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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최근연재일 :
2024.09.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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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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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

DUMMY

보우는 시련의 용, 브리트라를 섬기는 수도승 중 한 사람이다.


이 수도승들은 세상의 모든 시련들··· 예를 들자면 역병, 재해, 기근 같은 것들이 브리트라의 입김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철의 원석이며, 시련은 그 철을 단조하는 불꽃과 망치질.

브리트라는 시련을 통해 인간을 시험한다. 이를 견뎌낸 자는 더 굳건한 강철로 거듭날 것이고, 견뎌내지 못한 자는 부서지리라.


수도승들의 교리는 시련을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 주내용이었다. 혹독한 단련으로 육체를 더 강인하게 만들고, 명상을 통해 더 굳건한 심상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론.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도리어 브리트라를 실망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수도승들은 기도하지 않는다. 신성력을 쓸 수도 없다. 쉴 새 없이 단련하며 언젠가 찾아올 시련을 대비하고 있을 뿐.


‘······이건 곤란하군.’


보우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현재 우진과 대련하며 가르침을 주는 중이었다.


스승은 때때로 제자에게 시련을 내려야 한다. 그 견디기 힘든 경험에 의해 제자는 성장하고, 깨우침을 얻어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난다.


‘하지만··· 이놈은 너무 강해.’


시련이라 여겨지는 건 오히려 이쪽이다.


우진의 주먹이 내질러질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자칫 잘못하면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 반칙 같은 힘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보우가 지닌 심안을 쓰면 이 사내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겠지만···


‘······그리했다간 후회하게 될 것 같다.’


망원경이 있다고 한들, 그것으로 감히 태양을 보려고 해선 안 된다. 심안을 쓰려고 할 때마다 왠지 그런 부류의 불안감이 들었다.


이 괴물에게 무예를 가르쳐도 되는 걸까?


쩌엉!!


두 사내의 손바닥이 맞부딪히며 요란한 굉음을 울렸다. 드센 충격에 의해 우진과 보우가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괜찮으십니까?”


방금의 힘겨루기가 너무 거셌다고 여겼는지, 우진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 태도에 묻어나는 건 뚜렷한 존중과 걱정스러움.


이에 보우는 안심했다.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


굳이 심안을 쓰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눈앞에 마주 선 사내는 가진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강하고, 재능 넘치며, 선하다. 마치 옛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영웅을 상대하는 듯했다. 그렇기에 보우는 우진을 가르치며 큰 보람을 느꼈다.


이는 우진이 지금껏 거쳐 간 스승들, 헥터와 클레어 또한 느낀 감정이리라.


“괜찮으니 좀 더 과감하게 덤벼보게나. 아직 몸도 제대로 안 풀렸으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내가 다시 대련을 이어갔다.



* * *



좀 처맞다 보면 마나 아츠를 익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솔직히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내심 긴가민가했다.


‘이게 정말로 될까?’


클레어에게서 처음 마법을 배울 때는 아주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그에 비하면 너무 모호한 방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본능이란 건 의외로 정밀한 법. 명상과 대련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우진은 그 과정 속에서 마나 아츠에 대한 요령을 하나씩 익혀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흐르자···


‘······이게 되네?’


우진의 손에 들린 양손 망치가 빛을 머금었다. 마나를 이용하여 무기의 강도와 파괴력을 강화하는 기예, 마나 웨폰이었다.


이를 본 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익혔군. 그 무기를 한 번 휘둘러 보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지 않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따라 나오게. 마침 도시 주변에 힘자랑하기 좋은 장소가 있으니까.”


우진은 보우와 함께 개척 도시 밖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잔뜩 신이 난 늑대들이 뒤를 따라왔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 도시에 갇혀 지내서 갑갑했던 모양이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개척 도시 인근에 위치한 혈석 채굴장.


여러 사내들이 바쁘게 곡괭이질 하여 혈석을 캐내는 중이었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우진과 보우는 채석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게 유독 단단해 보이는군.”


보우가 바윗돌처럼 큼지막한 혈석을 툭툭 건드렸다. 이에 우진은 망치 자루를 단단히 말아 쥐며 앞으로 나섰다.


키잉—


검푸른 빛깔의 불티가 망치를 휘감았다. 자세를 잡는 우진. 보우와 늑대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곧 일어날 광경을 기다렸다.


망치가 휘둘렸다.


꽈아아앙!!


망치머리가 바위의 정중앙을 후려치며 폭음을 터뜨렸다. 그 충격의 여파로 거칠게 펄럭이는 옷자락. 작살난 바위 파편들이 우진의 발치에 흘러내리듯 쌓였다.


바윗돌이 한 방에 반파되었다. 그리고···


‘······망치도 부서졌는데?’


우진은 황당한 눈으로 손에 쥔 망치를 봤다. 자루가 뚝 분질러졌다.

일부러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망치를 가져왔건만··· 개시하자마자 부서져서 더 이상 써먹을 수 없게 되었다.


보우가 주변을 서성이더니, 지면 위에 떨어진 뭔가를 집어 들었다. 방금 부서져서 튕겨 나간 망치머리. 꽤 먼 곳까지 날아갔다.


“저의 솜씨가 아직 부족한 것 같군요.”


우진은 부러진 망치머리를 보며 그리 중얼거렸다. 마나로 강화시킨 무기치고는 너무 손쉽게 망가졌으니까.


이에 보우가 한마디 했다.


“마나 웨폰의 완성도와 별개로··· 자네의 힘이 참 무식하게 세구먼. 이런 싸구려 무기를 오래 쓰는 건 어려울 테지.”


아무 대장간에 들어가서 집어 온 물건이라 그런지, 마나 웨폰을 쓰더라도 수명을 오래 늘릴 순 없는 모양이었다.


“교단 연맹에 부탁하여 더 좋은 무구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그리 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다네. 안 그래도 무기 정도는 장만해 줄 생각이었으니.”


양손 망치 하나를 제물 삼아, 그보다 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나 웨폰을 연습하기 위해 기껏 채석장까지 왔건만, 한 방에 망치가 부서진 탓에 할 일이 없어졌다. 붕 떠버린 시간.


보우도 그리 여겼는지 떠날 채비를 했다.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도시로 가야겠군.”

“저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늑대들을 데리고 산책을 좀 하다 돌아가겠습니다.”

“그리하게나. 난 이만 가보겠네.”


보우가 먼저 도시로 돌아갔다.


덕분에 혼자가 된 우진. 그는 방금 박살낸 바윗돌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뭔가 애매하단 말이지.’


다시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바위 앞에 서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우진의 주먹에 검푸른 불티가 휘감겼다. 마나를 이용하여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기예.


콰앙!!


주먹이 바윗돌을 힘껏 갈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위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갈라졌다. 그 깊이와 생김새를 살펴본 후 옆에 있는 또 다른 바위 앞에 섰다.


우진은 주먹에 깃들어 있던 불티를 꺼트렸다. 마나를 쓰지 않은 맨주먹. 이를 내질러서 바위를 한 방 갈겼다.


콰앙!!


또다시 요란한 소리가 터졌다. 쩍쩍 갈라진 바위 표면. 우진은 한 걸음 물러선 후, 부서진 두 바위를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어째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마나 아츠를 활용해서 뻗은 주먹과, 그냥 생각 없이 맨손으로 뻗은 주먹. 과정은 분명 달랐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큰 차이가 없었다.


마나를 쓴 쪽의 바위가 좀 더 많이 부서지긴 했으나··· 자세히 보기 전까진 눈치채기 어려웠다. 음식에 소금을 살짝 뿌린 것 같은 정도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보다 마나 아츠의 위력이 약했다.


‘그 이유가 뭘까.’


보우의 가르침을 한 번 되새겨봤다. 그러다 보니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무예를 추구하는 자의 심상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기예. 이를 마나 아츠라고 부른다.’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사냥과 생존에 초점을 둔 채로 살아왔을 뿐이야. 무예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


물론 격투기를 익히긴 했다.

하지만 이걸 깊게 배우지는 않았다. 마경 깊은 곳의 괴물을 상대로 주짓수 같은 걸 시도할 순 없으니까. 우진은 복싱과 MMA를 일 년 정도만 배운 후 그만뒀다.


반면 보우는 긴 세월 동안 무예를 갈고 닦았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을 게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쌓아 올린 심상으로 인해, 그의 기술은 높은 위력을 품게 되었다.


반면 우진은 무예 자체에 큰 애정이 없었다. 마나 아츠도 필요하니까 익혔을 뿐. 그런 입문자가 기술을 쓰니 위력이 뒤처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 생각하던 중···


‘······난 도대체 어떤 심상을 갖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예전에 클레어가 심상 세계를 설명해줄 때, 유독 강조했던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심상 세계는 위험하다고 했지.’


어쩌면 심상 속에 위험한 괴물이 하나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 다른 사람과 그것이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의아한 말이었다. 심지어 클레어 본인도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고, 정보가 너무 부족하여 확신은 이르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클레어는 허튼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다. 그때 당시의 그녀는 왜 그런 이야기를 내게 꺼낸 걸까?


‘나중에 만나면 자세히 물어봐야겠네.’


훗날 재회했을 때 해야 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우진은 그리 생각하며,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 * *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네.”


보우가 문득 얘기를 꺼냈다. 느낌상 둘 중 어느 소식을 먼저 들을지 고르라는 듯했다.


“좋은 소식부터 듣고 싶습니다.”

“자네가 쓸만한 무기를 하나 갖고 와봤네. 직접 확인해 보게나.”


보우는 그리 말하며, 곁에 놓인 나무 상자를 발로 툭 쳤다. 고급스러운 빛깔이 감도는 마호가니 상자. 그 크기는 마치 관처럼 큼직했다.


뭐가 들어 있을까.


살짝 기대하며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직후 맞닥뜨린 건··· 거대한 양손 망치 한 자루였다. 그 생김새가 참으로 멋들어졌다.


다마스쿠스 강철처럼 무늬가 박혀 있는 망치머리. 그 무늬의 생김새가 창문에 들러붙은 서리 결정을 연상케 했고, 망치 자루는 마수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물건이었다.


우진이 연신 감탄하며 망치를 살펴보자, 보우는 생색낼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서리 강철로 만든 물건이니 아주 단단할 걸세. 북부에서 아주 드물게 생산되던 강철인데··· 북부가 마경에 잠식당한 이후로는 더 구할 수 없게 된 금속이지.”

“······아주 근사하군요.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우진은 조심스레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 촉감이 손에 착 감기는 듯했다.


“이 무기에 이름이 있습니까?”

“아마 있긴 할 건데··· 급히 물건을 받아오느라 물어보질 않았군. 자네가 새 이름을 붙여주는 건 어떻겠나?”


새 이름이라···


늘 그렇듯 우진의 작명 솜씨는 썩 좋지 못한 편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남이 만들어낸 이름을 멋대로 가져와서 갖다 붙였다.


“스컬 크러셔라고 부르겠습니다.”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로군.”


너무 좋은 선물을 받아서 그런지, 이에 상응하는 나쁜 소식은 뭘지 벌써 우려스럽다.


“나쁜 소식은 뭡니까?”

“열흘 뒤에 원정이 시작될 걸세. 그러니 자네가 지금처럼 팔자 좋게 식객 생활을 할 날도 얼마 안 남았어.”


교단 연맹이 출정의 깃발을 손에 쥐었다.

덕분에 좋은 시절은 다 갔고, 이제 고생할 일만 남았다. 보우가 그리 얘기하자··· 우진의 입꼬리가 씩 위로 올라갔다.


“오히려 좋군요.”


줄곧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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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영입 제안. +9 24.09.17 5,315 207 15쪽
27 잔업. +7 24.09.16 5,294 221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5 24.09.13 5,863 241 12쪽
25 사냥꾼. +16 24.09.12 5,714 250 12쪽
24 유르기스. +5 24.09.11 5,732 237 12쪽
23 세 번째 눈. +10 24.09.10 5,827 229 12쪽
22 기이한 재주. +7 24.09.09 5,857 230 13쪽
21 형제. (3) +9 24.09.06 5,885 238 12쪽
20 형제. (2) +6 24.09.05 5,864 234 12쪽
19 형제. (1) +7 24.09.04 5,987 226 14쪽
18 기이한 죽음. +10 24.09.03 6,117 219 13쪽
17 카르마. +11 24.09.02 6,170 243 13쪽
16 은둔자들. +4 24.08.30 6,313 228 13쪽
15 별명. +11 24.08.29 6,440 229 12쪽
14 황금충 볼프. +13 24.08.28 6,785 239 12쪽
13 환영. +8 24.08.27 6,735 268 12쪽
12 난해한 조언. +5 24.08.26 6,891 238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11 24.08.23 6,946 277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6 24.08.22 7,107 258 12쪽
9 이름. +12 24.08.21 7,201 287 12쪽
8 개척단. +7 24.08.20 7,431 279 12쪽
7 늑대. (3) +7 24.08.19 7,465 308 12쪽
6 늑대. (2) +8 24.08.17 7,541 266 12쪽
5 늑대. (1) +10 24.08.16 7,783 265 12쪽
4 다크판타지. +10 24.08.15 8,104 258 12쪽
3 조우. +10 24.08.14 8,675 2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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