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웨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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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에리카짱
그림/삽화
에리카
작품등록일 :
2024.05.22 16:44
최근연재일 :
2024.08.14 20:14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518
추천수 :
29
글자수 :
128,917

작성
24.06.03 13:35
조회
14
추천
1
글자
10쪽

소원을 이뤄드립니다.

DUMMY

“정신 차려!”


서늘한 목소리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을 덮쳤다.


“정신 차려! 진유나”


“아아암!!”


하품이 그냥 나왔다. 기지개를 켜며 개운하게 눈을 뜬 유나는 서리의 서슬 퍼런 얼굴과 딱 마주치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아주 그냥 푹 주무셨네. 그러고 시급 받아 가는 거야? 너 아르바이트 너무 잘 구한 거 아니니?”


서리의 짜증 난 말에 유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틀린 말 하나도 없지. 일하러 와서 잠들었나 보다.


“주례사가 너무 졸려서...”


“그래서, 뭐 끝까지 놀다 간다는 거야?”


“아니 아니. 나 뭐 하면 돼?”


벌떡 일어난 유나가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꽉 차 있던 웨딩홀은 텅 비어 있었다.


“다 어디 간 거야?”


“어디 가긴? 밥 먹으러 갔겠지.”


“그런데, 나 여기서 뭐 하면 돼?”


서리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며 유나는 가능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리가 사실 말이 거칠지 속은 너그럽고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못 말려.”


‘앗싸’ 역시 유나의 생각이 맞았다. 자리를 정리하며 서리에게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이제는 이게 유나의 원래 웃음 같았다.

백수로 지내며 배운 게 눈치밖에 없다.


“됐어. 밥 먹으러 가자. 일은 차차 가르쳐 줄게.”


“서리야~!”


“저리 가!”


유나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가니 서리가 질색했다.


DALL·E 2024-06-03 13.18.21 - A Japanese anime style scene featuring a 20-year-old woman sitting in the wedding hall, dozing off. She has neat, tied-up hair and is wearing a unifor.jpg


이제야 드디어 웨딩홀의 뷔페를 즐길 수 있다.

오후 타임이 있지만 이렇게 식탁에 앉아 편안하게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다니...

이러니 다들 진급하려 그렇게 애쓰는구나 싶었다.


“나 이상한 꿈꿨는데...”


“무슨 꿈?”


궁금하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유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신랑 있잖아. 한쪽 팔이 이렇게...”


말로 하기가 어려워 유나가 소매에 손을 집어넣어 보이자 서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만!”


“어, 미안”


놀리려던 게 아닌데 이상하게 전달된 것 같았다.


“그게... 꿈속에서 신랑이 이렇게 팔이 정상... 아니 두 팔로 야구 방망이를 이렇게 날리는데... 아니야.”


일도 관심 없어 보이는 서리의 표정에 유나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누가 남의 꿈 얘기를 재미나게 듣겠나 싶었다. 맛있는 음식이나 실컷 먹자 하며 홍어 무침을 집어 드는 데 서리가 막았다.


“오후에 예식 있어. 냄새나는 거 먹지 마. 여기 샐러드 보이지 이런 거 먹어.”


이런, 또 샐러드.


이런 맛있는 것 다 두고 풀만 뜯어 먹으라고?

말도 안 돼.

몰래 먹어버릴까? 하다가 참았다.


“서리야! 같이 가!”


유나가 다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 가볍게 식사를 마친 서리는 기다려주지 않고 그냥 일어났다.

허겁지겁 마지막 빵까지 구겨 넣은 유나가 따라나서자 서리가 살짝 돌아보며 웃었다.

유나가 보기에 웃는 것 같이 보였다. 나쁜 기집애.


뛰어나오던 유나가 멈췄다.

복도에 마주 서서 과장과 서리가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서리의 모습이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보였다.


“멋있다.”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짧게 생각해 보니 진로를 멀리 잡을 것 없이 여기서 제대로 배워도 될 것 같았다.

물론, 주말만 일해서는 그걸로 생활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기에 생계를 위한 다른 직업도 있어야겠지.

뭐, 직원이 된다면 매일 출근이니 페이도 다르겠지. 그럼 또 괜찮겠네.


“뭐 하냐?”


목뒤를 쿡 하고 찌르는 기분 나쁜 손가락에 기분이 상했다.


“이 씨. 누구?”


하다가


“아, 안녕!”


유나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잘생긴 남자가 빙긋 웃고 있었다.

세상 불공평한 게 잘생기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는 거다.

특히 유나에게는.


“뭐 하냐고.”


“아무것도.”


“그래.”


관심 없다는 듯 남자가 휙 하고 지나갔다. 뭐지? 이 꿀꿀한 기분.


“안녕하세요.”


유나가 공손히 과장에게 인사했다.


“응, 왔어?”


관심 없다는 듯 과장이 대충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오실 분은 정중하게 잘 대접해 드려야 돼.”


“그거야 기본이죠.”


“그래, 자기만 믿어.”


역시, 서리는 어디서든 인정받는구나.


“정직이야?”


“응?”


“여기 정직원이야?”


“직원이지.”


“얼마 받아?”


다짜고짜 묻는 질문으로는 아주 부적절한 말에 서리는 쿨하게 대답했다.


“받을 만큼. 가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쓸데없는 소리라니. 내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이야.”


“가!”


아무래도 서리에게서는 알아내기 힘들 것 같다.


홀은 이미 다른 사진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서리가 손으로 빨리 오라며 유나를 재촉했다.

마이크 앞으로 끌고 간 서리가 종이를 내밀었다.


“요대로만 순서대로 읽어. 대충 눈치 빠르게.”


“나 눈치 없는데.”


“아, 나. 진짜”


“알았어. 최대한 열심히 할게.”


“그리고, 신부 입장 멘트 다음 얼른 앞으로 나와 신부님 드레스를 이렇게 쫙 펴주면 되는 거야.”


“쫙?”


서리가 다시 이마를 짚었다.

이해한다. 답답할만하지.

나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아침까지 몰랐는데 어쩌라고.


“너 이불 털어봤지?”


“아니.”


유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서리의 한숨이 커졌다.


“이리 와 봐.”


홀 뒤편 방으로 데려간 서리가 낑낑대며 마네킹을 끌고 왔다.


“오! 예쁘다.”


“뭐해?”


“쏘리.”


바닥에 가라앉은 눈치지만 얼른 뛰어가 도울 줄은 알았다.


“자! 한번 털어봐.”


“뭘?”


“야!”


“쏘리.”


유나가 마네킹이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 끝자락을 잡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감에 손끝에서 자꾸만 미끄러져 전체를 집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서리가 손바닥 가득 드레스를 움켜쥐며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이번에는 묵직한 드레스가 손 안 가득 들어오고 위로 올리자 쭉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높이 들면 속이 보이잖아. 손끝을 아래로”


“넵”


힘껏 들어 올려서 아래로 내리자 하얀 드레스가 활짝 펼쳐지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방금까지 빠르게 돌던 시간이 순간 멈추고 정적이 이는 것처럼 하얀 치마가 멈칫거리다가 무겁게 아래로 떨어지며 바닥에 다소곳이 내려앉았다. 뭐지 이 기분? 마음이 차분해지며 갑자기 행동 하나하나가 자신이 느끼기에 우아해졌다. ‘나쁘지 않은데’ 최면에 걸린 듯 정신이 몽롱하면서 또 착 가라앉았다.


“됐네. 가자.”


“그럴까요”


“미쳤나.”


서리가 싸늘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유나가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오늘은 재혼이신 건가요?”


“그만 좀. 아 진짜 적응하기 힘드네.”


“헤헤 쏘리.”


“오늘 신랑 신부님은 두 분 다 초혼이셔.”


“진짜?”


입구에 놓인 사진에는 못해도 70은 넘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신랑 신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저 나이까지 결혼하지 않고 지냈던 건가? 뭐... 그럴 수 있지. 독신주의자가 늦은 나이에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거니까.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 그럴 수 있지.

지난 번에 본 것도 있고, 이번에도 아름다운 시절의 결혼식을 하려나 보다 라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억울하신가 봐.”


“뭐가?”


“이제야 만난 게.”


“그렇지.그럴 수 있지.”


“사연이 없는 결혼식은 없어. 이분들은 특히 더 힘들게 만난 거라 좀 특별해.”


“하나 알려줄까?”


싸늘한 표정의 서리가 아련한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게 있다가 갑자기 유나를 돌아봤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듯했다.


“너도 뭐, 알고는 있어야지.”


“뭘?”


알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면 후회할 것 같은


“이분들의 소원이 뭔 줄 알아?”


“뭔데?”


“아름다운 나이에 다시 만나 결혼하는 것.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젊고 싱싱하게 시작하는 것.”


“그렇겠지.”


“안놀라?”


“아니 뭐, 처음도 아니고.”


서리는 알고 있는 듯한 유나의 반응에 크게 놀라지 않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뭐, 암튼. 우린 오늘 저분들의 소원을 이뤄줄 거야. 아주 비싼 결혼식이거든.”


“지난 번 분들하고 가격이 달라? 똑같은 꿈의 결혼식 아냐?”


“이번에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아니라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 차이가 많이 나. 이번 건 좀 큰 거.”


“야, 너 좀 사업하는 사람 같아.”


“그건 또 뭔 소리.”


웨딩홀 수정방 입구에 놓인 커다란 사진 앞에서 수다를 떨던 둘은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제 곧 식이 시작될 예정이니 하객분들은 자리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서리가 유나에게 눈짓하자 유나는 눈치 빠르게 앞으로 달려왔다.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바로 신랑 신부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걸음이 느린 신랑은 서리의 안내로 웨딩홀 구석에 서고 신부는 한복 차림의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을 왼쪽 가장자리로 세우고 서리는 벽에 붙은 노란색 동그란 막대기를 아래로 내렸다.


화려한 음악과 함께 은은한 조명이 신랑신부가 서 있는 방향에만 밝은 빛으로 바뀌었다. 안쪽에서 황금마차가 천천히 이동해 곁으로 다가서자 서리는 능숙하게 신랑과 신부를 부축해서 안에 태웠다.

레일도 없는 바닥에서 황금마차는 안쪽으로 음악과 함께 이동했다. 하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신랑과 신부의 이동을 지켜보던 유나가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멘트를 놓치자 서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마이크 앞에 섰다.


“지금 신랑 신부가 아름다운 마차와 함께 나오고 계십니다. 하객분들의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유나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서리가 입술을 깨물며 유나를 눈이 튀어나올 만큼 노려봤다. 저러다가 진짜 눈알이 아래로 떨어질까 봐 걱정되었다.


마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신랑과 신부는 조명이 깜빡 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DALL·E 2024-06-03 13.34.02 - A Japanese anime style scene featuring a 20-year-old woman with neat, ballerina-like tied-up hair, wearing a white shirt, black vest, and black skir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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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14 쿨샥
    작성일
    24.06.03 14:47
    No. 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4 10:07
    No. 2

    감사합니다. 요즘 맑은 날씨 덕분에 하늘이 예뻐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이시언
    작성일
    24.06.04 13:49
    No. 3

    또하나 좋은점!! 욕설이 안나와서 좋아요 요즘 무분별한 욕설이 많은데 절제 되어서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4 13:59
    No. 4

    ㅎㅎㅎ 욕설을 필요할 때는 하는데 자제하려 노력합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이시언
    작성일
    24.06.04 17:48
    No. 5

    내용상 꼭 필요한 것 아니라면 욕설 대백과 사전 보는것 같아서 눈살 찌푸러져요. 표현의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의 표현 법 아닌가 싶어요. '거시기'나 '스껄'처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에리카짱
    작성일
    24.06.05 11:33
    No. 6

    저도 웹소설이라는 것을 시작하면서 자극적인 표현과 내용이 인기있는 것을 보고 헛욕심에 따라 하려고도 해봤는데요. 억지로 만들어내는 게 더 괴로워서 그냥 제 스타일대로 가기로 했어요. 이제는 마음 편하게 쓰고 싶은대로 쓰고 있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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