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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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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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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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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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DUMMY




‘‘저 오빠, 열렬한 팬이에요.’’


믿겨지지 않아 눈을 크게 서너 번 깜박여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신선혜 변호사 입가에는 화사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내가 방송 전에 신변호사 자제시키느라고 엄청 고생했어, 오빠.’’


나와 스스럼없는 관계인 여작가 하나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우리 방송에서만큼은 신변호사 차도녀 컨셉 고수하기로 했거든. 회사 쪽도 그렇게 하기로 원했고. 근데 이 친구 은근히 허당끼가 넘쳐. 넘쳐도 너무 넘쳐, 호호호.’’


여작가를 보다가 다시 신변호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전까지 그녀 입가 화사한 미소가 그새 푼수 느낌 나는 미소로 변질되어 있었다.


‘‘푸흐흐흐. 오빠, 저 오빠한테 디엠 보낸 적도 있어요. 그건 답장 안 하셨는데, 오빠 개인 방송 게시판에 남긴 글에는 오빠가 고맙다고 댓글 다신 적 있으셨어요. 정말 영광이었어요, 프흐흐흐.’’


아무리 봐도 이 아가씨 차도녀 컨셉 오래 못 갈 거 같다.

금방 바닥 드러날 스타일이다.


‘‘오빠! 시간 되세요? 같이 커피 한 잔 해요. 저 따로 드릴 말씀도 있고 ......’’

‘‘흠흠 ...... 흠흠 ...... 어험.’’


그녀 인상이 어느새 백팔십도 바뀌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

어느새 나는 엄근진한 표정으로 멋들어진 헛기침까지 억지로 내뱉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여는데,


‘‘우리 어머니가 항시 말씀하셨죠.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요.’’


나의 반응을 전혀 예측 못했던지 신변호사 얼굴에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반면 나를 훨씬 많이 접했던 여작가는 저 새끼, 저 또 뭔 꿍꿍이로 개드립 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 어머니가 최씨 집안 셋째 딸입니다. 소시 적에 꽤 예쁘셨다죠. 그 유전자가 저한테도 내려왔다면 내려왔고요. 각설하고, 저희 어머니가 동주 최씨입니다. 동주 최씨 최고 아웃풋은 최영 장군이셨죠. 최영 장군은 이런 말씀을 하셨죠.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고.’’



+++



황금 같은 인연, 신선혜 변호사와 나는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그녀는 내 앞에서 연신 싱글벙글이다.

주문대에서 내 커피까지 자기가 주문해 받아왔다.

돈도 자기가 냈다.

팬심에서 우러나는 선물이라면서.


‘‘진짜 오빠는 대한민국 시사평론계의 새 장을 여신 분 같아요.’’


대체 이 아가씨는 어떻게 변호사가 된 걸까?

이렇게 객관적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면서.

정녕 사법고시는 부활되어야 한단 말인가.


‘‘흠흠.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흠흠.’’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기는요. 기존 시사평론가 이미지를 혁명적으로 파괴하신 거잖아요. 기존 시사평론가는 항상 남 가르치려 들고 꼰대 같은 소리만 하고 지 잘난 맛에만 살고. 그런데 오빠는 정 반대잖아요. MC나 시청자들한테 카리스마를 부리기는커녕 오히려 맨날 찌질이 취급당하고도 자존심도 없는 양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이런 소리만 하고 나오시잖아요. 혁명이 뭐 대수인가요? 기존 고정관념을 뒤엎으면 그게 다 혁명인 거죠.’’


이거 칭송인지 은근 돌려 까기인지 모르겠다.

음, 어쨌든 그래도 변호사라서 분석은 좀 논리적인 편이다.


‘‘그런데 제가 오빠 평론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어요.’’

‘‘으응, 뭔데?’’

‘‘이건 다른 사람들은 잘 파악 못하는 걸걸요.’’


그녀가 느닷없는 브이 자까지 그려 보이며 말했다.

제스츄어까지 이름대로 신선하기는 신선하네.


‘‘그게 뭔데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거요. 그런 점에 있어서 오빠는 제 기준에서 천재에요, 천재. 바보인척 하지만 진짜 천재! 시사평론계의 제안대군!’’


순간, 나는 뜨끔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단 몇 문장으로 그녀가 내 음험한 속을 끄집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바보인척 하지만 진짜 천재라는 말, 혹시 지 이야기 하는 건 아닌가.


사실 내가 시사평론가로서 연명하고 있는 이유는 찌질이 캐릭터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것도 중요 요소지만 한 가지 더 있었다.

방금 전 그녀 말대로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을 능란하게, 아니 교묘하게 오가는 거.


보통 사람들은 나를 중도 쪽으로 분류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분석이다.

나는 중도가 아니라 항시 야당 쪽 편이다.


왜냐?

비판정신이 투철해서?

반골기질이 강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온라인에서는 뭐든 까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정권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주로 보수정권을 깠고, 진보정권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진보정권을 많이 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빅 스피커로 정권을 까는 건 아니다.

하남자답게 어설프고 어리숙하게 까다가 가끔 빈약한 논리 때문에 역공을 맞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은 오빠의 포지셔닝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고 있지만, 강대구잘알인 제 입장에서 보면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죠. 오빠는 진보가 집권여당일 때는 진보를 주로 까고 반대로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보수를 까요. 그렇게 해서 최대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려고 하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면 혹시나 후폭풍이 생길까 봐 안전빵으로 보험 드는 것도 잊지 않죠. 그래서 오늘 좀 심하게 깠다 싶으면 일부러 막판에 빈틈을 내보이면서 깨갱 깨깽거리는 퍼포먼스 보이는 것도 잊지 않죠. 강약 조절의 마술사라고나 할까요. 줄타기의 달인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제가 천재라고 부르는 거죠.’’


음, 이제는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를 잘 아는 듯 하는 수준을 넘어 얘,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


‘‘참! 쟤가 아까 따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잖아요.’’

‘‘으응? 아참! 그랬었지? 그게 뭐죠?’’

‘‘아까 방송 중에 제가 그랬었잖아요. 윤장숙 의원이 오빠한테 명예훼손 걸기 충분하다고요.’’

‘‘그, 그랬었지?’’

‘‘그런데 그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될 거에요.’’


그녀가 다시 브이자를 선보였다.


‘‘으응? 왜요?’’

‘‘제가 아까 방송 중에 일부러 명예훼손 못하게 사전정지 작업 했걸랑요.’’

‘‘으잉? 그건 또 뭔 소리?’’

‘‘명예훼손죄가 대표적인 반의사불벌죄잖아요. 다시 말해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공소를 진행할 수 없는 범죄.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로 피고소인과 합의 보는 경우도 많지만, 애초 고소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죠. 그건 어떤 경우인지 아세요?’’

‘‘어떤 경우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경우죠.’’

‘‘아! 그렇겠지?’’

‘‘예, 오히려 괜히 긁으면 자기 명예 스스로 훼손하게 되는 경우. 공인이나 유명인이 그런 경우가 많죠. 그래서 사이버 렉카들이 하는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은 그냥 모르쇠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대다수 모르던 사람들이 새로 많이 알게 되면서 오히려 이미지 손해만 보게 되니까요.’’

‘‘그렇다면? 내 경우도 그런 경우라는 이야기?’’

‘‘그렇죠. 윤장숙 의원도 굳이 이걸 고소해서 오히려 만방에 알릴 필요가 뭐 있겠어요? 게다가 프로그램도 공중파 방송도 아닌 인터넷 방송, 이름 그대로 저품격 토크쇼에다가 발설자도 평소 이미지가 깃털처럼 가벼운 ... 어머! 죄송해요. 아무튼 평소 그렇게 진중한 이미지가 아닌 오빠신데.’’

‘‘끄응.’’


아까부터 얘, 계속 헷갈리게 만든다.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경계선이 불분명하다.


‘‘아무튼 제가 아까 그걸 눈치 채고 거기서 일부러 오빠한테 매몰차게 이야기한 거죠. 이건 빼박 명예훼손이다. 그리고 MC 님이 혹시 오빠가 명예훼손 의뢰하면 받을 거냐는 질문에도 일언지하에 거절한 거고요. 뭐 이 정도로 대놓고 오빠 쪽 줬으면, 아니 죄송해요, 대신 망신 줬으면 윤장숙 의원 측도 굳이 구태여 명예훼손까지 가지 않지 않겠어요? 제가 그걸 노린 거죠. 어때요? 저 고맙죠? 호호호.’’


그녀가 예의 다시 또 브이자를 선보였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잠시 쳐다보았다.

하얗고 둥근 얼굴, 맑고 커다란 눈, 입가에 떠나지 않는 화사한 미소.

아무리 봐도 신선혜, 이 얘, 이름 그대로 외모 신선해.

상대, 특히 남자들로 하여금 엔돌핀을 돌게 해준다.

신선하다, 신선해, 신선혜 변호사!


‘‘참, 그건 그렇고 오빠!’’

‘응? 아! 예.’’

‘‘근데 그거 완전 구라였죠?’’

‘‘예? 뭐가요?’’

‘‘윤장숙이 지현철인가 하는 사람 짝사랑해서 해꼬지 한다는 거요. 그거 오빠가 직접 지어낸 이야기에요? 아니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

‘‘아무튼 그래서 더더욱 윤장숙 그 아줌마가 명예훼손 걸어올 일 없을 거예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도 아니고, 구라에 과민반응 보이면 너무 이상하잖아요? 호호호,’’



+++



신선혜 변호사와 만난 지 30여분.


‘‘아! 드디어 올 게 왔네요, 오빠.’’


회사로부터 호출 전화가 왔다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핸드폰 좀 확인해야겠네.’’


내가 핸드폰을 다시 켜며 말했다.


‘‘어머! 핸드폰 꺼놓으셨어요?’’

‘‘황금 같은 처자와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어찌 핸드폰을 켜 놓는 무례를 범할 수 있었겠소, 하하.’’


그녀가 다음에 또 볼 것을 약속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자리에 계속 머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그 사이 이런 저런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지난 번 시사 팩폭쇼 때와 마찬가지로 방송 잘 봤다는 안부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저품격 토크쇼가 시사 팩폭쇼만큼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방송은 아닌 지라 문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개 중에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온 문자가 있었다.


[강대구씨 전화 요망]


뭐지? 이 예의가 행방불명된 문자는?

자기소개부터 하고 문자를 요망하든 말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그렇게 무시하면서 잠시 인터넷 서핑을 하려던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방금 전 그 요망한 곳이 발신자였다.


‘‘여보세요?’’

‘‘강대구씨?’’


내 또래 남자 목소리였다.


‘‘예. 전데요, 아니, 난데요?’’


강대구씨라고 나를 호명하는 어조에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그 반격으로 전데요, 했다가 난데요, 로 내 호칭을 스스로 바꾸었다.


‘‘야!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한 위압감을 넘어 반말에 쌍욕까지 터져 나왔다.


‘‘예에? 아니, 언제 봤다고 반말을 ...... ’’

‘‘뭐? 언제 봤다고 반말을?’’

‘‘...... 하세요?’’

‘‘인마! 아무리 삼류 인터넷 방송에 삼류 시사평론가라고 해도 그렇지. 그렇게 아무 말이나 막 내뱉어도 되는 줄 알아? 너 죽고 싶어 환장 했냐?’’

‘‘..... !’’


누군지 느낌이 왔다.

내 또래 30대 후반 남자.

그렇다면, 십중팔구 .....


‘‘아! 윤장숙 의원실이신가 보군요?’’

‘‘됐고. 우리 바로 고소 들어갈 테니까 알아서 해, 인마. 그렇지 않아도 황색 저널리즘에 빠진 니들 인터넷 방송 손보는 법안까지 몇몇 의원실과 합동으로 준비 중에 있거든. 그것도 각오하고 있고.’’

‘‘저, 저기요.’’

‘‘지금 이 통화 녹취 뜨고 있다고 말하려고? 이거 뿌리면 진짜 알아서 하고. 울 의원님이 너 죽이러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친 거 겨우 지금 진정 시켜드렸거든.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그게 아니라요. 정말 제 말이 백 프로 다 팩트인가 보군요, 하하하.’’


솔직히 속으로 좀 쫄렸지만, 애써 호기롭게 웃어젖혔다.


‘‘뭐, 뭐야?’’

‘‘제가 잘 아는 변호사 한 분이 방금 그랬거든요.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도 아니고, 구라에 과민반응 보이면 진짜 팩트라고요. 보통 이런 경우 그래서 긁어 부스럼 만들까 봐 은근슬쩍 넘어간다고요.’’

‘‘이, 이거 완전 또라이네. 어디 두고 보자, 씨이.’’


뚜뚜뚜뚜뚜.


전화가 알아서 끊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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