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지워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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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a96
작품등록일 :
2024.05.1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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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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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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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올림포스 011. 결단

DUMMY

복도를 걸어나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웠다. 임무를 성공한 지금, 전혀 안심이 되지가 않는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불편한 기분이 든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가브 언니는 내가 따라가는 페이스가 유달리 느리다는 걸 눈치챌 수밖에 없었는지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올림피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요즘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야.”

“다사다난한 일들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가브리엘은 대충 이해할 수 있겠다는 듯 웃어보였다.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언니에게 물어봐.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언니라면 내가 뭘 고민하고 있는지도 맞춰버릴 것 같은데?”

“그럼 맞춰볼까?”

장난삼아 한 이야기였는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이라면 내 뒤숭숭한 마음을 정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앞 일 걱정이려나? 제우스와 성녀님이 만나면 어떻게 될 지 고민하는 걸까나?”

“걱정······.”

그 말을 들으니 무언가 명쾌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 나는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안 거야?”

내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가브리엘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뻔하지 뭐, 임무를 성공한 지금, 네가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는 몇 개 없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제우스의 태도를 보니까 너를 경계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건데, 그럼 뭐가 문제일까나? 했던 거지.”

나는 멍하니 가브리엘의 설명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우스가 너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거. 그게 오히려 이상해. 한 세력의 지배계층이 다른 세력으로 넘어오면서 그 세력의 앞잡이를 경계하지 않는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임무를 나선 게 너랑 우리엘이였으니까 말이야. 의외로 제우스랑 친해져서 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가브리엘이 제우스와 대면했던 시간은 분명히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정도나 읽었다. 역시나, 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제 아무리 가브리엘이라 한들 우리가 아테네에서 겪었던 일들을 모두 추측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가브 언니는 이 짧은 순간에 과정은 놓치더라도 요점을 짚어내 보였다.

"그리고 네 얼굴에 써 있기도 해. 뭔가가 걱정된다고. 그럼 그런거려나? 싶었던 거지."

“그렇게 티가 많이 나?”

“그렇게까지는?”

“제우스 씨가 순순히 에덴에 온 이유는 자신만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야."

"그게 성녀님이 제우스를 회유하라고 했던 이유와 충돌한다면 다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성녀님은 일이 여기까지 진행된 이상 저 남자를 회유해 오라고 한 목적을 어떻게든 이뤄내실 분이야. 하지만 너도 성녀님을 봐와서 알잖아? 항상 사려깊고 자애로우신 분이라고. 그러니 제우스와 다투는 일은 일단 없지 않을까? 성녀님이잖아?”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이 일이 신경쓰이는 이유,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성녀님이 제우스 씨에게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제우스랑 정말 많이 친해졌나 보네.”

정곡을 찌른 한마디에 나는 순간 걸음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렇겠지, 천사들에겐 제우스보다 성녀님이 우선일텐데 말이야. 이런 거 이상하려나?”

가브리엘은 나긋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어.”

“정말?”

“응. 아마 너만할 때였나?”

“그럼 백 년도 더······.”

가브리엘은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았다.

“숙녀의 나이는 언급하는 게 아니란다?”

“응······.”

“나도 예전엔 임무 대상에게 사적인 감정을 품었던 적이 있었어.”

“언니는 그 때 어떻게 했는데?”

“신경쓰이는 만큼 신경 써 줬지? 임무에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뭐냐고, 그 모범적인 답변은······.

“그거 지금도 하고 있는 거 아니야?”

“맞아. 지금도 신경 쓸 수 있는 만큼은 신경 써. 그러니까 네가 제우스를 걱정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야.”

가브리엘은 산뜻하게 미소지었다.

“우린 사람이잖아?”

“그럼 말이야, 언니.”

“응?”

“만약 내가 그 일 때문에, 성녀님에게 반하는 짓을 한다면······.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돌아온 것은 장난스러운 딱밤이었다.

“예끼.”

“아얏!”

가브 언니는 움찔한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귀여운 동생,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정말이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이 사이에서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미래가 있기는 한 것일까? 그 해답을 아무도 내려주지 않는 걸까? 꼭 한 쪽 편 만을 들어야 한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던지 가브리엘은, 우리엘은 지금처럼 날 봐줄 수 있을까?

“자, 그럼 마저 가 보자!”

그렇게 몇걸음 가브 언니를 따라 걸으니 어느새 에덴의 입구까지 도착해 있었다. 입구 옆에는 오늘의 시중인 듯한 메타트론이 서 있었다.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메타트론을 무시한 나는 에덴의 문을 열고 정원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가브리엘은 그런 내 뒷모습을 바라보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한 인사를 건네왔다.

“그럼, 보고 잘 하고 와!”

“응, 언니.”

그것이 나와 가브리엘의, ‘가족’으로써 나누는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조심스레 정원의 중앙으로 향했다. 성녀님, 이브 에데니아가 있을 정자로.


***


나는 성녀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계속 그랬다. 내가 에덴에 처음 왔을 무렵, 성녀님은 어머니를 종종 불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내게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그런 일들이 있고 나면 어머니는 잔뜩 기가 빨려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필시 좋은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닌 게 분명했다.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성녀님을 좋아할 수 없게 된 게.

성녀님과 있었던 시간도 많지 않았다. 내가 먼저 찾아뵙는 일은 거의 없었고 불려간다 하더라도 공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게 전부였다. 성녀님의 비호 아래 교육받고 자라오며 우리엘이나 가브 언니 같은 천사들과 교류했지만 막상 성녀님에겐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언제나 피곤해하는 어머니의 모습만 떠올랐으니까.

성녀님은 내게 잘 해주시려고 했다. 아무래도 내 쪽에서 성녀님을 피하려고 하는 게 성녀님에게도 느껴지는 일이 잦았는지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꼭 안부를 묻고 고민을 들어주려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째선지 그 선의에 보답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의지할 수가 없었다. 내가 성녀님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따위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성녀님 앞에서 하던 고민은 언제나 하나였으니까.

에덴의 문을 열고, 제우스의 일을 보고하려 걷는 동안, 어째선지 그 무렵의 그 감상들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기억났다. 나와 어머니가 성녀님을 처음 대면했을 때, 어머니와 성녀님이 나눴던 몇 마디 대화를.

‘제 아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을까요?’

‘그것을 알지 못하고선 딸아이를 맡기기 어렵다는 이야긴가?’

그 때 그렇게 말했던 성녀님은 이 한마디로 어머니의 말문을 막았다.

‘그대는 나를 믿지 못하는군.’

어머니의 말문을 막고 거절하지 못할 선택지를 들이밀었었다.

‘그대여, 이곳에서 당분간 머물러 보는 게 어떻겠나? 그대와 내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니.’

그리고 그 이야기들, 성녀님은 우리들을 지구라트에 체류시키고 틈만나면 어머니를 불러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진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매번 녹초로 만들었던 건 분명했다. 그리고 성녀님은 내게 우리엘을 붙여주어 나로 하여금 이것저것을 배우도록 지시했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성녀님에게 시달리던 끝에 나는 우리엘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았었고 그런 나를 가여이 여긴 우리엘은 분명······.

나로 하여금 어머니와 성녀님의 사이를 중재하게 했다.

그 무렵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이브 에데니아의 앞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잘 돌아와 주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게 일을 수행해 주었구나. 기대 이상이야.”

“예.”

“그래,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이야기를 해 다오.”

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임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미라 작전’으로 출국한 일부터 해서 아테네에 도착해 제우스를 만나게 된 경위,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일 들 하나하나. 하나하나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질질 끌었다.

분명히 어머니는 그 무렵 이브 에데니아를 경계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출신, 나의 가족관계와 관련된 이유일 것이다. 내 안에 우라노스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아는 어머니에겐 내가 에덴에 머무는 것으로 생길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걱정이 드실 수밖에 없으셨을 게 분명하니까. 마치 지금의 내가 제우스를 걱정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브 에데니아는 어머니가 경계심을 드러낸 단 한마디를 가지고 어머니의 경계심을 캐치했다. 아마 어머니의 분위기, 사소한 태도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브 에데니아는 그 이후 어머니를 은근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주변을 움직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제우스는 분명 그 무렵의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다.

어머니는 그 때 이브를 경계함으로써 이브의 압박을 받았지만 제우스는 애당초 올림피아의 사람이다.

그러니 이브 에데니아의 입장에서는 그 무렵 어머니를 대했던 것과 같은 방식을 쓸 이유가 차고 넘친다.

이 여자는 제우스를 편할 데로 써먹기 위해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때의 어머니가 나의 부탁으로 이브 에데니아의 이야기를 모두 수긍했던 것처럼 제우스에게도 분명 그런 상황을 들이밀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 역시, 내 정체 역시 까발려지고 말 것이다. 직감할 수 있다. 이 여자 아래에선 숨기고 살 수가 없다고.

그 때가 된다면 이 여자는 내게 어떤 태도를 취할까.

아니, 그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밖에 중요한 게 있다.

내 직감이 맞다면 나는 여기서 제우스를 지켜야만 한다. 이 흐름대로라면 무조건 제우스에게 불리한 결말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제우스를 지키는 것, 그것이 내 가족인 제우스, 그리고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지금와서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이 여자를 경계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브 에데니아는 무서운 여자다.

이제와서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내 정체를 자각한 순간부터 이 여자를 같은 편이라 인식하고 있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그토록 고민해왔던 것이었다.

그 인식은 내가 이 여자를 대면했을 때 늘 했던 단 하나의 고민, 아니, 감정이기도 한 ‘이브 에데니아를 향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인식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서 제우스와 나를 구하기 위해선.

먼저 이 여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 마음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뒷일 따위 생각하지도 않고, 이브 에데니아의 과거를, 기억을 들추어보고 있었다.



작가의말

20240827수정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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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8화. 올림포스 013. 예상 외의 조력자 24.06.13 10 0 12쪽
28 27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4) 24.06.12 10 0 13쪽
27 26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3) 24.06.11 8 0 12쪽
26 25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2) 24.06.10 8 0 14쪽
25 24화. 올림포스 012. 이브 에데니아(1) 24.06.08 8 0 12쪽
» 23화. 올림포스 011. 결단 24.06.06 8 0 12쪽
23 22화. 올림포스 010. 귀향 24.06.05 9 0 12쪽
22 21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2) 24.06.04 8 0 15쪽
21 20화. 올림포스 009. 네메시스(1) 24.06.03 9 0 13쪽
20 19화. 올림포스 008. 교전(2) 24.05.31 10 0 11쪽
19 18화. 올림포스 008. 교전(1) 24.05.30 10 0 13쪽
18 17화. 올림포스 007. 조우(2) 24.05.29 11 0 14쪽
17 16화. 올림포스 007. 조우(1) 24.05.28 11 0 12쪽
16 15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2) 24.05.27 10 0 12쪽
15 14화. 올림포스 006. 공투의 시작(1) 24.05.24 9 0 13쪽
14 13화. 올림포스 005. 제우스(3) 24.05.24 11 0 15쪽
13 12화. 올림포스 005. 제우스(2) 24.05.22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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