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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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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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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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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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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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종편 방송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는다는 것.

원래 의도였던 경제 뉴스에서 투자 정보를 얻은 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전화위복이 된 꼴이었다.


설령 프롬프터 창으로부터 괜찮은 투자 정보를 얻었다 해도 자칫 타이밍을 못 맞추거나 혹은 후에 생각지도 않은 사고가 벌어지면 홀라당 돈을 다 까먹게 될 지도 모를 일.

반면 종편방송에서, 그것도 시청률 20프에 육박하는 인기 토론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섭외를 받는다는 것.

훨씬 안정되고 투명한 수익을 보장 받는데다가 덤으로 어마어마한 부수입까지 생길 지도 모른다.


만약 토론의 거두 정원책과 김여중 사이에서 내가 제대로 캐릭터를 잡고 존재감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다른 여러 곳에서 섭외요청이 잇따를 수 있을 테니까.

예를 들어 공중파 시사 라디오 방송 DJ나 토론 프로 MC 같은 거?


마흔, 잔치가 시작됐다.

흐흐흐흐.


‘‘매제!’’

‘‘옙, 형님!’’


다시 또 매제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초장부터 최대한 목소리를 깔았다.


‘‘집에 들어왔어?’’

‘‘그럼요, 형님.’’

‘‘옆에 주화도 있어?’’

‘‘아니요. 저는 지금 방에서 인터넷 하고 있고요, 와이프는 거실에서 티비 보고 있는데요. 왜요?’’

‘‘응, 그렇구나. 아까 내가 그랬지? 투자금이랑 투자정보 주겠다고.’’

‘‘예, 그러셨죠.’’

‘‘그 이야기 그새 주화한테 했어?’’

‘‘예? 아! 예. 왜, 왜요, 형님? 하지 말았어야 했나요?’’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요?’’

‘‘그냥 없었던 일로 했으면 해서.’’

‘‘예에? 아, 예. 그, 그러죠.’’


매제가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는 확실히 참 순진하고 착하다.


‘‘대신 ......’’

‘‘예? 대신, 뭐요?’’

‘‘그냥 내가 천 가까이 조만간에 해 줄게. 대신 안 갚아도 돼. 그냥 선물이야.’’

‘‘예? 저, 정말이요? 리, 리얼리?’’


눈앞에 매제의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 바로 그려졌다.


‘‘응. 그리고 원주한테는 대신 이 말 좀 전해 줘. 낯 간지러워 내 직접 말 못하겠으니까. ’’

‘‘뭔, 뭔 말이요, 형님?’’

‘‘그동안 오빠 노릇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예에?’’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혀, 형님!’’

‘‘내 말 그대로 전해줄 수 있지?’’

‘‘자, 잠시 만요, 형님.’’


핸드폰 너머에서 방을 황급히 뛰쳐나가는 매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다급한 목소리도.


‘‘크, 큰일났다. 주화야. 혀, 형님, 극단적 선택하시려는 것 같아......’’



+++



3일 후.

모처에서 중구난방 제작진과 첫 미팅을 가지는 날이 마침내 도래했다.


그 사이 환경은 더더욱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아이돌 스타 오성과 여배우 진주연의 마약 흡입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고,

왕년의 유럽파 이호수 감독은 자신의 입으로 말했던 스카우트 비화가 다소 과장되었다며 공개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결론적으로, 내가 프롬프터를 보고 내뱉었던 말들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어이, 강씨!’’

‘‘예.’’


평소와는 다르게 나름 정성스럽게 코디를 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사팩폭쇼 최웅으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예, 그날입니다. 그동안 온갖 저에게 굴욕을 안겨준 귀사 시사팩폭쇼와 결별을 확정짓게 되는 그날이지요.’’

‘‘지랄. 우리 집 해피도 나나 집사람이 괜찮은 간식 좀 주면 졸라 꼬리 흔들며 사의를 표하는데, 이 개만도 못한 새끼를 봤나.’’


최웅의 독설은 물론 농담이었다.

내가 아이돌 스타 오성과 인기 여배우 진주연 마약 흡입 사실을 폭로하고 각종 미디어의 조명을 받게 된 그날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해 왔다.


최웅은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고 노련했다.

세상을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화제의 인물이 된 나를 바로 자신의 프로에 출연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며칠 자리를 비우게 하면서 호기심을 극대화 하는 전략을 택했다.

나도 그에게 뜬다고 해서 배신을 때리지는 않겠노라고 굳은 약속을 해 주었다.


‘‘어이! 강씨! 우리 회의 결과 알려줄게. 출연료 원래 백 프로 인상하려고 했는데, 거기다가 오십 프로 더 얹어주기로 결정 봤어.’’


시사팩폭쇼 진행뿐 아니라 직접 런칭을 한 실소유자이자 피디까지 겸하고 있는 최웅.

제작진 회의는 그냥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본인이 자체 결정한 것일 게다.


‘‘대신 너 중구난방 출연 그거 확실한 거지? 그 조건으로 백오십 프로 인상 결정한 거야.’’


최웅의 속셈은 결국 이거였다.

인기 토론 프로그램 중구난방에서 당대의 논객 정원택과 김여중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나, 강대구를 자기 프로에 계속 출연시키면서 시사팩폭쇼 이미지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전략.


사실 나 역시도 나쁠 게 없는 딜이다.

시사팩폭쇼라는 확실한 안전판이 있다면 중구난방을 비롯 다른 프로에 가서 보다 여유로이 드립을 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시사팩푝쇼를 중구난방에서 못다 한 이야기나 뒷이야기 같은 걸 풀 수 있는 판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씨바,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포만감에 젖어들게 된 거지?

너 세상 씨바 그만 나한테 좀 귀여운 척 할래, 흐흐흐흐.


‘‘백 오십 프로, 콜?’’

‘‘음 ... 완죤히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미운정 고운정 생각해서 콜!’’

‘‘짜식! 참! 오늘 중구난방 회의 가면 김피디한테 안부 전해. 나랑 공중파 시절에 잠깐 같이 방송 한 적 있었거든. 그 선배, 아직도 월급쟁이 질 졸라 하고 있네. 인생에 있어서 모험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웃기고 있네! 짤린 주제에.’’

‘‘야! 내가 짤리긴 했지만 뭐 비리 저지르다 짤린 거냐. 기득권에 처절하게 저항하다 짤린 거지.’’


최웅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그가 공중파 기자시절 권력의 방송 개입에 저항하다 해직된 건 맞는 이야기니까.

그는 그때부터 이미, 아니 태어났을 때부터 독설가이자 악담가였을 것이다.


혹시 태어나자마자 응애! 하며 우는 대신 씨바! 이런 데 왜 나온 거야! 이러며 투덜거린 건 아닐까? 히히히.

그건 그렇고 나 자꾸 왜 이렇게 즐거운 거냐, 히히히.



+++



약속장소인 카페에 도착해 보니 이미 김피디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다 와 있었다.

종편 인기 토론 프로그램답게 제작진 숫자부터 후덜덜했다.


CP인 김피디에 젊은 연출자 둘에 작가 셋.

총 6명이 내가 나타나자마자 박수로 맞이해주었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혹시 신이 심심해서 장난질을 하고 계시나.


‘‘강소장님, 점심은 몇 시에 드셨나요?’’


재빨리 제작진들 앞에 놓여있는 메뉴들을 살펴보았다.

음료수 한 잔에 타르트니 미니 케이크니 쿠키니 하면서 다들 푸짐하게 놓고 맛보고 있었다.


잘 나가는 방송은 확실히 다르구나.

저거 전부 본사 지원으로 나오는 간식비겠지, 하는 생각이 바로 들어서


‘‘오늘 하루 종일 바빠서 아침 겸 점심으로 대충 길거리 토스트 하나 먹은 게 전부네요, 하하하.’’


그렇게 내뱉었더니 바로 막내 작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뭐로 시켜드릴까요, 소장님?’’

‘‘음 ......’’


평소 내 돈 내고는 최대 마지노선이 카푸치노임에도 불구하고, 통 크게 제주 유기농 어쩌고 하는 시즌 음료와 마카롱을 비롯 평소 먹지 못했던 디저트들도 통 크게 대거 주문해 보았다.


‘‘저기, 근데 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제작진들 하나하나와 대충 통성명을 나누고 김피디가 대표로 환영사를 해주고 난 후 내가 질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예. 뭐든지요. 뭐든지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물어보시죠.’’

‘‘정원택 선생님과 김여중 선생님도 제가 투입되는 걸 알고 계시나요?’’


현재 중구난방은 본의 아니게 2주간 휴방이 예정되어 있다.

월드컵 지역 예선 축구 시간과 겹친 탓이었다.

제작진들도 이 휴가 기간을 이용해 포맷 변경을 시도하려는 거고.


‘‘아직은 말씀 안 드렸습니다만 두 분 스타일상 새로운 피 수혈을 거부할 분들은 아닐 겁니다.’’


아니다, 가 아니라 아닐 겁니다?

왠지 좀 찝찝하다.

김피디 말은 평소 정원택과 김여중의 방송 이미지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발언이다.


보수 패널 중 가장 상남자 스타일로 유명한 정원택.

거구의 몸집에 인상도 험악해서 이미 와꾸부터 카리스마가 작렬하는데다가, 남미 갱을 방불케 하는 다혈질 스타일로 토론 중에 툭하면 고성, 욕설에 심지어 의자를 내던지는 시늉까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지식이 부족하거나 논리가 빈약한 것도 아니다.

대학교수에 국회의원도 한 번 해 본 경험까지 있다 보니 어떤 진보 논객도 쉽사리 말싸움에서도 이기기 힘든 인물이다.


반면 진보 패널 중 가장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김여중.

원래는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상대로 무료변론 상담을 해주던 변호사였다.

그러다 지난 총선에서 진보정당 쪽에 영입되었고, 험지인 용산에 출마를 했었다.

3선의 유명 보수 정치인을 상대로 선전을 하며 불과 몇 백표 차이로 지게 되지만, 그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얻게 된다.

이후 방송 활동에 다시 매진하면서 가장 인기 있는 진보 논객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차기 총선에서는 심지어 강남에서도 당선 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중구난방 제작진이 선한 인상과 재치 넘치는 드립이 가장 큰 무기인 김여중을 정원택의 파트너로 붙여놓은 것은 신의 한수였다.

아웃복서와 인파이터의 전형적인 구도.

김여중이 먼저 툭 건드려서 정원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나고, 점점 부아가 오른 정원택이 갈수록 언성을 높이면 김여중이 그걸 또 재치 넘치는 드립으로 받아치고, 그러면서 긴장감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포맷인 것이다.


‘‘초반에 시청률이 가파르게 오르다 요즘 잠시 정체기에 들어간 거 정선생님이나 김선생님 두 분도 너무나 잘 인식하고 계십니다.’’


김피디의 부연설명이 시작되었다.


‘‘아! 정말이요?’’

‘‘예, 얼마 전에 저희가 방송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따로 그 원인에 대해 머리 맞대고 다 같이 분석한 적도 있었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예, 그리고 거기서 저희가 다다른 결론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두 분이 교묘하게 선을 안 넘는다는 거였습니다.’’

‘‘교묘하게 선을 안 넘는다라.’’

‘‘그러니까 방송 초기에는 저희 시청률의 일등공신이었던 게 바로 그 교묘하게 선을 안 넘는다는 거였는데, 지금은 역으로 바로 그것에 시청자들이 익숙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 정체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죠.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 보면 어차피 마지막에 히어로가 악당 물리치고 이길 텐데 하며 흥미가 반감되는 그런 심리라고나 할까요?’’

‘‘아하!’’

‘‘그렇다고 두 분이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게 또 위험부담이 큰 게 후폭풍이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방통위에서 요즘 공중파나 종편이 너무 인터넷 방송처럼 자극적이라고 손본다는 이야기가 계속 있어왔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방송이 토론프로 중에 잘 나가다 보니 질투도 사고 그래서 본보기가 될 수 있죠. 또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정선생님 김선생님 두 분이 사석에서 꽤 친하십니다. 대기실에서나 회식 자리에서 뵈면 마치 오래된 친구 같으세요. 그만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신다는 거죠. 결국 그렇다면 제 3자가 들어와서 두 분 싸움을 때로는 격하게 붙여서 선을 넘게도 했다가 또 때로는 화해시켜 선 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하는데 ......’’

‘‘음, 그러니까 그 역할을 저보고 하라는 이야기시네요.’’

‘‘예, 지구상에서 그 방면에 있어서 최강자는 강소장님이라는 게 저희가 내린 또 다른 결론이었습니다, 하하하.’’


김피디가 나를 향해 엄지척을 내밀었다.

그를 따라 다른 제작진도 일사불란하게 자신들의 엄지척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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