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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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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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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개척단.

DUMMY

사흘 후.


묵직한 짐가방을 둘러맨 우진이 오두막 밖으로 나섰다. 한바탕 늑대 사냥을 하느라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제가 가도 괜찮겠습니까?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시는데요.”

“걱정할 필요 없네. 비록 내가 퇴물이긴 해도 이런 곳에서 객사할 일은 없으니.”


배웅을 나온 헥터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저리 말하니 굳이 두 번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그럼, 장벽 너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살펴 가게.”


간략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우진이 숲의 그늘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오늘따라 짐가방이 유독 무거웠다. 헥터가 여러 물자를 잔뜩 담아준 데다, 웨어울프의 가죽을 군장 침낭처럼 말아서 짐가방 위에 따로 묶어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볍다.

정처 없이 방황하기만 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우진에겐 명확한 목적지가 있으므로.


헥터가 준 지도를 꺼내 보았다. 지도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개척단의 마을이라고 했던가.’


모든 인류가 장벽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경에 집어삼켜진 옛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다. 이들을 흔히 개척단이라 부른다.


우진은 이 개척단의 마을 중 한 곳을 다음 목적지로 삼았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걸어가면 이틀 정도는 걸릴 거리였다. 우진은 느긋하게 여행할 생각이 없었다.


‘······속도를 올려야겠군.’


발걸음에 탄력이 붙었다. 거의 달리기에 가까운 걸음걸이. 너무 신나게 뛰면 도중에 뻗을 수도 있으니 적정 속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후.

저물어가는 해가 하늘의 먹구름을 살짝 벌겋게 물들여놓을 즈음, 저 멀리 마을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우진은 내심 감탄했다.


‘이야··· 나무로 방벽까지 세워놨네?’


마을 주변에 목책을 세워놨다. 아무래도 마수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벽인 모양.


높은 목책에 가려져 있어서 마을의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목책 안쪽에서 밥 짓는 연기가 여럿 올라오고 있어서, 사람이 있는 마을이란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우진이 목책을 향해 걸었다. 입구에 선 사내 두 명이 이쪽을 응시한다.


“거기, 그 자리에 멈추시오.”


문지기들이 창을 겨누며 명령했다. 우진은 선뜻 그에 응하여 멈췄다.


“소속과 방문 목적이 뭐요?”

“딱히 소속이랄 건 없고, 마을에서 밤을 보내고 싶어서 왔습니다.”

“개척단의 일원이 아니면 요금을 지불해야 마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소. 인당 은화 한 닢이오.”


우진은 호주머니를 뒤적여 은화 반 닢을 두 개 꺼냈다. 반 닢은 절반 크기의 동전을 뜻한다.


이를 건네받은 문지기들이 좌우로 물러나서 길을 터줬다.


“안에서 사고 치지 마시오.”


우진은 대강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준 후 마을 안으로 입성했다.


직후 마주한 풍경은···

뭐, 크게 극적이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생김새가 볼품없었다. 낡고 망가진 건물에 지붕만 새로 씌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척박한 곳에 으리으리한 건물을 세우는 얼간이가 어디 있겠나.

그래도 곳곳에 사람 웃음소리가 들렸다. 활력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선 헥터가 맡긴 일부터 처리해야겠군.’


오두막을 떠나기 전 헥터가 부탁을 하나 했다.

우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겨갔다. 그가 향하는 곳은, 마을에서 가장 많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장소였다.


그 장소는 당연하게도 술집이었다.


‘이 마을에 술집은 딱 하나만 있다고 했지.’


마을의 모든 시설과 가게들은 개척단이 직접 운영한다. 그중에서 술집은 유독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루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술에 만취하여 사고를 치는 인간은 한둘이 아니니까.


술집답게 입구부터 쌉싸름한 알코올 향기가 났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우진이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행상인 제이콥.’


이곳에서 찾아야 할 사람. 제이콥은 헥터와 주기적으로 거래를 해온 행상인이었다.


헥터의 오두막집과 마을 사이의 거리는 적잖게 멀다. 필요한 게 생길 때마다 마을에 방문하는 건 여러모로 번거로운 짓.

그렇기에 헥터는 행상인에게 물자 운송을 자주 의뢰했다. 필요한 물자를 받고, 그 대가로 마수의 가죽을 지불하는 거래였다.


하지만 사흘 전 웨어울프가 죽었다.

복수를 마친 헥터는 물자 거래를 더 이어갈 필요가 없다. 우진은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제이콥을 찾는 중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라고 했으니, 이곳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겠지.’


설령 제이콥이 없더라도, 어디서 그를 봤다는 목격담 정도는 들을 수 있으리라.

일행을 찾듯 자연스레 테이블 곳곳을 둘러보는 우진. 문득 그의 시선이 한 사람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년의 남성. 그의 한쪽 뺨에 사선으로 길게 그어진 칼자국이 있었다. 흉터를 가리기 위해 턱수염을 기른 듯하지만 그럼에도 눈에 띄었다.


‘저 사람인가.’


헥터가 해준 설명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사람. 확인을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제이콥 님이십니까?”

“그게 내 이름이 맞긴 한데··· 뉘신지?”


제이콥이 살짝 당혹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일행들 또한 경계심 어린 눈으로 우진의 행색을 훑었다.


아무래도 낯선 사내가 대뜸 말을 걸어서 다들 당황한 모양. 우진은 뜸 들이지 않고 용무를 밝혔다.


“헥터의 말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아! 이거 내가 실례했군. 설마 헥터 어르신의 지인이었을 줄이야.”


헥터의 이름값이 높은 편인지 분위기가 쉽게 뒤집혔다. 덕분에 우진은 마음 편히 설명을 이어갔다.


“헥터가 말하길, 이제 사냥이 끝났으니 더 이상 물자를 발주하지 않겠답니다. 그간 좋은 거래를 해주셔서 고마웠다고 전해달라 하시더군요.”

“잠깐, 사냥이 끝났다고? 그 말은···”


뭔가 말하려던 제이콥이 말꼬리를 흐린다. 그의 시선이 우진의 짐가방에 매어져 있는 가죽에 머물렀다. 흔한 늑대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크고 두꺼운 가죽.


눈치 빠른 행상인은 그 정체를 눈치챈 듯했다. 주변의 듣는 귀를 의식했는지 제이콥이 들릴 듯 말듯 조그맣게 속삭인다.


“······헥터 그 노인네가 정말로 웨어울프를 사냥했군. 놀라워. 그런데 이걸 왜 자네에게 맡긴 건가?”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긴 좀 어려울 것 같네요.”


우진은 대충 뭉뚱그려 말했다. 초면인 사람에게 줄곧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건 불필요한 짓이라 생각되었으므로.


솔직히 좀 귀찮기도 했다.

그런 속내를 제이콥도 눈치챈 것인지 같은 질문을 두 번 반복하진 않았다. 대신 이렇게 조언해 줬다.


“값진 물건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수하게. 탐낼 사람이 많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제이콥은 다시 일행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관심을 끊은 것처럼 보였다.


‘귀찮게 굴지 않아서 좋군.’


용무를 마쳤으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우진이 술집 밖으로 나섰다.


이제 뭘 할까.

술집에서 제이콥을 운 좋게 찾아내어,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심부름을 끝마쳤다. 덕분에 붕 떠버린 시간.


우진이 턱을 긁적이며 한량처럼 걸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소란 소리가 들렸다.


“채석꾼들이 돌아온다!”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다. 그에 호응하듯 마을의 입구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마침 할 일이 없기에 우진도 따라가봤다.

저 멀리 산비탈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을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들은 덩치 큰 마수 두 마리와 함께 걷고 있었다.


여섯 개의 다리를 지닌 도마뱀. 놈들의 덩치는 황소보다 컸고, 등은 거북이처럼 널찍했다. 이를 활용하듯 도마뱀들의 등에는 큼지막한 바구니가 하나씩 실려 있었다.


‘저게 타라스크인가.’


타라스크.

인류에게 길들여진 몇 안 되는 마수 중 하나.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도 저 녀석들은 초식을 선호한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우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타라스크를 구경했다. 마경 견문록에 의하면 저 마수는 말을 대체하기 위해 길들인 생물이다.


말은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이다. 편식이 심하고 감성적이며, 쉽게 다친다. 이렇다 보니 말들은 척박한 마경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픽픽 죽어나갔다.


이를 본 교단 연맹은 평범한 말을 마경에 적응시키는 것보다, 마수를 길들이는 편이 더 쉬울 듯하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타라스크는 그 판단의 좋은 선례가 되었다.


와그르르—


마을 안으로 들어온 타라스크가 힘껏 옆으로 드러누웠다. 바구니 속에 담긴 내용물을 바닥에 엎질러졌다. 붉은색 바위를 쪼개놓은 듯한 파편들이 줄지어 굴러 나왔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삽을 들고 달려들었다.


“제기랄, 좀 쉬나 했더니 또 일이 산더미군.”

“수레 가져와!”


사내들이 붉은 돌멩이들을 퍼서 어딘가로 실어 날랐다. 우진은 그 모습을 구경하다, 발치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이걸 혈석이라 불렀던가.’


혈석.

마경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광물. 수요가 많은 물건이라 항상 공급량이 부족하다. 개척단은 이 혈석을 채굴하여 큰돈을 벌어들인다.


‘돈, 좋지.’


허울 좋은 대의만으론 세력이 유지될 수 없다. 개척단이 존재하는 건 위험에 상응하는 돈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마경으로 향했다.


하지만 천금을 모으더라도 쓰지 못하고 죽으면 헛짓거리다. 전생의 우진이 그러했다.


‘······이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거야.’


새삼스레 다짐하며 손에 든 혈석을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혈석이 짐수레 속에 정확히 떨어졌다.



* * *



다음날, 이른 새벽.


평소처럼 잠에서 깬 우진이 마을 밖으로 나섰다. 오늘부터 도시를 향해 최단 루트로 쭉 직진할 생각이었다.


‘아침을 미리 먹어두는 게 좋겠어.’


우진은 가방을 뒤적여 육포를 꺼냈다.

마을에서 보존 식량을 잔뜩 구매해둔 덕분에 그 양이 여유로웠다. 앞으로 밥이 없어서 굶을 일은 없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육포를 질겅질겅 씹던 중, 문득 인기척이 들려왔다.


“······뭐야?”


고개를 돌린 우진은 당황하여 혼잣말했다. 붉은 털의 늑대. 놈이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능청스레 하품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그놈이다.


‘이 새끼··· 줄곧 내 뒤를 따라왔던 건가?’


도대체 왜?

의문에 사로잡힌 우진이 연신 눈을 끔뻑였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반면 늑대는 눈싸움하듯 한 곳만 보고 있었다.


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우진의 손에 들린 육포. 이를 눈치챈 우진이 피식 웃었다. 실로 뻔뻔한 놈이었다.


“인마, 넌 얻어먹을 생각하면 안 되지. 지난번에 네가 한 짓이 있는데.”


이놈은 선심 써서 나눠준 식량을 뱉어버린 전례가 있다. 그때의 뒤끝이 남아있는지, 우진은 늑대를 약 올리듯 손에 든 육포를 흔들었다.


“먹고 싶냐?”


어림도 없다.

라고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 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우진은 당황하여 말을 절었다.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기분 탓이라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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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861 166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714 167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02 159 12쪽
23 세 번째 눈. +7 24.09.10 3,792 156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821 160 13쪽
21 형제. (3) +7 24.09.06 3,825 161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08 162 12쪽
19 형제. (1) +6 24.09.04 3,896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3,973 146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009 165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120 153 13쪽
15 별명. +8 24.08.29 4,201 159 12쪽
14 황금충 볼프. +11 24.08.28 4,382 165 12쪽
13 환영. +7 24.08.27 4,355 177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440 158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473 178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560 172 12쪽
9 이름. +9 24.08.21 4,634 189 12쪽
» 개척단. +6 24.08.20 4,758 184 12쪽
7 늑대. (3) +7 24.08.19 4,768 201 12쪽
6 늑대. (2) +6 24.08.17 4,818 177 12쪽
5 늑대. (1) +9 24.08.16 4,973 178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178 170 12쪽
3 조우. +8 24.08.14 5,486 177 12쪽
2 흉물. +10 24.08.13 6,578 1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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