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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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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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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채석장의 마수. (1)

DUMMY

우진이 마을 밖으로 걸어 나왔다. 휘파람을 한 번 불자, 숲의 그늘 속에서 붉은 늑대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킁킁.


렉스가 연신 코끝을 굼실거렸다. 개코 아니랄까 녀석은 우진에게 서린 맛있는 냄새를 금세 눈치챘다.


“옜다. 너도 좀 먹어라.”


우진은 꼬치에 꿰여 있는 고기 한 조각을 뽑아 던져줬다. 그것을 주워 먹은 렉스의 눈이 부릅 뜨였다. 아무래도 처음 맛본 칠면조의 맛이 여간 충격적인 모양.


헥헥헥—


렉스가 혓바닥을 내민 채로 이쪽을 올려다본다. 쉴 틈 없이 좌우로 살랑거리는 꼬리. 그 모습이 영락없는 개다. 자신이 늑대라는 정체성을 흙바닥에 내던진 듯했다.


우진은 꼬치에 남은 고기를 렉스에게 던져줬다. 넙죽넙죽 받아먹는 렉스. 오래지 않아 녀석은 남아있던 고기를 전부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는지, 렉스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이쪽을 바라본다.


“인마, 나도 딱 한 개만 먹었어.”


우진은 그리 말하며 꼬치에 붙어 있는 고기 자투리를 꼼꼼히 뜯어 먹었다.


······솔직히 양이 좀 부족하긴 했다.


덩치가 큰 렉스는 더더욱 아쉬울 것이다. 마음 같아선 고기를 더 사 먹고 싶었지만,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그리 많지 않다.


헥터는 자기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갖고 있던 재산의 절반. 은화 서른 닢과 웨어울프의 가죽을 넘겨줬다.


이중 은화 열 닢은 비상금으로 남겨둘 예정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여윳돈을 항상 쥐고 있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진이 쓸 수 있는 돈은 사실상 은화 스무 닢 남짓. 그리 넉넉하지 못한 돈이었다.


가죽이 지닌 잠재적 가치가 금화 마흔 닢이라곤 하지만, 이는 교단 연맹이 웨어울프의 목에 건 현상금. 토벌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물건이라 개척단에게 팔기 애매했다.


풍족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돈이 될 만한 일을 한 번쯤 해야 한다.


‘······금화 칠십 닢.’


우진은 아까 들었던 현상금을 되새겼다. 마수 한 마리만 사냥하면 당장 쓸 수 있는 금화가 칠십 닢이나 생긴다.


매드스컬처럼 성가신 마수와 싸움질을 하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큰 현상금이 걸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들었다. 돈을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놓는 게 좋지 않을까···


잠시 고민한 후.


“······야.”


우진이 늑대를 향해 턱짓했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 * *



마수가 나온다는 채석장으로 향했다.

황량한 바위산 아래, 종기처럼 지면에 불쑥 튀어나온 붉은 바윗돌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거대한 혈석이었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그런데 우진보다 먼저 온 선객이 여럿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용병인가.’


사슬 갑옷을 입은 사내 수십 명. 그들이 혈석 채석장 주변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아무래도 마수를 사냥하기 위해 밑 준비를 하는 듯했다.


경쟁자의 존재는 내심 예상했던 일이다. 마수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한두 푼이 아니니까.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밑 준비를 한다는 건 나름의 계획이 있단 얘기일 터였다. 우진은 용병들의 사냥 방식이 어떨지 궁금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뿐.


‘가까이 가봐야겠군.’


우진이 채석장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르릉···”


함께 걷던 렉스가 머뭇거렸다.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으로 가는 게 꺼려지는 모양.


그 모습을 본 우진은 잠시 고민했다. 렉스의 덩치는 어지간한 짐말보다 컸다. 용병들이 이 녀석을 보면 큰 소란이 일어날 듯했다.


‘렉스를 이곳에 두고 가야 하려나?’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 혼자 가더라도 저 용병들이 환영해줄 것 같진 않은데.’


용병들의 입장에서 마수 사냥꾼은 현상금에 얽힌 경쟁자였다. 그런 낯선 사내가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으면 고운 말이 나오기 어렵다. 용병들은 분명 우진을 쫓아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선뜻 물러날 생각이 없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손가락만 빨고 돌아갈 순 없으니까.


‘차라리 렉스와 함께 움직이는 편이 더 낫겠군.’


이러나저러나 용병들과의 분쟁은 사실상 정해져 있는 일. 그 정도가 말싸움을 넘어가지 않게끔 하는 것이 우진의 목표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선 렉스와 함께 가는 편이 더 효과적일 듯했다. 아무리 배짱 좋은 용병이더라도, 덩치 큰 늑대 마수를 맞닥뜨리면 섣불리 덤벼들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안전장치 정도는 있어야겠지.’


개를 산책시킬 때도 목줄을 쓰는 게 남들에 대한 예의인 법. 우진이 렉스에게 명령했다.


“자세를 낮춰봐. 더, 더더— 옳지.”


늑대가 몸을 바짝 낮추자, 우진이 승마를 하듯 녀석의 등 위에 올라탔다.


이로써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 렉스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려고 하면, 우진이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예정이다.


“자, 출발!”

“······.”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렉스. 우진이 재촉하듯 앞을 향해 손짓했다. 녀석은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갔다.


채석장이 점점 가까워졌다. 한창 작업을 하던 용병들 중 한 사람이 이쪽을 보았다.


“어, 어어?”

“뭐야. 갑자기 왜 말을 더듬어?”


용병은 설명 대신 손가락으로 우진을 가리켰다. 뒤이어 고개를 돌린 용병 또한 눈을 부릅떴다. 말을 더듬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고 우물쭈물대는 용병들. 저리 겁먹었으니 싸울 일은 없을 것 같다. 늑대를 탄 우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용병들은 뒷걸음질 쳐서 길을 열어줬다.


‘렉스를 데려오길 잘했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의문이 든다.


‘이런 놈들로 마수를 어떻게 잡으려는 거지?’


얼핏 보니 나름대로 경험이 많은 용병들로 보였다. 머릿수도 많고. 하지만 마수를 사냥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 생각하던 중, 한복판에 세워진 막사 천막이 들춰지더니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두 사내와 여자 한 명. 바깥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상황을 살피러 나온 듯했다.


그들 중 한 사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검붉은 머리칼과 햇볕에 잔뜩 그을린 구릿빛 피부. 체격이 남들보다 크고 건장했다. 분위기를 보아 용병들의 리더로 추측되었다.


“나는 흑새치 용병단의 조나단이다. 그쪽의 이름을 알 수 있겠나?”


정중하게 말을 걸어오는 조나단.

이를 내려다보며 통성명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우진은 렉스의 등에서 내려온 후 대답했다.


“진이라 부르십시오.”

“음, 처음 듣는 이름이군. 행색을 보아하니 마수 사냥꾼 같은데··· 그쪽도 현상금을 노리고 온 거겠지?”

“그렇습니다.”


조나단은 곤란하다는 듯 이마를 긁적였다.


“난처하게 되었네··· 이봐 진, 사실 우리가 지금 마수를 잡을 밑 준비를 거의 끝낸 상황이란 말이지. 우리가 먼저 사냥을 시도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나?”

“상관없습니다.”


먼저 온 사람이 사냥의 우선권을 가져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진은 선뜻 요구에 동의한 후 방문 목적을 밝혔다.


“사냥하는 걸 곁에서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좋지. 그 대신··· 늑대를 좀 멀리 치워다오. 내 부하들의 사기에 영향을 줄 것 같다.”


조나단이 꽤나 조심스레 부탁했다.


······생각해 보니 용병들의 입장에선 렉스를 심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매드스컬과 대치하고 있을 때, 늑대 마수가 습격하여 후방을 휘저어 놓으면 용병단이 앞뒤로 갈려 나가게 될 테니까.


우진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용병단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조나단은 가능한 이쪽 요구에 응해주려 하는 듯했다.


그러니 우진 또한 조금은 양보해야겠지.


“렉스, 뒤로 빠져 있어라.”


명령에 응하여 렉스가 저 멀리 물러났다. 이를 본 조나단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잘 훈련된 마수로군. 내 부탁을 선뜻 들어줘서 고맙다. 이제 사냥만 잘 끝내면 멋진 하루가 되겠어.”

“사냥은 언제 시작할 예정입니까?”

“글쎄··· 아마 한 시간 안에는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데. 클레어, 준비는 끝났나?”


조나단이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클레어라 불린 젊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땅콩버터를 연상케 하는 연갈색 머리칼과 눈동자. 어째서인지 그녀는 갑옷 대신 펑퍼짐한 로브를 입고 있었다.


“제 쪽 일은 한참 전에 끝내뒀어요. 아까 보니 그물 작업도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던데, 슬슬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이밍이 절묘했군. 좋아! 이 새끼들아, 오늘도 큰돈 한 번 벌어보자.”


조나단이 호쾌하게 웃으며 채석장을 향해 전진했다. 그를 뒤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용병들. 늑대를 보고 겁을 먹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만큼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


이 모습만 봐도 조나단이 좋은 리더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구심점이 되는 리더가 있으면 부하의 기량 또한 몇 단계는 끌어올려진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사냥터에 도달했다. 우진의 시선이 주변 지형을 한 번 훑었다.


‘······꽤 크고 쓸만한 덫을 하나 만들어놨군. 완성도가 나쁘지 않아.’


대충 의도가 짐작이 간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 함정. 과연 이 용병들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클레어, 시작해라.”

“네.”


클레어가 펼쳐진 책 위에 오른손을 올려 두었다. 그러자 연두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글귀들. 룬 문자와 도형들이 파르르 진동하며 들썩거렸다.


곧 클레어가 천천히 책에서 손을 떼내었다.


틱, 티딩—


종이의 글자들이 클레어의 손을 쫓아 허공으로 두둥실 날아올랐다. 악단을 지휘하듯 손을 움직이는 클레어. 그 손짓을 따라 룬 문자가 허공에 재배열된다.


이를 본 우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오, 미친··· 지금 마법을 쓰는 건가?’


말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마치 영화 속 CG를 현실에 덧씌워놓은 듯한 광경.

클레어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연두색 깃털 형상의 빛 덩어리들이 조나단의 몸에 깃든다.


퉁퉁.


조나단이 뭔가를 시험하듯 제자리에서 두 번 뛰었다. 그의 몸이 왠지 가벼워 보였다.


“괜찮군. 늘 그렇듯 지휘는 찰리에게 맡기마.”

“단장, 조심히 다녀오라고.”


빛에 휩싸인 조나단이 혈석장을 향해 내달렸다. 그의 발이 한 번 지면을 찰 때마다, 멀리 뛰기 선수가 도움닫기를 하는 것처럼 2~3미터씩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야말로 날듯이 뛴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광경. 우진은 내심 감탄하며 용병의 뜀박질을 구경했다.


“······깃털 걸음이라 불리는 마법이에요. 몸을 더 가볍고 빠르게 만들어주죠.”


곁에 있던 클레어가 귀띔해줬다. 감탄한 걸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 티가 난 듯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궁금한 걸 질문해봤다.


“저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겁니까?”

“대충 10분 정도예요.”

“오래 가진 않는군요.”

“네. 그래서 시간이 좀 빡빡하죠. 마수가 빨리 반응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조나단의 역할은 미끼다.

마수의 관심을 끌어 함정으로 유도하는 역할. 당연하게도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짓거리인데, 용병단의 단장이라는 자가 당연하다는 듯 그 역할을 떠맡았다.


쨍그랑!


조나단이 짐가방에 든 유리병들을 하나씩 꺼내 던졌다. 병이 박살나며 속에 담겨 있던 새빨간 액체가 흙바닥 위에 흩뿌려졌다.


우진은 코를 킁킁거렸다.


‘피 냄새.’


유리병에 담긴 건 짐승의 피였다. 마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챙겨온 모양.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나단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당장 튀어나와라—! 이 미천한 짐승아!!”


미치광이처럼 병을 던지며 마구 고함을 지르는 조나단. 거리가 제법 있는 데도 우진의 귀가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그 소리가 산등성이에 메아리치며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채석장의 깊숙한 곳, 짙은 그늘이 내려앉은 동굴 안···


끔뻑.


······잠자던 마수의 눈이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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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늑대 무리. NEW +5 9시간 전 1,562 104 13쪽
29 귀물. +12 24.09.18 2,771 151 13쪽
28 영입 제안. +7 24.09.17 3,251 133 15쪽
27 잔업. +6 24.09.16 3,301 147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860 166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713 167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01 159 12쪽
23 세 번째 눈. +7 24.09.10 3,791 156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821 160 13쪽
21 형제. (3) +7 24.09.06 3,824 161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08 162 12쪽
19 형제. (1) +6 24.09.04 3,895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3,971 146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009 165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118 153 13쪽
15 별명. +8 24.08.29 4,201 159 12쪽
14 황금충 볼프. +11 24.08.28 4,382 165 12쪽
13 환영. +7 24.08.27 4,352 176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438 158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471 177 12쪽
»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559 172 12쪽
9 이름. +9 24.08.21 4,634 189 12쪽
8 개척단. +6 24.08.20 4,757 184 12쪽
7 늑대. (3) +7 24.08.19 4,767 201 12쪽
6 늑대. (2) +6 24.08.17 4,816 177 12쪽
5 늑대. (1) +9 24.08.16 4,971 178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174 170 12쪽
3 조우. +8 24.08.14 5,483 177 12쪽
2 흉물. +10 24.08.13 6,575 1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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