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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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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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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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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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올림포스 003. 인선의 의미(2)

DUMMY

“오늘 꽤 많은 걸 들었어.”

해질 무렵 우린 숙소에 돌아와 하루동안 얻은 소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내가 운을 떼자 우리엘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섞으며 대답했다.

“응. 근데, 이거 괜찮은 걸까? 이대로라면 제우스를 찾을 방법이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엘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마도 간단할 것이다. 우리가 돌아다니며 말을 섞었던 사람들 중에 제우스를 포함한 올림피아의 신들의 거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림피아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는 정해진 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 저곳을 유랑하며 드문드문 나타나 사소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혹은 외세의 위험이 닥치면 나타나 그것을 막아주는, 그 정도의 행동만 한다는 이야기들만 돌아다녔다.

대중에게의 노출이 적다. 그 때문인지 올림피아 신들의 입지는 에데니아에서의 성녀님이나 천사들의 입지만큼 대단한 입지는 아니라는 모양. 모두가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다가 가끔씩 나타나면 반갑게 맞아주는, 그런 관계라는 모양이다.

그마저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라노스 올림피아’의 행방은 십 수년동안 묘연하다는 모양이고 그의 손자 ‘제우스’는 최근 들어선 여색을 밝히는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도는 지경이라고.

제우스의 여색을 밝히는 행동, 그 이야기는 제법 넓게 퍼져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였다. 어느정도였냐면 사람들이 제각각 그 소문들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그 화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정도로 유명한 화제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이야기에 대한 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크레타 섬의 왕녀부터, 각 마을의 이름난 미인들까지, 약 십이삼 년 전부터 일년에 한두번 꼴로 제우스의 여색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제우스의 간택을 받아 거처를 떠난 미인들은 거처나 신분에 규칙이 없었다. 정말이지 폭이 정말 넓었는데 공통점이라곤 하나같이 다 미인이라는 것.

대부분의 여인들은 제우스를 따라 자취를 감췄으며 가끔씩 제우스를 통해 소식만 전해주며 제우스만 아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유일하게 자취를 감추지 않은 여인은 크레타 섬의 왕녀님. 듣자하니 그 왕녀님은 제우스의 자식들을 왕궁에서 키웠다는 모양이다.

이러한 올림포스의 사정을 들은 에데니아의 천사의 입장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내정 상황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감상이 절로 든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체계적인 통솔체계가 잡힌 에데니아와는 정 반대였으니 내가 이 현상을 납득하기는 제법 어려웠다.

올림포스의 사람들은 딱히 지금이 전쟁의 위협을 겪는 시기도 아니라서 신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도 했고, 각 마을끼리의 분쟁이나 자잘한 다툼들에 신들이 관여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인 모양. 애당초 올림피아의 신들이 시민들에게 바라는 게 없었기에 성립할 수 있었던 관계라고 한다. 확실히 에데니아와는 다른 구조를 한 세력이라는 게 느껴졌다.

문제는 제우스를 찾아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게 조금 막막한 일이라는 것. 그런 감상을 우리엘 역시 한 것인지 우리엘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숨어 사는 사람을 찾으라고 해 봐야······. 어찌해야 하냐고 진짜······. 유일한 단서가 크레타 섬의 왕녀님이니, 일단 그 쪽을 찾아가봐야 하나······.”

우리엘이 진지한 고민을 할 때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제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되살아난 감정, 과거에 겪었었던 소소한 행복들. 그 감정들이 떠올랐을 때 덩달아 떠오른 그 무렵의 기억들. 그 무렵의 기억들과 제우스에 대한 정보가 지금 내 머릿속에서 바쁘게 움직여 한가지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게 유의미한 결론으로 맺어진 순간 나는 우리엘을 향해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나, 알 것 같아. 제우스를 만날 방법. 어쩌면 나는 오로지 이걸 위해 이 곳에 온 걸지도······.”

“그게 무슨 소리야?”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 우리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내가 어떻게 ‘에덴의 천사’가 된 건지 알고 있어?”

우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성녀님이 데려오신 거잖아?”

“응.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성녀님의 부름을 받았는지.”

“거기까진 잘 몰라. 성녀님이 하신 일이잖아?”

“응. 그러니까 나는······.”

나는 그렇게 우리엘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 어린 시절 작은 세상에서 빠져나온 내가 ‘에덴’에 불려온 일, 길거리에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을 내가 더는 느끼게 되지 못한 날의 이야기까지.


***


집 바깥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알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형편이 안정되기 시작할 무렵엔 ‘아프로디테’라는 어린이는 이미 내가 살던 도시, 하투사의 유명인이 되어있었다. 내가 마을에서 유명인이 된 만큼 내가 마을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자연히 많아졌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어머니에게 배운 처세를 실천했다.

웃긴 게,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고작 최하층민에 불과했던 어머니가 내 일에 나서는 것보다 어린애일 뿐이었지만 내가 내 스스로 내 일에 나서는 게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더 돋보이게 했었던 것 같다. 어머니 역시 그 부분을 미리 짐작하기라도 한 건지 내 앞에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하는 일이 없었다. 뒤에서 내게 알려주기만 할 뿐,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말들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에 충실했다.

덕분에 나는 비록 최하층 출신이었지만 최하층 취급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래봐야 고작 10살짜리 어린아이의 처세가 뭐가 그리 대단하겠지 싶으련만 10살 아이에도 어여삐 보이는 10살 아이와 밉보이는 10살 아이가 있다.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날 지켜줄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여쁜 아이가 되어주면 된다는 걸 어머니는 그무렵의 내게 가르쳐 주었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진심에 은근한 타산이 담긴 처세, 그걸 내게 가르치는 것이 어머니가 자신의 위치에서 나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마을의 영주에게도, 그러니까 얼마 전, 하투사에서 뵈었던 영주님과도 나름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기도 했었다.

당시 내 행보는 어떻게 되돌아봐도 최하층민의 행보가 아니었다. 마을에서 인기를 모으며 마을의 영주와도 안면을 트다니, ‘신분’의 초월. 아무것도 모르던 10살짜리 어린애가 이뤄낸 일이다. 같은 최하층 사람들의 질투를 사는 일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얻은 것들을 그런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그 질투심을 덜어낼 수 있었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저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처세, 어여쁜 아이가 되어 널 지켜줄 사람들을 만들어라. 를 지킨 것뿐. 내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하층민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눔으로서 그들과도 친구가 되려 했던 것.

그렇게 당시의 내 유명세는 꺾일 기세 없이 치솟았다. 순식간에 하투사라는 마을을 넘어서 다른 도시들, 그 도시들로 이루어진 세력의 중심, 성역, 에덴이 있는 우르크에까지 퍼지게 된다.

솔직히 나는 그 행동을 주도하면서도 내 행동이 낳은 일련의 흐름에 대해 전혀 인식할 수 없었다. 그 어렸던 내가 유명해지자고 그런 행동들을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던 그 소소한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그 어린애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발버둥을 한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우르크의 왕가에서 찾아온 사신을 대면하게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은근히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그 날이다. 내가 ‘성녀, 이브 에데니아’의 부름을 받아 우르크로 향하게 된 날이.

‘신’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기겠다. 나라에서 드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 우르크 왕가의 사신은 내게 그런 선언을 했다. 그 매력적인 이야기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 자신의 분수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이야기는 쉽사리 거절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10살짜리 어린 아이는 자신의 분수를 알기엔 턱없이 모자란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분수와 주어진 자리를 비교할 생각도 못 하는 사람들에겐 단지 매력적인 이야기. 주변에선 그 이야기를 들은 일을 축복해주기 마련이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 터인 어머니는 그 일에 내심 반대하려 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성녀님을 대하기 불편해하시는 걸 보면 알 수가 있다. 다만, 내가 세상에 나서는 흐름을 어머니가 홀로 막을 수 없었듯이 에덴에 불려가는 일 또한 어머니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성녀’의 부름. 그건 다른 의미로 ‘절대적인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에덴에 간 내가 성녀님을 만나자마자 성녀님이 내게 한 말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듣던대로구나, 상당히 긴 삶을 살았거늘, 봐왔던 아이들 중 가장 빼어나다.”

그리고 성녀님은 내게 ‘미의 천사’라는 이명을 붙였다. 이것이 내가 에덴에 입성하게 된 경위다.


***


“나는 사람들이 퍼트린 소문 때문에 에덴의 천사가 된 거야.”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우리엘은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자 다음 내용을 짐작이라도 했듯이 중얼거렸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는 건······.”

“응. 소문을 이용해서 제우스를 여기에 부르자. 방법은 생각해 뒀어.”

여색을 밝히는 제우스, 이름난 여인들은 다 만나고 다녔다는 제우스. 어디 사는지도 모를 그 인간을 만날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인간을 내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거, 괜찮은 거 맞아?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설마 해코지라도 하겠어? 다른 사람들하고 엮이는 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에덴에 지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랑 대화할 일이 없으니 잊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가르쳐주셨던 것들이 거의 떠올랐거든. 지금은 사람들 상대하는 게 자신 있어.”

그리고, 이렇게라도 일을 하는 게 내가 내 몫의 밥값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고.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우리엘은 내 얼굴을 보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웃는 거 오랜만이네? 역시 보기 좋아. 예쁘다니까?”

“새삼스레······.”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라 해도 친언니와 다름없는 사람에게 저런 칭찬을 들어버리면 어딘지 모르게 머쓱해져버리고 만다.

뭐, 그건 그거고,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거, 그리고 처음으로 밥값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지금, 이 일을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것보다 지금은 임무야! 나에 대한 소문을 퍼트려서 제우스를 이 쪽으로 부르는 것, 그건 결정사항이라고 치면 다음은 소문을 퍼트릴 방법.”

소문을 퍼트릴 방법, 이것도 나름의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미 그 해답이 도출되어 있었다. 이 일련의 흐름을 떠올린 순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에덴까지 가게 될 수 있었는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과정. 그 과정을 돌이켜보는 것이 내게 이번 문제의 해답을 떠올리는 것을 가능케 했다.

나는 나 스스로도 내게 이런 적극성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만큼 내게는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당당하게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당당하게 천사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성과가.



작가의말

20240827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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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올림포스 010. 귀향 24.06.05 9 0 12쪽
22 21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2) 24.06.04 8 0 15쪽
21 20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1) 24.06.03 9 0 13쪽
20 19화. 올림포스 008. 교전(2) 24.05.31 11 0 11쪽
19 18화. 올림포스 008. 교전(1) 24.05.30 10 0 13쪽
18 17화. 올림포스 007. 조우(2) 24.05.29 11 0 14쪽
17 16화. 올림포스 007. 조우(1) 24.05.28 11 0 12쪽
16 15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2) 24.05.27 10 0 12쪽
15 14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1) 24.05.24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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