시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냥 별 생각 없이 그러는 건지, 아니면 이번에도 역시 나에게 카리스마를 부리는 건지 헷갈렸다.

어쨌든 나는 고수들 틈에 둘러싸인 채 방송 큐 사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 오늘 저희 중구난방에는 새로운 식구가 한 명 생겨났죠. 요즘 그렇게 인터넷에서 핫하다고 하는 분인데요 ......’’


김여중이 나를 짧게 소개했다.


‘‘예, 뭐 저야 우리나라 토론 계의 양 거두 정원택 김여중, 김여중 정원택 두 분 사이에서 그저 거들 뿐이죠, 하하하.’’


각오를 묻는 말에 나는 정원택과 김여중, 김여중과 정원택 두 사람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 이번에는 오늘 세 번째 주제는 국민의 힘 장동성 의원과 더불어 민주당의 안청래 의원과의 상임위 설전에 대해 우선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데요 ......’’


첫 번째 주제인 미국 금리와 부동산 문제, 두 번째 주제인 스포츠계 약물파동은 다소 무미건조한 톤으로 다루고 지나갔다.

우리 셋 중 관련 분야 전문가가 없는 탓도 있었다.


‘‘자! 이 문제 정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아휴! 그냥 내가 창피해 죽겠어,’’


김여중의 질문에 정원택이 곧바로 얼굴부터 찌푸렸다.


‘‘둘 다 중진의원이라는 인간들이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TV 생중계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야! 너! 뭐? 이렇게 반말 짓거리나 하고. 쯧쯧.’’

‘‘그렇죠? 정말 볼썽 사나왔죠?’’


처음에는 거시적 시각에서 공감을 표하는 듯하던 두 사람이지만, 세부 사안으로 들어가자 서서히 분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선 정원택은


‘‘안청래 그 인간은 왜 매사 질의 중에 사람 열을 살살 받게 하는지. 한 두 번이 아니지.’’


이에 맞서 김여중이


‘‘무슨 소리 하십니까? 이번에도 역시 장동성이 가만있는 안청래 의원한테 먼저 특유의 버럭질을 했죠. 오히려 안청래 의원이 적극 대응 하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그 정도 선에서 끝난 거죠.’’

‘‘어허! 김선생! 이번에도 하이라이트만 봤지? 그것도 빨갱이 유튜브에서 짜깁기한 걸로. 그러니 매번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아이고, 정선생님. 누가 할 소리를 하십니까? 저 생중계로 처음부터 봤다니까요. 진짜 장동성 의원 분노조절장애자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이 잠시 설전을 오가다 결국에는 나에게 공을 넘겼다.


‘‘좋아! 오늘부터 새로 중재자로 투입된 강소장,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래요. 솔로몬의 지혜를 한 번 발휘해 봐요.’’


그것은 나의 중구난방 첫 번째 시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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