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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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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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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

DUMMY

잠들지 못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김우진은 육군에 복무하던 때에 그 사실을 처음 실감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이등병 시절, 불침번을 인수인계받을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특이 사항으로는··· 별 건 없고, 최병장님이 오늘도 잠을 설치시는 것 같더라.”


최병장.

그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말년이었던 최병장은 금방 전역하여 부대를 떠났다. 김우진이 그를 본 시간은 고작 이주일 남짓에 불과했다.


우진이 최병장을 조금이나마 기억하는 건, 그가 지닌 유감스러운 지병 때문이었다.


최병장은 허리 디스크가 터져 누울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 통증에 의해 모두가 잠든 늦새벽에도, 최병장은 홀로 잠들지 못하여 그늘진 복도를 떠돌았다.


피로에 사로잡혀 충혈된 눈과 비척대는 발걸음. 흡사 망령과도 같은 최병장의 모습을 볼 때마다 김우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저렇게 안 되도록 조심해야겠다, 하고···


‘······그때가 몇 년 전이지?’


김우진은 속으로 달력을 헤아렸다.

얼추 셈해보니 14년 전인 듯했다. 우진의 현재 나이는 서른다섯. 군에 입대한 건 대학교 1학년을 마친 직후였다.


14년이면 적잖은 세월이다. 군대에서 겪었던 일 대부분이 잊혀질 시간. 우진은 왜 지금 최병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낸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거울 속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행색이, 그때 보았던 최병장의 모습과 닮아있으니까.


오늘날의 김우진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


‘······이제 12년째인가.’


다시 한번 가슴 속의 달력을 헤아렸다.

12년 전부터 김우진은 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최병장처럼 어딘가 몸이 아파서 그런 건 아니었다.


잠들 때마다 이상한 꿈을 꾼다.


현실과 구분 짓기 어려울 만큼 생동감 넘치는 꿈이었다. 오래 달리기라도 하면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저리는 데다,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찔한 통증까지 느껴진다.


이를 꿈이라 칭하는 게 옳은 건지 의문이 생길 만큼 생생한 꿈. 문제는 이 꿈이 지랄맞은 악몽이라는 점에서 기인된다.


검은 나무들이 늘어선 숲속. 흐르는 강물은 썩은 상처에서 흘러나온 고름처럼 질척했다.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몰려온 생명체들··· 놈들은 하나같이 기괴한 생김새를 지닌 괴물이었다.


이 꿈속 세계에서 김우진이 맡은 역할은 먹잇감이었다. 굶주린 괴물들을 피해 쉴 틈 없이 달렸다.

하지만 우진의 체력은 한정적이고, 영원히 달아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우진이 마주하게 되는 건 이빨 가득한 괴물의 아가리뿐이었다.


콰작!


잡아먹힌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난다. 이 짓거리를 잠들 때마다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매일 밤마다 죽음을 겪다 보니 우진의 정신은 급속도로 피폐해졌다. 잠이 부족하기에 평범한 일상생활 또한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끝없는 악순환이었다.


우진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부탁했다. 용하다는 무당도 몇 번 만났다.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증상입니다.”


하지만 누굴 만나던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사실상 시한부 선고와 같은 결론.


김우진은 낙담에 잠겼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다. 매일 괴물들의 먹잇감이 되는 수밖에···


······그리 암울하게 살아가던 중.


‘뭐지?’


어느 날, 우진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처럼 꿈속 괴물들을 피해 도망쳤다. 그런데 놈들이 도중에 사냥을 포기해버린 건지,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뒤를 쫓는 생명체가 없었다.


‘설마··· 따돌린 건가?’


아무리 요령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숙달되기 마련.

수백, 수천 번이 넘도록 죽음의 술래잡기를 해온 덕분에, 김우진은 어느 순간부터 괴물들의 눈을 피하는 요령을 깨우쳤다.


그때부터 이 꿈속 세계가 조금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마냥 답이 없지는 않구나.’


지옥 같은 곳이라도 나름의 규율이 존재한다. 김우진은 생존에 필요한 지식들을 익혀갔다.

마주치면 위험한 생물, 상대할 만한 생물, 먹어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물을 구하는 방법···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 없었다. 꿈속에선 죽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더 오래 버티기 위해선 생존 기술들도 좀 익혀놔야 할 것 같네.’


현실 세계의 기술은 꿈속 세계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잠에서 깨어 있을 때는 인터넷을 뒤적여 각종 생존 지식을 익혀갔다. 흔히 부시크래프트라 불리는 야생에서의 생존 기술.


거기서 더 나아가 각종 격투기와 검술, 궁술을 비롯한 무기술, 덫 놓는 방법도 틈틈이 익혔다. 괴물들을 상대로 매번 도망치기만 하는 것도 슬슬 질리기 때문이었다.


‘당하고만 살 수는 없지.’


죽을 때 죽더라도 저놈들에게 칼침이라도 한 방 먹이면 만족스러울 듯했다. 그런 독심을 원동력 삼아 우진은 여러 기술을 터득하고, 꿈속에서 그 성과를 시험했다.


그렇게 12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의 김우진은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 꿈속 괴물들과 드잡이질을 하는 건 무모하기 그지없는 짓이므로.


하지만 그는 이제 사냥감이 아닌 사냥꾼이다. 잠드는 건 힘겨운 일이지만, 적어도 예전과 같은 비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는, 꿈속 세계에 너무 매몰되어 현실감을 점차 잃어가고 있단 점이다.


‘거지꼴이 따로 없군.’


양치질을 하던 우진은 문득, 거울 속에 비쳐 보이는 자신의 행색을 골똘히 살펴봤다.

머리칼은 손질하지 않아 엉망으로 뒤엉켰고, 턱을 매만지자 까슬한 턱수염이 손끝에 걸렸다. 잠을 깊이 자지 못하여 충혈된 눈은 덤이었다.


그간 자기 관리에 너무 소홀했다. 이 모습을 보고 최병장을 떠올린 게 그분에 대한 실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속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될 텐데.’


줄곧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왔다.

커리어라곤 전혀 없는 상황. 이대로 계속 나이만 먹어가면 현실 또한 꿈속 세계 못지않게 암울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일찍이 고된 일을 해온 덕분에 돈은 꽤 모아놨다. 이 자금으로 새로운 출발을 해보는 건 어떨까.


‘치킨집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당구장? 괜히 뭘 해보려다가 기껏 모아둔 돈까지 다 날려 먹을 것 같기도 하고···’


양치를 잊은 듯 김우진은 칫솔을 입에 문 채로 생각에 잠겼다. 당연하게도 사업을 구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고민해봤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우진의 시선이 다시 거울로 향했다. 거뭇한 수염으로 뒤덮인 턱이 새삼 지저분해 보였다.


‘······일단 면도부터 하자.’


어려운 일을 고민하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일부터 하나씩 처리해야겠다.


못다 한 양치질을 마친 후. 우진은 면도기로 수염을 쓱쓱 밀었다. 면도 거품이 걷어질 때마다 검은 턱수염이 때처럼 벗겨졌다. 세수를 하자 눈에 띄게 말끔해진 얼굴.


‘흐, 이제야 좀 사람답네.’


김우진은 만족스레 웃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주르륵—


돌연 시뻘건 코피가 흘러내린다.

당황한 우진은 급히 콧구멍을 틀어막았다. 수도꼭지를 틀어둔 것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피. 코에 꽂아둔 휴지가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 우진은 코끝을 꽉 짓눌러서 지혈을 시도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코피는 멎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핑 돈다. 우진은 비틀대며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벽에 기대듯 손을 짚을 때마다 시뻘건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쿵!


몸이 썩은 통나무처럼 기울어졌다. 우진은 뺨을 바닥에 처박은 채로 가쁜 숨을 내쉰다. 그 와중에도 끝없이 흘러나오는 핏물.


‘······이야··· 이러다가 죽겠다.’


코피를 너무 흘려서 과다 출혈로 사망이라. 꿈속 세계에서조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망 사유였다.


죽음이 코앞인데도 우진은 이상하리 태연했다. 지금껏 악몽 속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겪어서 익숙한 걸까. 혹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현실감이 마비된 탓일까.


어쨌거나 김우진은 지금의 상황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


물밀듯 쏟아지는 졸음. 해소 못 한 갈증을 끝으로, 우진은 곧 까무룩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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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영입 제안. +7 24.09.17 3,253 133 15쪽
27 잔업. +6 24.09.16 3,303 147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861 166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714 167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02 159 12쪽
23 세 번째 눈. +7 24.09.10 3,792 156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821 160 13쪽
21 형제. (3) +7 24.09.06 3,825 161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08 162 12쪽
19 형제. (1) +6 24.09.04 3,896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3,973 146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009 165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120 153 13쪽
15 별명. +8 24.08.29 4,201 159 12쪽
14 황금충 볼프. +11 24.08.28 4,382 165 12쪽
13 환영. +7 24.08.27 4,355 177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440 158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473 178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560 172 12쪽
9 이름. +9 24.08.21 4,634 189 12쪽
8 개척단. +6 24.08.20 4,758 184 12쪽
7 늑대. (3) +7 24.08.19 4,768 201 12쪽
6 늑대. (2) +6 24.08.17 4,818 177 12쪽
5 늑대. (1) +9 24.08.16 4,973 178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178 170 12쪽
3 조우. +8 24.08.14 5,486 177 12쪽
2 흉물. +10 24.08.13 6,578 19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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