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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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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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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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올림포스 008. 교전(2)

DUMMY

싸움이 다시금 커질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돌자 나는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엘을 질질 끌며 다시금 수풀 속으로 숨어들어가야만 했다.

크로노스는 제우스를 향해 낫을 크게 휘두를 것처럼 움켜쥐었다. 그래봐야 거리가 제법 멀어서 뭘 하려나 싶었는데 크로노스는 허리와 팔꿈치에 탄력을 넣고는 힘껏 쥔 낫을 그대로 휘두르듯 던져버렸다. 던져진 곳은 맨땅. 맹렬한 기세로 땅에 박힌 낫을 내버려 둔 크로노스는 역시라면 역시나, 이번에도 제우스를 ‘수확’할 생각은 없다는 듯. 낫 같은 것 없어도 제우스 정도는 먼지나게 팰 수 있다는 듯 낫 없이 맨손으로 제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제우스가 그런 크로노스를 향해 쥐고 있던 번개의 가시를 던졌지만 크로노스는 양 팔을 교차시키는 것으로 그 번개를 튕겨냈다. 번개가 직격한 팔엔 마른 땅에 금이 가듯이 금이 벌어져 있었다. 일전에 제우스가 말했던 권능의 상성, 벼락으론 대지에 타격을 입히기 어렵다는 것.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전사했을 공격을 팔이 금이 간 것으로 막아낸 크로노스, 팔에 금이 간 것 따윈 자가 수복이 가능한 입장이니 전혀 신경쓰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대지, 제2초월 ‘금강’”

크로노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크로노스의 진로상의 땅에서 웬 새하얗고 반짝거리는 봉이 하나 솟구쳤다. 크로노스는 뛰면서 자연스레 봉을 잡아챘고 봉을 회전시키며 제우스에게 접근했다. 제우스는 혀를 차며 자신의 뒤에 박혀있던 말뚝을 뽑았다. 우리엘이 크로노스와 싸웠던 흔적인 말뚝이다. 때마침 봉을 휘두르던 크로노스가 거리를 좁혔고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내려치기를 말뚝의 가운데 부분으로 막아냈다.

그 순간 크로노스는 웃었다. 동시에 크로노스가 쥔 봉의 말뚝과 맞닿아 있는 부분, 그 위아래에서 봉과 같은 재질의 작은 막대가 사선으로 솟구치더니 말뚝을 붙잡는 듯한 형태로 자라났다. 이에 제우스가 당황하며 움찔하자 크로노스가 봉을 비틀었고 제우스가 쥐고 있던 말뚝은 크로노스의 봉의 움직임을 따라서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제우스의 자세도 무너졌다.

내려간 가드 사이로 크로노스는 주먹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얻어맞은 제우스가 말뚝을 완전히 놓친 순간 크로노스는 봉을 밖을 향해 휘둘러 봉에 걸렸던 말뚝만을 멀리 던져버렸다. 그 다음에 일어난 건 일방적인 폭행, 크로노스가 말했던 그대로 먼지나는 폭행이었다.

물론 제우스도 맞고만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뒤엉킨 덩어리 위로 벼락이 수시로 꽂히고 천둥소리가 울렸으며 강력한 힘의 여파로 땅이 울리고 파동이 일었지만 크로노스는 벼락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제우스를 향해 무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주먹을 잡고 전류를 흘려 넣으면 크로노스의 주먹 끝이 모래처럼 바스러지더라도 크로노스는 그것을 금방 수복시켰고 수복된 주먹은 다시금 제우스를 향해 내질러졌다.

제우스의 ‘벼락’ 분명 강력하고 파괴력이 있는 건 맞지만 ‘대지’의 초월형을 사용해 신체의 속성을 땅과 같이 바꿔버린 크로노스에게는 벼락만으로 절명에 이르게 할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래도 크로노스의 팔은 확실하게 바스러졌다. 만약 머리를 바스러트릴 수 있다면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딜!”

크로노스 역시 그것만은 아는지 제우스를 상대로 험하게 다루는 건 자신의 팔다리뿐이었다. 제우스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겨눌 때면 어김없이 그 손을 잡아채 비틀었으니까.

제우스가 당하면 다음은 이쪽이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그럴 마음이 없는 한 죽지는 않겠지만 이 쪽은 아니라고. 크로노스는 우릴 확실히 죽일 게 분명했다.

생각해야만 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 생각해!

일단 크로노스의 주의를 끌까? 하지만 어떻게? 우리엘? 우리엘을 이용한다면···! 크로노스는 분명 우리엘의 권능을 필요로 할 거야. ‘대지’의 힘으로 제우스를 억제하는 건 가능하겠지만 완벽한 건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우리엘을 미끼 삼아······. 아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봐봐. 주의를 끈다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지? 시간을 잠시 버는 걸론 제우스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쪽에 주의가 끌린 사이에 우리들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어떻게?! 상황을 바꾸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벼락이 떨어지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제우스의 저항이 약해져 간다는 증거다. 저 벼락이 멎는 순간이 이쪽이 공격당하는 순간이 될 터. 하지만······.

틀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해빠진 이딴 몸으론 머리를 얼마나 굴리든 이 상황을 바꿀 수 없어. 뭔가를 해내려고 한다 해도 그건 결국에 ‘연명’이 될 뿐이겠지. 내게도 저들처럼 힘이 있었다면······. ‘에덴의 천사’라는 칭호에 걸맞은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야속하네. 크로노스는 이런 내 마음을 알고 내게도 힘이 있다는 어이없는 헛소리를 한 걸까? 아니, 모르겠지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걸? 그렇다면 진짜 무슨 생각이었을까? 크로노스는. 아무리 나약하다고 해도 적, 내게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한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벼락은 완전히 멎어버렸다. 제우스의 저항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제우스, 내가 그렇게냐 미우냐.”

제우스를 먼지나게 패버린 크로노스는 제우스를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제우스는 퍼진 채로 쿨럭이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내······. 가족의 원수인 걸······.”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

“하, 발견 당하면 전부 당신 손에 들어갈 걸 내가 모르겠냐고.”

“그거야, 네가 나를 죽이려 하기에 그런 게 아니냐?”

“그럼, 내가 멈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멈추거라. 그것만이 남은 사람들을 구할 길이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요······.”

제우스가 제압당한 순간 이미 나는 반 이상 포기한 채 생각을 비우고 있었다.

“떠올려 보거라, 제우스. 네 자식들 말고도 분명, 살아있는 네 가족들이 있어.”

“조모님과······. 고모님······.”

그랬기에 지금의 저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내 어머니와······.”

하지만 그런 내 귀에 도저히 흘려들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들려온다.

“여동생, ‘아프로디테’가 말이지.”

‘아프로디테’, 나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입에 담는 크로노스는 틀림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의 방향은 제우스를 향해 있던 크로노스의 그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음을, 그 시선을 내가 마주했기에 알 수가 있었다.


***


유아기 시절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유년기 때는 홀로 지내왔다.

날 키워온 건 홀어머니, ‘가이아’.

적어도 내 기억속엔, 아버지의 존재는 없었다.

어머니는 날 낳을 때 상당한 노산이었다.

최하층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어머니의 처세술.

그럼에도 어머니는 어째선지 최하층민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성녀님께 이끌리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도저히 에데니아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어머니는 성녀님을 경계했다.

이것들은 어째서였을까? 뭔가 하나로 이어지는 점이 있는 게 아닌가?

크로노스는 내게 잠재된 능력이 있다고 했다.

‘로얄블러드’ 이거나 ‘마인’ 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 거짓말을 해서 이득 볼 여지따위 크로노스에게 하나도 없다.

반대로 그게 사실이라고 한 들 크로노스가 내게 그걸 이야기해서 이득 볼 여지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말이 발단이 되어 내가 도중에 권능을 각성한다면 크로노스는 손해만 볼 따름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크로노스는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크로노스는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풀어줬다고 했다.

제우스는 그 둘을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럼 그 둘은 어디로 갔을까.

크로노스가 제우스를 제압하고서 저런 이야기를 붙인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다.

그 의미는 뭘까.

크로노스는 정말로 제우스가 자신에 대한 복수를 멈췄으면 하는 걸까? 직전까지만 해도 제우스가 자신을 향해 복수하고 있는 게 재밌다고 말했던 저 남자가?

크로노스는 자신이 풀어준 여동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동생, ‘아프로디테’ 라고.

그 이름을 부르며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게 지어주신 이름 ‘아프로디테’.

크로노스는 내게 능력 이야기를 하기 전 내 이름을 물었었다.

나는 대답했었다.

‘아피’ 라고.

크로노스는 내가 대답한 그 이름을 듣고는······.

분명 무언가를 생각하며 되뇌었다.

어머니가 날 부를 때 썼던 애칭, ‘아피’를.

머릿속에 갑작스레 맞춰진 퍼즐조각, 그 퍼즐조각이 맞춰진 순간이 내 각성의 순간이었다.

나는 크로노스를 향해 내 ‘권능’을 쓸 수 있었다. 그 권능을 통해 나는 찰나였지만 크로노스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기억 속에서 내 어머니, ‘가이아’가 작은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고 크로노스는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크로노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크로노스, 네 동생이란다. ‘아프로디테’, ‘아피’라고 부르렴!”

“아프로디테! 아피!”

기쁘다는 듯이 내 이름을 불렀던 젊은 시절의 크로노스는 갓난아기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금발 벽안을 한 갓난아이는 크로노스의 손을 붙잡은 채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비친 크로노스의 표정 역시······.


***


아무래도 내가 권능으로 상대방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동안엔 상대방은 의식을 컨트롤 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크로노스의 기억을 본 건 정말 찰나였지만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형세가 뒤바뀌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눕혀놓고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그 상태로 이야기를 하려 했다.

“뭐냐, 아들아.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었냐?”

크로노스의 목을 조를 수 있게 된 제우스는 복잡한 심경이 되기라도 한 듯 쓰고도 괴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흑···!”

크로노스는 그런 제우스를 향해 호통을 쳤다.

“조르는 게 약하잖냐! 이 무른 것아!”

크로노스는 외치며 제우스를 밀쳐냈다. 제우스가 쓰러지는 걸 바라보며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저 멀리 꽂혀 있던 낫이 빨려들듯 크로노스의 손에 감겼고 크로노스는 그 낫을 쥔 채 쇄도하기 시작했다.

제우스를 향해서가 아니라, 내가 있는 쪽으로.

나를 향해 돌진하는 크로노스의 표정은 정말이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프로디테!!!!!!!”

크로노스의 외침이 내 귀에 울렸다. 나를 노리고 달려오는 크로노스, 순간 모든 사고가 얼어붙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면 죽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떠오른 찰나, 한무더기의 전류가 나와 우리엘을 감쌌다. 전류가 방출하는 빛이 눈꺼풀을 찔렀다. 다만 그것은 순간, 빛이 사라져 눈을 떴을 때는 처음보는 풀숲의 한가운데로 순간이동한 뒤였다.



작가의말

20240827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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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4) 24.06.12 10 0 13쪽
27 26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3) 24.06.11 8 0 12쪽
26 25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2) 24.06.10 8 0 14쪽
25 24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1) 24.06.08 8 0 12쪽
24 23화. 올림포스 011. 결단 24.06.06 8 0 12쪽
23 22화. 올림포스 010. 귀향 24.06.05 9 0 12쪽
22 21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2) 24.06.04 8 0 15쪽
21 20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1) 24.06.03 9 0 13쪽
» 19화. 올림포스 008. 교전(2) 24.05.31 11 0 11쪽
19 18화. 올림포스 008. 교전(1) 24.05.30 10 0 13쪽
18 17화. 올림포스 007. 조우(2) 24.05.29 11 0 14쪽
17 16화. 올림포스 007. 조우(1) 24.05.28 11 0 12쪽
16 15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2) 24.05.27 10 0 12쪽
15 14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1) 24.05.24 9 0 13쪽
14 13화. 올림포스 005. 제우스(3) 24.05.24 11 0 15쪽
13 12화. 올림포스 005. 제우스(2) 24.05.22 8 0 12쪽
12 11화. 올림포스 005. 제우스(1) 24.05.21 8 0 13쪽
11 10화. 올림포스 004. 유도 24.05.20 12 0 13쪽
10 9화. 올림포스 003. 인선의 의미(2) 24.05.17 12 0 12쪽
9 8화. 올림포스 003. 인선의 의미(1) 24.05.16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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