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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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no1
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최근연재일 :
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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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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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형이 준 힘

DUMMY

“그냥 이렇게 쓰시면 된다니까요?”


철민은 책상에 앉아 거만한 눈빛으로 지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한은 철민에게서 받은 웹드라마 시나리오 계획서를 그에게 도로 내밀며 말했다.


“이대로는 쓰기 곤란해요.”

“쓰기 곤란하다고요?”

“남의 작품을 짜깁기해서 만든 이 계획서대로 시나리오를 못 씁니다.”

“허.”


철민은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 쳤다. 비웃는 뉘앙스가 담긴 코웃음이어서 맞은편에 책상을 맞댄 여직원이 고개를 들고 놀란 표정으로 지한과 철민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작가님 써온 대로 찍었다가 조회수가 역대 최저 수준이었잖아요?

“......”

“우리는 뭐 땅 파서 장사합니까? 돈 되는 시나리오로 웹드라마를 찍어야죠.”

“안되는 건 안 됩니다.”


철민은 한숨을 쉬고는 부드러운 말투로 바꿔서 말했다.


“조회수만 잘 나오면 됩니다.”

“그래도 이건 표절입니다.”

“아, 안 걸리게 쓰면 되죠. 우리가 한두 해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거 하나 처리 못 할까 봐 그러시나요?”


지한은 말없이 철민을 쳐다보다 웹드라마 시나리오 계획서를 매고 있던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10분짜리 12회분 시나리오는 한 달이면 되겠죠? 어차피 이야기는 다 정해져 있으니까.”


철민은 지한에게 가보라는 눈짓을 했다. 그 태도가 명령을 내리는 상사처럼 건방졌다. 지한은 속으로 은근히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지한이 출입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순간, 아영이 철민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작가님에게 그러시면 어떡해요? 저 분이 대본을 주셔야 우리도 촬영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무슨 소리야, 아영 씨. 웹드라마 대본 쓸 사람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고. 나도 저 사람이 쓰는 정도는 발로도 쓸 수 있고.”


철민은 굳이 목소리를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지한은 화를 삼키며 FN 컨텐츠회사 정문을 나섰다.


**


“FN 소속이면 말단 직원이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남을 망신시키는 건가.”


지한은 지하철을 타고서도 철민이 생각나 중얼거렸다. 화요일 오후여서 지하철은 한산했다. 지한이 탄 칸에는 노인 두 사람과 아주머니,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남자 한 사람뿐이었다. 지한은 좌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혀를 찼다.


“권진성뿐만 아니라 말단 직원까지 양심은 어디 내다 버렸는지.”


반년 전에 지한의 형인 서현수는 옥탑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이었다. 지한과 그의 형은 고아였다. 어릴 때 각자 입양되면서 헤어져 지한이 성년이 되어서야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지한은 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자신에 대해 말을 거의 하지 않은 형이지만, 죽기 전날 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지한아. 너는 절대로 억울하게 살지 마라. 너도 시나리오 작가가 되길 원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하는 말이다. 너는 절대로 네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마라. 권진성이나 백도현 같은 자들은 특히 더.’


휴대폰으로 들은 형의 마지막 말이었다. 지한은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형은 그 외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현수가 지한에게 알린 것은 그가 진성의 밑에서 보조작가로 일했다는 것과 권진성이 현수의 작품을 무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뿐이었다. 현수가 남긴 말을 토대로 조사를 해서 지한은 권진성과 백도현이 FN 컨텐츠 회사 소속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현수는 권진성의 보조 작가였다. 지한은 형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권진성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FN 컨텐츠회사에 웹드라마 작가로 지원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지한은 시나리오를 썼지만, 권진성과 백도현에 닿을 정도로 실적을 내지 못했다.


건방진 철민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은 그럴 힘이 없었다. 가방 속에는 철민이 만들다시피한 이야기 가이드라인 A4 용지 묶음이 있었다. 이제는 표절에 가까운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써야한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형편 없이 낮은 조회수를 생각하니 지한은 의견을 확실히 낼 수도 없었다.


*


월셋방이 있는 빌라 정문에 들어서자 화단 앞에서 서성이던 절친 민우가 지한을 맞았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이번에 드라마 하나 들어가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지한이 묻자 민우가 대꾸도 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봤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얼굴이 왜 그래?”

“우리 이번 드라마 1, 2화 시청률이 1%대야. 잘 못 하면 조기종영 될 수도 있어. 그 때문에 김재영 그 새끼한테 엄청 깨졌어. 너도 알지? 성질 더러운 메인 작가 새끼.


민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메인 작가가 네게 화풀이를 했어?”

“그런 셈이지. 지금 시청률이 바닥이야. 피디, 메인 작가 모두 방송국 눈치만 보고 있어. 당장 조기종영하라고 할까 봐. 그러니 메인 작가가 지랄을 하는 거고. 나 같은 보조작가들은 지금 전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니까.”

“그 인간이 정말......


지한은 화가 났다. 철민이 건방지게 굴 때보다 더 분노가 일었다. 메인 작가에게 험한 취급을 받는 민우의 모습이 형 같았다. 하지만 당장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민우와 함께 화를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기분도 꿀꿀하니까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너 아귀찜 좋아하잖아. 맛있는 거 먹고 기분이나 풀자.”


민우는 바닷가 출신이어서 생선 요리를 매우 좋아했다. 더구나 아귀찜은 미칠 듯이 좋아했다. 지한의 말에 민우는 피식 웃었다.


“이런 날은 한잔해야 하는데 아쉽네. 저녁에 하필 모임이 잡혀 있거든. 뭐, 네가 낮술 마시는 거 싫어하기도 하고.”


민우의 말에 지한은 화가 났다. 그는 낮술 마시는 삶은 성실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콜에라도 취해 뭐 같은 현실을 잊고 싶었다.


“한잔이면 괜찮지 않을까? 저녁 약속 전에 나오면 되고.”


민우는 다시 피식 웃은 뒤 지한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우리 모범생님이 낮술을 다 허락한 날에 꼭 마셔줘야지.”


*


파마머리를 한 오십 대 여자가 지한과 민우 사이에 밑반찬을 놓은 뒤 소주와 소주잔 두 개를 식탁에 올려주었다. 민우는 지한의 소주잔과 자신의 소주잔 모두를 채웠다. 민우는 물 마시듯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는 소주잔을 탁자에 탁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나도 지금 우리 드라마 큰일 난 거 알아.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지가 메인 작가라고 보조 작가들을 들들 볶는 건 또 뭐냐? 우리가 뭐 장소 섭외를 못했어, 자료 조사를 못했어? 제작자한테 깨졌다고 우리에게 스트레스 풀고 있어.”


지한은 젓가락으로 오이 소박이와 계란찜을 집어 먹으며 민우의 말을 들었다. 민우가 다시 소주를 들이키자 지한도 자신의 소주잔을 깨끗하게 비웠다. 민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웬일이냐? 낫술은 절대 안 하는 녀석이.”

“나도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거든.”

“그래? 이번에도 그 녀석이냐?”

“어. 오늘도 미리 짜놓은 대로 쓰라고 거들먹거리면서 A4 뭉치나 던져주더라.”

“흐음, 그 자식 언제 한번 제대로 손봐줘야겠는데.”

“문제는 나야. 표절이 분명한데도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지한은 다시 소주를 따라 한 번에 들이킨 뒤 말했다.


“그렇지.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조금 전 파마머리 여자가 와서 아귀찜 대 자를 지한과 민우 사이에 놓았다. 아귀살과 콩나물과 빨간 양념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지한은 아귀찜에 젓가락도 대지 않고 다시 소주를 들이마셨다.


“야, 조금만 마셔. 누가 보면 애한테 술 먹이는 줄 알겠다.”


그 말에 지한이 민우를 노려보자 민우는 딴청을 부렸다. 지한은 한 번은 참는다는 심정으로 콧바람을 내뿜었다.


“전부터 궁금하던 건데.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왜 FN 콘텐츠회사와 일을 하려는 거냐? 무슨 이유라도 있어?”


민우의 질문에 지한은 젓가락을 든 채 멈칫했다. 그러나 곧 빨간 양념이 밴 콩나물을 집어들며 대답했다.

“이유는 무슨. 거기가 지금 제일 잘나가는 데니까 그렇지.”


그 말에 민우는 피식 웃었다.


“그렇지. FN컨텐츠회사라면 업계에서 제일 알아주지.”


민우는 시원하게 소주를 쭉 들이켠 뒤 잔을 탁자에 소리 나게 놓았다.


“이 형님이 잘나가면 우리 동생 딱 도와주면 되는데. 내가 동생 볼 면목이 없다.”

“얀마, 고작 두 달 차이로 형님 노릇을 해야겠냐?”

“두 달 형님도 형님이야, 인마.”

“아, 그래? 그러면 여기 아귀찜 우리 형님이 사는 거지?”

“아니지. 먼저 먹자고 한 사람이 내야지.”


민우가 눈을 휘면서 다정하게 웃었다. 친구의 빠른 태세 전환에 지한이 피식 웃어버렸다.


“아이고, 참. 내가 낸다 내. 아귀찜 값 누가 내는 것으로 싸워봤자 뭐 하겠냐. 그냥 기분 좋게 마시고 먹으면 되지.”

“그럼 그럼. 그래야 내 아우지.”

“......아귀찜 뒤집어 엎는다?”

“잘못했습니다, 형님. 여기 한 잔 받으십시오.”


민우는 장난스레 넙죽 인사하고는 지한의 잔을 채웠다. 지한은 다시 피식 웃고는 소주를 이번에도 단번에 마셨다.


*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지한은 소주 반병에도 취해버렸다. 민우는 지한을 부축해 근처 정류장으로 갔다. 민우가 지한을 제대로 부축하려 애쓰며 말했다.


“야야, 안 되겠다. 너 이대로 혼자 못 가겠다. 내가 바래다 줄게.”

“나 안 취했어. 혼자 갈 수 있으니까 그러네. 좀 쉬었다 가면 되니까 너 빨리 약속 장소에 가봐라.”


민우는 힘들게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한은 길가에 있는 정류장 벤치에 앉은 뒤 민우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그만 가 봐라. 나는 여기서 좀 앉아 쉬었다가 갈 테니까. 안 그래도 늦었잖아.”

“진짜 괜찮겠냐?”

“내가 애냐? 뭘 그렇게 걱정하냐? 그만 가봐라. 이 형님, 소설 구상 좀 하게.”


지한의 말에 민우는 피식 웃었다.


“오냐, 형님아. 이만 가볼 테니까 잘 들어가라.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그래.”


지한은 파리를 내쫓듯이 손을 내저었고 민우는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잠시 뒤에 모임 장소로 가는 버스가 왔다.


“갈게. 조심히 잘 들어가.”


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우는 그제야 안심하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떠나자 지한은 등을 정류장 유리 벽에 기댔다.


“이제 어쩌지......”


지한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형의 일을 밝히기 위해 들어간 FN 컨텐츠회사였다. 그런데 지금 지한의 상황으로 원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속이 답답했지만 지한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형과 관련된 사실을 밝히지 않고 다른 인생을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전광판에 320번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문구가 떴다. 집으로 가는 버스이기에 지한은 벤치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시야에 들어오는 차가 보여 지한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찢어질 듯한 소리가 들리고 ‘쿵’하는 소리와 함께 지한은 멍해졌다. 정류장 밖으로 내려섰다 급하게 달려오던 스타렉스에 부딪힌 지한은 멀리 날아가 떨어졌고 곧 의식을 잃고 말았다.


지한은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끼며 누워 있었다. 향긋한 꽃냄새가 주위를 감돌고 따뜻한 햇살이 지한의 뺨을 데웠다. 옆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지한은 눈을 떴다. 형이 지한의 옆에 앉아 있었다. 지한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형!”


지한의 형은 슬프면서도 다정한 눈빛으로 동생의 얼굴을 보다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벌써 여기에 오면 안 돼. 내 몫까지 오래 살아줘.”


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한은 머리가 찌릿했다. 다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어느 순간 시야가 밝아졌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흰 천장이 보였다.


‘형!’


지한은 형을 불렀지만,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시 형을 보고 싶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얀 천장뿐이었다. 고였던 눈물이 눈가로 흘러 떨어졌다. 그때 지한의 눈앞에 환한 빛무리가 나타났다. 지한은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지?”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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